슬라브 여인의 작별
관련항목 : 군가, 군가/해외
'''Прощание Славянки'''
'''Farewell of Slavianka'''
블라디미르 라자레프 (Владимир Яковлевич Лазарев, 1936-), 안드레이 민갈료프 (Андрей Мингалёв) 등 다수가 작사하고 바실리 아갑킨 (Василий Иванович Агапкин, 1884-1964)가 작곡했다. 러시아 군가. 행진곡으로도 자주 쓰인다.
러시아 국내외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러시아 군가다. 소련 시대의 음악들을 모아 놓은 사이트 www.sovmusic.ru/english의 Our Top Twenty란에서도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불세출의 명곡.
러시아 제국 시절, 러일전쟁으로 영문도 모른 채 극동으로 끌려와야 했던 병사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멜로디를 기원으로 한다. 가사가 "아, 왜 우리가 군인으로 이런 극동 지역까지 끌려와야 했던가"라는 내용이었고, 반전주의적 노래를 좋아할 리 없는 군 당국은 병사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러다 1912년, 유럽에서 발칸 전쟁이 발발했고, 오스만 튀르크에 맞서 싸우는 발칸의 슬라브에 대한 동정 의식이 러시아에 확산되기 시작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갑킨이라는 군악대장이 일종의 응원 차원에서 러일전쟁 당시 병사들에게 금지 당한, 초기의 슬라브 여인의 작별의 멜로디를 차용하여 우리가 익히 아는 곡을 작곡하게 된다.
이 곡이 장병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는지, 전 러시아군에 이 노래가 불리어지게 된다. 이렇게 인기곡이 된 슬라브 여인의 작별은, 군에서 여러 버전으로 개사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인기가 많았다.
적백내전 기간 동안 백군이 가사를 바꾸어 '학도병의 노래'라는 노래로 사용했기에 소련 공산당은 금지를 당했고, 니키타 흐루쇼프가 집권하면서 규제에서 풀렸다는 소문이 있으나 실제로는 다르다.[1] 적백 내전 당시의 백위군이 학도병의 노래로 개사를 하여 부른 것은 사실이나 슬라브 여인의 작별은 규제 대상이 아니었다. 40년대에 또다른 가사가 붙어 소련에서 많이 불려지게 된다. 가사의 내용에서 베를린 이야기가 나오는 걸로 미루어보아 1945년 종전 이후에 개사 되어 불려진 듯.
지금은 승리의 날이나 기타 군 행사에 상당히 자주 사용되는 편.[2][3] 심지어 러시아의 탐보프 주의 주가(주의 노래)로 연주 된다니 러시아 내에서의 위상을 실감할 수가 있다. 90년대, 소련이 망하고 러시아가 국가마저 바꿔야 하는 상황에서, 자유주의적 정당인 야블로코가 이 음악을 국가로 채택하려는 시도를 하다 무산되기도 했다. 노래 배경이 기차역이어서 그런지 러시아 기차가 출발할 때도 자주 사용된다고 한다.
러일전쟁 80주년, 작곡자 아갑킨 출생 100주년을 맞아 1984년, 블라디미르 라자례프라는 사람이 가사를 개사한 버전. 앞에 있는 붉은 군대 버전과는 가사가 전혀 다르다. 뭔가 더 슬라브 여인의 작별이라는 제목과 어울리는 버전. 웅장하게 부른 버전도 있는데 가사랑 좀 안 어울린다.
어쨌든 워낙 널리 퍼진 노래이다 보니 수많은 버전이 존재한다.
평범한 위키니트가 알아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지금 알려진 버전은 이렇다.
알렉산드로프 앙상블 버전. 가장 일반적이며 유명한 듯. A. 페도토프가 작사했다. 가사를 보면 뭔가 공산주의적 색채가 물씬 풍기는데 소련 시절에 개사된 것이다. 물론 요즘엔 공산주의 냄새난다고 쿠반 코사크 합창단이라든지 여타 가수들에게는 외면 당했다.
가사:
원래 가사와 음원의 가사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많이 변형되었다. 사실 이것도 버전이 꽤나 많다. 공식만 세 개쯤은 돼보이고 라이브를 위한 변형까지 세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가사:
가사:
한국어 자막 버전[8]
해당 버전을 직접 작사, 가창하고 이를 발표한 가수의 이름을 따 다샤 지트코바(Dasha Zhitkova, Даша Житкова) 버전이라고도 불린다. 참고로 그녀는 이 곡을 불렀을 때 상트 페테르부르크 극장 연구소 (RGII)의 학생이었다고 한다.
