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트 반두라
'''Albert Bandura'''[1]
1925.12.04. ~
1. 소개
미국의 심리학자이며 '''2010년대 현재 세계 심리학계를 통틀어 최대의 영향력을 자랑하는 석학.'''
캐나다계[2] 미국인이며 아이오와 대학교,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를 거쳐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재직중이다. 보다시피 1925년에 출생하였으며, 향년 90세가 넘는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도록 '''장장 한 세기 동안'''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인물. 미국심리학회(APA) 회장직도 거쳤고 지금까지 수많은 상들을 수상했다.
논문을 무지막지한 양으로 휘갈겨 출판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그의 방대한 저작들은 가히 후학들을 파묻어 버릴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양반은 2010년대가 되도록 홀홀거리면서도 여전히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2. 행적과 공헌
그의 시대는 사실상 심리학의 역사를 온몸으로 거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우선 행동주의가 득세하던 60년대 중반에 '''관찰학습''' 내지 대리학습(vicarious learning)이라는 잭팟을 터뜨려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의 연구는 학부 1학년생들이 들고 다니는 심리학개론 교과서에도 꼬박꼬박 빠지지 않고 실리고 있으며, 교육심리학 및 사회심리학에서 각각 거대한 세부 분과를 하나씩 열어젖혔고, 대중매체 관련 정부 정책 역시 반두라의 이론을 '''대놓고''' 참고할 정도로 미국 심리학계를 수십 년 동안 이거 하나로 좌지우지했다.
그의 관찰학습은 기존의 고전적 조건형성 및 도구적 조건형성과 달리 사회적 상황(social setting)을 강조했기 때문에, 학습에 있어서 타인의 영향을 받을 수 있고,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해가 새롭게 생겨났다. 그의 '''사회적 학습 이론'''(social learning theory)에 따르면,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관찰을 통해 학습이 퍼져나가는 과정은 기존 스키너의 조건화를 포함하면서도 더 나아가서 인지적인 측면에까지 걸쳐 있다. 타인의 행동에 주의(attention)를 기울여서 관찰한 후, 자신의 행동에 반영할 수 있을 때까지 그것을 파지(retention)해야 하기 때문.
좀 시니컬하게 보자면 바야흐로 인지주의의 시대가 도래하자 이쪽으로 잽싸게 옮겨 타고 자신의 발견을 인지의 관점에서 새롭게 설명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사실 이 부분이 스키너와는 좋은 대조가 되기도 하지만...
아무튼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서, 그는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기 위해서는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어!" 라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했으며, 여기서 새롭게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즉 행동이 바뀌기 위해서는 먼저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3] 세상에 자신이 뭘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뭘 보고 배울 수는 없으니까. 반두라는 이것을 외현적 행동과 분리시켜서, 학습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개인적인 요인으로 다루었다.
본격적으로 인지심리학이 전성기를 맞이할 무렵, 반두라는 '''사회적 인지 이론'''(social cognitive theory)을 제안하면서 자신의 과거 이론을 다시 갈아엎고, 새롭게 환경적 영향을 학습의 요인으로 추가하여 동적인 구조를 만들었다. 특히 반두라는 '''주체성'''(agency)을 강조하면서, 기존 행동주의에서 전제했던 것처럼 인간은 외부 자극이나 타인의 행동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동물이 아니며,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며, 삶의 변화와 향상을 꾀하는 능동적인 동물'''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반두라는 행동주의의 전통과 완전히 결별했다.
3. 영향력
그의 이론은 어떤 하나의 심리학 분과나 분야에 국한시킬 수가 없을 정도로 널리 퍼져나갔다. 당장 교육심리학이나 사회심리학은 그렇다 치고, 이후 범죄심리학, 커뮤니케이션학, 정책학에서 즉각 영향을 받았으며, 더 나아가 경영학, 심리철학, 공공보건 분야, 환경학, 의료서비스 등으로 한도끝도 없이 확장되어 적용되었다. 가히 20세기 미국 사회과학계를 휩쓸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
보보인형 실험은 흔한 대중 교양서에도 등장한다. 그래서 대중적으로는 "아, 그 어린애들이 인형 후드려 패는 실험?"(…)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심리학과 학부 졸업생들도 어지간하면 반두라에 대해서는 보보인형 실험부터 떠올릴 정도. 이는 세계 어디서나 다르지 않았는지, 나중에는 반두라가 "제가 어디를 가든지 간에, 항상 그 보보인형 실험 얘기가 나오더군요" 라고 술회했을 정도니, 아무래도 뭇 사람들이 아는 척하기에는 보보인형 실험이 센세이셔널하기도 하고 기억도 잘 되고 여러모로 제격인 듯.
피인용수 문서에서도 보듯이 반두라의 저서들은 어마어마하게 인용되었는데, 비단 심리학뿐만 아니라 그 어떤 학문분야를 찾아보더라도 '''단일 저자가 이만큼 베스트셀러(?)를 연이어 히트한 경우는 정말 드물다.''' 피인용수 문서에서는 두 건의 문헌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사실은 그보다 많이 소개할 수 있다.(…) 나무위키가 심리학위키가 아니기 때문에 전부 소개할 수 없긴 하지만. 《종의 기원》 이나 《자본론》, 《이기적 유전자》 같은 책들은 인용으로 따지자면 아예 명함도 못 내밀 지경이다.
