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색 연구
1. 개요
1887년에 발표된 셜록 홈즈 시리즈의 첫 작품이자 첫 장편 소설.'''인생이라는 무색 실타래 안에는 살인이라는 이름의 선홍색 실이 있습니다. 그것을 풀고,[1]
격리해서, 구석구석까지 폭로하는 게 우리의 의무입니다.''''''There's the scarlet thread of murder running through the colourless skein of life, and our duty is to unravel it, and isolate it, and expose every inch of it.'''
- 셜록 홈즈, 1부 4장 "존 랜스의 증언" 中에서
존 왓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으로 돌아와 셜록 홈즈를 만나는 것에서 시작하여, 왓슨과 홈즈가 처음으로 함께한 사건을 기록하게 된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그들이 처음으로 함께하고 왓슨이 처음으로 기록한' 사건이지 '''홈즈 최초의 사건은 아니다.'''[2] 공식 작품들 중에서 홈즈가 최초로 맡은 사건은 셜록 홈즈의 회상록에 나오는 글로리아 스콧 호이다.
2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는 육군 군의관을 지낸 <존 H. 왓슨의 회상>, 제2부는 사건의 배경을 설명하고 마무리짓는 <성도들의 나라>이다.[3]
1.1. 제목 번역
국내에는 <주홍색 연구>라는 제목으로 들어와 있으나 이는 오역이라는 의견이 많다. 이러한 제목이 붙게 된 것은 일본에서 처음 번역된 제목이 <緋色の研究>였기 때문. 우선 scarlet이 주홍으로 번역되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꽃잎의 색깔 같은 주황빛이 도는 색이 아니라[4] 선홍색 또는 진홍색, 즉 핏빛에 가까운 색깔이다.[5]
또한 홈즈의 대사 중에 "예술 용어를 빌어 표현하자면"이라는 말이 있어, 여기서 study는 예술에서 쓰는 '''습작'''으로 볼 수 있다.[6] 이는 책의 저자가 왓슨이라는 작품 내 설정으로 생각해 보면 더 확실한데, 왓슨의 입장에선 '''처음 홈즈와 함께 맡은 사건이자 처음 쓰는 기록'''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어 위키백과에선 제목의 study를 습작에다가 링크 달아놨다.# 일본에서도 번역 실수라는 지적이 많아 <주홍색 습작(緋色の習作)>으로 내놓은 판본도 소수 있다.
위의 이유로 제목의 적절한 번역은 '''<선홍색(핏빛) 습작>''' 정도가 될 것이다.
문예춘추사는 <진홍색 연구>라고 번역했다. 한편 셜록 홈즈 시리즈를 1980년대에 냈던 동서문화사는 <빨강글자 수수께끼>(...)라는 독특한 제목을 붙였다.
2. 평가
후속작인 네 개의 서명에서 셜록 홈즈의 대사 중에 "모름지기 수사란 정밀한 과학이기 때문에 냉정하고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대해야 하는데, 왓슨이 이 사건에 대해서 쓴 책은 거기다가 낭만적인 물을 들여놓았다."면서 비판하고, 존 왓슨은 "이 사건의 진상을 알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고 반박한다. 그게 불만이었는지는 몰라도 코난 도일은 후속작 네 개의 서명에 낭만적인 물을 '''끼얹어''' 버린다.
실제로 주홍색 연구는 중반에 이미 수사가 종결되면서 주인공인 셜록 홈즈의 비중이 희미해지고, 범인의 과거사와 그가 범죄에 이르게 된 경위를 아주 길게 서술하고 있다. 이것은 단편 모음집이 아닌 셜록 홈즈 시리즈 장편 소설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주홍색 연구와 공포의 계곡은 아예 소설을 두 부분으로 나눠 초반부는 홈즈와 왓슨의 추리를, 후반부는 범인의 시점에서 과거를 서술한다. 바스커빌 가의 개는 과거에 대한 설명이 그다지 길지 않고, 그것도 홈즈가 말한다. 네 사람의 서명에서는 범인이 직접 자신의 과거를 서술하는 식이다.
