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놀라 홈즈
1. 개요
셜록 홈즈의 여동생[1] 에놀라 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추리 모험 영화. 기묘한 이야기의 일레븐 역으로 유명한 밀리 바비 브라운이 에놀라 역을 맡았다.
2. 예고편
3. 등장인물
- 밀리 바비 브라운 - 에놀라 홈즈 역
- 샘 클라플린 - 마이크로프트 홈즈 역
- 헨리 카빌 - 셜록 홈즈 역
- 헬레나 본햄 카터 - 유도리아 홈즈 역
- 루이스 패트리지 - 튜크스베리 자작 역
- 아딜 아크타르 - 레스트레이드 경감 역
- 피오나 쇼 - 해리슨 부인 역
- 프랜시스 데 라 투어 - 튜크스베리 자작의 할머니 역
- 번 고먼 - 린손 역[스포일러]
- 수지 워코마 - 에디스 역
4. 줄거리
셜록 홈즈의 동생 애놀라 홈즈가 집을 나간 어머니를 찾아 추리하며 찾아다니다가, 튜크스베리를 도우러 산전수전 해메고 여성참정권을 위해 각성하는 내용
5. 평가
5.1. 호평
다소 엉뚱하지만 과감하고, 가벼운 코믹과 진중한 서사를 두루 갖추고 있는 하이틴 영화라는 평.
선거법 개정안[2] 을 두고 변화의 격동이 몰아치던 영국 근현대 시대를 배경으로 삼아 여성들도 당시의 남성들처럼 자신들의 삶을 원하는대로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원론적인 초기 페미니즘 논리를 시사한다. 가령 일반적으로 이러한 스토리에서 묘사되던 위기에 대응하는 남성과 보호를 받는 여성 캐릭터의 전형적인 모습들을 각각 여성인 에놀라 홈즈와 남성인 튜크스베리 자작으로 대신해 바꿨고, 백인 인물들 위주로만 등장했던 근현대 배경 영화의 통상적인 연출과는 달리 흑인, 아시아인 등 여러 인종들을 등장시켰다.
아울러 여성 서사물의 클리셰적인 캐릭터 대결 구도를 깨뜨렸다. 통상적으로 여성이 영웅화된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에서는 억압하려는 남성 캐릭터와 저항하려는 여성 캐릭터가 대립해 성(性)의 대결로 몰아가려는 연출이 다소 많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러한 성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남성 캐릭터들 뿐만 아니라 여성 캐릭터들 사이에서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에놀라를 억압하려는 유형, 혹은 이러한 에놀라를 지지해 주는 유형 등으로 나뉘어 구(舊)와 신(新)의 대결 구도로 이어진다.
제4의 벽을 깨뜨리다 못해 부순 영화이다. 에놀라는 영화 내내 스크린 밖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질문을 하며, 심지어는 영화 중반 자객에게 위험에 처했을 때도 카메라를 바라보며 윙크하고 미소를 짓는 등 관객들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출연진들의 연기력도 높게 평가받았다. 루이스 패트리지는 허당끼가 있지만 박학다식하고 능글맞기도 한 튜크스베리 자작을 자연스레 소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주인공 에놀라 홈즈를 맡은 밀리 바비 브라운은 엉뚱하고 발랄하면서 당차지만 때론 겁을 잘 내고 귀여운 구석을 지닌 해당 캐릭터를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풀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5.2. 비판
우선 역사 왜곡이 상당하다. 당시 영국의 시대상에 대한 묘사를 봐도 사실과 다른 점이 굉장히 많고, 셜록 홈즈라는 작품에 대한 고증으로 봐도 설정을 상당히 존중하지 않고 있다.
