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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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서방 국가들의 승전일
2.2. 패전국의 입장
2.3. 소련의 대독 승전일인 승리의 날
2.4. 퍼레이드
2.5. 여담
3. 소련의 군가
4. 중국의 전승절
5. 그 외


1. 전승기념일


전승일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는 서방의 Victory in Europe Day(V-E day, VE day, 대독전승일)와, Victory over Japan Day(V-J day, VJ day, 대일전승일)가 있다. 그외의 승리의 날은 여기서.

2.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일



2.1. 서방 국가들의 승전일



1945년, 런던
Victory Day
여기서는 1945년 5월 8일이다. 이 날 제2차 세계 대전 말미에 카를 되니츠 제독을 대통령으로 하는 나치 독일플렌스부르크 정부가 연합군에게 항복하며 독일의 완전한 패전이 확정된 날이다.

2.2. 패전국의 입장


독일에서는 2차대전 종전일(Ende des Zweiten Weltkrieges)이라고 쓴다. 그리고 역사적인 의미와 정치적 맥락을 담아 '''0의 시간(Stunde Null)'''이라 말하기도 한다. 프로이센 왕국 시절부터 이어져왔던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와 결별하고 (또한 나치즘과도 결별하고) 새로운 역사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 날이 아닌 4월 25일을 '이탈리아 해방의 날'로 기린다. 나치 괴뢰 정권인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이 붕괴된 날이다. 이탈리아인들 본인들 사이에도 역사적 논쟁이 격한 주제이지만, 어쨌든 이탈리아는 일본, 독일과 달리 대규모 자국 내 빨치산 세력이 암약하다 1943년 본토 침공쯤에 들어서면 이미 자체적인 반파시스트 대항 정부를 설립했기 때문에 단순한 외세에 의한 '패전'이 아니라 이탈리아인들끼리 '내전'에서 반파시스트 세력이 승리했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2.3. 소련의 대독 승전일인 승리의 날


기념일: День Победы. '졘 빠볘듸'[1]
열병식: Парад Победы
소련 및 옛 공산권 국가에서는 서방 국가들과 달리 5월 9일이 승리의 날이다. 항복이 서유럽 시간으로 5월 8일 오후 11시라 시차를 감안하면 동유럽에서는 5월 9일이었기 때문이다.
소련 시절에 시작된 러시아 및 옛 소련의 구성국들의 기념일 중 하나로, 제2차 세계대전, 러시아측 표현으로는 대조국전쟁의 승전을 기념하는 날이다. 러시아에서 거의 대부분의 소련 시절의 기념일들이 사라지거나 이름이 바뀐 와중에도 아직도 기리고 있는 기념일이다. 러시아는 나치 독일의 침략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국제질서에서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등장,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소련 시기에는 1945년부터 1948년까지 공휴일이었다가 해제되었고, 브레즈네프가 집권한 후 1965년부터 다시 공휴일이 되었다.
"소련군이 전쟁에서 승리한 이 날은,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의 말에 따르면, '소련 인민의 삶에서 '영광의 순간'이 되었다. 이는 소련 역사상 사람들이 조국의 승리와 자유를 위해 감당한 상실의 의미가 명약관화했던 유일한 시기다." 역사학자이자 라디오 방송 '베스티 FM'의 정치 평론가인 안드레이 스베텐코의 말이다.
사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소련 시절보다 더 성대히 기념하는 기념일이다.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현대 러시아인들의 국가적 자긍심, 긍지의 원천이다. 단순히 러시아 민족주의로 과거 초강대국의 승리를 추억하는 추억팔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피할 수 없는 적과의 생사를 건 결전에서 승리했고, 아주 큰 희생을 치르며 승리했다. 상상 이상의 아주 큰 피해를 입었고, 거의 패배 직전까지 갔지만, 그런 어마어마한 피해에도 무너지지 않고 반격하여 기적적으로 역전해 결국 적의 수도를 함락시키며 극적으로 완벽하게 승리했기 때문에 더없이 찬란하게 빛나는 감격스러운 승리가 되었다.
승리의 날이 참전국들 중 유독 러시아에서 중요하게 대접받는 이유는 단순히 한 전쟁에서 이겨서만이 아니다. 2차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쟁이였고 그런만큼 승리의 순간을 맞이하기 전까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피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2]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사실 그 자체도 기념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목적은 그 승리를 얻기 위해 피를 흘린 순국선열들을 기린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이 때문에 실제로 전쟁에 참가했던 유가족들이나 실제 참전용사들이 아직 많이 살아있는 러시아인들에겐 매우 특별한 날일 수 밖에 없다. 실제로도 5월 9일이 조국 러시아에 자긍심을 느끼는 계기가 된다고 인정하는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세계적으로 봐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고 러시아 역사를 봐도 역사상 비견할 예가 없는 가장 위대한 승리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러시아는 이른바 조국전쟁에서는 일단 나폴레옹을 막기는 했지만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고, 크림 전쟁부터는 열강에 얻어맞기만 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에 압도적으로 대조국전쟁에서의 승리라고 답한다.
정리하면,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에서 멸망 직전까지 몰렸던 소련의 기적적인 대역전승은 극적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신화적인 승리였고, 그런 신화적 서사를 가졌기 때문에 제1의 건국신화인 혁명보다도 신성시되는 제2의 건국신화가 된 것이다.[3]
소련 시절 붉은 광장을 지나는 군사 퍼레이드는 10월 혁명 기념일(11월 7일)에만 매년 실시되었고 승리의 날에는 1965년, 1985년, 1990년에만 실시되었다. 스탈린 시대와 흐루쇼프 시대에는 공휴일도 아니었다. 역사학자인 데니스 바비첸코에 따르면, 이오시프 스탈린과 그 사후 소련을 이끈 니키타 흐루쇼프는 대조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군사령관들이 정치적으로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때문에 군사령관들과 참전용사들의 공적을 치하하는 일에 인색했다. 1965년에야 승전기념일은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군사 퍼레이드가 실시되었다. 승전기념일을 국가적 차원에서 전국적 규모로 성대하게 기념할 수 있도록 한 최초의 소련 지도자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였지만 그의 재임기에도 군사 퍼레이드는 혁명 기념일에만 매년 실시되었고 승리의 날에는 1965년에만 치러졌다. 소련 해체 이후 10월 혁명 기념일은 없어졌고 1995년 승리 50주년 퍼레이드 이후 매년 5월 9일에만 군사 퍼레이드를 실시한다. 다만 모스크바에서는 10월 혁명 기념일이 아니라 1941년의 모스크바 전투 기념일로 기념행진을 하는 경우는 있다.
서방과는 달리 1945년 5월 9일(9 мая 1945г.)이다. 왜 서방보다 하루가 느리냐면, 히틀러의 자살 이후 나치 독일의 대통령이 된 칼 되니츠아이젠하워 휘하 서방 연합군에게 항복했지만 스탈린이 소련측 역시 항복협상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되니츠를 베를린으로 소환해 항복을 받았는데 베를린 표준시로는 5월 8일이었지만 모스크바 표준시로는 5월 9일 0시 43분이었기 때문이다. 되니츠의 의도는 항복 협상에서 소련을 배제하고 서방 연합군에게만 항복한 뒤 서부전선의 병력을 동쪽으로 돌려 소련군의 진공을 막아내거나, 소련과 유리한 조건으로 강화를 맺는다는 것이었는데, 서방 연합국과 소련이 동맹을 맺고 독일과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독일 좋을대로 한 쪽에게만 항복하겠다는 주장은 독소전쟁으로 2천만 명의 사망자를 낸 소련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시 유럽 전선의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도 이런 독일의 의도를 말도 안 된다고 여기고 동서 전선 동시에 무조건 항복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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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승리했다!'''

