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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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사상
3.1.2. '반증'에 입각한 과학적 방법론
3.1.3. 반증주의 유사과학 구분법
3.1.4. 비판
3.1.5. 관련 문서
3.2. 열린사회론
4. 일화
4.1. 부지깽이 논쟁
4.2. 명언 진실 여부
5. 여담
6. 저서
7. 관련 문서


1. 개요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들어 낸다.'''

The attempt to make heaven on earth invariably produces hell.[1]

'''추상적인 을 실현하려고 하지 말고 구체적인 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라.'''[2]

Work for the elimination of concrete evils rather than for the realization of abstract goods

'''칼 레이먼드 포퍼 경'''(Sir Karl Raimund Popper, C.H., F.B.A., F.R.S./1902년 7월 28일~1994년 9월 17일)은 오스트리아 출생의 영국 철학자이다.
대표작인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 워낙 유명해 사회철학자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지만 본업은 과학철학자이다. 과학철학계에서의 업적도 매우 높이 평가받는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내용도 그의 과학철학적 관점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해석도 많다.
천국을 만들겠다는 시도는 흔히 공산주의 혁명이나 사이비 종교 혹은 군사 쿠데타[3]를 지칭한다.

2. 생애


오스트리아 에서 태어났으며, 1922년 빈 대학에 정규학생으로 등록을 하여, 26세가 되던 1928년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유대인이었던 관계로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질 즈음에는 아돌프 히틀러나치스의 박해를 피해 뉴질랜드, 그리고 2차대전이 끝난 후에는 영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게 된다. 나치의 잔혹한 인종차별 행위가 미친 영향은 당대 지식인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엄청난 충격이었으며, 포퍼는 자신도 유대인이었기에 충격을 많이 받아 그 유명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책을 집필하게 된다.

3. 사상


포퍼는 이성을 중시했으나 개인 이성의 불완전함을 인정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논박가능한 이성, 그 이성을 보완하기 위한 대화, 반증을 강조했다. 반대로 이를 차단하는 사상은 싫어했다.
위의 인용구나, 그의 주장 중 행복과 불행(또는 쾌락과 고통)은 대칭이 아니며 당장 고통받는 사람들의 처우 개선을 우선해야 한다는 대목이 소극적(부정적) 공리주의(negative utilitarianism)로 해석되기도 한다.

3.1. 과학철학


포퍼의 주된 업적은 과학철학에서의 업적이다. 역사주의, 전체주의 등을 불같이 공격했던 것이나 열린사회를 옹호할 때의 포스가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과학철학자로서의 이미지가 흐릿해져서 그렇지 포퍼는 본래 과학철학을 본업으로 삼던 사람이다. 포퍼의 견해는 과학철학적 입장은 대개 보통 20세기 전반의 논리 실증주의20세기 후반 분석철학 및 과학철학 간의 교량 역할을 한다고 비유적으로 받아들여지고는 한다.
포퍼의 과학철학적 업적 가운데 여전히 가장 많이 관심을 받는 것은 이른바 "구획 문제", 즉 과학유사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문제다. 이러한 과학철학적 내용의 기틀은 1934년 저작인 『과학적 발견의 논리(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4]1963년 저작인 『추측과 논박(Conjectures and Refutations)』에 잘 담겨 있다.

3.1.1. 귀납추론 거부


포퍼는 귀납추론을 과학의 정당한 추론 방식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즉 <어떤 가설에 부합하는 데이터가 확보될 때 그 가설은 '''검증'''된다>는 상식적인 과학적 방법론이 적어도 엄밀한 논리적 차원에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주된 이유는 데이비드 흄이 귀납추론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이른바 '귀납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이런 측면에서 포퍼의 과학철학은 귀납추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논리 실증주의의 과학철학과는 구분되며, 포퍼는 이러한 철학적 차이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3.1.2. '반증'에 입각한 과학적 방법론


그러므로 포퍼는 오직 연역추론만이 합당한 과학적 추론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연역추론은 통상 '새로운 경험적 데이터'를 반영할 수 없는 추론 방식이라고 여겨진다. 자연과학은 명백히 실험이나 관찰 같은 경험적 데이터를 필요로 하므로 포퍼의 분석은 과학에 대한 분석에 실패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포퍼는 이런 관점이 오해라고 말한다. 연역추론에서 경험적 데이터는 가설을 입증 혹은 검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연역추론에서 경험적 데이터는 반대로 가설을 '''꺾는 것''', 즉 그 가설이 틀렸다고 보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즉 귀납추론을 거부한다한들 경험적 데이터는 여전히 가설을 '''반증(falsify)'''할 수는 있다. 예시를 들면 다음과 같다:

* '''가설''': 철수는 매일 학교에 간다.