우선 저 시대에는 남녀 가릴 것 없이 정장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다니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육체 노동에 종사하던 평민 노동자들마저도 조끼를 항상 챙겨입던 때에, 지금처럼 셔츠만 입고 자켓이나 조끼를 입지 않는다는 건 속옷만 입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또한 에놀라는 '남자들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왜 여자는 못하게 하느냐!'라는 논지로 '엄마는 집안에서 테니스 치기, 집안에서 화학 실험하고 불 지르기, 저택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아 풀밭 덩굴로 뒤덮인 집 만들기 같은 걸 하며 자유롭게 모든 걸 다 하게 했다!'라고 주장하는데, 사실 저 시대는 남자라고 자유롭게 살았던 시대가 아니며 영화에서 묘사되는 수준의, 저택과 하녀를 둘 수준의 상류층 집안은 더더욱 그렇다. 만약 작중에서 에놀라의 엄마가 했다는 행동들을 그대로 남성 귀족이 했다면 그냥 사람 취급 못 받는 또라이 정신병자가 될 뿐. 남성이라고 해서 마음껏 자유를 누렸던 시대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시대의 상류층 남성들도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지정한 교육과 행동양식을 강요받으며 그것을 어길 수 없게 교육받았고, 자기가 따로 관심을 가진 분야가 있더라도 그것이 다른 계층의 일이라면 배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즉 차라리 모두를 억압하고 옥죄는 시대상 자체에 대한 비판이었다면 몰랐을텐데 괜히 '남자는 하는데 왜 여자는 못하느냐'라고 덧붙이는 바람에 오류가 된 것. 차라리 귀족처럼 딱딱한 교육을 받지 않은, 시대상을 뛰어넘은 자유로운 성격의 주인공으로 묘사하고 여성 참정권은 부가적 요소로 넣었다면 호평을 받았을수도 있다. 에놀라 홈즈는 이렇게 시대 고증을 완전히 날려버리면서까지 평면적인 페미니즘 서사 구도를 추구함으로서 입체적 사건이 주는 극적 재미 따위는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사실 창작물에서 실제 역사와 다른 묘사를 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시대상 고증 오류는 정도와 내용에 따라 그다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에놀라 홈즈는 왜곡된 역사를 가지고 메시지를 전달하려 드는 '허수아비 때리기의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받는 것이다.
스토리 자체도 짜임새 있거나 탄탄한 디테일이 받쳐져 있지 않아 영화의 내러티브 전개가 매우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다. 처음에는 자취를 감춘 어머니를 찾는 내용으로 가다가 튜크스베리 자작 실종 사건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 사건과 어머니를 찾는다는 본래의 목적 사이의 연결성, 개연성이 터무니 없이 부족하여 극 자체가 맥락 없이 흘러간다는 느낌을 준다. 어릴 때 어린 양을 구하려다가 크게 다친 이야기를 하며, 결국 위험에 처한 튜크스베리 자작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는 이유다. 좋게 보면 자신의 목적(어머니를 찾는 것)이 있음에도 어려움에 처한 이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에놀라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정말 뜬금없고 작위적인 전개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극 중간에 서사의 포인트나 분위기, 장르를 바꾸는 것 역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처럼 충분한 개연성과 복선을 통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지만 <에놀라 홈즈>의 흐름 전환은 그야말로 뜬금없다. 단순히 동정심을 드러내는 도구인 어린양 대신 튜크스베리의 처지와 비슷한 상황을 직접 경험거나 목도했다고 했으면 개연성이 더 나았을 것이다.
억압적인 남성에 대항하는 여성 서사의 클리셰를 벗어났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남자는 틀렸고 여자는 옳다"라는 페미니즘 영화의 클리셰를 답습한 것에 가깝다. 셜록 홈즈와 튜크스베리 자작이 후반부로 갈수록 나아지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남성 등장인물은 부정적으로 묘사되며 셜록 홈즈조차도 집에 돌아오기는 커녕 편지도 쓰지 않은 무정하고 무책임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셜록 홈즈와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얼마 나오지도 않고 오로지 에놀라의 도덕적, 능력적 우위를 확인시켜주기 위한 장치로만 사용되는데 문제는 영화 전체에서 무슨 대단한 미스터리 추리 서사가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뻔한 플롯 속에서 누가 잘났느니 해봤자 양자 모두 우스워질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중간중간마다 있어 해당 작품이 시류에 맞춰 상업적 성과를 노린 페미니즘 영화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에놀라 홈즈와 주변 여성 캐릭터들은 주체적으로 억압에 맞서 싸우며 당당히 행동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들로 묘사되는 반면 셜록 홈즈와 마이크로프트 홈즈를 비롯한 극중 남성 캐릭터들은 그저 사회가 만든 억압구조 안에서 생각없이 사는 바보로만 그려진다. 이런 식의 평면적인 인물 구성 때문에 스토리는 기존의 선악 구도를 남녀 구도로 바꾼 걸 제외하면 특별할 게 없다. 기숙학교 여교장과 같이 일부 여성 캐릭터가 남성 캐릭터들과 마찬가지로 꽉 막힌 인물로 묘사되는 것을 제외하면 모든 등장인물이 이러한 공식을 천편일률적으로 따른다.
