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전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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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중국 오대십국시대의 전촉(前蜀)의 건국자. 자는 광도(光圖).
2. 생애
황소의 난 평정에 가담하여 공적을 세웠다. 그 뒤 당나라의 실력자였던 환관 전령자(田令孜)의 양자로 들어갔고, 당희종(僖宗)이 황소에 쫓겨 촉(蜀)으로 피신했을 때 도와 벽주자사(璧州刺史)를 역임했다.
이후 점차 권모술수를 써서 촉 전체와 한중을 장악하였고, 903년 당나라로부터 촉왕(蜀王)의 지위를 하사받았으며, 이후 907년 후량(後梁)이 당나라를 멸망시키자, 스스로 황제를 칭했다. 이후에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심사단(尋事團)이라 불리는 비밀 경찰을 만들어 불평분자들을 압박하고 살해했다.
이 때문에 붙은 별명이 '''왕팔(王八)''', 중국의 '''비속어'''중 아주 유명한 것으로 정착한다.
3. 여담
여담으로 '''한자가 고려의 태조 왕건과 같다'''. 거기다가 생몰년과 재위 기간도 묘하게 겹친다. 고려 왕건은 877년생이며, 이 전촉의 왕건이 죽은 해인 딱 918년에 제위에 올랐다. 이런 점 때문에 대륙설, 특히 대륙고려설과 대륙조선설을 신봉하는 환빠들이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들은 전촉의 왕건이 고려 태조 왕건과 동명이인이 아니라 아예 동일인이라고 우기는 만행을 저지른다.[2]
죽은 직후 양자와 친자 사이에 제위 쟁탈전이 일어났으며, 승리한 막내 왕연이 사치에 몰두하면서 끝내 후당에게 나라가 멸망하게 된다.
4. 둘러보기
[1] 당소종의 천복 연호를 습용하였다.[2] 묘하게도 조선 태조의 경우도 이름이 한자까지 겹치는 중국의 황제가 있는데 태조의 개명한 이름인 이단(李旦)이 당 예종의 이름과 겹친다. 다만 이 경우는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시대의 인물인데다, 왕의 이름을 함부로 불렀다가는 불경죄로 목이 달아나는지라 이성계의 개명한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언급되는 일이 드문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