* '''예측''': 만약 철수가 매일 학교에 간다면, 철수는 내일도 학교에 갈것이다.

* (대우명제): 철수가 내일 학교에 가지 않는다면, 철수가 매일 학교에 가는 것은 아니다.

* '''경험적 데이터''': 다음 날 확인해보니 철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 (대우명제와 경험적 데이터를 삼단논법에 적용시키면) 철수가 매일 학교에 가는 것은 아니다.

* 따라서 당초 '''가설''' '철수는 매일 학교에 간다.'는 반증되었다.

위 추론 방식에서 쓰인건 오직 연역논리뿐이다. 포퍼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과학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경험적 데이터는 결코 "쌓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적 데이터는 가설을 무너뜨릴 수는 있는 것이다.

3.1.3. 반증주의 유사과학 구분법


포퍼는 이런 '반증' 개념을 통해 과학유사과학을 나누는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위 '''"반증주의(falsificationism)"'''이라 불리는 포퍼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어떤 가설이 '''과학적'''이다 iff#s-1. 그 가설이 경험적 데이터에 의해 '''반증가능'''하다.

이때 "가설이 과학적이다"라는 말은 결코 "가설이 이다"라는 것을 함축하지 않는다. 어떤 가설이 인지 거짓인지는 과학적인지 여부와 무관하다. 거짓인 과학적 진술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티코 브라헤의 천문학은 결국 틀린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게 티코 브라헤의 가설이 "비과학적이었다"라는 얘기를 결코 함축하지 않는다.
위 예시에서 가설 "철수는 매일 학교에 간다"는 반증가능하다. 만약 철수가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경험적 데이터가 확보되는 한, 위 가설은 명백히 틀린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가설 "신은 존재한다"은 반증가능하지 않다. 그 어떤 경험적 데이터를 가져댄다 한들 그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보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설 "신은 존재한다"는 비과학적이라는 게 포퍼의 요지다.
대표적으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위 기준에 따르다면 과학적이다. 아서 에딩턴의 실험에서 만약 일반 상대성 이론의 예측이 틀렸다면, 꼼짝없이 일반 상대성 이론은 틀린 것으로 밝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알프레트 아들러의 심리학은 비과학적이다. 어떤 예측이든 그건 다 열등감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곧 결코 '틀린 것으로 밝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포퍼가 반증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진화론을 거부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정확히는 한때 진화론에 대해 그러한 견해를 가졌던 적이 있으나 자신의 저서 <객관적 지식>에서 그 견해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 이후로 포퍼는 자신의 과학철학을 설명할 때 줄곧 진화론을 비유로써 써먹었으며 진화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지식론을 확장시키기도 했다.

3.1.4. 비판


대중적인 인식과 달리, 현대 과학철학계에서 포퍼의 주된 과학철학은 설령 근사적인 휴리스틱으로 쓰일지는 몰라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더 이상 주류 입장으로 남지는 않게 되었다. 왜냐면 1960년대 이후 포퍼 이론의 치명적인 약점들이 밝혀지고 그 대안들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 토머스 쿤은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포퍼의 이론이 실제 과학사에 부합하지 않고, 규범적 의미에서 과학적 합리성에도 항상 부합하는 것이 아님을 보였다. 지동설 탄생시기 연주시차 관련 문제가 교과서적인 반례.
    • 보다 일반적으로, 쿤의 문제제기는 '특정한 경험적 시험을 통해 한 과학적 가설을 단독으로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윌러드 콰인의 '뒤앵(Duehm)-콰인(Quine) 논제'와 깊이 연관된다.
  • 포퍼 과학철학의 핵심은 상기한 바처럼 귀납법을 거부하는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과학 활동의 실상을 고려할 때 이는 비현실적일 수 밖에 없으며, 포퍼가 내놓은 무마책들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특히 베이즈주의 인식론 등 경쟁 이론의 부상은 그 쐐기를 박았다.
포퍼 이후 과학철학의 발전 과정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에 관해서는 과학철학, 유사과학 항목 등 참조.