'''1945년 5월 9일 독일을 물리치고 대조국 전쟁을 완료하였다'''

'''1945년 9월 3일 일본을 물리치고 2차세계대전을 끝냈다'''

'''우리의 위대한 인민, 승리자 인민에게 영광을!'''

당시 소련의 동맹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화민국의 국기가 뒷배경이나마 같이 펄럭이는 것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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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병은 과연 얼마나 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을까?'''[4][5]
이 날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과거 소련을 구성했던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2015년 기준으로 공휴일로 지정되어있는 나라는 러시아 외에 벨라루스,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조지아, 몰도바, 그리고 구소련 국가는 아니지만 친러 성향이 강한 세르비아이다. 이들 국가들도 전쟁에서 나치 독일군과 싸우며 적게는 수십만에서 많게는 수백만까지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었기에[6] 러시아만큼 중요시하고 성대하게 기념하지는 않아도 승리의 날을 자신들의 기념일로 여긴다. 심지어 러시아에 비우호적인 이른바 GUAM 국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러시아와 전쟁까지 했던 조지아에서도 여전히 기념되고 있는 것은 승리의 날이 구소련 국가들에게도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7] 물론 남오세티야, 압하지아, 트란스니스트리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등 러시아로의 통합을 추진하는 친러시아 미승인 국가들에서도 공휴일로 지정되어 기념되고 있다.
예외로 구 소련 구성국 중 5월 9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지 않은 국가는 현재까지도 소련과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매우 심해 '''나치를 우호적으로 보는''' 몇 안되는 국가인 발트3국인데, 이들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로 서유럽은 해방되었지만 자국은 해방되지 못했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이들에게는 소련도 나치 독일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압제자였기 때문이다.[8] 따라서 발트 3국은 5월 9일이 아닌 5월 8일을 종전기념일로 인정하고 있고 추모식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념행사도 5월 8일에 열린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도 5월 9일에 참전노병들과 러시아계 주민들을 중심으로 종전을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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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9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열린 군사퍼레이드. 물론 우크라이나도 이 전쟁에서 나치에 대항해 가장 격렬히 싸웠고 당사자인 노병들이 지금도 살아있는만큼 소련 해체 이후에도 이 날을 성대하게 기념해 왔다. 그러나 2014년 유로마이단 이후 크림 위기와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를 겪으면서 반러 경향이 강화된 우크라이나는 2014년 4월 9일 의회에서 채택된 법안에 따라 5월 8일을 '추모와 화해의 날'로 지정하고 공식 문서에서 '대조국전쟁'이라는 단어를 '제2차 세계대전'으로 대체했다. 이에 따라 5월 9일도 '제2차 세계대전 대파시즘 승전기념일'로 명칭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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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9일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노병들과 거리 행진 퍼레이드에 참가한 알략산드르 루카셴카 대통령. 벨라루스는 공식적으로 승리의 날인 5월 9일과 함께 6월 3일을 독립기념일로 기념하는데, 명칭은 독립기념일이지만 벨라루스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날이 아니라 소련군이 나치 독일의 점령으로부터 민스크를 해방한 날이다. 그러니까 전승기념일이 2개인 셈이다. 군사퍼레이드와 대규모 공식행사는 주로 6월 3일에 열린다. 러시아와 워낙 가까운 나라인지라 군사퍼레이드가 열리면 거의 매번 러시아군 보병, 기갑부대, 항공기들도 함께 참가한다. 영상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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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7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군사퍼레이드.[9] 카자흐스탄은 5월 7일을 조국 수호자의 날 겸 남성의 날, 5월 9일을 승전기념일로 각각 기념하고 있다. 군사퍼레이드와 같은 대규모 공식행사는 주로 5월 7일에 열린다. 영상 링크 5월 9일에는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러시아에서 열리는 군사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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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9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참전노병들을 맞이하는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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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9일 아르메니아 예레반의 전몰용사 추모비에 헌화하는 정부 인사들. 아르메니아에서는 5월 9일이 '승리와 평화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기사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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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9일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전몰용사 추모비에 헌화하는 노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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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9일 몰도바 키시너우에서 전몰용사 추모비에 헌화하는 니콜라이 티모프티 대통령, 이고르 코르만 국회의장(좌), 유리 랸케 총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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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9일 타지키스탄 두샨베에서 전몰용사 추모비에 헌화하는 타지키스탄군 의장대

