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카
에드워드 핼릿 카 / Edward Hallett Carr
(1892. 06. 28 ~ 1982. 11. 03)
1. 개요
E. H. 카는 영국의 외교관,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이다.
1892년 영국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하였다. 1차대전 시기부터 전간기 말까지 영국 외무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으며, 1936년 사임한 후 학자의 길을 걸었다. 그의 이름을 떨친 저작은 역사철학에 관한 서적인 "역사란 무엇인가"와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명저 "20년의 위기"이지만[1] , 정작 그가 평생을 바친 연구대상은 역사철학이나 국제정치학이 아니라 '''소련사'''였다. 카는 소련사 분야에서도 걸출한 연구자였으나 소련편향적으로 역사를 서술한다고 비판도 많이 받았는데[2] , 덕분에 군사독재 시절 한국에선 "역사란 무엇인가"를 비롯한 그의 저작이 불온서적 취급을 받기도 했다.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다'라는 문제의식을 제시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 사회가 어떤 역사를 쓰느냐, 어떤 역사를 쓰지 않느냐 하는 것보다 더 그 사회의 성격을 뜻깊게 암시하는 것은 없다.
''(There is no more significant pointer to the character of a society than the kind of history it writes or fails to write.)''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History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역사가는 일반화를 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실 수집가와 구분된다.
''(What distinguishes the historian from the collector of historical facts is generalization.)''
역사가의 역할은 과거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과거에서 그를 해방시키는 것도 아니다.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서 과거를 이해하고 다루는 것이다.
''(The function of the historian is neither to love the past nor to emancipate himself from the past, but to master and understand it as the key to the understanding of the present.)''
그는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 에서 아래와 같이 서술하였다.사실을 배우기 전에 역사가에 대해서 연구하라.
''(Study the historian before you begin to study the facts.)''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결코 일방적인 과정일 수는 없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또한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의 상호관계를 통해 양자를 더 깊게 이해시키려는 데 있는 것이다.
역사가의 지식은 개인적인 소유물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친 사람들이 여러 나라에서 그 축적에 참가해온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 즉, 그 행위를 연구하는 당사자들만 하더라도 진공 속에서 행위한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과거 어느 사회의 문맥 속에서, 또 그것에 충동을 받으면서 행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는 다른 많은 개인과 똑같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며, 그가 속한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그 사회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대변인이다. 그런 자격으로 그는 역사적 과거의 사실에 접근해 가는 것이다.
2. 공산주의자 논란
1942년 조지 오웰이 "카 교수는 충성의 상대를 히틀러에서 스탈린으로 바꾼 것 같다."라고[3] 말한 적이 있었는데, 카가 공산주의자였다는 게 아니다. 당시 영국과 소련은 나치 독일이라는 적을 두고 같이 싸우고 있었고, 영국은 행여나 스탈린이 히틀러와 단독강화를 맺을까봐 노심초사했다. 카는 영국 외교부의 러시아 전문가로서 소련측의 비위를 맞추면서 연합국측에 붙잡아두는 일을 맡아했는데, 철저한 반스탈린주의자인 오웰이 카가 주도하는 친소정책을 비판한 것이다.[4]
카의 행보를 보면 오웰이 그러한 평가를 내린 이유를 알 수 있다. 1930년대에 카는 독일을 베르사유 조약의 희생자로 히틀러를 경제적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지도자로 보고[5] 네빌 체임벌린의 대독일 유화정책과 라인란트 재무장 등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려는 나치 정권의 노력들을 강력히 지지했다.[6] 1936년에는 나치 정권의 인권 기록을 비판하는 것은 위선적이라고 주장하였고[7] , 1939년에 출판된 위기의 20년에서 "뮌헨 협약은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독일에 행해진 큰 잘못을 되돌리는 정당하고 도덕적인 시도"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확실히, 나는 눈이 멀었었다"고 주장을 철회하였고[8] 1945년 강의에서 "개인주의에서 전체주의로의 추세는 어디에서나 명백하다"[9] , "이전 전쟁에서 스탈린은 월슨의 역할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대신하여 다시 한번 민주주의를 연합군의 전쟁목표로 강화하였다"고[10] , 1979년 논문에서는 카는 "소련의 상황에서 스탈린은 선의의 힘이였다."이라고 주장하였다.[11]
이 때문에 전두환 정권 당시의 부림사건에서의 검찰 측을 옹호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생각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우선 카의 행보를 보자면 공산당을 혐오하는 히틀러 정권을 옹호하다가 2차 대전에서 소련을 옹호하는 걸로 바뀌었다. 2차 대전 당시에는 스탈린 또한 히틀러 정권에 맞서 연합군과 같이 싸웠다. 즉 영국 입장에서 보자면 스탈린은 전체주의자지만, 2차 대전 당시 연합군 측에 서서 히틀러라는 또다른 전체주의에 맞서 싸우는 아군이었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보면 에드워드 카가 단순히 공산주의자여서 스탈린을 옹호했다는 것은 맥락을 무시한 주장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주장들에는 정작 카의 저서와는 연관시키지 않았다는 결함도 존재한다. 카의 '역사는 진보한다'는 말은 그의 성향을 가장 잘 비추어 줄 수도 있는 말인데, 그의 저서를 보면 여기서 말하는 '진보'는 사전적 의미의 진보가 아니라 지금도 흔히 주변에서 쓰이는 '정치, 경제, 역사에 관한 마르크스적 진보'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르크스 사관을 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역사는 진보한다'는 말과 카의 저서들에 대한 독자의 이해도가 크게 갈린다.