3.1.5. 관련 문서



3.2. 열린사회론


비록 소수의 사람만이 정책을 발의 할 수 있다 해도, 우리들 모두는 그것을 비판 할 수 있다.

- O.S 1, p.7.

우리는 금수(禽獸)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열린 사회(The Open Society)의 길이 있을 뿐이다.

- 이한구 역《열린사회와 그 적들 I》 285pp.

포퍼의 열린 사회론은 쉽게 말해 '''전체주의를 무자비하게 비판'''하고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옹호한 내용이다. 인간의 이성은 불완전하므로 아무리 훌륭하고 똑똑한 사람의 주장이라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목표가 명확하고 불변할 경우 목표 달성은 급진적이고 맹목적으로 변하여, 목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과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배제되고 심하면 숙청당할 수 있다고 포퍼는 경고한다. 따라서 내.외부와 끊임없는 이성적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사회의 목표를 계속 점검하는 동시에 점진적으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가능한 사회가 열린사회다.
반면 절대적인 가치를 제시하고 지배 계층만의 의사결정을 강조한 플라톤, 헤겔, 히틀러, 그 외 독재자나 독재를 옹호한 자들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공산주의는 필연적으로 닫힌 사회로 갈 수밖에 없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었다.[5] 그의 1994년 에스파냐 세비야 엑스포에서 한 연설에서 이것이 잘 드러나는데 그는 그 강연에서 막시즘은 본질적으로 광기, 폭력으로 이어지며 논리적 오류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공산주의는 검증이나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도그마처럼 유지한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포퍼는 자신의 과학 철학 이론을 바탕으로 마르크스의 이론들을 비판하였는데, 포퍼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이론은 그 예측의 언명이 모호하며[6], 때문에 이론에 반하는 현상에 유연하게 대처 할 수 있기에 검증의 기회를 효과적으로 회피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마르크스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위기에서 벗어나거나, 공산주의 혁명이 실패 할 때마다 혹은 현황이 바뀔 때마다 그러한 유연성에 기반하여 각종 보조 가설이나 Ad Hoc 등으로 이론의 수명을 연장시켰으며 여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포퍼에 의하면 이와 같이 마르크스의 이론은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 힘든(검증 가능하지 아니한) 이론이고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 이론의 한계인 것이다. 앞 문단에서처럼 포퍼는 검증 가능한 이론(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이야말로 좋은 이론으로 보았으며 이러한 포퍼식 관점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이론은 나쁘거나 비과학적인 이론이다.
마르크스의 관점 외에도 역사엔 특정 방향으로 흘러가는 법칙이 있다고 주장하는 역사주의는 모두 거부하였다. 사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역사주의를 까는 책이다. 역사주의는 정체 불명의 역사 법칙을 주장해 역사를 바꿔나가려는 사람들의 힘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

'''20대에 공산주의자가 되어 보지 않은 자는 가슴이 빈 자이나, 20대 넘어 공산주의를 신봉하면 머리가 빈 자들이다.'''

사회주의에 대해 위와 같이 비평하기도 했다고 알려졌으나 후술할 내용과 같이 그 진위가 의심받고 있다.

