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정몽구의 역임 직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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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대한양궁협회 회장'''
초대
''' 정몽준 '''

제2~5대
정몽구

제6~7대
유홍종




'''현대자동차그룹 초대 회장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정몽구[1]
鄭夢九 | Chung Mong-Koo
'''
'''국적'''
[image] '''대한민국'''
'''출생'''
1938년 3월 19일 (86세)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가족'''
아버지 정주영
정몽필
동생 정몽근, 정몽우, 정몽헌, 정몽준, 정몽윤, 정몽일
아들 정의선
'''신체'''
177cm, 75kg
'''직업'''
기업인
'''학력'''
경복고등학교 (졸업 / 34회)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공업경영학 / 학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재산'''
52억 달러 (한화 약 5조 6860억 원)[2][3]
1. 개요
2. 기업인 활동
3. 학력
4. 주요 경력
5. 상훈
6. 자동차산업 기여
8.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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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몽구(鄭夢九, 1938년 3월 19일(음력) ~ )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초대 회장이다.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함께 국내의 대표적인 재벌 총수 2세로 꼽히는 인물이다.

2. 기업인 활동


강원도 통천에서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차남으로 태어났고,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를 유례없는 단기간에 세계 5위 자동차 업체로 성장시킨 창의와 혁신의 리더십과 경영철학은 미국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MBA 필수 강의주제로 채택할 만큼 경영학의 교범으로 인정받고 있다. 2012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정몽구 회장을 ‘세계 100대 최고 경영자’에 선정하기도 했다.
2000년 3월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왕자의 난’이라고 불리는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다툼을 벌였다. 이를 계기로 정몽구는 같은 해 9월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현대자동차 등 10개사를 이끌고 현대그룹으로부터 독립했다.
이후 철강 당진공장 인수, 현대제철 출범, 일관제철소 준공, 현대건설 인수 등을 통해 자동차, 철강, 건설이라는 세 축을 뚜렷이 만들어 현대자동차그룹의 틀을 구축했다.
2020년 10월 14일부로 현대자동차그룹의 회장직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은퇴하며 명예회장으로 남게 된다.

3. 학력


1959년 경복고등학교 졸업(34회)
1967년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공업경영학(현 산업공학과) 학사
1989년 센트럴 코네티컷 대학교 명예 인문학박사
2001년 몽골 국립대학교 명예 경영학박사
2003년 고려대학교 명예 경영학박사
2015년 한양대학교 명예 공학박사

