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진

 


甕津半島 / Ongjin Peninsula
1. 개요
2. 자연
3. 역사
4. 이모저모


1. 개요


'''옹진반도'''(甕津半島)는 황해도 남단에 위치한 반도로, 한반도에 부속한 반도들 가운데는 가장 넓다. 면적은 구글 어스로 측정한 결과로는 1,260 km2 정도 된다.[1] 부속 반도로는 마산반도, 읍저반도, 강령반도 등이 있다.

2. 자연


북쪽은 육지로 연결되어 있으며, 북서쪽은 대동만(大東灣)으로 장연군과 떨어져 있고, 북동쪽은 황포(黃浦)로 해주시와 떨어져 있다. 옹진반도 지역인 벽성군 동강면과 해주시 용당포는 불과 750 m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로 떨어져 있어 추후 다리가 놓일 수도 있다.
멸악산맥의 지맥 부분이 침강하여 이루어진 반도이며,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다. 옹진반도 한가운데로 만이 깊숙히 들어와 있으며, 반도 주변에는 창린도, 어화도, 순위도, 기린도, 용호도 같은 섬들이 많다. 기후는 북한에서 가장 따뜻한 편으로 연평균기온은 10.6 ℃ 정도이다. 다만 강우량은 서울보다 다소 적어 연간 1,000 mm 정도.
행정구역으로는 황해남도 옹진군, 강령군 전역과 벽성군 일부, 태탄군 일부에 속한다. 광복 당시에는 대부분의 지역이 황해도 옹진군에 속했으나, 해주만에 가까운 동쪽 일부 지역은 벽성군에 속하였다.

3. 역사


38선이 그어진 뒤로부터 6.25 전쟁까지는 거의 대부분의 지역이 남한 영토였다. 하지만 옹진과 서울간의 교통로 사이에 있는 황해도의 '''해주시'''는 38선 이북지역이라서 북한 지역이 되었기 때문에 육상교통로가 막혀서 사실상 섬이나 다름이 없었다. 대신 북한은 해주에서 해상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인 해주만의 출구가 38선 이남에 있던지라 사실상 해주항을 봉쇄당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북한의 입장에서는 조금만 밀어붙이면 쉽게 점령이 가능한 지역이라서 한국전쟁 발발전에도 수시로 북한군과의 교전이 펼쳐진 지역이었다. 1949년 옹진반도 전투를 다룬 신문기사 한국전쟁 개전 직전까지도 그 당시 대한민국 국군의 빈약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6개 밖에 없던 대한민국 육군의 포병대대 1개까지 추가한 제17연대(당시 육군본부 직할, 현재는 육군 제12보병사단 예하 제17보병여단)를 배치하여 필사적으로 방어했으나 압도적인 조선인민군 육군의 전력에 밀려 대한민국 해군 함정과 민간 어선 등을 통해 해상으로 철수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옹진반도 전투 문서 참고.
이후 북진때 수복되었다가 1.4 후퇴 때 다시 북한이 점령하였고, 1953년까지는 육지는 북한의 점령 아래에 있었지만 섬의 경우 원래부터 옹진군에 속한 도서들도 대한민국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었으나, 이를 북한에 인계하는 내용으로 휴전이 성립되어 현재는 북한의 지배하에 있다. 현재는 북한이 서해 5도를 견제하기 위해 해안선마다 다량의 해안포유도탄 포대를 설치하여 반도 전체가 중무장 상태다.

4. 이모저모


옹고집전의 배경이기도 한 장소. '옹'자 돌림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흥군처럼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반도여서인지 여름철마다 태풍이 한반도 서해안으로 북상하면, 옹진반도가 태풍의 상륙지점으로 자주 등장한다.[2][3]

[1] 백과사전 등에서는 580 km2 정도라고 되어 있는데, 북한에서는 강령반도는 옹진반도에 포함시키지 않는 듯하다.[2] 2000년 프라피룬, 2015년 찬홈, 2019년 링링, 2020년 바비[3] 2012년 볼라벤대한민국 기상청의 경로 조작으로 밝혀졌으며, 실제로는 백령도 부근을 지나 평안북도 서해안에 상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