4. 일화


열린사회론과 반증주의는 큰 영향을 끼쳤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많았고 포퍼 자신도 논쟁을 피하지 않는 편이라 수많은 학자들과 토론과 대결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4.1. 부지깽이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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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토론 중 포퍼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 중 하나가 1946년에 비트겐슈타인과 벌였던 이른바 '부지깽이 논쟁'. 포퍼는 당시 최고의 석학 중 하나로 평가받던 비트겐슈타인을 자신의 적수로 여겨 오래전부터 그와 대결하기를 꿈꾸었다고 하는데, 1946년 10월 비트겐슈타인이 회장으로 있던 케임브리지 대학 도덕 과학 클럽에 포퍼가 세미나 발표자로 초청이 되어 실현할 기회가 생겼다. 포퍼의 진술에 따르면 '철학적 문제가 실재한다'는 포퍼와 '철학적 문제란 언어적 유희에 불과하다'는 비트겐슈타인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오갔으며, 도중 비트겐슈타인이 분에 못 이겨 시뻘건 부지깽이를 들어 포퍼에게 위협을 가했다고 한다. 그러다 버트런드 러셀의 제지를 받은 비트겐슈타인이 도망치듯 강연장을 빠져나갔다고 한다.[7][8][9]
논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스캔들에 가까운 모양새인데, 정작 당시의 정황에 대해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포퍼와 비트겐슈타인을 포함한 당시 참석자들의 진술들이 워낙 엇갈리기 때문. 또한 이때의 '승리'를 자랑으로 여겨 자신의 저작에서 여러 차례 이 사건을 언급했던 포퍼와는 달리 비트겐슈타인은 포퍼에 대한 언급 자체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당시 인지도가 좀 떨어지던 포퍼를 비트겐슈타인이 듣보잡 취급했다는 것이 정설이다.[10] 우리나라에선 비트겐슈타인이 화가 나서 지팡이로 포퍼를 때렸다고 표현해 놓은 매체가 많다.

4.2. 명언 진실 여부


만약 누군가가 20대에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그는 심장이 없는 자다. 만약 누군가가 20대가 지나서도 공산주의자라면 그는 뇌가 없는 자다.

칼 포퍼 또는 막스 베버, 윈스턴 처칠, 에이브러햄 링컨, 죠셉 죠스타[11]

, 팬드래건[12] 등 인터넷 짤방으로 쓰이는 모든 위인들의 말이라고 쓰여지는 가짜 명언. 한국에는 만화가 이원복의 잘못된 인용 때문에 세간에 퍼졌다.

마르크스 비판과 관련해서 '''만약 누군가가 20대에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그는 심장이 없는 자다. 만약 누군가가 20대가 지나서도 공산주의자라면 그는 뇌가 없는 자다.''' 라고 말했다는 소문이 있지만, '''칼 포퍼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이 문구는 19세기 프랑스의 작가 쥘 클라레티(Jules Claretie)가 쓴 당대 인물들의 전기 모음집 속 정치인 앙셀므 배비(Anselme Batbie) 항목에서, 앙셀므 배비가 에드먼드 버크의 정치적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했던 말이라고 기록해놓은 것이 원형이다.

Celui qui n’est pas républicain à vingt ans fait douter de la générosité de son âme; mais celui qui, après trente ans, persévère, fait douter de la rectitude de son esprit.이미지

스물에 공화주의자가 아닌 이는 마음의 관대함이 의문스럽다. 그러나 서른이 넘어서도 공화주의자인 이는 정신이 온전한지 의문스럽다.

앙셀므 배비(Anselme Batbie)[13]

#

이 문구는 공화주의자 대신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 등으로 바꾸어 프랑수아 기조, 빅토르 위고, 스웨덴의 오스카 2세, 케년 니콜슨, 조지 버나드 쇼, 벤자민 디즈레일리, 윈스턴 처칠, 막스 베버 등이 한 말로 알려지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칼 포퍼가 한 말로 잘못 알려진 "20대에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심장이 없는 자다. 40대에 공산주의자라면 머리가 없는 자다."라는 표현은 1946년 카먼윌(commonweal)이라는 미국 저널에서 글 유머로 나온 것이다.
이는 먼나라 이웃나라이원복 교수가 송병락 교수와 공동저술한 '자본주의 공산주의'라는 80년대 후반 베스트셀러 서적에 그가 한 말로 등장하면서 잘못된 명언이지만 널리 전파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원복 책에는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보지 않은 자는 바보요, 나이가 들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있는 자는 더 바보다.'''"라고 나와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도 비슷한 말을 했다. 항목 참조. 또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소설)>개미 혁명에서는, 저 '공산주의자' 이야기가 '무정부주의자'로 바뀌어서 주인공 쥘리 팽송이 사랑(?)하던 철학 선생의 대사로 등장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일랜드 작가 버나드 쇼가 이와 정반대되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세한 것은 항목참조

