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

 



1. 개요
2. 전개
3. 창작물에서


1. 개요


1977년 현대건설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에 건설한 압구정 현대아파트분양과 관련된 사건이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1978.6.30)

2. 전개


1970년대 후반 들어서 시민아파트의 실패를 딛고 전국적으로 아파트의 수요가 증가하여 아파트 건설 붐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강남구의 땅값이 한창 올라갔다. 이 때, 현대건설은 정부로부터 경부고속도로 건설 대금으로 한강 공유수면을 받았다. 현대그룹은 이 곳을 매립, 아파트를 짓게 되는데 처음에 정주영 회장은 아파트건설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으나 당시 부장이던 이명박이 적극 주장하여 아파트를 짓게 되었다.[1] 정주영의 차남 정몽구가 한국도시개발[2]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문제는 분양에서 터졌다. 원래 현대건설은 이 아파트를 지을때 모두 1512가구를 건설하되, 952가구는 현대의 무주택사원에게 분양하고, 나머지 560가구만 일반에게 분양한다는 조건으로 당국으로 부터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아파트를 짓게 되면서 아파트 투기 광풍이 불기 시작하자,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분양권에 보통 아파트 한 채 값의 프리미엄까지 붙으며 인기를 끌게 되었다. 당시, 일부 높으신 분들은 현대그룹의 고위 관리자들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분양권을 얻게 해 달라고 하였다. 결국, 무주택 사원들에게 돌아가야할 아파트 952가구는 291가구만 사원들에게 분양됐고, 나머지 가구는 전부 고위공직자, 국회의원, 기업인, 언론인, 현대그룹 임원들의 친척, 동창들에게 분양되었다.
1977년 11월, 청와대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에 관한 투서가 올라가고, 언론은 이 사건을 크게 터트렸다. 그러자 검찰이 즉각 수사에 착수, 정몽구와 한국도시개발사장을 비롯해 곽후섭 서울시 부시장, 주택은행 임원 등 5명을 구속했다. 그리고 특혜분양을 받은 고위공직자는 징계 처분을 받았다. 또한 특혜분양을 받은 국회의원들 중 육인수를 제외하고 오제도, 박삼철, 김명윤, 한병채. 박주현 등은 민주공화당신민당의 공천에서 탈락했다.
여담이지만 이 당시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김 모씨가 이 사건에 연루되면서 경질되었는데 그 후임으로 들어간 사람이 박선호, 10.26 사건 당시 중정 의전과장이었다. 김씨는 그 사건이 전화위복이 되어 중정에서 나온 후 부동산 사업가로 성공을 거두었는데. 자신의 친구들에게 "그것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다."라고 털어놓았다 한다.

3. 창작물에서


2005년에 방송된 드라마 영웅시대 후반부에서는 이 사건을 꽤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데, 이명박을 모델로 한 박대철이 정주영을 모델로 한 천태산에게 아파트 사업을 권유하는 것으로 나오며, 처음에는 서민형 아파트로 설계했다가 분양이 안되어서 고급형 아파트로 설계 변경하여 프리미엄 인기를 끌고 본의 아니게 특혜분양 시비가 나온 것으로 그려진다. 정몽구를 모델로 한 천이국이 극중에서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되었으나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최종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1] 이명박 자서전 '신화는 없다.' 124p~126p[2] HDC현대산업개발의 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