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콜차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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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의 군인이자 정치가.
2. 일생
1894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여 러시아 해군 장교가 되었다. 러일전쟁,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으며 전쟁중 소장으로 진급해 제독이 되었다. 러시아 혁명 당시 흑해 함대 사령관이었다. 러시아 제국 해군에서의 최종 계급은 중장이었다. 알렉산드르 케렌스키의 사회혁명당 정권이 구성되자 신 정부에 계급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편입, 정권의 견제 차원에서 새롭게 협상국으로 참여한 미국으로 파견되었지만 러시아 내전이 일어나자 일본 제국을 통해 시베리아에 도착했다. 이후 백군에 합류하여 군사령관이 되었다. 그러나 시베리아 방면의 임시정부는 곧 영국이 후원하는 쿠데타로 뒤집어졌고 콜차크 자신이 옴스크의 전러시아 임시정부의 수반이 되었다.
콜차크는 임시정부의 수반이 되자마자 사회혁명당을 탄압했고 케렌스키 시절의 법률을 철폐하고 차르 시대의 구시대적 법률을 되살렸다. 거주민들에게도 가혹하게 대해서 잦은 징발이나 거주지 소개가 이루어졌는데 당연히도 하나같이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없는 정책이었다. 결국은 독재자인 동시에 민중의 지지도 얻지 못했던 것이다.
콜차크의 실책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우선 백군의 스폰서라고 할 수 있는 협상국과의 외교에 영향을 끼쳤다. 영국의 군수상 윈스턴 처칠은 콜차크 정부를 지지했지만 정작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총리는 영 뜨뜻미지근했고, 무엇보다 이상주의자인 우드로 윌슨 미합중국 대통령이 그를 매우 싫어했다. 미 육군을 파병해 군사 행동을 같이 하기는 했지만 끝끝내 콜차크 정부를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은 무슨 정책이든 별 신경 안 썼지만 극동에서 자기네들 이익 챙겨먹기에 바빴고[1] 그나마도 콜차크가 일본을 경계했다.
또 내부에서도 반발이 생겼는데 시베리아 백군 전부가 러시아 제국 군 출신인 것은 아니고 현지 주민과 카자크들이 일부 합류했으며 주력은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이었다. 콜차크의 정책은 그들에게서도 환심을 사는데에 실패했다. 백군의 다른 일파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발트 방면의 백군인 니콜라이 유데니치는 핀란드의 만네르헤임과 연계해보려고 했지만 명목상의 상관인 콜차크가 이들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으며 실패했다.
그외에도 안그래도 시베리아 지역은 보급이 힘든데 시베리아 백군이 전진할수록 보급선이 길어지면서 보급 상황은 극악으로 치달았다. 이를 타개하고자 안톤 데니킨, 표트르 브란겔 장군이 속한 남부 백군과 연계하기 위해 남러시아 측은 차리친을, 전러시아 임시정부 측은 사마라와 사라토프를 열심히 두들겨 보았지만, 이오시프 스탈린과 클리멘트 보로실로프가 의기투합해 지키던 그 사이 지역은 끝끝내 뚫리지 않았고, 두 전선은 러시아 내전 동안 계속해서 분리되어 있게 되었다.
초반의 패배 이후 레프 트로츠키의 개혁으로 정신을 차린 적군은 반격을 시작했다. 새로이 징집된 장병들이 미하일 프룬제, 미하일 투하쳅스키와 같은 명장들과 함께 시베리아 전선에 배치되었고 백군은 밀려나기 시작했다. 콜차크 자신은 적군의 반격으로, 옴스크에 적군이 입성하기 하루 전에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이르쿠츠크로 향했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이 통제하는 구역을 따라 따라 퇴각하던 중 이미 볼셰비키의 지배하에 넘어간 이르쿠츠크로 군단에 의해 넘겨졌다.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은 콜차크를 넘기는 대신 안전을 보장받았고, 며칠 동안 심문을 받은 콜차크는 사형을 선고받고 1920년 2월 7일 총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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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 직전을 묘사한 그림.
적군은 처형 전 저렇게 얼음을 깨놓고는 마지막 기도의 시간을 주었다. 이후 콜차크는 같이 체포된 전러시아 임시정부 수상 빅토르 페펠랴예프(Viktor Pepelyayev)[2] 와 함께 총살당했고[3] 두 사람의 시신은 속옷을 제외한 의복과 소지품을 다 빼앗긴 채 바이칼 호로 흐르는 앙가라 강에 던져져 수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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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러시아 내전 당시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제독(Admiral, 2008)이 개봉하였다. 콜차크 역은 콘스탄틴 하벤스키가 맡았다. 그런데 영화의 서술자는 콜차크의 애인이라서 콜차크가 잘나가던 해군 시절 얘기는 잘 나오는데 백군 수반일때 저지른 실책은 둘이 떨어져 있을 때의 일이라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츠 오브 아이언 시리즈의 모드인 카이저라이히: 대전의 유산에서 연해주의 친일 괴뢰 정권인 트란스아무르의 국가 원수로 등장한다. 누가 제독 출신 아니랄까봐 해군 생산에 보너스를 주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러시아계 국가의 전통인 안습한 해군 덕분에 쓸모없는 특성이 되어버렸다. 진행하다보면 반 콜차크 쿠데타 시도가 일어나는데 이를 물리치고 계속해서 지도자 자리를 지킬 수도 있지만 성공할 경우 휘하의 장군이 또다른 군정을 이어가거나 민정으로 전환될 수도 있고[4] 스폰서인 일본이 개입해 시베리아 출병의 지휘관 중 하나였던 오오이 시게모토[5] 가 통치할 수도 있다. 2차 러일전쟁이 터지고 일본이 승리하면 트란스아무르에 점령지를 넘기는데 이를 통해 일본을 잘 써먹고 독립을 선언해서 엿을 먹일 수도 있다.
[1] 콜차크가 무기를 사기 위해 일본에 금 60톤을 지불했으나 먹튀했다.[2] 백군의 장군 중 최후까지 저항을 지속했던 아나톨리 페펠랴예프의 형이다.[3] 정부 관료들 중 마지막까지 콜차크를 따랐던 사람이 그 하나밖에 없었다(...). 당시 콜차크를 지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없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4] 이 경우 위에서 언급한 빅토르 페펠랴예프가 정부 수반으로 취임한다.[5] 일본군 12사단 사단장이었다. 원래는 시베리아 출병의 지휘관이었던 유히 미쓰에가 집권했으나 1925년에 죽은 인물을 예토전생 해온거라 더 오랫동안(1951년 사망) 살아남았던 오오이로 교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