코난 도일이 이 소설을 쓸 때는 만 28세였고, 영국 사우스 시(Southsea)에서 개업 의사로 일하면서 당시 런던 사회의 모습을 소재로 하는 단편들을 많이 출판하고 있었다. 본래 제목은 '''얽힌 실타래(A Tangled Skein)'''였고, 수많은 퇴짜를 당한 뒤에야 워드 록 앤 코(Ward Lock & Co.)에서 만든 비튼의 1887년 크리스마스 연간지(Beeton's Christmas Annual 1887, 항목 맨 위에 있는 사진.)에 수록되었다. 그래놓고 모든 권리의 대가로 받은 게 고작 25파운드. 그래서 도일은 그 대신 로열티를 요구했다. 참고로 삽화는 도일의 아버지인 찰스 도일이 담당했으며, 저 초판은 1888년 7월에 발매된다. 그러나 초판은 큰 인기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셜록 홈즈 시리즈는 굴욕적인 첫 출발을 하게 된다. 이 초판은 현재 '''단 10권'''만 존재한다고 하며 수집가들에게 비싸게 거래된다고 한다.[7] 하지만 다음해인 1889년에 조지 허친슨이 삽화를 담당한 재판이 나왔고, 그 다음해인 1890년에는 리핀코트(J. B. Lippincott Co.)에서 처음으로 미국 판본을 내놓는다. '''이 때를 기점으로 셜록 홈즈 시리즈의 신화가 시작된다.'''[8]
3. 등장인물
- 토비어스 그레그슨
- 이노크 J. 드리버
- 조지프 스탠거슨
- 아서 차펜티어
- 술주정뱅이 남자
4. 스포일러
- 아서 차펜티어
- 이노크 드리버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부유한 드리버 가문의 아들로, 모르몬교에선 지위가 높다. 루시 페리어의 남편 후보. 페리어 부녀가 도망쳤다가 붙잡히는 과정에서 존 페리어는 살해당했으며 루시 페리어는 이노크 드리버와 강제로 결혼하게 된다. 이미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루시가 얼마 후에 사망한 뒤 모르몬교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나게 되고 복수를 결심한 제퍼슨 호프가 계속 둘의 목숨을 노리자 스탠거슨과 같이 런던으로 도피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추적해온 제퍼슨 호프에게 끝내 붙잡힌 뒤 삶과 죽음을 선택할 것을 강요받고, 똑같이 생긴 알약 두 개 중 독약을 골라 사망한다.
- 조지프 스탠거슨
드리버와 마찬가지로 유명한 가문의 후예. 드리버에 비하면 콩라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일단 둘은 친구 사이인듯 하다. 루시 페리어의 남편 후보였지만, 도중에 포기했는지 드리버가 강제결혼을 하는 것을 돕는다. 존 페리어를 죽인건 스탠거슨이었다. 대부분의 행보는 드리버와 비슷하다. 이후 드리버와 함께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 나와서 런던으로 향했고, 재산을 챙겨온 드리버와 달리 빈털터리로 나왔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친구였던 드리버의 비서가 되었다. 드리버가 살해당한 후 호텔에서 칩거하고 있다가 문제의 '지인'의 방문을 받았으나 선택할 권리를 거부하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진범과의 격투 끝에 가슴에 칼을 맞고 사망했다.
- 존 페리어
드리버와 스탠거슨이 자신의 집에 와서 누가 루시와 결혼할 것이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자 아버지로서 위협해서 쫓아보내는 성깔을 보여주지만, 그 다음날에 교주 브리검 영이 찾아와서 으름장을 놓자 무력감을 느낀다. 더군다나 30일의 말미를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뒤 집안 곳곳[11] 에 날짜를 세는 숫자가 그려지자 점점 공포와 스트레스에 피폐해져간다.