2014년 5월 9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전몰용사 추모식에서 조포를 발사하는 우즈베키스탄군 의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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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9일 남오세티야 츠힌발리에서 열린 군사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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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9일 도네츠크인민공화국 도네츠크에서 열린 군사퍼레이드

2015년 5월 9일 트란스니스트리아 티라스폴에서 열린 군사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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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9일 압하지야 수후미에서 열린 군사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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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모스크바에서 행진 중인 러시아군. 이 날 러시아를 방문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군 퍼레이드 때문에 공항에 갇혔다. 푸틴은 오후에 위기의 크림반도로 가서 흑해함대를 사열했다. #
약 4년간의 독소전쟁 기간 동안 군인과 민간인 합쳐서 대략 2,8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쟁기간의 대혼란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아무도 모른다. 참고로 다른 나라는 독일 900만, 폴란드 600만, 프랑스 60만, 영국 45만, 미국 40만 정도이다. 전쟁 막바지에는 스탈린조차도 게오르기 주코프에게 '''"이제 우리나라엔 전쟁으로 친지를 잃지 않은 사람이 없을걸세."'''라며[10] 그의 몇 번 안되는 진실로 침통한 표정을 보였다고 한다. 이오시프 스탈린조차도 큰 아들을 독일군에게 잃었다.[11] 스탈린은 종전 후 승전 축하연에서도 '''"우리의 승리에 저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모든 것은 소련 인민들의 피와 땀이 이룩한 것입니다."'''하고 연설을 했다.
이 날이 되면 당시 전쟁에 참가했던 노병들에게 꽃을 선물하고 꺼지지 않는 불 앞에 꽃을 바치며 전쟁 당시 사망한 전몰용사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관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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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념하는 러시아군 장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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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 벽에 위치한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각국 정상들
또한 러시아의 대표 TV 뉴스보도 프로그램인 브례먀(Время)도 이날만큼은 특수 오프닝을 사용한다.
http://www.youtube.com/embed/LNoYKyZvNjA

러시아 도시 튜멘에서 촬영된 영상. 방송이 나올동안 대부분의 시민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전몰용사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차에서 내려 묵념에 동참한다.
2020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여파로 인해 5월 9일 전승 기념행사를 연기하기로 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가 오늘 마주하고 있는 위협에서 벗어난 뒤 5월 9일 예정돼 있던 모든 행사를 확실하게 열 것”이라고 밝혔다.#

2.4. 퍼레이드



1945년 6월 24일 전승기념일 행사를 편집한 것이다.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의 목소리가 감격에 겨워서인지 매우 쩌렁쩌렁하다. 흑마를 타고 주코프를 마중 나온 제병 지휘관은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원수였다. 두 사람은 올라타면 금방이라도 내동댕이칠 것 같은 말을 잘 다루면서 사열을 받았다. 아닌게 아니라 이 두 사람은 기병출신이었다. 원래는 스탈린이 직접 말을 타고 사열하는 것을 검토했었는데 스탈린도 기병부대의 정치장교를 했었기 때문에 승마 자체는 가능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말을 타보지 않아서 감각이 떨어지고 나이도 있어서 승마 사열이 곤란해지자 주코프에게 양보했다고 한다. 주코프와 로코솝스키는 오랫동안 기병 장교로 복무했으므로 승마에는 매우 익숙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영상을 잘 보면 연단 위에 스탈린을 비롯한 당시 소련의 수뇌부들인 외무장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세묜 부됸니,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미하일 칼리닌 등이 보인다.
https://www.youtube.com/watch?v=9Pk-gZByJTw
1985년, 40주년 전승일 영상. 기념사를 한 소련 국방장관 세르게이 소콜로프 원수는 장고봉 전투에서 참전한 경력도 있는 74세의 고령 장성이었는데, 이후에도 소련 최고령 원수로 장수하다가 2012년 8월 31일에 10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WGJv7nC0uE
1990년, 45주년 전승일 영상.
http://www.youtube.com/embed/CPJwtuk1iIc

1995년, 50주년 전승일 영상. 1995년 군사퍼레이드는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과 파클론나야 언덕(Поклонная гора) 두 곳에서 열렸는데 제1차 체첸 전쟁으로 러시아의 군사행동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에 이를 의식한 옐친 정부에서 기갑 부대와 항공기는 파클론나야 언덕으로 모두 보내고 외국 정상들이 참석한 붉은 광장에서는 노병들과 일부 보병 부대만을 참가시켰다.
http://www.youtube.com/embed/FlaLPizQgO4

1995년 전승일 영상.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조지아 대통령을 비롯한 CIS정상들과 빌 클린턴 대통령, 장쩌민 주석 등이 참석했다.
2000년, 55주년 전승일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L87HUIDcyL4