실제 역사적 배경과 영화 속 내용이 다른 부분이 많다. 이를테면 영국 투표권 개정과 관련한 내용이 주요 서사인데, 이 시기에는 여성 뿐 아니라 남성조차도 귀족이 아니면 투표를 할 수 없었던 시기인데다 평민의 투표권을 주장하면 빨갱이 공산주의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힐난받던 시대였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가 이럴진대 남성들에게만 투표권을 행사하게 하려한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전형적인 미국 PC식 왜곡은 기존의 호응자 이외에는 아무도 설득하지 못한다. 평민 남성 캐릭터가 에놀라 홈즈와 함께 평등한 참정권을 위해 노력하는 전개를 채택했다면, 전술한 역사 왜곡은 물론이고 지나치게 평면화되었으며 또한 치우쳐진 서사와 캐릭터 설정 등 대부분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에놀라 홈즈의 대사 중 제국주의적이고 백인우월주의적인 부분도 있다. 에놀라가 런던을 '문명의 중심지'라고 하는데, 당시 세계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만든 영국의 행보를 미화하는 발언이다. 문명이라는 것은 전세계에 있었고, 고대의 4대 문명 시기를 제외하면 특정 지역을 문명의 중심이라고 일컬을 여지는 없다. 해당 표현은 우월감에 찌든 주관적 의견에 불과하다. 본 문단의 내용이 잘 납득되지 않는다면, 역으로 생각해서 조선이 식민지배를 당하던 메이지 시대에 일본의 소녀 캐릭터가'도쿄는 문명의 중심지!' 같은 발언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와 다를 게 전혀 없는 대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본의 메이지 시대와 마찬가지로 피식민 국가의 상류층들에게만 해당되는 '좋은 시절'인 빅토리아 시대를 지나치게 곡해했다. 인도와 같은 당시의 식민지 국민들 입장에서 여성 참정권은 배부른 소리다. 최상류층 엘리트 남자라고 해도 제대로 된 권리가 없던 것이 식민지 국민의 삶이다. 일례로 간디의 경우 분명히 티켓을 샀는데도 1등석에서 쫓겨나고 길거리에서 불심검문과 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 물론 동시대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이런 사정을 잘 몰랐을 것이며 또한 식민지 사람보다는 나았지만 여성들의 권리 역시 억압되어 온 것도 자명한 사실이고, 그들의 행보는 분명 합당한 평등을 위했던 정당하고 정의로운 투쟁이었다. 충분히 역사적 사실을 접할 수 있는 현대에 만들어진 영화라 하더라도 여성 참정권 운동에 초점을 맞췄다면 굳이 이러한 사실들까지 전부 다뤄야만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에놀라 홈즈는 이러한 허용치를 아득히 뛰어넘은 제국주의적 발언을 넣음으로서 반론의 여지를 없애 버린다. 이런 발언을 한 에놀라를 '성평등을 위해 투쟁하지만 막상 그 자신은 다른 국가와 지역에 대해 불평등한 사고를 내재하고 있는, 시대적 한계의 모순을 가진 현실적인 인물'이 아니라 '여자들을 억압하는 남자들과 맞서 싸우는 한없이 옳고 정의로운 걸크러시 소녀'로 묘사해 버렸다.