5. 여담


오늘날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 덕에 한국에서 널리 읽히고 있지만, 정작 제4공화국 시절에는 금서였다. 이유도 상당히 황당한데, 단지 2권 부제에 마르크스의 이름이 언급되어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금서가 되었다. 제5공화국 시절인 1982년 유화 정책 무드를 타고 나서야 해금되었다.
출처 및 근거: 중앙일보 1994년 10월 16일자

6. 저서


  • 탐구의 논리
  • 열린사회와 그 적들[14]
  • 추측과 논박
  • 역사주의의 빈곤
  • 현대과학철학 논쟁[15]
  • 더 나은 세상을 찾아서
  •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 파르메니데스의 세계

7. 관련 문서



[1] <열린사회와 그 적들> 2권에서 나오는 말이다. 1권의 9장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Even with the best intentions of making heaven on earth, it only succeeds in making it a hell—that hell which man alone prepares for his fellow-men. 국내판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최선의 의도가 있다 해도, 그것은 단지 하나의 지옥, 인간만이 그의 동포를 위해 준비하는 그런 지옥을 만들 뿐이다.''' 비슷한 의미로 Those who promise us paradise on earth never produced anything but a hell.이 있다. 번역하자면 '''지상 낙원을 약속한 자들은 지옥밖에 만들지 못한다.''' 존 위노클이 쓴 In Passing: Condolences and Complaints on Death, Dying, and Related Disappointments의 144쪽에 나온다.[2] <추측과 논박> 2권에 나오는 말이다.[3] 과거 터키처럼 독재자나 급진주의자들, 종교 원리주의자들을 타도한후 얌전히 정권 이양을 하고 물러나는 군부들도 있다. 현재 터키는 에르도안집권후 에르도안이 군부를 대규모 숙청해 버림으로써 세속주의였던 터키 정부의 이슬람화를 가속화 하고 자신의 독재기반을 공고히 다져놓았다.[4] 원제는 『발견의 논리(Logik der Forschung)』[5] 다만 마르크스의 업적이나 인도주의적 사상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했다. 포퍼는 한때 사회주의 중등학생연맹의 열성적인 회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전체주의 사상과 역사주의 사상에 환멸을 느끼고 자유주의의 열렬한 대변자가 된 것.[6] 일례로 공산주의 혁명의 발생 시기를 보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붕괴-공산주의 혁명이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으로 인해 '언젠가'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언제'는 언제인가? 1년 후인가, 10년 후인가, 수 세기 후인가? 이러한 시기의 모호성은 마르크스 이론이 가져야 할 반증의 시기를 끊임없이 유예시켜 줄 수 있다.[7] 출처: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해제), 신상규, 2004[8] 포퍼가 자서전에서 회상한 부지깽이 사건이다.#[9] 이 사건을 아주 자세하게 다룬 책으로 <Wittgenstein's Poker>라는 책이 번역되어있다. 2001년에 <비트겐슈타인은 왜?>라는 제목으로 나왔는데 개정하면서 <비트겐슈타인과 포퍼의 기막힌 10분>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진중권의 서평 이송희일의 에세이[10] 이때 비트겐슈타인은 이미 (다른 사람들 모르게) 자신의 후기 철학에 몰두해 있었다. 포퍼가 당시 표적으로 삼은 건 비트겐슈타인의 초기 철학이었다.[11] 죠죠의 그 죠셉 죠스타 맞다.[12] 페이트의 그 팬드래건 맞다.[13] 에드먼드 버크는 민주공화제에 반대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인용을 쓴 것이다. 당대 미국 독립혁명을 지지하였지만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을 한 군주제 지지자이자 보수주의자인 그였다.[14] 대다수의 한국어 번역판에는 열린 사회를 띄어쓰지 않고 열린사회로 붙여 쓴다. 아마도 열린사회가 책의 핵심 단어이기 때문에 일부러 붙여서 하나의 전문용어로 취급한 듯하다.[15] 토머스 쿤, 임레 라카토슈와의 공저. 쿤과 라카토슈, 포퍼가 나눈 논의를 3인이 책으로 재구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