이처럼 학술세계의 영향력으로는 현존하는 인물 중에서는 가히 살아있는 전설 급이기 때문에, 구글 스칼라에서 확인은 불가능하지만 h 인덱스를 매겨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해당 문서에서도 보듯이 h 인덱스 자체가 질적으로 좋은 문헌들을 출판하면서 & 양적으로도 많은 문헌들을 출판하는 학계 최고참 원로 석학에게 가장 유리한데, 이게 반두라에게 아주 정확히 부합한다. 수치로 따지면 100은 가뿐히 뛰어넘고 그 이상으로도 한참 더 올라갈 듯. 대략 160~170 정도로 예상된다.[4]
4. 비판
4.1. 학계의 권력자
이처럼 언터쳐블 그 자체인 인물이지만 거꾸로 이러한 면이 비판을 받기도 한다.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것은 역시 '''학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는 것.''' 미국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수많은 대학교들의 심리학과 일자리는 반두라 일파와 관점을 같이 하는 사람으로 우선적으로 채워졌으며, 정부 기관 프로젝트나 기업 연구용역을 따내는 것도 스탠포드 그룹이 완전히 독점하다시피 했다는 볼멘소리가 비주류 세력으로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는 관련 학회들에서 게임 중독 등 폭력적 미디어의 유해성 논란에 대해서 그토록 강경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것도 사실은 이게 아니냐는 음모론 같은 발상도 간혹 있다.(…) 자기네 높으신 분이 멀쩡히 살아계신 마당에 그가 틀렸다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즉 반두라가 죽기 전까지는 폭력적 미디어는 검열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
어쨌거나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적어도 반두라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반두라의 영향력을 벗어나서 뭘 해 보기 어려우리라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학문의 계보[5] 지만 나쁘게 말하면 학계의 패거리(?) 문화인데, 이런 면에서 꽤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탄식이 있다. 미국이 사실상 전세계 심리학계를 주도하고 있는 판국에... 특히 스탠포드 vs. 예일 구도를 중심으로 해서 몇몇 다른 명문대들이 틈새 시장을 차지하고, 나머지들은 빌빌거리며 각자도생을 해야 하는 작금의 (사회)심리학계의 현실에 대해서는 반두라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특히 UCLA 같은 곳에서 반두라를 유독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편.
4.2. 학문적 실속은 없는 저작들
학술적으로도 비판받을 여지가 있는데, 그렇게 인용되고 그렇게 추앙받는 저작들을 읽어보더라도 '''정작 실속은 별로 없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실제로 사회적 인지 이론의 경우도 수만 건씩 인용된 이론치고는 그다지 눈여겨볼 만한 독창적인 조망을 제시하지 못해서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많다. 그 이름도 "사회" 와 "인지" 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두 단어 모두 어마어마한 심리학의 영역들을 의미하지만, 정작 두 단어를 합쳐놓은 이론체계는 그것들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름만 그럴싸하던 사회적 인지(social cognition)는 결국 90년대 후반 이후로 새롭게 나타난 신성인 수전 피스케(S.T.Fiske)가 대신 가져가서 자기가 직접 그 분야를 개관해 버렸다.
아무튼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반두라는 그 영향력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태산북두와 같은 인물이고,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역사의 여러 페이지를 장식할 만큼의 자격이 있으며, 당대의 자식뻘, 손자녀뻘 되는 무수한 지성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어 왔던, 장수만세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논문 공장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영향력만큼이나 학계가 지나치게 그 한 사람에 의해 좌우되었다는 한계는 있으나, 머지않은 미래에 그의 아이디어는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재해석되고 재평가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학계에서의 중요성은 그가 죽고 나서도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1] 성씨가 동유럽계라 '반두라'로 쓰지만 실제 영어식 발음은 '밴두어러'([bænˈdʊərə\]) 정도에 가깝다.[2] 그중에서도 동유럽계 캐나다인이며 아버지가 폴란드계, 어머니가 우크라이나계이다.[3]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a) 자신이 새롭게 바뀐 행동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음과 함께 b) 환경이 자신의 변화된 행동에 따라 변화된 반응을 보일 것으로 믿어야 한다.[4] 이공계에서 이 정도면 당장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영향력인데, 사회과학 분야는 과학자사회의 학술계량이 자연과학이나 의약학에 비해 덜 보편화되어 있음을 감안하면 체감 영향력은 실제로는 더욱 높을 것이다. 구글 스칼라에 잡히는 사회과학분야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이 이상가는 영향력의 인물은 미셸 푸코나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케이스를 제외하면 정말 드물다.[5] 이 자체는 절대 나쁜 것이 아니다. 박사 문서에서도 언급되듯이 누가 누구 밑에서 배웠는가의 문제는 의외로 중요하다. 선대 학자의 관점을 계승하거나, 발전시키거나, 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