다른 가사들에 비해 상당히 비관적이고 우울한 내용이 특징이다.
가사:
Rozszumiały się wierzby płaczące라는 제목으로 개사되었으며 제 2차 세계대전때 폴란드 파르티잔들이 불렀다.
가사:
https://youtu.be/B_AbJt-EYKs
리믹스한 버전도 있다
'''Прощание Славянки'''
'''Farewell of Slavianka'''
1. 개요
블라디미르 라자레프 (Владимир Яковлевич Лазарев, 1936-), 안드레이 민갈료프 (Андрей Мингалёв) 등 다수가 작사하고 바실리 아갑킨 (Василий Иванович Агапкин, 1884-1964)가 작곡했다. 러시아 군가. 행진곡으로도 자주 쓰인다.
러시아 국내외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러시아 군가다. 소련 시대의 음악들을 모아 놓은 사이트 www.sovmusic.ru/english의 Our Top Twenty란에서도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불세출의 명곡.
러시아 제국 시절, 러일전쟁으로 영문도 모른 채 극동으로 끌려와야 했던 병사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멜로디를 기원으로 한다. 가사가 "아, 왜 우리가 군인으로 이런 극동 지역까지 끌려와야 했던가"라는 내용이었고, 반전주의적 노래를 좋아할 리 없는 군 당국은 병사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러다 1912년, 유럽에서 발칸 전쟁이 발발했고, 오스만 튀르크에 맞서 싸우는 발칸의 슬라브에 대한 동정 의식이 러시아에 확산되기 시작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갑킨이라는 군악대장이 일종의 응원 차원에서 러일전쟁 당시 병사들에게 금지 당한, 초기의 슬라브 여인의 작별의 멜로디를 차용하여 우리가 익히 아는 곡을 작곡하게 된다.
이 곡이 장병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는지, 전 러시아군에 이 노래가 불리어지게 된다. 이렇게 인기곡이 된 슬라브 여인의 작별은, 군에서 여러 버전으로 개사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인기가 많았다.
적백내전 기간 동안 백군이 가사를 바꾸어 '학도병의 노래'라는 노래로 사용했기에 소련 공산당은 금지를 당했고, 니키타 흐루쇼프가 집권하면서 규제에서 풀렸다는 소문이 있으나 실제로는 다르다.[1] 적백 내전 당시의 백위군이 학도병의 노래로 개사를 하여 부른 것은 사실이나 슬라브 여인의 작별은 규제 대상이 아니었다. 40년대에 또다른 가사가 붙어 소련에서 많이 불려지게 된다. 가사의 내용에서 베를린 이야기가 나오는 걸로 미루어보아 1945년 종전 이후에 개사 되어 불려진 듯.
지금은 승리의 날이나 기타 군 행사에 상당히 자주 사용되는 편.[2][3] 심지어 러시아의 탐보프 주의 주가(주의 노래)로 연주 된다니 러시아 내에서의 위상을 실감할 수가 있다. 90년대, 소련이 망하고 러시아가 국가마저 바꿔야 하는 상황에서, 자유주의적 정당인 야블로코가 이 음악을 국가로 채택하려는 시도를 하다 무산되기도 했다. 노래 배경이 기차역이어서 그런지 러시아 기차가 출발할 때도 자주 사용된다고 한다.
러일전쟁 80주년, 작곡자 아갑킨 출생 100주년을 맞아 1984년, 블라디미르 라자례프라는 사람이 가사를 개사한 버전. 앞에 있는 붉은 군대 버전과는 가사가 전혀 다르다. 뭔가 더 슬라브 여인의 작별이라는 제목과 어울리는 버전. 웅장하게 부른 버전도 있는데 가사랑 좀 안 어울린다.
어쨌든 워낙 널리 퍼진 노래이다 보니 수많은 버전이 존재한다.
평범한 위키니트가 알아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지금 알려진 버전은 이렇다.
- 1912년 아갑킨의 원곡. 가사는 없다.
- 1914~1917 1차대전 동안 불려진 버전. 세 개가 있는데 찾을 수 있는 음원이 없다.
- 1920년대 적백 내전, 학도병의 노래. 찾을 수 있는 음원이 없다. 현재로썬 찾을수 있는 노래는 콜차크의 백군이 불렀던 버전. #
- 1940년대 개사가 된 공식 버전. 공식 버전이라지만 가사에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강하기에 실제로는 밑의 라자레프나 민갈료프의 버전을 더 많이 쓴다. 물론 알렉산드로프 앙상블에서는 이거 밀고 나간다.