게다가 제목과 달리 영화 내용 상으로는 홈즈가 굳이 존재할 이유가 없으며 기존의 셜록 홈즈 관련 작품들 대부분의 공통분모였던 '사건을 논리적인 추리로 해결'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홈즈 등장 작품의 클리셰를 깨뜨리려는 시도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연의 셜록 홈즈 영화 시리즈처럼 새로운 시도를 통해 호평을 이끌어낼 여지도 얼마든지 있었다. 해당 시리즈는 준수한 액션과 색다르게 비틀린 캐릭터, 원작에 대한 경의적 오마주가 더해져 평가가 좋은데에 반해 에놀라 홈즈는 전자와는 달리 그 '새로운 시도'의 결과물이 개연성 없는 스토리와 역사 왜곡을 통한 억지스런 페미니즘 전파라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홈즈 팔이'라는 소리를 듣는 결정적인 이유.
각종 평점 사이트에 등록된 호평들 중 스토리를 칭찬한 게 있기는 한가?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셜록 홈즈를 여성 인권이라는 시점에서 재해석했다, 영상미가 좋다 등등의 포인트에서 칭찬하지만, 스토리를 중점적으로 평가하자면 이 영화는 낙제점을 피하기 힘들다. 추리는 실종되었고 스토리는 그저 뻔하기만 하다. 원작에도 없는 러브라인은 또 왜 뜬금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스토리가 망가졌는데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 세련될 리가 있겠는가? 대중의 평점이 낮은 이유일 것이다.
페미니즘 관련 영화의 사용자 평점이 대부분 높게 나오는 네이버 영화를 제외하면 각종 평점 사이트들의 유저 평점은 하향세다. 상당수의 유저 평이 부정적이며 그 주된 요지는 스토리가 산만하고 얄팍하다는 것이다. 또한 셜록 홈즈를 제외한 남성캐릭터들을 모조리 멍청이거나 사악하게 만들었다, 페미니스트적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영화적 재미를 등한시했고 주제 전달방식도 짜증난다, 실제 역사적 배경과 너무 큰 차이가 난다, 홈즈에 걸맞지 않게 무슨 대단한 미스테리나 추리랄 게 없다 등의 의견이 있다.
이 영화에는 PC의 단골 소재인 페미니즘이 많이 녹아있는데, 여성참정권과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이 역시 영화의 맥락과 상관없이 뜬금없이 등장하기에 영화 몰입에 있어 방해가 되는 요소이다. 에놀라의 엄마가 실종된 것이 이와 관련이 있음을 묘사하기 위해서였더라면 좀더 자연스러운 전개가 필요했다. 당시 여성의 억압적 삶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묘사가 불충분했고[4] 이것이 후작 실종사건과 연계성을 갖게 하는 연결고리 역시 미약하다.
또한 '홈즈'라는 이름만 보고 서스펜스가 돋보이는 추리 스릴러를 기대했다면 꽤나 실망할 수도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 갑자기 사라진 어머니가 어디로 사라젔는지, 그리고 튜크스베리 자작이 어째서 실종되었는지를 해결해 나가는 추리물로 일단 시작하지만,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오히려 성장물로 변화되어간다. 단서를 찾고 머리를 굴리는 추리보다는 액션과 모험적인 서사가 많고, '탐정'으로서의 에놀라 홈즈가 아닌 세상을 깨우치고 이를 통해 어른스러워지는 '인간'으로서의 에놀라 홈즈에 초점을 둔다. 이러한 흐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면 영화가 개연성으로 비판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가벼운 코믹과 진중한 서사를 갖췄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둘을 붙잡아 줄 스토리가 뻔하고 얄팍했으며 그 스토리의 정체성마저 모호하다. 서로 다른 성질의 각 부분은 완전히 따로 놀고 있다.
또한 에놀라가 관객에게 말을 거는 연출을 제 4의 벽 운운하며 호평으로 언급된 부분도 있는데 비슷한 방식의 연출로 대호평을 받은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작품의 경우에는 해당 연출을 감초적인 부분으로 사용하여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하지만 에놀라 홈즈에서의 관객에게 말 던지기의 경우 해당 시점에서 관객에게 말을 걸어야 할 당위성이나 이유가 있는 장면이 거의 없다. 쓸데없이 관객에게 말을 거는 장면들로 영화가 더 분절되어 길게 느껴지는 역효과만 내고 심하면 극의 몰입이 떨어진다. 즉 원래대로라면 사건 전반의 진행 과정, 곧 증거의 나열에는 용이할 만한 연출이지만, 이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연출적인 완성도를 위한 하나의 장치로 작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영화로 담기 어려운 연출에 대한 회피, 곧 각본가 및 연출자의 극 진행에 대한 편리함을 위한 장치로 소모되어진 감이 없지 않다.
