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연방국

 



'''오스트리아 연방국
Bundesstaat Österre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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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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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 1938년'''
'''위치'''
오스트리아
'''수도'''

'''정치 체제'''
공화제, 일당제, 의원내각제
'''국가원수'''
대통령
'''정부수반'''
총리
'''주요 총리'''
엥겔베르트 돌푸스
쿠르트 슈슈니크
'''공용어'''
독일어
'''민족'''
오스트리아인
'''종교'''
가톨릭
'''역사'''
1934년 성립
1938년 해체
'''통화'''
크로네, 실링
'''성립 이전'''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해체 이후'''
나치 독일
1. 개요
2. 역사
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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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에서 정권을 장악해 독재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1934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세워진 정치 체제다. 나치당과는 다른 별개의 파시즘의 성향을 가진 국가다. 갈수록 국내에서 세력을 넓혀가는 나치당 동조자들에 의하여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다가 결국 1938년 나치 독일에게 강제로 합병당하고 만다.

2. 역사


1932년 정권을 장악한 엥겔베르트 돌푸스가 이끄는 파시즘의 성향을 가진 기독사회당 정권은 1933년 엥겔베르트 돌푸스를 당수로 하는 조국전선으로 집권하게 되고 자국 내에서 점점 세력을 늘리던 나치 지지자들을 견제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1934년 5월에 헌법을 개정하고 오스트리아 연방국을 창설한다. 돌푸스 정권은 헌법 통과 직후부터 국가 비상 사태를 선포하고 나치당을 탄압하는데 온 힘을 쏟았지만 같은 해 7월에 아돌프 히틀러의 사주를 받은 나치당 지지자에게 돌푸스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암살 직후 오스트리아 나치당은 군사 반란을 시도했지만 돌푸스를 계승한 신임 총리 쿠르트 슈슈니크가 재빠르게 대처했을 뿐 아니라, 이탈리아 왕국베니토 무솔리니 역시 4개 사단을 오스트리아-이탈리아 국경으로 파견하여 히틀러에게 노골적으로 경고를 하면서 간신히 오스트리아 연방국은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1] 결국 히틀러는 돌푸스의 암살과 군사 반란 시도에 대한 모든 연관성을 부인하고 물러서야만 했다.
이후 슈슈니크 총리는 오스트리아 나치당의 활동을 금지하였지만 히틀러는 아르투어 자이스잉크바르트와 같은 나치 동조자를 적극 활용하여 오스트리아를 장악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1936년에는 에티오피아 침공으로 주요 국가에게 고립된 무솔리니가 히틀러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1936년 11월 1일 독일이탈리아추축국을 선포했다. 슈슈니크는 오스트리아 내 나치당을 사면시키면서 어떻게든 국가는 유지하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1938년 슈슈니크가 사퇴하고 잉크바르트가 총리로 임명되면서 오스트리아 나치당이 집권했다. 독일군이 오스트리아에 진군했으며 독일은 오스트리아의 잉크바르트와 협약을 맺어 오스트리아를 병합한다. 오스트리아는 나치당의 감독 아래 독일 합병 의견을 묻는 명목상의 국민 투표를 시행하였고 결과는 97% 찬성이었다.

3. 관련 문서


[1] 무솔리니가 나치의 오스트리아 합병을 반대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조국전선은 나치즘보다는 이탈리아 파시즘과 훨씬 유사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가톨릭에 우호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사성 외에도 무솔리니는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이후 쥐트티롤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것을 무척이나 우려했다. 이탈리아 입장에서는 오스트리아가 점령당하면 다른 지역으로도 공격을 받을 염려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