- 1984년에 작사가 된 라자레프의 버전. 네이버 블로거 골리앗이 라자레프의 버전을 1912년 원 가사로 착각하여 국내에서는 1984년이 1912년으로 둔갑했다.
- 1990년대 안드레이 민갈료프의 버전. 백군의 가사를 변형한 것으로 추정된다.
- 그 밖에도 소련의 저항 시인 갈리치가 개사한 버전도 있다.
2. 가사
2.1. 소련 공식 가사
알렉산드로프 앙상블 버전. 가장 일반적이며 유명한 듯. A. 페도토프가 작사했다. 가사를 보면 뭔가 공산주의적 색채가 물씬 풍기는데 소련 시절에 개사된 것이다. 물론 요즘엔 공산주의 냄새난다고 쿠반 코사크 합창단이라든지 여타 가수들에게는 외면 당했다.
가사:
2.2. 블라디미르 라자레프 개사 버전
원래 가사와 음원의 가사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많이 변형되었다. 사실 이것도 버전이 꽤나 많다. 공식만 세 개쯤은 돼보이고 라이브를 위한 변형까지 세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가사:
2.3. 안드레이 민갈료프 버전
가사:
2.4. 2017년도 버전
한국어 자막 버전[8]
해당 버전을 직접 작사, 가창하고 이를 발표한 가수의 이름을 따 다샤 지트코바(Dasha Zhitkova, Даша Житкова) 버전이라고도 불린다. 참고로 그녀는 이 곡을 불렀을 때 상트 페테르부르크 극장 연구소 (RGII)의 학생이었다고 한다.
다른 가사들에 비해 상당히 비관적이고 우울한 내용이 특징이다.
가사:
2.5. 러시아 제국 버전
2.6. 폴란드어
Rozszumiały się wierzby płaczące라는 제목으로 개사되었으며 제 2차 세계대전때 폴란드 파르티잔들이 불렀다.
2.7. 중국어
가사:
https://youtu.be/B_AbJt-EYKs
리믹스한 버전도 있다
3. 각종 매체에서의 등장
- 러시아 영화 제독의 백군 돌격 장면에 등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적군의 기관총 진지 앞으로 백군 육군의 보병들이 걸어서(...) 행진하는 것을 주저하자, 군악대를 시켜 이 곡을 연주해 사기를 올리려고 한다. 그러다가 백군 측 간호사가 선두에 서서 진격을 독려하다 적군 측 사격에 사망하자, 빡돌은 백군은 군악대장이 악기를 던저 버리고 칼을 뽑고 돌격하는 등 용맹하게 싸워 결국 진지를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1] 다만 흐루쇼프 때 영화 백학의 비행에 OST로 사용 되어 서방권에 널리 알려지기는 했다. 그 영향 때문에 이런 루머가 만들어진 듯.[2] 예를 들어, 2010년부터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전승기념일 열병식에서 마지막 군악대 분열시 항상 연주되었다.[3] 그런데 2015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승기념일 행사에서는 도보 부대가 분열할 때 연주되었다. 모스크바 방위군악대는 행사 중에 쓰였던 곡을 보통 다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군악대 분열에는 Мы-армия народа(우리는 인민의 군대)를 부르고 День Победы(승리의 날)을 연주했다.[4] 행진곡(марш)를 지칭. 대명사 Он으로 받을 수 있는 '''남성 단수명사'''는 марш 밖에 없다. 이후도 마찬가지.[5] 러시아어 단어 вагон은 철도에서 기관차를 제외하고 연결되는 차량을 말하는데, 여기선 복수로 쓰였다. 그런데, 이게 영어 무슨 단어에서 온 것인지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영어 wagon이 러시아어로 вагон이 된 것이다. 언어가 달라지면서 뜻이 달라지거나 또다른 의미가 붙는 경우는 많지만 그래도 원래 의미(짐차)를 생각해 보라.[6] 원 가사에서는 Сочувствия이라고 되어 있다. 뜻은 '아파하는' 여기서의 Солдатская는 '병사들의'라는 뜻이다.[7] 안드레이 민갈료프가 작사한 것을 부른 것으로 별 관련은 없지만 잔나 비쳅스카야는 러시아에서 꽤 쳐준다.[8] 아래의 한국어 해석은 본 동영상의 해석을 거의 옮겨오다시피 가져와 몇몇 부분만 수정했다. 다만 해당 번역을 업로드한 제갈량 자신부터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9] 독소전쟁을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