2005년, 60주년 전승일 영상. 각 전선에 참전했던 노병들이 트럭을 타고 지나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 후진타오 주석, 고이즈미 총리 등 외국 정상들이 대거 참석했으며 그 중에 노무현 대통령도 포함되어있다. 46분 00초를 보자.
http://www.youtube.com/embed/rdJK59VnQ

2006년, 61주년 전승일 영상.
http://www.youtube.com/embed/ENSaYNZ5pek
2007년, 62주년 전승일 영상.
http://www.youtube.com/embed/SVftUE6vgxU
2008년, 63주년 전승일 영상. 이 때부터 기갑부대와 항공기들이 다시 대규모로 동원되기 시작했다.
http://www.youtube.com/embed/dOW3Orutow0
2009년, 64주년 전승일 영상.
http://www.youtube.com/embed/d6GB-1BdWKA
2010년, 65주년 전승일 영상. 65주년을 맞아 CIS국가들(조지아, 우즈베키스탄, 발트3국 제외)과 미국, 영국, 프랑스, 폴란드 등 서방연합국들이 참가했다.
http://www.youtube.com/embed/vhkePLsm_pU
2011년, 66주년 전승일 영상. 거의 모든 장병들이 보급이 완료된 신형 디지털 플로라 군복 보급을 입고 나온 것이 눈에 띈다.
http://www.youtube.com/embed/9CKJEpfawCI
2012년, 67주년 전승일 영상.
http://www.youtube.com/embed/6x2ZK-dV3ykI
2013년, 68주년 전승일 영상.
http://www.youtube.com/embed/D4x_OmqGs40
2014년, 69주년 전승일 영상. 해군이 등장하는 27분 41초와 흑해 함대 해군보병 소속 BTR-80이 등장하는 41분 29초에 전설적인 세바스토폴이 연주되는게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kDFVNhlBE7U

2015년, 70주년 전승일 영상.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 악화로[12] 일부 CIS국가들과 중국,[13] 인도, 몽골, 세르비아 등 친러시아 국가들의 군대만 참가했다. 퍼레이드 초반부에 외국 군대들의 행진에서 아제르바이잔군이 가장 먼저 행진하였는데 바로 다음 국가가 아르메니아(...). 두 국가는 관계가 매우 안좋은데 순서가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벨라루스-카자흐스탄....) 으로 편성되었다. 서로 증오하는 국가들이 연달아 배치되었다.
70주년이라 그런지 상당히 공들인 흔적이 보인다. 보병 퍼레이드 때 중국군은 아예 육해공에서 한줌씩 빼서 보냈으며 기갑 퍼레이드가 시작될 때 평소에는 T-34-85 1대가 나오지만 이날은 T-34-85 일곱 대와 몇 대의 SU-100이 출연했으며 세계 최초의 4세대(러시아식으로는 5세대)전차시가전용 무인포탑 중장갑 BMP, 그냥 월탱하듯 탄착지점 정해주면 알아서 쏴주는 최신예 자주포가 대중에게 처음 공개되었으며 항공 퍼레이드 때는 An-124 러슬란 수송기가 출연했고 곰탱이 먹이주기 쇼도 선보였으며 MiG-29는 플레어 사출을 보여주었고 Su-27Su-25로 70이라는 숫자를 만드는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https://www.youtube.com/embed/fYLdQa-4M3o
2016년, 71주년 전승일 영상.

2017년, 72주년 전승일 영상.

2018년, 73주년 전승일 영상. Su-57UAV등 러시아군의 신형무기들이 등장하였으며 무슨 일인건지 스티븐 시걸이 참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해와 달리 진짜 소련 국기를 단 T-34/85가 광장을 지나갈 때 우리의 조국이여 영원하라에 이어 소련군 찬가가 연주된다.

2019년 74주년 전승일 영상. 27분 58초경 13대 대한민국주러대사 우윤근의 모습이 보인다.

