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퀼라(항공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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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모함 개조 이전 여객선 로마
1945년 완성되지 못한 상태의 항공모함 아퀼라[1]
'''RN Aquila'''
1. 개요
2. 제원
3. 상세
3.1. 함재기
4. 개발 중단 이후
5. 대중매체에서의 아퀼라


1. 개요


이탈리아 왕립 해군의 개조 항공모함 설계안 '''아퀼라(Aquila)'''.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건조하려 했던 항공모함으로, 처음부터 항공모함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여객선인 로마(Roma)[2]를 개조하는 방식으로 만들려 했는데 상당한 진척도를 보이기는 했지만 결국 완성되지 못하고 개조가 중단되었으며 전쟁이 끝난 이후 방치되어 있다가 50년대 초 해체되었다. 함명의 아퀼라는 라틴어로 독수리를 뜻한다.

2. 제원


아퀼라는 미완성함인 관계로 자료마다 제원에 약간씩의 차이를 보인다. 아래의 제원은 'Musolini's navy: A reference guide to the Regia Marina, 1930 - 1945'를 참조하였으며, 자료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데이터는 주석으로 처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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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 당시 상상도
기준 배수량
23,350톤
만재 배수량
27,800톤
전장
231.4m[3]
비행갑판
211.6m[4]
전폭
25.2m[5]
흘수선
7.4m[6]
보일러
소니크로프트(Thornycroft) 보일러 8기
출력
140,000마력[7]
최고속도
30노트[8]
항속 거리
18노트 기준 5,500해리
장갑
60 ~ 80mm
무장
135mm 45구경장 대공포 8문
65mm 64구경장 대공포 12문
20mm 65구경장 4연장 대공포 132문[9]
12.7mm 44구경장 기관총 10문[10]
함재기
전투기 38기 예정. 최대 51기 탑재 가능

3. 상세


이탈리아 해군은 이미 1900년대 중반부터 바다에서의 항공 전력이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으며 이는 1차 대전 이후 세계 최초의 일자형 갑판식 항공모함인 HMS 아거스(Argus)가 등장한 이후 본격화되어 예산 부족으로 인해 건조가 중단된 전함 프란체스코 카라치올로(Francesco Caracciolo)를 항공모함으로 개장하려는 계획 등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 이탈리아 해군의 예산은 절망적인 수준이었고 결국 취소되고 만다.
여기에 1923년에 이탈리아 왕립 공군(Regia Aeronautica, 이하 RA)가 육군에서 분리되면서 상황이 더욱 꼬이게 된다. 육군에서 공군이 완전히 분리된 것은 이 시점 즈음 정국을 장악한 베니토 무솔리니의 의중이 크게 작용된 면이 있었고 무솔리니는 RA에게 모든 항공 병기에 대한 권한을 몰아주려 했기 때문. 여기에 더해 당시 공군 사령관, 이후 공군 장관에 취임하게 된 이탈로 발보가 전임 공군 사령관인 알베르토 본차니(Alberto Bonzani)가 틀을 잡아놓은 장기적인 항공모함 계획안을 휴짓조각으로 만들어버리면서 공군/해군 사이가 급격하게 냉각되었으며 결국 1931년 1월에 새로 만들어진 법령으로 '''이탈리아 해군은 정찰기를 제외한 전투기/공격기 등에 대한 모든 권한을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이탈리아 해군은 항공모함 건조에 대한 시도를 계속했고, 1936년에는 여객선 '로마'(Roma)를 개장해 항공모함으로 사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때 해군에서는 항공모함 자체만 만들고 함재기의 경우 공군 쪽에서 파견 형식으로 탑재하는 것을 제안했으나 이마저도 이탈로 발보의 반대 및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스페인 내전의 참전으로 인한 예산적 문제로 취소되고 만다.
결국 항공모함이 만들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2차 대전이 발발했고, 대전기 이탈리아 해군은 다양한 종류의 항공모함을 계획하기는 했으나[11] 결국 어떠한 계획도 실제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41년 마타판 해전의 대참패가 일어났고 이탈리아 해군 내에서 패배의 원인 중 하나로 항공 전력의 부재가 지적되었으며 이에 따라 여객선 로마를 아퀼라로,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스파르비에로(Sparviero, 라는 뜻이다.)로 개장하는 계획이 시작되었다.[12]
원본인 여객선 로마는 함재기를 띄우기에는 길이가 충분하지 못했던 관계로 선체 자체를 뜯어고쳤으며(선수(이물)는 아예 새로 달았고 선미(고물)도 어느 정도 개조가 가해졌다. 함교도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 기관부의 경우 해체된 카피타니 로마니급 경순양함 2척의 보일러 등을 유용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렇게 약 2년간 개장 공사를 거쳐 1943년 4월 최초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끝마쳤고 9월에는 바다에서 더욱 많은 테스트를 거칠 예정이었으나...[13] 호위함 등에 높은 우선 순위를 배당한 군부의 명령으로 사실상 거의 다 완성된 상황[14]에서 6월 말 개장이 중지되었다.

