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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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又正
1907년 11월 15일 ~ 1975년 10월 11일
대한민국의 전 시인, 언론인, 정치인이다. 개명하기 전의 이름은 양창준(梁昌俊), 호는 우정(雨庭)이다.
1907년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에서 태어났다. 함안보통학교(현 함안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항일 운동에 참여했다가 퇴학당했다. 이후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유학했다가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그리고 1920년대 후반 카프 시인으로 활동했다. 카프 활동으로 투옥되었다가 전향한 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친일 잡지 '''녹기'''에 관계했다.
8.15 광복우익 언론인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선전부장으로 신탁통치 반대 운동에 참여했고, 이승만의 독립운동 경력과 정치 이념을 홍보하는 저서를 남겼다. 1949년 연합신문을 창간하여 이승만의 일민주의 홍보에 앞장섰다. 그는 조선민족청년단에서 일민주의의 체계화에 앞장서면서 "가족국가론"을 제시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함안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이범석의 족청계에 몸담았다. 자유당에서 정무국장, 국민부장, 경남도당부 위원장 등을 지냈다. 1953년 연합신문 주필인 정국은이 간첩혐의로 체포되자 당시 국회에서 역대 최초로 체포동의안을 통과시킴으로 국회의원이던 상태에서 구속되어 범인은닉 등으로 징역 7년의 유죄판결을 받았다.1953년 12월에 자유당에서 다른 족청계 인사들과 더불어 제명되었으며 국회의원 자격도 상실되었다. 1954년에 대통령 특별 사면으로 풀려났다. 이후 칩거생활을 하다가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민중당으로 서울특별시 제7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조윤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