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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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炳日
1910년 1월 27일 ~ 1962년 9월 5일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정치인이다.
1910년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주오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후기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고,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45년 8.15 광복우익 단체인 대한청년단 광주부 단장을 지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강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대한국민당 차경모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성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5년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이후 민주당에서 신파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아남산업 창업주인 무소속 김향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민주당 전라남도당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의 혁명재판에서 장면국무총리국가보안법 및 특정범죄처벌에관한임시특례법(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전신) 위반으로 재판을 받자 장면을 변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