이후 도망칠 준비를 해놓은 '지인'의 도움으로 루시와 함께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 도망쳐 나온다. 그러나 1860년 8월 4일, 한밤중에 사막에서 야영을 하던 도중 지인이 사냥을 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에 추적자들을 만나고, 그들 중 스탠거슨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 루시 페리어
- 제퍼슨 호프
추적하는 과정에서 청소부로 일하던 요크 대학의 실험실에서 극소량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알칼로이드 독약을 훔쳐다가 알약으로 만들어 가지고 있었다. 먼저 런던에서 이노크 드리버를 만나 '너희들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신이 누구의 편을 들어주는지 한 번 보자'며 이 독약과 똑같이 생긴 독이 없는 알약 하나를 둘이 동시에 먹는 도박을 강요했다. 그 결과 정말 우연히 드리버 쪽이 독약을 먹어 사망했다. 그 다음 스탠거슨을 만나 또 다시 같은 도박을 강요했지만 스탠거슨이 고르는 걸 거부하고 달려들자 격투 끝에 칼로 찔러 죽였다.
중년에 접어든 현 시점에서도 자신을 체포하려는 3~4명의 남자들 앞에서 꽤 오랜 시간동안 저항했을 정도로 체력이 좋지만, 사실 오랫동안 자기 몸을 관리하지 않고 오직 드리버와 스탠거슨의 추격에만 전념한 탓에 대동맥류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결국 체포된 다음 날, 재판을 앞두고 유치장에서 동맥류가 파열하여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하지만 원하던 복수를 끝마쳤기 때문인지 웃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호프의 살인이 이유가 충분했기 떄문에, 사형당하는 운명에서 구원하기 위한 장치에 가까우며, 젊은 코난 도일이 아직 낭만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던 시절의 흔적이다.
5. 명대사
잉글랜드[13]
엔 일가친척이 없었기에 공기처럼, 혹은 인간에게 존재감을 안겨주는 11실링 6펜스라는 수입만큼 자유로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런던에 끌렸다. 그 곳은 대영제국이 압도적으로 배출한 모든 게으름뱅이들이 모인 거대한 시궁창이었다.I had neither kith nor kin in England, and was therefore as free as air — or as free as an income of eleven shillings and sixpence a day will permit a man to be. Under such circumstances I naturally gravitated to London, that great cesspool into which all the loungers and idlers of the Empire are irresistibly drained.
-존 왓슨, 1부 1장 "셜록 홈즈 씨" 中에서
그는 지능만큼 무식함도 굉장했다. 현대 문학이나 철학, 정치학에 대해선 전혀 무지한 것 같았다. 내가 토머스 칼라일을 인용했을 땐 그가 누구이며 뭘 했는지에 대해 매우 고지식하게 물어봤다. 하지만 그가 지동설이나 태양계의 구성에 대해 모른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자 나는 최고로 놀랐다.
난 인간의 두뇌란 본래 작고 텅 빈 다락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가구로 그 안을 채울 수 있죠. 바보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모든 잡동사니에만 집중해서 자신에게 필요할 수도 있는 지식을 밀어내거나, 잘해봐야 많은 것들을 뒤섞어놔서 손을 댈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솜씨 좋은 기술자는 자신의 두뇌라는 다락방에 무엇을 넣을지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편이죠. 그래서 자신의 작업에 필요할 수도 있는 도구를, 가장 완벽한 순서에 맞춰 종류별로 모으게 됩니다. 그렇다고 이 작은 방의 벽이 물렁하기 때문에 자유자재로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입니다. 지식을 추가하려면 이전에 알고 있던 정보를 잊어버려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그렇기에 쓸모 있는 정보들을 밀어내는 쓸모없는 사실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정보들로 채워야 하는 겁니다.
I consider that a man's brain originally is like a little empty attic, and you have to stock it with such furniture as you choose. A fool takes in all the lumber of every sort that he comes across, so that the knowledge which might be useful to him gets crowded out, or at best is jumbled up with a lot of other things, so that he has a difficulty in laying his hands upon it. Now the skillful workman is very careful indeed as to what he takes into his brain-attic. He will have nothing but the tools which may help him in doing his work, but of these he has a large assortment, and all in the most perfect order. It is a mistake to think that this little room has elastic walls and can distend to any extent. Depend upon it, there comes a time when for any addition of knowledge, you forget something that you knew before. It is of the highest importance, therefore, not to have useless facts elbowing out the useful ones.
-셜록 홈즈, 1부 2장 中에서.
