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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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체어: Acèh
인도네시아어: Aceh
1. 개요
2. 역사
3. 샤리아에 의한 폭정


1. 개요


'''아체 주(Ac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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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Sumatra)
인구
499만명 (2015년)
면적
58,376 평방킬로미터
민족구성
아체족 70.65%, 자바인 8.94%, 가요인 7.22%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서북쪽 끝에 있는 지역. 면적은 5만 8375km²이며 인구는 410만명. 중심지는 반다아체(Banda Acèh). 주민의 대다수는 아체인으로 이들의 언어인 아체어인도네시아어보다는 참파에서 쓰였던 참어와 가깝다.
한국에선 수마트라왕넓적사슴벌레의 산지로 잘 알려진 지역이다. 아래에 언급할 아체 독립운동 및 내전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나마 한겨레21의 종군기자였던 정문태 기자가 아체 독립운동에 대한 르포를 한겨레21에 기고한 정도. 르포를 기고할 당시 표지(466호 표지)에 인도네시아군에게 처형당한 아체 사람의 사진을 올려서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2. 역사



동남아시아 최초로 이슬람이 전파된 지역 중 하나로[1] 이슬람 왕국이었던 아체 술탄국이 번영했던 지역이다. 포르투갈이 말라카 해협 건너의 말라카를 점령하자 이슬람 국가들이 말라카 해협을 통과할 때 중간의 아체를 거쳐가면서, 그리고 후추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리즈시절말레이 반도 서부 대부분과 수마트라섬 위쪽 절반을 거의 차지하다시피 할 정도. 그러나 1873년 네덜란드가 말라카 해협의 안정을 핑계로 아체에 쳐들어왔으며, 30여 년간의 전쟁 끝에 네덜란드는 37,000명의 사망자를 내고 아체를 네덜란드의 식민지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체는 완전히 굴복하지 않고 인도네시아 독립 때까지 계속 네덜란드에 저항하였다.
1949년 아체는 인도네시아의 북부 수마트라 주의 일부가 되었으나 북부 수마트라 주의 주민족인 바탁 족은 다수가 기독교인들이었고 아체인과는 언어도 크게 달랐다. 아체인들은 소요 사태를 일으켰고 결국 1959년 아체는 자치권을 가진 주가 되었다. 그러나 1968년 수하르토가 집권하면서 아체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지배가 강해졌고 인도네시아 정부와 결탁한 미국의 석유 회사가 아체의 석유를 착취해 갔다. 결국 1976년 하산 디 티로가 자유 아체 운동을 결성해 내전이 시작되었고 이 때 반군 진압 중 인도네시아군이 저지른 인권 유린이 문제가 되었다. 90년대 말 인도네시아의 정정 혼란과 함께 2002년 아체와 함께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분리 독립 운동을 펼쳤던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하자 이러한 동티모르의 분리 독립에 크게 고무된 아체 반군인 자유아체운동(GAM)은 아체 주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공세에 들어갔으나 동티모르에 이어 아체까지 독립시킬 순 없다고 생각한 인도네시아는 이를 대군을 동원해 강경진압을 강행했다. 그나마 영토 규모가 작고 곱게 분리 독립시켜줘도 실보다 득이 많은 동티모르와 달리 아체는 분리 독립을 허용할 경우 인도네시아는 수마트라섬의 육지 영토와 인도양, 믈라카 해협의 영해 다수 절반을 상실하게 됨과[2] 동시에 석유와 가스등 아체 지역에 매장된 수많은 지하자원들과 지리적인 요충지를 잃게 된다. 이러한 아체를 독립시킬 경우 인도네시아 내의 다른 민족들도 너도나도 서로 독립하려고 할 것이 분명하기에 인도네시아가 입게 될 타격은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쓰는 것.
2004년 12월 발생한 남아시아 대지진에서 가장 먼저 쓰나미가 덮친 지역이자 가장 큰 피해를 받은 지역으로 희생자 중 절반 가량이 아체에서 발생했다. 피해가 클 수밖에 없던 것이, 지진이 발생한 진앙지가 아체 지역의 바로 근처였다. 진앙지에서 수천 km 떨어진 아프리카 동부 해안도 초토화시킨 위력인데 이걸 바로 옆에서 고스란히 맞닥뜨린 아체 지역이 어떤 꼴이 되었을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반군에 대한 국제 사회의 외면이 계속되자[3] 2005년 아체 반군은 독립을 포기하고 정부와 협상하여 내전은 종결되었다.# 이후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아체를 아체특별자치구로 지정하여 자치권을 부여했고[4] 아체에서 지방선거가 실시되어 자유 아체 운동 세력이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2020년 2월 10일에 아체에서 마리화나 합법화를 주장하면서 마리화나 커피의 해외 수출 법안(!)도 함께 마련했다고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3. 샤리아에 의한 폭정