4. 주요 경력


1970년 2월 ~ 1970년 9월 : 현대자동차 서울사업소 부품과 과장
1970년 10월 ~ 1970년 12월 : 현대자동차 서울사업소 부품과 차장
1972년 1월 ~ 1973년 2월 : 현대자동차 서울사업소 부장
1973년 3월 ~ 1973년 5월 : 현대건설 자재부 부장
1973년 6월 ~ 1974년 2월 : 현대자동차 서울사업소 이사
1974년 2월 ~ 1987년 : 현대자동차써비스 대표이사 사장
1977년 7월 ~ 1987년 1월 : 현대정공 대표이사 사장
1981년 2월 ~ 1987년 1월 : 현대강관 대표이사 사장
1983년 1월 ~ 1984년 2월 : 제4대 한국 컨테이너 공업협회 회장
1984년 2월 ~ 1997년 2월 :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1985년 4월 ~ 1997년 1월 : 대한양궁협회 회장
1986년 11월 ~ 1987년 1월 :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사장
1986년 10월 ~ 1997년 11월 : 아시아양궁연맹 회장
1987년 1월 ~ 1998년 1월 : 인천제철 대표이사 사장
1987년 2월 ~ 1996년 1월 : 현대정공 회장
1987년 2월 ~ 1996년 1월 : 현대자동차써비스 회장
1987년 2월 ~ 1996년 1월 : 현대강관 회장
1987년 2월 ~ 1996년 1월 : 현대산업개발 회장
1987년 2월 ~ 1996년 1월 : 인천제철 회장
1993년 5월 ~ 1996년 2월 : 대한체육회 회장
1993년 9월 ~ 1999년 7월 : 국제양궁연맹 부회장
1994년 3월 ~ 1998년 : 현대우주항공 회장
1996년 1월 ~ 2000년 3월 : 현대그룹 회장
1997년 1월 ~ 현재 : 대한양궁협회 명예 회장
1997년 2월 ~ 2017년 2월 :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1997년 3월 : 한러 경제협회 회장
1997년 11월 ~ 현재 : 아시아양궁연맹 명예 회장
1998년 4월 ~ 2000년 3월 : 현대경영자협의회 회장
1999년 ~ 2001년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
1999년 1월 ~ 2002년 3월 : 한국표준협회 회장
1999년 3월 ~ 2020년 10월 : 현대자동차 회장[4]
1999년 7월 ~ 2009년: 기아자동차 회장[5]
1999년 7월 ~ 현재 : 국제양궁연맹 명예 부회장
1999년 11월 ~ 2002년 12월 : 2010 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 위원장
2000년 9월 ~ 2020년 10월: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2004년 9월 : 한보철강 인수
2005년 1월 ~ 2010년 8월 : 동아시아재단 이사장
2006년 3월 : 현대제철 출범
2007년 2월 ~ 2010년 8월 : 2012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 고문
2007년 8월 ~ 2007년 12월 : 2012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 명예 유치위원장
2008년 3월 : 2012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 명예 위원장
2010년 8월 : 동아시아재단 명예 이사장
2011년 4월 : 현대건설 인수
2020년 10월 ~ 현재 :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5. 상훈


1979년 11월 : 수출산업포장
1981년 12월 : 새마을지도자상
1985년 8월 : 철탐산업훈장
1986년 12월 : 체육훈장 맹호장
1989년 4월 : 체육훈장 청룡장
1989년 11월 : 동탑산업훈장
1996년 5월 : 한국능률협회 한국의 경영자상
1997년 5월 : 한국경영학회 한국경영자 대상
1998년 3월 : 제25회 상공의 날 금탑산업훈장
2001년 2월 : 올해의 자동차산업공헌상, 미국 자동차명예의 전당 미국 자동차산업 공헌상
2004년 7월 : 몽골정부 북극성 훈장
2004년 12월 : 2004년 자동차부문 최고의 CEO (미국 비즈니스위크 선정)
2005년 7월 : 미국 오토모티브뉴스 자동차산업부문 아시아 최고 CEO
2005년 10월 : 인촌기념회 산업기술부문 인촌상
2005년 11월 :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 세계에서 존경받는 기업인 42위
2009년 6월 :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 밴플리트상
2010년 7월 : 미국 오토모티브뉴스 자동차산업부문 아시아 최고 CEO
2011년 11월 : 미국 오토모티브뉴스 자동차산업부문 아시아 최고 CEO
2011년 12월 : 미국 모터트렌드 세계 자동차업계 파워리스트 2위
2012년 2월 : 국민훈장 무궁화장
2012년 3월 : 이탈리아 인터오토뉴스 글로벌 최고 경영인상
2012년 12월 :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세계 100대 CEO 6위
2020년 2월 :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 헌액[6]