6. 여담
- 이 작품에서 셜록 홈즈가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에 나오는 탐정 오귀스트 뒤팽을 간단히 언급하면서 "(소설의 등장인물인) 그 친구와 내가 비슷하다고? 내가 볼 때 그 친구는 그저 그런 친군데."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실제로는 코난 도일이 작중에서 뒤팽을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뒤팽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셜록 홈즈가 그의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가끔 모리스 르블랑이 비판받는 것과 나란히 놓는 견해도 있는데, 이쪽은 홈즈라는 캐릭터가 뒤팽이라는 캐릭터를 평가한 것이고 모리스는 자신의 소설에 홈즈를 데려다가 엉망으로 묘사했기에 비판을 받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헐록 숌즈 항목(르블랑의 패러디)과 셜록 홈즈의 사건집 항목(코난 도일의 보복) 참고.[기암성스포]
- 19세기에 모르몬 교도들의 이미지가 어떠하였는지 잘 알려주는 소설.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모르몬 교도들의 항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물론 21세기 시점에서의 모르몬교는 이 소설에 묘사된 내용과는 판이하게 다르므로 이 소설을 읽고 현 시대의 모르몬교에 대한 나쁜 편견을 가지는 것은 옳지 않다. 이 소설이 집필될 때만 해도 모르몬교는 영세했으며 여러 번의 잔악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해서 이미지가 매우 나빴다. 현재는 오히려 모르몬교가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
- 처음 삽화를 그린 사람은 찰스 엘터몬트 도일로, 코난 도일의 아버지였다. 그런데 이 삽화는 너무 형편 없었고, 결국 3판이 나올 때에는 조지 허친슨이라는 사람이 삽화를 새로 그렸다. 그런데 이것도 삽화의 퀄리티가 형편 없어서 그나마 찰스 도일의 삽화보다 조금 나은 수준. 초판이나 3판본의 삽화와 이후 작품에서 나온 시드니 파젯의 삽화를 비교해 보면 넘사벽을 체험할 정도로 형편 없다. 황금가지 판에서는 초판에 찰스 도일의 삽화를 실었지만, 시간과 공간사판에서는 아예 빼 버렸다.
- 셜록 홈즈 시리즈 내내 지적되는 사항이지만, 이 소설도 이것저것 깊게 파고들면 오류가 많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많이 지적된 오류는 범인 제퍼슨 호프는 왜 마지막에 아무 의심없이 베이커 가에 들어왔는가?가 있다. 작품의 중반부에서 홈즈는 범죄 현장에 떨어진 반지를 보고 범인은 이 반지를 되찾으려 할 것이라고 판단해 신문에 "반지를 베이커 가 221B에서 보관중"이라는 광고를 낸다. 이에 제퍼슨 호프는 자기 대신 '지인'에게 부탁해 추적을 따돌리고 반지까지 되찾는 지능적인 면모를 보인다. 문제는 바로 다음 날 홈즈가 마부를 찾자 베이커가 221B에 자기 발로 걸어 들어온다.[14][15]
- 제퍼슨 호프의 복수를 도와주고 홈즈까지 속여넘겨 반지를 찾아준 '지인'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가 많다. 호프 자신도 잘 알지 못하며, 안다고 해도 제대로 말할 입장이 아니라며 신원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 이 미지의 인물이 비범한 변장술과 연기력, 그리고 대담함과 재치의 소유자임은 분명하다고 여겨지기에, 그 정체가 제임스 모리어티나 뤼팽이라는 2차 창작도 있다.[16] 다만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설정에 의하면 뤼팽은 1874년생으로 주홍색 연구 시점(1881년)에선 겨우 7살 먹은 어린애라....[17] 무엇보다도 뤼팽은 영어권에서는 듣보잡이므로[18] 모리어티일 가능성이 더 높다.
- 돋보기가 등장한 최초의 추리소설이다.
- 작중 초반부에 저자 코난 도일의 오너캐이자 작품의 화자인 존 왓슨의 약력이 나오지만 후속작들과는 일치하지 않는 오류가 있다. 바로 왓슨이 총을 맞은 곳은 어깨인가? 다리인가?하는 문제. 자세한 것은 존 왓슨 항목 참고.
- 명탐정 코난에서 패러디되었다.자세한 내용은 명탐정 코난/검은 조직과 엮이는 에피소드참고
- 비튼의 크리스마스 영감은 희귀해서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