전체적으로 보면 배우들의 연기는 빛나지만 부족한 스토리와 모호한 정체성에 따로 노는 파트들로 인해 영화적 재미를 상실했다. 스토리가 탄탄했다면 좀 더 빛을 발했을 연출도 역효과 수준에 그치고 예고편에서 보여줬던 스피디한 느낌도 증발했다. 영화의 시작은 에놀라 홈즈의 엄마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다가 튜크스베리 자작 찾기로 변해버린다는 것으로 변화되어 추리극보다는 하이틴물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 영화를 보면서 기존의 셜록 홈즈를 기대하지 않고, 에놀라 홈즈라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의 활약을 기대한 시청자도 많을 텐데 홈즈라는 이름에 걸맞은 추리를 보여주지도 못했고 성장물로 집중하지도 못한 뻔하고 얄팍한 스토리로 그러한 기대를 배반하게 되었다.
또한 호평의 말미에 나온 헨리 카빌이 셜록 홈즈의 모습을 잘 살렸다는 부분도 사실 좀 애매하다. 원작의 셜록 홈즈는 무게감은 커녕 기본적으로 중년 이후의 히스테릭한 매부리코 말라깽이로 묘사된다. 이는 여러 작품에서도 외모만 아주 조금 상향될 뿐(매부리코 교정 정도) 기본적으로 매마른 몸매에 괴팍한 분위기의 노총각이란 점은 변하지 않으며 그나마 제일 외모가 좋게 묘사됐다는 BBC의 셜록에서 홈즈 역할을 맡은 컴버배치마저 잘생긴 미남 이미지는 아니며 극중 연출로도 그다지 외모가 준수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결국 헨리 카빌의 연기력은 좋았지만 셜록 홈즈의 가장 큰 매력인 지성의 묘사는 부족하고 그저 잘생긴 외모만 부각되었다.
왓슨 포지션의 캐릭터가 없다는 것도 아쉬운 점. 기존 셜록 홈즈가 왓슨이라는 캐릭터를 괜히 등장시킨 게 아니며, 왓슨이 있어야 자연스럽게 상황에 대한 궁금증을 제시하고 홈즈가 그에게 해답을 주며 이야기의 얼개를 잡아줄 수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원전의 극히 일부 단편을 제외하면 왓슨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 채 이야기가 진행되고, '빨간 머리 클럽'이나 '얼룩무늬 띄'와 같이 평가가 특히 좋은 에피소드는 모두 왓슨 시점에서 전개되며 이를 벗어난 '사자의 갈기'나 '미자랭 다이아몬드'는 평가가 나쁜 축에 속한다. 코난 도일이 왜 그러한 서술 방식을 채택했는지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한 채 그저 왓슨의 포지션을 삭제하고 탐정 캐릭터가 관객에게 직접 말하는 것으로 바꿈으로서 셜록 홈즈 시리즈의 특색을 없애버렸다. 이 역시 코난 도일 협회의 공식 인증을 받은 '소년 셜록홈즈 시리즈'의 경우, 왓슨과 같이 독자의 생각을 대변하되 독자보다 2% 부족한 캐릭터는 없지만 충실한 시대 고증과 훌륭한 미스터리 서사로 이를 메꿈한 바 있다. 반면에 위의 클리셰 파괴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에놀라 홈즈에는 이렇게 원작과 달라진 점을 상쇄할 만한 장점이 없다. (다만 그렇다고 아예 왓슨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영화 말미에 아프간 파병을 언급하는 걸로 봐선, 아직 왓슨과 만나기 전의 시점이라 보면 타당하다.[5] )
누구보다도 캐릭터성이 가장 크게 왜곡된 건 마이크로프트 홈즈다. 원작의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셜록을 능가할 정도의 추리 능력자이지만, 성격 등으로 인해 스스로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본 영화에서는 강박적으로 기존의 전통을 지키려 들면서 남을 억압하는 무능하고 보수적인 꼰대로만 묘사되어 버렸다. 본작은 기존 셜록 홈즈 시리즈와 별개인 창작물이기에 원작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지만, 페미니즘 메시지를 위해 이를 악의적으로 비튼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받기 힘들다. 