무슨 말인가 하면 마르크스는 헤겔의 사관 위에서 경제발전에 의한 역사의 진보를 주장하였다. 즉 흔히 알려진 사회발전 순서(원시공동체사회, 농경사회, 봉건주의사회, 산업사회, 자본주의사회 순의 발전) 분류방식은 사실 마르크스의 입김이 가장 센 방식이며, 그렇다면 그 다음 사회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공산주의를 주장하며 이를 정당화 하는 것이 마르크스의 저서 자본론의 큰 내용중 하나이다. 이러한 내용은 '사회(역사)는 진보한다'로 해당 전공자들에게는 잘 알려진 내용이다.
그의 저서 전반을 살펴보면 카 또한 당시 과학적이라 주장되며 인기를 끌었던 마르크스 사관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물론 그가 공산주의자인가를 결론짓듯 판단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거기다 저서에도 미국의 보수주의자를 공격하거나 언급자체가 없으며 새뮤얼 모리슨과 칼 포퍼를 마지막 부분에 옹호하는 글을 쓰는 등의 모습을 보면 그가 공산주의자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어렵다. 거기다 마르크스 본인이 영국에서 활동했었으며 아직도 영국 내에서도 공산주의는 아니나 마르크스에 관련 서적들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마도 그 영향을 받은 한 사람인 듯 하다. 또한, 마지막 남긴 말을 보면 그도 사회적 변화인 진보가 어쩔 수 없이 일어나면서 미래가 밝게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볼 때는 그도 나름 중립적인 태도로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12]
3.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유명한 역사철학서적인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다. 부림사건에서 E.H. 카와 책 '역사란 무엇인가'의 정치성을 두고 논란이 되었다. 이는 변호인에도 사실과 가깝게 묘사되어 있다. 영화의 흥행으로 이 책이 다시금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4. 관련 사건
4.1. 1981년 불온서적 사건: 경희대 재학생 징역
카의 책을 읽었다가 옥살이 한 당시 대학생이었던 50대 남성이 32년 만에 무죄를 받았다.
2014년 11월 25일, 서울북부지법 형사5 단독 변민선 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던 김모 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내렸다.
당시 1982년에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던 김모씨(53)는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러시아 혁명사', '사회사상사' 등을 읽었다는 이유로 고문당하였으며 "북한에 동조하는 이적활동을 했다"고 강압에 의한 자백을 하였다.
판사는 판결과 동시에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사법부가 가혹행위를 눈감고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피고인에게 사죄하였다.[13]
5. 경력
- 1916년 ~ 1936년 영국 외무성 근무
- 1936년 ~ 1946년 영국 웨일스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
- 1939년 ~ 1940년 영국 정보성 외교부장
- 1941년 ~ 1945년 타임스 논설위원
- 1948년 국제연합(UN) '세계 인권 선언' 기초위원회 위원장
- 1953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정치학 교수
- 1955년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 고급연구
6. 학력
-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대학
7. 저서
- 평화 조약 이후 국제 관계 (1937년)
- 20년의 위기, 1919~1939 (1939년)
- 국제 관계 연구에 대한 소개 (1939년)
- 영국: 베르사유 조약에서 전쟁 발발에 이르는 외교 정책 연구 (1939년)
- 평화의 조건 (1942년)
- 민족주의와 그 이후 (1945년)
- 소련이 서구에 준 충격 (1946년)
- 새로운 사회 (1951년)
-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 (1950년)[14]
- 역사란 무엇인가 (1961년)
- 1917년 전후의 런던 (1969년)
- 러시아 혁명: 레닌부터 스탈린까지 1917-1929 (1979년)
- 나폴레옹에서 스탈린까지 (1980년)
- 코민테른의 황혼, 1930-1935 (1982년)
- 코민테른과 스페인 내전 (198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