2020년 75주년 전승일 영상. 코로나19로 인해 6월 24일에 진행하였다
각 년도의 군사퍼레이드를 더 자세히 보고 싶다면 링크된 유저의 채널을 참고.
이 날만 되면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엄청난 규모의 군사 퍼레이드를 벌인다. 최초의 퍼레이드는 1945년 6월 24일에 시작했으며, 그 뒤로는 쭉 독일로부터 항복을 받은 날인 5월 9일에 행사를 치르고 있다. 소련 시절에는 1945년, 1965년, 1985년, 1990년에 붉은 광장에서 군사 퍼레이드가 있었다.[14] 60년대부터는 모스크바 이외의 다른 도시에서도 전승 기념일에 군인들의 행진과 전몰자 위령탑에 대한 헌화 및 참전 용사들의 만남이 개최되기 시작했다. 소련 붕괴 이후에는 러시아의 사정이 좋지 않아서 대규모의 퍼레이드는 힘들었으나, 1995년부터는 다시 매년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다시 대규모의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 이는 푸틴 집권 이후 러시아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가 빠른 속도로 회복된 덕분도 있고,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 소련 붕괴 이후 많은 물질적, 정신적 어려움을 겪은 국민들의 자부심을 고양시키고 애국심과 단결력을 이끌어내는데 대조국전쟁 만한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2008년부터는 다시 기갑 차량과 항공기를 대규모로 동원하고 있다. 사실 붉은광장의 크기가 생각보다 크지않다. 입구에서 성 바실리 성당까지 걸어가는데 대략 5분 남짓하기 때문이다. 한국군처럼 길거리 행진을 하면 국민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텐데 저 좁은 붉은광장에서 구스스텝 하는거 보면 안습(...)
과거 소련 시절에는 U-2 같은 격추된 서방의 비행기를 전시하는 등 반서방적인 모습을 보였고, 폴란드군, 체코슬로바키아군 등 바르샤바 조약기구 소속 국가 정도만 같이 참여했으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부터는 퍼레이드 연설에서 함께 독일과 맞서 싸웠던 서방측 연합국들의 공로가 언급되고, 2010년에는 독립국가연합 국가들과[15] 미국군, 영국군[16] 프랑스군,[17] 폴란드군이 참여하는 등 서방을 포함한 다양한 참전국들도 같이 초청하여 퍼레이드를 했다. 2005년에는 조지 워커 부시, 자크 시라크, 후진타오, 고이즈미 준이치로 등등 세계 각국 정상들을 대거 초청하였는데, 노무현 대통령도 여기에 참석하면서 러시아의 전승 기념 퍼레이드가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70주년인 2015년에는 안그래도 우크라이나 위기의 여파로 분위기가 싸늘한 마당에 '''김정은'''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 아베 신조 총리 등과 함께 초청된 것이 알려지며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결국 김정은과 박근혜는 방문을 거절했다.[18][19]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2015년에 열린 70주년 군사퍼레이드에는 우크라이나 위기로 러시아와 서방과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탓에 2010년과는 정반대로 서방 군대는 참가하지 않은 것은 물론 서방 정상들도 대부분 참석을 거절했다. 대신 러시아에 우호적이거나 반서방적인 국가들의 군대와 정상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아제르바이잔군, 아르메니아군, 벨라루스군, 카자흐스탄군, 키르기스스탄군, 타지키스탄군, 인도군, 몽골충, 세르비아군, 그리고 '''중국군'''이 참가했다. 다른 외국 군대보다 더 많은 수의 중국군이 가장 마지막에 배치되었고 시진핑 주석은 푸틴 대통령 바로 옆자리에 앉는 등 러시아는 중국에 대한 최고의 대우를 했고, 이후 중국군 열병식에서 중국도 푸틴 대통령을 시진핑 주석의 옆자리를 주면서 화답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독일 총리'''가 승전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와 뒤를 이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거의 매년 전승기념일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독일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잘 나타내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2015년 행사에도 당일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다음날 모스크바에 가서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했다.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큰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군사 퍼레이드를 기준으로 설명하면, 아침10시에 크렘린 첨탑의 종이 울리고 제병 사령관의 구령과 함께 러시아 국기와 제1벨라루스 전선 제3충격군 제79군단 제150이드리츠카야[20] 소총병 사단[21] 글씨가 적힌 소련 국기[22]를 든 의장대 병사들이 성 바실리 성당 쪽에서 역사 박물관 쪽으로 붉은 광장을 가로 질러 간다.[23] 다음으로 러시아 국방부 장관과 제병지휘관이 탄 두 대의 자동차가 광장을 가득 메운 퍼레이드 참여 병사들을 사열한다.[24] 사열이 끝나면 대통령의 연설이 있고, 연설 중간에 묵념을하고 다시 연설을 재개한다. 전승 기념일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대통령이 "우라"로 연설을 끝맺으면, 장병들이 일제히 우라삼창을 외치면서 러시아 국가가 연주되고 예포가 발사된다.[25]
예포 발사와 함께 국가가 끝나면 퍼레이드 행렬 맨 앞에 선 제병지휘관의 구령에 따라 의장대 병사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정렬한다. 제병지휘관의 구령이 떨어지면 행진이 시작되고, 드럼을 연주하는 군악학교 학생들과 퍼레이드 시작 때 붉은 광장을 가로질러 갔던 의장대를 선두로 하여 먼저 외국 군대가 지나가고 그 다음으로 대조국전쟁에서 전공을 세웠거나, 러시아군의 핵심 전력을 담당하는 현역 부대들과 특수부대, 여러 종류의 군사교육기관, 군사조직, 준군사조직(철도경비대[26], 비상사태부[27], 내무군, 국경수비대 등) 부대들이 붉은 광장을 지나간다. 이 때 각 부대의 최고 지휘관들은 붉은 광장을 벗어나 퇴장하지 않고, 중간에 관중석 쪽으로 빠져서 정렬하고 있다가 퍼레이드 이후에 대통령의 사열을 받는다. 이러한 부대들이 지나가기에 앞서 2005년, 2010년, 2015년처럼 대조국전쟁 때의 모습을 재현한 장병들이 나오기도 하며, 2005년처럼 2차대전 참전 용사들과 노동자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보병 부대의 행진이 끝나면 군악대가 국영백화점(일명 ГУМ())쪽으로 이동하면서 자리를 바꾸고, T-34/85 한 대[28]를 시작으로 트베르스카야 거리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갑 차량들이 진입하면서 기갑 퍼레이드가 시작된다.[29]BTR-80, T-90, T-72B3[30], T-14, T-15, S-400, 이스칸다르 등 러시아가 자랑하는 첨단 기갑 차량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보면 된다. 아예 이날 신형 장비를 대중한테 공개하는 경우도 있다.[31] 2010년대부터는 현대 기갑 차량들이 등장하기 전에 T-34, SU-100같은 2차대전 차량들이 나오기도 한다.
기갑 퍼레이드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토폴-M이 빠져나가고 나면 Mi-26을 선두로 하는[32] 항공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2005, 2007년에는 Su-27과 MiG-29로 구성된 곡예비행편대가 붉은 광장 상공을 지나쳐가는 것으로 끝났고, 2011~2012년에는 러시아 국기와 육해공군기 등을 매단 Mi-8헬기들이 상공을 지나가는 것으로 끝났지만, 2008년~2010년, 그리고 다시 2013년부터는 각종 헬기와, 전폭기, 수송기, 공격기, 폭격기, 조기경보기, 공중급유기 등을 수십 대 동원해서 대규모 항공 퍼레이드를 한다.[33] 항공 대열의 맨 끝에서 Su-25 편대가 하늘에 러시아 국기의 삼색을 그리며 지나가면서[34] 항공 퍼레이드까지 종료되면 군악대가 관중석 쪽으로 전진하고, 의장대도 퇴장. 군악대는 군가를 연주하면서 둘로 갈라진 다음 양쪽으로 퇴장하고,[35][36]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이 군 지휘관들을 사열하면서 퍼레이드가 끝난다. 퍼레이드를 마치고 퇴장한 부대 병사들은 가두 행진을 하고 시민들과 사진을 찍는 등 전승 행사에 참여한다.[37]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리는 군사퍼레이드에 참가하는 장병들은 실수 없이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어야하기에 몇 개월 전부터 빡세게 연습해야한다. 퍼레이드는 5월 초에 열리지만 연습은 그 전 해의 늦가을이나 겨울부터 벌써 시작된다. 그러니까 거의 반년을 연습하는 셈(...) 차량이나 비행기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갑 부대 승무원들도 바퀴까지 먼지 하나 없게 광택이 나게끔 닦아야하고, 항공기 조종사들도 복잡한 비행대형을 유지하면서 정확한 위치와 시각을 맞추어 광장에 진입하는 연습을 해야한다. 게다가 사관학교 위주로 보병 행진을 진행하다보니 최선두에는 연대장생도 내지 사관학교장이 서야 하고, 결국 '''나이 지긋한 중장 상장''' 할배들까지 고생하게 된다. 그리고 항공기 조종사들 중에도 장성급 조종사를 다수 갈아넣는다. 60 가까이 먹고 공중급유 시범이라니...
다른 지역의 퍼레이드도 형식은 대동소이하다. 다만 퍼레이드 지휘관이 해당 지역의 사령관들로 바뀌고, 해당 도시가 전쟁 기간 어떤 전공을 세웠는지가 뚜렷히 강조된다. 예를 들면 상트페테르부르크 퍼레이드에서는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고 900일이 넘는 포위를 견뎌낸 레닌그라드 공방전의 역사가 항상 강조되고, 블라디보스토크하바로프스크에서는 일본과의 전쟁도 언급되는 식이다. 또한, 경찰, 교도국, 소방대 등의 기타 국가기관 종사자들이나 명문 학교 학생들이 참가하는 경우도 있으며 퍼레이드가 열리는 지역이나, 해당 지역과 가까운 외국의 참전노병이나 군대가 초청되는 경우도 있다.[38] 물론 대외적으로 공개가 제일 많이 되고 신무기가 우선적으로 배치되는 모스크바의 퍼레이드와는 달리 다른 도시에서는 S-300, BM-21, BMP-2, T-72, T-80 등등 2선급 무기도 많이 보이고 규모도 훨씬 작은 편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나 세바스토폴처럼 항구도시인 경우 해상퍼레이드가 열리기도 한다.
http://www.youtube.com/embed/TCuS7dFO8XA
2015년, 70주년 전승일의 레닌그라드.
http://www.youtube.com/embed/2404NU7PCbg