다만 저 시대에서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강요하는 그 규범에 따르지 않으면 그냥 사회부적응자로 전락하며 사회생활의 기반이 무너질 것이었기에 이를 위한 연출이라는 평도 있으며 종반부에 적어도 선거권에 관해서는 마냥 꽉 막힌 인물은 아니라는 암시를 주긴 한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지나친 면은 있는 게,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에놀라에게 신부 수업을 듣게 하거나 기숙학교 교장이 자기 오랜 친구라며 에놀라를 거기 입학시키는 점이다. 마이크로프트는 셜록보다도 사교 폭이 훨씬 좁을 인물인데[6] 전통적인 여성상만 강요하는 여성이 친구라는 것부터 맞지 않다. 마이크로프트 정도 되는 사람과 교분을 맺을 정도면 그만한 지적 수준이 있는 사람이어야 맞다. 그리고 이 때는 여성이 차별받는 시대는 맞지만, 여성다움만이 유일하게 받을 수 있는 교육일 정도까지는 아니다. 당장 비슷한 시기 이웃 나라 프랑스에서 소르본 대학에 재학한 마리 퀴리 같은 여성도 있고, 홈즈 시리즈에 등장한 메리 모스턴이나 바이올렛 헌터도 가정교사였다. 부모가 없으니 여동생을 보호할 겸 기숙학교에 보내는 건 아예 납득이 안 가는 설정은 아니지만, "너 똑똑한 건 알지만 탐정은 남자의 일이다. 넌 공부해서 교사나 해라."라고만 해도 성차별적인 면모를 드러낼 수도 있는데도 여성에겐 교육이 필요없다고 믿는 꼰대로 묘사했다.
성격보다 더 심각한 문제점은 지능 면에서 너무 뒤떨어지게 묘사했다는 것이다. 원작에서의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셜록보다 행동력이 떨어지는 대신 추리 능력은 더 뛰어나 아예 셜록이 추리가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조언을 구하러 갈 정도며, 그 지능만으로 마이크로프트가 부재시 영국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영화 내에서 셜록이 에놀라가 어디로 갔는지 차분히 추리할 때 마이크로프트는 이미 답을 내거나, 그 정도로 차이는 안 나더라도 최소한 대등할 정도의 추리력은 선보였어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 내에서는 그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이렇게 홈즈 형제의 지능을 후퇴시켜놓고, 원작의 셜록과 마이크로프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의 에놀라를 잘난 것으로 묘사한다. 이는 달리기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를 눈에 띄게 하겠답시고 육상 국가대표를 데려와서 다리를 부러뜨린 다음 경주를 시켜서 '국가대표보다 잘 한다! 만세!' 하는 것과 같다. 재차 강조하지만 원작 변형에 대한 모든 비판은 바꾼 결과가 영 좋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영화가 더 잘 만들어졌다면 이러한 부분들은 전혀 악평을 받지 않았을 것이고, 심해도 호불호가 갈리는 수준에서 그쳤을 것이다.
6. 여담
- 본래 워너 브라더스에서 극장 개봉을 계획했으나, 코로나 19로 인해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배급권을 넷플릭스에 판매했다.
- 주인공인 밀리 바비 브라운이 제작에 참여했다. 원작 소설을 읽고 영화로 제작하고 싶어 전작을 찍으며 알게된 제작자에게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밀리는 캐스팅과 대본에 참여했다.
- 해리 포터 실사영화 시리즈에 나온 배우들이 3명 등장한다. 벨라트릭스 레스트레인지 역을 맡았던 헬레나 본햄 카터는 에놀라 홈즈의 엄마인 유도리아 홈즈를, 더들리의 엄마이자 해리포터의 양육자 이모인 피튜니아 더즐리 역을 맡았던 피오나 쇼는 해리슨 부인을, 해리 포터와 불의 잔(영화)에서 올랭프 막심 역을 맡았던 프랜시스 데 라 투어는 튜크스베리 자작의 할머니를 맡았다.
