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즈 위원회

 


1. 개요
2. 창설 배경
3. 활동


1. 개요


일본의 SF소설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시민단체.

2. 창설 배경


우주력 797년 자유행성동맹은 스스로 구국군사회의라 칭하는 자유행성동맹군 내 사조직이 일으킨 쿠데타에 민주정부가 전복되었다. 그러나 자유행성동맹군 이제르론 요새 사령관&요새 주둔함대 사령관 양 웬리 대장이 민주정부를 지지하면서 쿠데타군 토벌에 나섰고, 도리아 성역 회전에서 쿠데타군이 패배하고 시드니 시톨레 전 자유행성동맹군 통합작전본부장과 각 행성 시장 및 경비대 등이 일제히 민주정부를 지지하면서 쿠데타군은 수도성 하이네센에 고립되었다.
고립된 하이네센은 외부와 물자교류가 끊기면서 물가가 폭등하고 물자가 부족해졌는데, 이로 인해 민생경제가 파탄나버렸다. 민심이 흉흉해지자 바라트 성계 테르누젠 행성구에서 당선되어 동맹의회 내 반전파의 선봉장으로 활동한 제시카 에드워즈 의원이 국부 알레 하이네센의 이름을 딴 하이네센 기념 스타디움에서 20만명의 시민들과 함께 군사정권 타도 및 헌정질서 복원을 요구했다.
구국군사회의는 계엄령을 무시하고 시민들이 집회를 열자 크리스티앙 대령에게 병력을 주어 집회를 해산시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크리스티앙 대령은 시민을 폭력적으로 위압했고, 항의하는 에드워즈 의원을 마구 두들겨패 살해하였으며, 이는 역으로 시민들의 분노를 불러 시민과 쿠데타군의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다.
쿠데타 진압 이후 반전파들은 군사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다 죽은 에드워즈 의원을 기념하여 에드워즈 위원회를 발족했다.

3. 활동


에드워즈 의원회는 우주력 798년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정계, 재계, 관계 등 각계각층의 사회지도층 246,000명의 징병적령기 아들들의 입대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이들 중 자식을 군대로 보낸 사람은 겨우 15%, 그 중에서도 전선에 내보낸 자들을 고작 1%에 불과했다.
에드워즈 의원회는 전쟁을 찬미하는 지도층의 언행불일치를 지적하면서 정부의 해명을 요구했으나, 당시 욥 트뤼니히트 정권은 정부 대변인 겸 정보통신위원장 보네를 통해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발표했다. 거기에다 정권과 유착한 언론은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다.
결국 에드워즈 위원회는 최후의 수단으로 가두행진을 계획했으나, 가두행진을 하려던 찰나 경찰들이 나타나 집회를 막았고, 경찰을 피해 뒷골목으로 들어선 회원들 앞에서는 주전파 시민단체 우국기사단이 특수 세라믹 곤봉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국기사단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곤봉을 휘둘러댔고, 회원들을 일방적으로 당했다. 경찰들은 이 광경을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우국기사단이 물러가자 회원들을 소요죄로 체포했다.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회원 간의 내분으로 일어난 사태였다고 발표했으며, 대부분의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우국기사단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이 사건을 전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 재정위원장 조안 레벨로에게서 이 사실을 들은 프레데리카 그린힐 대위는 큰 충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