2014년, 69주년 전승일의 세바스토폴.
http://www.youtube.com/embed/zTuoyCnCPK8
2015년, 70주년 전승일의 그로즈니.
http://www.youtube.com/embed/asp6CjzslY4

2015년, 70주년 전승일의 블라디보스토크.
http://www.youtube.com/embed/ihPX2wLHy_c

2015년, 70주년 전승일의 볼고그라드.
http://www.youtube.com/embed/YzOB4L9Ry-w

2015년, 70주년 전승일의 노보시비르스크.
http://www.youtube.com/embed/CP18-fG9cAo

2015년, 70주년 전승일의 예카테린부르크.
http://www.youtube.com/embed/aOfrUoiTQ-Q

2015년, 70주년 전승일의 하바로프스크.

퍼레이드에서 흘러나오는 브금을 맞추는 것도 군가 매니아들에게는 쏠쏠한 재미이다. 퍼레이드에 행진곡으로 사용되는 곡들 중에는 슬라브 여인의 작별, 진격, 카츄샤, 포병 행진곡, 항공행진곡, 우리는 인민의 군대, 나는 믿는다 친구들아, 소련 전차병 행진곡, 세 전차병, 성전(군가), 승리의 날 등이 있다. 군가 이외에도 Синий Платочек 같은 2차대전을 배경으로한 군가가 아닌 음악도 들린다.[39]

2.5. 여담


참고로 이 날은 히틀러 생일과 마찬가지로, 네오나치스킨헤드들이 '''극성'''인 날 중 하나이긴 한데, 그렇다고 전승기념일 날 러시아 전역이 위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날은 자국민에게 린치당할까봐 스킨헤드가 '''짜져(…) 있는''' 날 중 하나이고, 극동이나 시베리아 같이 유색인종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의 위험 요소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왜 스킨헤드가 극성이냐고? 이런 축제 분위기에 사람들이 들떠 있을 때 원래 깽판부리고 관광객 시비 걸기 더 좋은 법(…). 특히 사람들이 기뻐서 술 취하고 돌아다니는 야밤에 그렇다. 그렇게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아도 된다.
'''물론 그렇다고 전혀 걱정 없이 낮에 으슥한 곳을 지나가거나 밤에 유흥가 돌아다니지는 말자.'''
그리고 매년 퍼레이드 영상에 헬마치 또는 소비에트 마치를 넣은 영상이 유튜브에 나온다.[40]
러시아에선 2020년 전승기념일 퍼레이드가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되었다. 2020년의 행사가 완전히 취소될지, 아니면 9월 3일(대일전승일) 등 다른 날짜로 연기될 지는 불확실하다. 반대로 벨라루스는 강행했다.
러시아는 우선 항공퍼레이드만 실시하였으며# 6월 24일 행사를 진행하였다.