3.1. 함재기


함재기로는 Fiat 社의 G.50 Bis A/N, Saiman 社의 SAIMAN 200 및 레지아네(Reggiane) 社 Re. 2001 함재기 버전(Re.2001 OR Serie II) 등이 경합했으며 이 중 Re.2001 OR Serie II이 채택되어 탑재될 예정이었다. 접는 방식의 날개가 구현되지 못했는데, 그래도 총 51기까지(격납고에 41기, 갑판에 10기)까지 탑재가 가능할 계획이었다고.(일반적으로 접는 날개 버전이 개발 완료되었을 경우 최대 66기 탑재가 가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Re.2001에 비해 기관총의 숫자가 늘었으며 600kg 가량의 어뢰 또는 폭탄을 장비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15] 이후 이탈리아의 차기 전투기 경쟁에서 개발된 3개 후보들인 레지아네 社의 후속 기체인 Re. 2005 Sagittario(사지타리오, 이탈리아어로 사수를 뜻한다) 및 피아트 社의 G.55 첸타우로 또한 함재기 버전이 계획되었었다고는 하나 기획 단계에서 끝난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의 항복 이후 독일이 접수한 시기에는 그라프 체펠린처럼 Bf 109T를 올리려는 생각도 했던 듯.
이외에도 헬리콥터를 소량(3기 내외로 추정됨) 탑재하려고 했는데 피아지오(Piaggio)社의 헬리콥터인 PD-3, 독일의 Flettner Fl282등이 제시되었다.

4. 개발 중단 이후


개발 중단 이후에는 제노바의 안살도(Ansaldo)社의 조선소에 방치되어 있다가 1943년 9월 이탈리아가 연합군에게 항복한 이후 독일군이 접수, 상술한 것처럼 독일군이 직접 사용하려 시도했으나 1944년 6월 연합군의 공습 및 1945년 4월의 이탈리아군의 자폭 모터보트를 통한 공격으로 결국 사용되지 못하고 종전까지 방치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작전을 지휘한 지휘관은 이탈리아군 인간어뢰 작전 중 가장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항 공격을 감행했던 루이지 라펜느였다. 종전 후 아퀼라는 1949년 라 스페치아로 견인되어 1951~52년 스크랩되었다.

5. 대중매체에서의 아퀼라


똑같이 미완성된 추축국 항공모함인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보다 인지도가 훨씬 떨어져서 자주 등장하진 않는다.
게임 네이비필드에서 이탈리아의 5차 항공모함으로 나온다. 7개국 통틀어 5차항모 중 가장 함체가 비싸며, 주포마운트 역시 20개로 가장 많다.
함대 컬렉션에서 정규항모 칸무스로 등장한다. 아퀼라(함대 컬렉션) 문서 참조.
전함소녀에서는 비토리오 베네토의 어린이날 스킨에서 스티커로 나왔기에 추후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2018년 눈사태 작전 이벤트의 보상으로 등장 확정. 특이하게도 일반 항모가 아닌 장갑항모다.
걸즈 앤 판처에서 이탈리아 컨셉인 안치오 고교의 학원함 모델이 되었다.

[1] 1945년 당시 당시 아퀼라는 제노바에서 완성되지 못한 상태로 독일군에 의해 접수된 상황이었는데 연합군에 가담한 이탈리아군이 인간어뢰사보타주를 시도했고 아퀼라는 이동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이 사진은 그 당시의 모습을 찍은 것이다.[2] 동명의 전함 과는 다의어 관계 이다.[3] 자료에 따라서는 235.5m까지 다양하게 차이를 보인다.[4] 자료에 따라서는 216.6m로 표기된 경우 있음.[5] 자료에 따라서는 약 30m로 표기된 경우도 있다.[6] 자료에 따라서는 약 7.3m로 표기된 경우도 있음.[7] 자료에 따라서는 151,000마력으로 표기하는 경우 있음. 원래 해당 기관이 장착될 예정이었던 카피타니 로마니급 경순양함의 원 출력은 소니크로프트 보일러 4기에 11만 마력으로 후술되겠지만 아퀼라의 경우 카피타니 로마니급 2척의 기관부를 옮겨 탑재했으며, 기관부의 출력을 감소시킨 상태로 장착되었다.[8] 자료에 따라서는 32노트로 표기되는 경우 있음.[9] 자료에 따라서는 2연장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10] 자료에 따라서는 이 무장은 없었다 하는 경우도 있다.[11] 이 중에는 중순양함 '볼차노'를 항공순양함스럽게 개조하는 이상한 계획도 있었고, 아예 새롭게 15,000t 내외의 항공모함을 건조하거나 리토리오급 전함 중 완성되지 못한 '임페로'를 항공모함으로 개조하자는 상대적으로 멀쩡한 생각까지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었다.[12] 참고로 스팔비에로도 중간에 개장이 중지되어 미완성함으로 남게 되었다.[13] 재미있게도 독일의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같은 캐터펄트를 달고 있어서 30초에 한대를 날릴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다른 문제가 생겼는데, 어레스팅 와이어가 예상대로 제 일을 못해서 후크에 걸린건 좋은데 끊어졌다고(...) 이 문제는 끝까지 해결하지 못했다.(1943년에 항복해서 더이상 개선이 불가능하는 점도 있다.)[14] 선체와 기관부 등은 다 만들어져 있었고 의장도 70퍼센트 이상 진척된 상황이었다.[15] 일부 문헌에서 뇌격기용으로 개조된 형식인 Re.2001 G형이 아퀼라에 뇌격기로 탑재될 예정이었다는 설이 존재하나 불확실. 단, Re. 2001 전투기의 뇌격기 버전이 있는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