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응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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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청나라 초기의 인물. 삼번의 난을 일으킨 오삼계의 서자이자 오세번의 아버지다.
2. 생애
아버지 오삼계가 1644년 평서왕에 책봉되자 세자가 되었으며 효장문황후의 도움으로 숭덕제의 막내딸 화석건녕공주와 결혼해 황제의 부마가 되었다. 부마가 된 것은 영광이라 볼 수 있겠으나 사실은 청 조정이 세력이 점점 강해지는 오응웅의 아버지 오삼계를 견제하기 위한 인질 그 이상 이하도 아니였다.
인질이긴 했으나 나름 부마, 고위 관직에 있었기에 청 신료들에게 좋은 대접을 받았지만 1673년 아버지가 결국엔 반란을 일으키자 아들 오세림(吳世霖)[1] 과 처형(교수형)당했으며 사후 1678년 아들 오세번이 오삼계의 뒤를 이어 즉위하자 오응웅은 태종 효공황제로 추존되었다.
3. 대중매체에서
무협소설작가 김용의 녹정기에도 직접 등장한다. 오삼계 자신보다는 그 가족들 위주로 등장하는데 아들인 오응웅은 건녕공주가 이미 위소보에게 마음이 있었기에 사고를 가장해 거세시켜 버리고 전부터 위소보랑 사고친 덕분에 위소보의 아이까지 임신, 이후 고자가 된 상태에서 건녕공주와 혼인하여 부마가 되고, 북경에 올라와 강희제의 인질이 되지만 자신을 거세한 건녕과 정은 전혀 없다. 건녕은 강희제를 찾아가 남편이라고 있는게 고자라고 울고, 위소보와 당당히 간통을 하며 오응웅 본인도 나중에 건녕을 버리고 혼자만 달아나버린다. 위소보에게 강희제로 하여금 철번의 명을 거두게 해달라고 로비하고, 그와 말내기를 하기로 하지만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냅다 달아나게 된다. 근데 위소보가 내기에서 질까봐 전날에 운남말에 파두를 섞어놓은 통에 말들이 설사를 하다가 죽어버리고 덕분에 위소보에게 잡혀서 다시 북경에 끌려온다. 강희제는 일부러 그를 벌하지 않고 잠시 살려두어 오삼계의 반란을 막으려 했지만, 오삼계가 정말로 반란을 일으키자 주저없이 참수해버린다. 건녕공주는 살아서도 병신이더니 죽어서도 병신이라고 그를 욕하면서 위소보에게 가버린다(...) 나중에 천지회 일원임이 들통난 위소보가 도주하다가 자신이 탄 말이 강희제의 술수로 설사를 싸며 죽어가자 오응웅의 귀신이 쫓아온 거라고 벌벌 떨면서 한번 언급된다.
영화판에서는 2편부터 등장. 탕진업이 분했다. 원작 캐릭터에 정극상의 찌질한 캐릭터가 혼합되었는데, 더 찌질해진 대신에 좀 더 덜 험난한 운명을 맞게 된다. 신룡교주 용아(임청하 분)의 호위로 북경에 와서 부마가 되는데, 여춘원에서 위소보에게 속아서 그와 동침할뻔 한 아가(이가흔 분))에게 반해서 구해준다. 운남으로 내려가던 중 독비신니 구난의 포로가 되어 한간 오삼계의 아들이라고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아가에게 호소하여 목숨을 건지게 되고, 아가에게 그녀를 황후로 삼겠다고 유혹하여 같이 도주한다. 하지만 평서왕야에서 몰매를 맞은 다륭이 상방보검을 들고 날 때린놈은 다 베겠다고 난동을 부리자 아버지랑 금면사패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다투다가 원작처럼 건녕공주의 손에 고자가 된다. 배신자를 잡기 위해 나타난 구난에게 아가와 함께 포로로 잡혀서 죽을 위기에 처하는데, 위소보에게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고 무섭지 않으니 같이 죽자는 아가에게 그걸 믿었소?라고 냉대하면서 어차피 난 고자가 된 몸인데 당신만 고생할 뿐이라며 그녀를 외면하여 아가를 울리고 만다. 그리고 위소보에게 살려줘서 고맙다고 아부하다가 아가에게 걷어차이고, 위소보에게도 뺨을 맞으면서 퇴장. 그래도 목이 잘린 원작에 비해서는 고자가 되었지만 목숨만은 건졌으니 나름 평화로운 결말. 다만 강희제가 오삼계를 토벌하면서 같이 처형되었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아버지 오삼계는 DVD판 시절에 오삼규로 번역된 흑역사가 있는데, 오응웅은 비디오판 시절에 오영웅으로 번역된 흑역사가 있다.
[1] 오세번의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