3. 소련의 군가


승리의 날(군가) 참조

4. 중국의 전승절


전승절(중국) 항목 참조

5. 그 외


터키의 경우 터키 독립전쟁 당시 둠루프나르 전투에서 그리스군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8월 30일을 승리의 날로 삼는다. 공무원들은 8월 29일은 오전까지만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점심에 퇴근하는 식으로 1.5일을 쉰다. 별거 없는 앙카라가 이 날 만큼은 꽉 찬다나 뭐라나. 아타튀르크의 묘는 뭐...
아제르바이잔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결정적인 계기인 아르차흐의 제2도시 슈샤를 탈환한 날인 11월 8일을 승리의 날로 삼는다.
북한의 경우 한국전쟁이 끝난 7월 27일을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이라는 승리의 날로 기념한다. 또한 2013년 7월 27일 자칭 대미승리 60주년을 맞아 동명의 군가을 발표했다. 소련 군가 승리의 날과는 관계없음. 사실 큰 의미는 없다. (사실상 그냥 정신승리...)
[1] 구개음화 및 모음의 강세 때문에 이렇게 발음이 난다. 마지막 모음이 '의' 발음이 나고 구개음화가 없기에 마지막 발음은 지가 아니라 듸다.[2] 서방 국가들도 전쟁에서 피해를 본건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독일의 전력이 워낙에 넘사벽이다보니 대부분 얼마 못가 조기에 함락당하거나 항복해서 소련만큼 피해를 입지는 않았으며, 영국은 유럽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는 지리적인 이점 덕분에 본국에 입은 피해가 미미했고, 미국은 아예 본국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졸지에 소련이 독일의 막강한 육해공군을 혼자서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탱커가 되어버렸고 옆친데 덮친격으로 독일의 동맹인 일본도 극동에서 소련을 괴롭혀댔기 때문에 말 그대로 수많은 인민들을 갈아넣으면서 싸워야 했다. 전후 소련에게 랜드리스로 많은 물자를 지원한 미국에게 소련이 실제 대여한 물자 비용의 1/10도 안되는, 그나마도 자기 제정에서 지출한게 아니라 제정 러시아 시절 황가의 금고를 따서 꺼낸 금괴와 귀금속들만 건네주고 입을 싹 닦았어도 미국이 별말 못한것은 강대국인 소련의 심기를 거스르기도 쉽지 않았던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만약 소련이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독일에게 조기에 항복했더라면 소련이 입었어야 했던 피해가 고스란히 자신들에게 왔어야 했었음을 알았기에 소련이 자신들을 대신하여 피해를 입은 것만으로도 빚을 다 갚은 것으로 간주했던 것이다.[3] 소련 붕괴 이후 제1의 건국신화였던 혁명이 부정당하며 이제 독소전쟁 승리는 러시아의 유일한 건국신화가 되었다.[4] 러시아의 한 신문에서는 네오 나치를 비판하려 이 사진과 함께 나치식 경례를 하는 네오 나치의 사진을 대비시켰다.[5] 본 사진의 주인공은 레프 기체비치(лев гицевич)옹. 1941년에 어머니가 SS에게 총살당한 것을 계기로 입대했다고한다. 1945년 일본군을 상대로 하는 뤼순 전투에도 참여했다. 이 영감님이 찍히신 다른 사진(...). [6] 특히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몰도바는 전국토가 전쟁터가 되어 전쟁의 참화를 그대로 입어야했다.[7] 2011년 조지아 외무부가 승전기념일을 5월 9일에서 5월 8일로 옮기자고 제안했고, 2013년 몰도바에서도 집권당이 국가적 수준에서의 승리의 날 기념을 중단하자고 제안했지만 둘 다 무산되었다. 물론 시간이 더 흘러 대조국전쟁과 소련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조지아의 구세대가 사라지고 반러 경향이 가속화된다면 이들 국가에서는 5월 9일이 공휴일에서 해제되거나 다른 날로 옮겨질 가능성이 있다.[8] 일례로 에스토니아는 2007년에 수도 탈린에 있던 소련군 동상을 외곽으로 이전하고 이에 반대하는 러시아계 주민들의 시위를 진압했다가 러시아 해커로 추정되는 세력에 의해 사이버테러를 당해 국가기간망이 거의 마비된 적도 있다.[9] 카자흐스탄 역시 옛 소련의 향수가 강하게 남아있는 나라여서 러시아, 벨라루스와 함께 군사 퍼레이드에서 소련 시절 군가를 그대로 연주하는 등 소련 시절의 군사 퍼레이드와 비슷하게 진행한다. 위 사진에서도 오른쪽에 소련 승리의 깃발이 보인다.[10] 러시아의 거의 모든 가정마다 전쟁으로 죽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2010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승전 65주년 군사퍼레이드 연설에서 언급한 바있다.[11] 스탈린의 장남 야코프 주가시빌리는 포병 대위로 참전했다가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포로가 된 자는 반역죄로 취급하고 가족들도 처벌하라"는 스탈린의 지시대로 야코프의 가족들을 투옥시켰다. 야코프는 포로 수용소에서 사망했는데, 초병에게 사살당했는지 아니면 자살을 했는지에 대한 주장이 엇갈린다. 스탈린은 야코프가 사망했다는 공식 정보를 받은 뒤에 야코프의 가족들을 석방했다.[12] 그 때문인지 최종병기가 입장할 때 강철의 눈보라을 다 때려부수겠다는 내용인 포병 행진곡이 연주되었다.[13] 시진핑은 푸틴 옆자리를 차지했다. 카메라에 간간이 잡힌다.[14] 10월 혁명은 매년 11월 7일 빠지지 않고 퍼레이드가 있었는데 소련 붕괴 이후에는 어째 취급이 뒤바뀐 듯 하다(…).[15] 반러 감정이 심한 발트 3국은 참가하지 않았다. 2008년 러시아와 남오세티아 전쟁을 벌였던 그루지야도 마찬가지. 