- 아서 코난 도일 재단에서 소송을 걸었는데, 그 이유는 해당 작품에 나오는 셜록이 너무 친절하다는 것이다. 원래 우리가 아는 셜록 홈즈의 괴팍함은 초기 작품에 많이 드러나는데, 도일이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 집필한 후기 작품에서는 조금 더 사회적이고 친절한 성격으로 변화한다. 문제는 그렇게 성격이 변한 홈즈를 다루는 작품들은 아직 시효가 지나지 않아 아서 코난 도일 재단이 판권을 갖고 있으며, 에놀라 홈즈의 제작진이나 원작자 모두 아서 코난 도일 재단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후기 소설에 나올 법한 셜록을 다뤘다는 것이다. #
- 왓슨이 등장하지 않는다. 헌데, 단순히 언급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홈즈의 조수를 사칭한 에놀라에게 레스트레이드가 “홈즈는 혼자 활동한다”고 말했기 때문에[7] 영화 속 세계에는 왓슨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8] 하지만 에놀라 홈즈 소설 시리즈에는 왓슨이 그대로 존재하고, 소설 3권의 경우 왓슨의 실종을 다루고 있으므로 후속작이 나온다면 왓슨이 등장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 마이크로프트 같은 경우는 원작에서 이름만 빌려온 전혀 다른 캐릭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각색되었다. 셜록보다 덩치도 작고 셜록을 능가한다는 추리력을 보여주지도 못하며, 성격도 원작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아서 코난 도일의 원작이 아니라 에놀라 홈즈 소설 원작과 비교했을 때도 성격이 더욱 나빠졌다. 에놀라 홈즈 소설에서는 성격이 부정적으로 묘사되긴 하지만 적어도 유도리아가 자신에게 받아갔던 돈을 다시 청구하지는 않았는데, 영화에서는 원래 자기 돈이라고 윽박질러서 어린 여동생의 여비를 뺏은 후 기숙학교 앞까지 강제로 끌고 가는 쫌생이스러움이 추가되었다.
[1] 원작 셜록 홈즈 소설에서는 여동생이 존재하지 않는다. 셜록 기반 미디어에서 셜록의 여동생을 묘사한 경우는 BBC의 셜록의 유러스 홈즈에 이은 두번째 사례이다.[스포일러] A B 기숙학교 교장, 그리고 튜크스베리의 할머니[2] 이중에 여성들의 참정권 부여도 포함되어 있다.[3] 마이크로프트 홈즈, 튜크스베리 자작을 노리는 자객등[4] 영화의 묘사는 대부분 역사 왜곡에 기초한다.[5] 애초에 홈즈가 왓슨을 처음 만나는 주홍색 연구에피소드의 초반까지만 해도 홈즈는 혼자 나갔다가 흙먼지를 잔뜩 묻히고 들어오거나 의뢰인도 혼자 만나는 등 혼자서 사건을 해결하고 다니는 쪽이었다. 극중에서 레스트레이드가 조력자 혹은 조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도 소설 설정에 부합하는 점이다. 에놀라 홈즈가 '왓슨이 없다'고 비판받는 이유는 진짜로 존 왓슨이 등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왓슨과 같이 관객보다 약간 부족하면서고 관객을 대변할 만한 캐릭터가 없다는 점이다.[6] 셜록은 왓슨이란 절친이 있고, 그정도는 아니지만 대학교 시절 어느 정도 교류한 친구들이 나오기도 하며 수사에 필요한 인맥도 있지만 마이크로프트는 이런 것도 없다. 오죽하면 '말을 하면 쫓겨나는' 디오게네스 클럽이라는 괴상한 걸 만들어놓았을까.[7] 혼자 다니는 것은 어느정도 소설 설정과 부합되는 것이 주홍색 연구의 첫 살인사건에 왓슨을 데려가기 전까지 홈즈는 계속 혼자서 사건을 해결해왔다.[8] 다만 극 중 배경연도가 아프간 전쟁 와중이거나 이제 막 끝난 시점이기에 왓슨은 아프간의 사막에서 구르고 있을 시기라 등장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