6. 자동차산업 기여


변방에 머물렀던 현대차를 글로법 탑5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재벌 2세였지만 창업 경영자라 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계열분리 당시만 해도 계열사 10개, 자산 34조원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2019년에는 계열사 54개, 자산 234조원을 보유했다. #
생산 혁신, R&D 혁신,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 혁신 등 공학과 경영을 결합한 과감한 시도와 성취는 전세계 자동차 업계의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다. 또한 자동차 산업과 소재, 전기, 전자, IT 분야의 창조적 융복합을 선도하고 있으며, R&D를 중심으로 미래인재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품질경영’ ‘현장 경영’으로 대표되는 경영철학이 대변하듯, 품질을 중시하고 현장에서 답을 찾고 있다.
자동차 생산 공정과정에서 최적화된 부품 공급 모듈화 시스템을 도입, 효율성을 최대화 했으며, 전세계 균일한 고품질의 생산공장을 적기에 건설할 수 있는 표준공장 건설 시스템을 확립하였다. ‘쇳물에서 자동차까지’의 수직계열화를 완비, 그룹 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세계 최초로 친환경 자원순환형 사업구조를 갖춰 경제적 성과뿐 아니라 환경에 대한 책임과 지속가능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연구 역량 집적화와 고도화도 전세계 산업계가 주시한 혁신이었다. 남양에 세계 최대 규모의 R&D센터를 설립, 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하여 미래 성장기반을 확보하였고, 이는 독자 엔진 개발과 수소연료전지 파워트레인 시스템, 5.0 타우엔진, 1.6 감마엔진이 세계 10대 엔진에 선정되는 쾌거로 이어졌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만의 독자적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개발,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으며, 궁극의 친환경차로 평가받는 수소전기차를 세계 최초로 양산하는 결실을 낳았다.
해외 공장 건설 시 국내 부품업체들의 대규모 동반 진출은 사실상 현대기아차에서 최초로 시도한 독창적 협력체계로 산업사적 의미가 지대할 뿐 아니라, 동반성장 의지의 일환이었다. 정몽구 회장은 시대의 흐름을 앞서가는 통찰력과 전략적 결단으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역발상 경영인으로도 평가 받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의 ‘10년 10만마일’ 보증실시 승부수는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강자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다.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전례가 없는 최단기간 내에 글로벌 생산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 현대·기아차를 내수기업에서 세계 유수의 경쟁업체들과 겨루는 기업으로 변모시켰다. 세계 언론이 관용어로 사용하는 ‘현대 스피드’는 이 같은 정몽구 회장의 추진력에 대한 평가다. 그 결과,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브랜드 40위, 기아자동차는 74위를 기록하는 세계적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미국 품질조사기관의 신차품질 조사에서도 현대자동차는 일반브랜드 부문 1위를 획득했다.
‘국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회공헌 철학도 실현하고 있다. 사재를 출연하여 ‘현대차 정몽구 재단’을 설립하고, 저소득층 미래 인재 육성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 업적을 인정받아 1996년 한국의 경영자상, 1998년 금탑산업훈장, 2012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으며, 해외에서도 2001년 자동차업계의 노벨상인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 선정 ‘자동차산업공헌상’ 수상, 2004년 미국 비즈니스 위크 ‘2004 최고경영자’, 2005년 미국 오토모티브 뉴스 ‘2005 자동차부문 아시아 최고 CEO’, 2009년 미국 벤플리트상 수상, 2012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세계 100대 최고 경영자’, 미국 모터트렌드 ‘자동차산업 영향력 있는 인물’ 2위에 선정되었다.