우즈베키스탄도 참가하지 않았다.[16] 영국군 왕실 근위대가 참가했다.[17] 소련 영토에서 창설되어 공중전으로 명성을 떨치고 소련제 야크기를 몰고 파리로 귀환한 것으로 유명한 노르망디-니멘 전투기 연대가 참가했다.[18] 김정은은 원래 참석 의사를 밝혔으나 이후 번복했다. 아직도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김정은의 외교 의전 경험 부족, 러시아의 대북 무기 판매 요청 거절, 북한 내 쿠데타 우려 등등의 추측이 있었다. 대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김영남을 파견했다.[19] 국내 러시아 전문가들과 일부 여야당 의원들은 한러 관계와 남북 대화를 위해 박근혜의 참석 필요성을 주장했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한반도 문제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을 위해 필수적인 한러 관계를 고려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의 대러 제재에 지금까지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우방이자 동맹국인 우리로서는 한국이 대러 제재 노선에서 이탈해있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는 미국을 배려할 필요가 있었으며, 따라서 승전기념일 참석을 강행하면서까지 필요 이상의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결국 이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박근혜의 참석은 완전히 물 건너 갔다. 대신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을 특사로 파견했다.[20] 러시아 서북부 국경 지대에 근접한 도시, 이드리짜(Идрица)를 해방한 전공으로 수여된 명예 칭호. 소련-러시아군에는 이렇게 도시명이나 지명이 붙은 부대가 많다. 제4 근위 칸테미로프스카야 전차 사단, 제27 근위 세바스토폴스카야 독립 차량화소총병 여단 등등.[21] 베를린 독일 국회의사당에 소련 국기를 게양한 미하일 예고로프와 밀리톤 칸타리야의 소속 부대.[22] 퍼레이드에서는 Знамя Победы(승리의 깃발)이라고 부른다.[23] 여기서 연주되는 배경 음악이 священная война이다.[24] 참고로 45년에 열린 초대 퍼레이드의 사열자는 바로 게오르기 주코프원수와 콘스탄틴 로코솝스키원수.[25] 소련 시절에는 3절이 다 연주되었다. 현재는 모스크바를 포함, 다른 도시에서도 대체로 1절만 연주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3절까지 다 연주한다.[26] 2011년에 승격되어 육군의 일부가 되었기에 현재는 아니다.[27] 비상대책군이라는 준군사조직을 거느리고 있다.[28] 2015년에는 T-34 일곱 대와 소수의 SU-100이 등장했다.[29] 소련 시절 군사 퍼레이드 때는 붉은 광장 입구에 위치한 역사 박물관 양쪽으로 각 2줄씩 총 3~4줄에 달하는 기갑 행렬이 붉은 광장으로 진입했는데, 현재는 차량 수도 줄어들었고 왼쪽 입구가 복원되어 막혔기 때문에 한 쪽에서만 2~3줄로 나누어 진입한다.[30] T-72의 최신 개량형이다. 최근에 T-90 대신에 등장했다.[31] 그래서 2015년에는 전 세계의 군사전문가들이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이유는 퍼레이드에서 공개된 이놈 때문.[32] 다만 70주년 기념 퍼레이드에서는 Tu-160이 선두였다. 당시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 악화로 핵전력을 과시할 의도로 선두에 띄운 것으로 추정.[33] 아예 동원되는 항공기의 숫자까지 해당년도에 맞게 맞추기도 한다. 예를 들면 2014년 69주년 퍼레이드에서는 69기를 동원했다.[34] 2019년에는 이때 곡예용 연기통 하나를 잘못 끼워 본 행사 때 푸틴 눈 앞에서 삑사리를 낸 사건이 있었다.[35] 이 때 군악대가 연주하는 군악은 슬라브 여인의 작별, 소련군 찬가, 승리의 날, 우리는 인민의 군대 등이 있다.[36] 1995년에서 2000년까지는 '승리의 날'이, 이후 2001년에는 '우리에게는 승리가 필요하다'가, 2002년에는 '슬라브 여인의 작별'이 잠깐 연주되었다. 이듬해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소련군 찬가'가 연주되었고, 러시아 외의 군대가 처음으로 참여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슬라브 여인의 작별'이 연주되었다. 2015년에는 70주년을 맞이하여 군악대는 우리는 인민의 군대를 제창하고 '승리의 날'을 마지막 분열곡으로 연주했다. 이후 다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슬라브 여인의 작별'이, 75주년인 2020년에는 '승리의 날'이 연주, 제창되었다.[37] 여담으로 2008년에 퍼레이드에 참가한 BMD-4는 이 때 불이 났다.[38] 예를 들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군사퍼레이드에는 그냥 깃발만 들고 지나가는 정도이긴해도 미군도 자주 모습을 비췄다.[39]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비에트 마치는 안 나온다. 이유는 해당 항목 참고. [40] 더욱 아이러니한건 '''MBC 뉴스에서도 소비에트 마치를 브금으로 넣은 뉴스를 보냈다는 것이다!''' 심지어 후반의 독소전쟁 기록영상에서는 GIRLS und PANZER 버전의 카츄샤를 브금으로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