이 지역은 2003년 이래로 샤리아를 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곳 주민들에게 원리주의 이슬람은 다른 지역, 특히 사이가 나쁜 중앙정부와 구분되는 정체성과도 같다.[5]
그러나 이슬람 극단 세력이 샤리아를 반대하는 세속적 지역주민들에게까지 독재정치를 펴며 '''폭력적으로 강요'''해대는 통에 심각한 인권탄압 문제가 팽배하다. 인도네시아의 자유주의 단체나 국제사회에서 아체의 현실을 알고, 인권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아체 주정부를 말 그대로 가루가 되도록 까는 걸 볼 수 있다.
샤리아법에 따른 공공장소에서의 태형은 이제 일상이며, 아체의 거리 곳곳에서는 샤리아 종교경찰들이 시민들에게 위압을 가한다. 아체의 소수 기독교 교회성당들은 아체 주 정부 경찰과 군의 보호를 받고 있는 무슬림 관리들의 주도로 도끼와 해머를 사용해 무참히 파괴당하고 있으며, 방화 사건도 이어 벌어지고, 무슬림들과의 폭동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나오는 등 기독교인 박해도 나날히 심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무슬림들에게만 샤리아를 적용한다는 원칙까지 깨져서, 을 팔았다는 이유로 기독교 여성이 이슬람 법원에 끌려가 태형을 당하는 기가 막히는 일까지 발생했다.기사 그리고 혼외정사를 했다는 이유로 남녀에게 체벌이 내려지기도 했다.# 2018년에는 살인범에 대한 처벌로 참수형을 도입하는것을 고려하고 있다.# 그리고 동성애자 15명이 태형을 선고받는 일이 발생되었다.# 그리고 10대커플이 포옹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태형을 선고받았다.# 코로나19 와중에도 집행되었다.# 심지어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아체의 공무원이 이를 당연하다는 식으로 자랑스러워하며 인터뷰한것이다.# 2021년 1월 29일에 동성애 커플에게 77대 태형(!)이 시행되었다.# 2월 9일에 기독교인 등 3명이 술을 마신 이유로 태형을 선고받았다.#
인도네시아 중앙정부도 아체 주정부가 저지르고 있는 극단주의 정책과 샤리아 폭정이 나쁘다는 것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자칫 이 문제를 가지고 아체 주정부를 압박하거나 개입해서 주의 집권세력을 처벌할 경우 다시 인도네시아와 아체 사이에 전쟁이 재발할 것을 우려해서[6] 일단은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1] 말레이시아 크다에서 12세기 초 국왕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크다 군주의 개종 시점을 15세기로 보는 다른 주변 지역의 역사 기록들과 교차 검증되지 않는다. 오늘날의 아체 지역 일부에 해당하는 과거 파사이(파사이 술탄국) 지역의 군주는 실제로 13세기에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는데, 이상의 크다 술탄국 군주와 최초 여부 논쟁이 있기는 하나 크다처럼 개종 여부 자체가 의심받지는 않고 있다. 아체 동부 지역에는 12세기에 이미 이슬람 국가인 프를락 술탄국(Kesultanan Peureulak)이 있었다는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설이 있다.[2] 아체가 독립하게 될 경우 수마트라 섬이 독립국 아체와 나머지 인도네시아령 수마트라로 나눠질 가능성이 높다.[3] 심지어는 인도네시아와 앙숙관계인 말레이시아조차도 아체의 분리 독립을 지지하지 않았다. 동티모르의 독립을 지지했던 것과는 대조되던 모습.[4] 사실 인도네시아는 아체 반군과 전쟁을 벌일 당시 아체 반군에게 항복하는 조건으로 아체에 대한 자치권 부여를 제시했었으나 아체 반군 측이 분리 독립만을 앞세우며 타협 불가로 일관하는 바람에 분쟁이 장기화된 측면도 있었다.#[5] 무슬림이 대세인 말레이시아가 오히려 더 세속적이고, 무슬림이 약세이고 차별의 대상인 필리핀이나 태국 남부의 무슬림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엄격한 율법을 스스로 따른다.[6] 아체가 분리주의를 포기한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히 분리주의를 주장하는 의견이 있다. 그저 인도네시아 중앙정부가 압도적이기에 자신들한테 불리해서 자치권을 받는 것으로 타협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