7. 가족 관계




8. 이야깃거리


  • 한양대학교 공업경영학과(現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하였다. 이후 현대자동차서비스,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등의 계열사에서 근무하였다. 현대정공 시절에 컨테이너 사업을 성공시켜 아버지 정주영으로부터 경영 능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 2017년 기준 80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2세대 재벌가 사람들 중 가장 정력적인 활동을 고수하고 있다. 제네시스 신규 브랜드 및 기함급 차량 발표회엔 직접 참석하여 축하연을 진행한다든지, 현대차 남양 연구소에 수시로 내려와서 테스트카를 직접 몰아보거나 주요 수정 사항에 대해 의견을 피력할 정도. 한국 재벌가의 관행을 고려하면 언제라도 회장직은 아들에게 세습하고 본인은 일선을 떠나서 편히 노후를 보낼수도 있을텐데, 여전히 직접 현대차 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 양궁에도 조예가 있고, 관심을 많이 두었는지, 대한양궁협회의 2대 ~ 5대 회장을 지냈다.[7] 한국양궁을 키워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미있게도 현 대한양궁협회의 회장은 그의 아들인 정의선이 맡고 있다. 1986년부터 1997년까지 아시아양궁협회 회장을 맡았고, 1993년부터 1997년까지 국제양궁협회의 부회장을 맡았으며 현재는 국제양궁협회의 명예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런 영향으로 현대차그룹에서 남녀양궁단을 운영중이다.
  • 경복고 재학 시절 럭비부 주장 출신으로 또래 중에 가장 힘이 셌다고 한다. 손병두 호암재단 이사장과 경복고 동기로, 공부에만 열중하던 갸날픈 체구의 고교생 손병두를 불량서클 학생들로부터 고교생 정몽구가 지켜주곤 했다. 럭비부 출신이다보니 젊었을 적부터 거구에 강골을 자랑하며 팔순 고령인 지금도 어깨가 떡 벌어져 덩치가 있는 편이다. 기사에 의하면 키는 칠순 넘겼을 당시 177cm 정도라고. 나이 들어 키가 줄어드는 것을 생각하면 젊었을때는 더 장신이였을 것이다. 사실 부친 정주영(175cm)이나 형제 정몽헌(180cm), 정몽준도(182cm) 키와 덩치가 크니 집안내력이다. 키 출처
  •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해 군 복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형제들 또한 ROTC 장교나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다고 하니 최소한 병역 문제에 관해서 범 현대가는 떳떳한 셈이다.[8]
  • 모교인 한양대학교에 그의 이름을 딴 '정몽구 미래자동차연구센터' 건물이 2015년 들어섰다. 이름 그대로 정몽구 회장이 건설을 후원했으며, 미래자동차공학과 등이 입주했다.
  • 현대차의 여러 비판[9]과는 별개로 정몽구 회장의 경영 능력 그 자체는 부정적 평가보다는 긍정적 평가가 더 많다. 현대정공을 성공적으로 키워 아버지에게 인정받기도 했고, 갈기갈기 찢어진 현대를 다시금 재계서열 2위로까지 끌어올린 공적은 확실히 무시할 수는 없을 듯하다.
  • 드라마 영웅시대에서는 정한용이 정몽구 회장 역할을 맡았었는데, 정한용의 외모가 정몽구와 정말 많이 닮았다.
  • 세계 자동차업계 5위 진입, 현대가 적통 계승, 고로 제철소 준공, 그리고 통합사옥 건립을 4대 숙원으로 삼고 있다. 이 중 앞의 3개는 달성했고 마지막 숙원으로 통합사옥 건립이 진행 중이다. #

[1] 그를 임신했을 때 어머니인 변중석 여사가 꿈을 9번 꾸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2] 2020년 12월 포브스 기준[3] 한국 부자 순위 5위[4] 2020년 3월부터는 등기이사직 사임, 같은 해 10월에 회장직도 사임.[5] 기아자동차 회장직은 2009년에 이미 그만 둔 상태였다.[6]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다. #[7] 현재는 대한양궁협회 명예회장으로 있다.[8] 다만 아들 정의선 회장은 담낭염 수술로 면제를 받았는데 이는 담낭암으로 타계한 정몽구 명예회장의 부인이자 정의선 회장의 어머니 이정화 여사의 영향 때문으로 풀이된다. 가족력이 있는 질병인데다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병의 수준이 심각했기에 정의선의 병역 면제를 비난하는 여론은 적은 편이다.[9] 회사 내부적으로만 봐도, 초강성 노조로 유명한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부터가 매년 파업을 유도하고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운다는 등 여러 이유로 정몽구를 고용주(의 회장)이라기보다는 주적 취급한다. 울산에서는 희망버스 사태 직후 지명 수배 전단지를 패러디한 캐리커처 스티커를 붙여 규탄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