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오 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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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에밀 헤드를 쓴 모습
얼굴
ヨコオタロウ / YOKO TARO / 横尾 太郎(よこお たろう
(1970.6.6 ~ )
1. 개요
2. 게임 디렉터로서
2.1. 염세적인 색채
2.2. 비범한 정신 상태
2.3. 게임에 대한 생각들
3. 인생사
3.1. NAMCO에 입사하기까지
3.2. SCE & Cavia 재직 당시
3.3. 니어:오토마타와 그 이후
4. 주요 작품
5. 외부 링크


1. 개요


일본게임 제작자다.
본명은 요코오 타로(横尾 太郎(よこお たろう)지만 주로 ヨコオタロウ나 YOKO TARO의 명의로 활약 중이다. 이름의 요코오의 '오'는 横(요코)+尾(오)이기 때문에 장음이 아니다. 영문 이름 YOKO TARO는 요코오의 오가 마치 장음처럼 삭제된 것, 이름 전부를 대문자로 표기한다는 것, 성과 이름을 일본어 순서 그대로 표기한다는 점 등이 특이사항이다. 본래는 Tarō Yokoo다. 드래그 온 드라군 시리즈와 니어 시리즈의 디렉터로 유명하다.
단순히 게임을 디렉팅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게임들의 시나리오와 설정을 직접 작업하기도 한다. 시나리오 라이터가 별개로 존재하는 작품도 보통 플롯은 요코오 타로가 작업한다고. 그런 만큼 스토리의 비중이 큰 RPG를 주로 만들며, 니어 오토마타의 프리퀄이 되는 연극 요르하의 각본도 쓴 적이 있다.
부인은 태고의 달인 시리즈 초기 시리즈의 캐릭터 디자이너로 유명한 요코오 유키코. 참고로 이 사람은 아는 사람은 아는 반다이 남코의 게임 미즈이로 블러드의 캐릭터 디자인 및 '''세계관 설정'''을 담당하기도 했는데, 귀여운 캐릭터들과 대비되어 어딘가 광기가 넘치는 스토리 및 시궁창같은 세계관 덕분에 그 남편에 그 아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였다.
밴드 amazarashi를 상당히 좋아하는 듯 하다. 아마자라시와 니어:오토마타 그림책 콜라보로 곡을 요청하기도 했으며, 콘서트에 초청받았다는 것을 보면... 가끔 amazarashi의 가사를 트윗하는 모습도 보인다. 코드가 잘 맞는듯[1]
드래그 온 드라군 3니어 레플리칸트가 발매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스토리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게임 제작사의 기술력 부족과 그로 인한 부족한 게임성, 퀄리티와는 별개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마니악한 막장 스토리 때문에 여러모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2017년에 발매한 게임인 니어 오토마타가 대성공을 거둠에 따라 게임의 디렉터인 요코오 타로 또한 상당한 주목을 받게 되었고, 인터뷰에서의 털털하고 솔직한 면에 호감을 가지게 된 게이머들이 늘고 있다.니어, PD와 작곡가가 말하는 요코오 타로

2. 게임 디렉터로서



2.1. 염세적인 색채


게임 디렉터로써는 자신만의 확고한 개성과 작품관을 지닌 사람인데, 눈에 띄는 특징은 우로부치 겐과 맞먹을 정도로 담당 작품의 대부분이 염세적인 색채에 꿈도 희망도 없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또한 자신의 작품의 엔딩에 관해 이야기할 때 해피 엔딩이라고 공언하는데, 이는 요코오 타로에게 있어 해피 엔딩이란 '각각의 인물이 자신이 추구하고자 했던 욕구를 달성했을 때의 엔딩'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설령 세상이 끝났어도 주인공들만 행복하다면 그게 곧 해피 엔딩이라는 논리다.[2] 물론 한 번이라도 게임을 플레이했던 플레이어들은 이 말에 "어디서 약을 팔아!"라고 외치고 있다. 니어 레플리칸트의 경우 잡지 게이머즈의 편집자 왈, "제작진 나랑 싸우자."

2.2. 비범한 정신 상태


요코오의 작업 방식은 무척 까다롭고 맞춰주기 어려운 스타일이라 일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렵지만, 스퀘어 에닉스의 이사이자 프로듀서인 사이토가 한없이 넓고 관대한 마음으로 품어주기 때문에 어떻게든 성립되고 있다. 핵심적인 스토리를 집필할 때조차 술에 절은 상태로 집에서 느긋하게 써내려가기 때문에 그가 제대로 일을 하고는 있는건지 핵심 관계자들조차 쉬이 파악하기 어려우며, 디렉터로서의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외부에서의 간섭을 일체 차단하는 철저한 고립형이라 소통다운 소통을 하지 않는다. 요코오는 니어:오토마타 개발 당시 플래티넘 게임즈의 직원들이 너무나도 우수해 자신이 할 일이 없었다고 이야기했지만, 플래티넘 측의 게임 디자이너 타우라 타카히사 말로는 까다로운 코멘트도 많이 던지고, 요코오가 부재중이라 어쩔 수 없이 그가 없는 회의 자리에서 보고할 수 없었던 사항을 나중에 가서야 전달받게 되면 기분 나빠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요코오 타로 본인에게 있어서도 그렇지만, 대개 좋은 평가를 받는 에피소드의 경우엔 을 마시고 썼던 것들일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대중이 상상하는 그의 이미지대로 평소엔 느긋하게 각본을 구상하는 생활을 하며 툭하면 혼자 술을 홀짝이곤 하는데, 더욱 발상이 좋아지고 글이 잘 써지는 느낌이라고 한다. 모바일 게임 관련 컨퍼런스에서 있었던 인터뷰에서 언급하기론, 간 건강의 문제로 맥주를 금지당했으니 최대한 자제하고 대신 와인을 마시고 있다고...(?)

인터뷰 등에서 두드러지는 개성도 특이한데, '''지나친 솔직함'''과 어두운 분위기의 게임을 만들었다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의 '''상당한 유머 감각'''이 특징이라 한다.[3] 인터뷰마다 자학 개그는 평범한 수준이고, 상대를 디스하거나(물론 농담 수준으로) 업계의 치부를 들춰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그의 성향을 잘 알 수 있는 인터뷰 중 하나 인터뷰 등에서는 늘 자신의 게임 캐릭터인 에밀의 가면을 쓰고 있는데, 본인 왈 기괴한 이야기가 강점인 디렉터가 동글동글한 아저씨면 사람들이 실망할 것 같아서 가면을 쓴다고 했다.

2.3. 게임에 대한 생각들


액션 게임을 주로 만드는 제작자이지만, 동시에 액션 게임에 대해서 상당히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을 잔뜩 죽이면 그것이 곧 자랑이 되는 액션 게임의 분위기에 의문을 가졌고 결국 그것을 일종의 '''광기'''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요코오는 그의 초기작인 드래그 온 드라군의 등장인물들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의도적으로 비틀린 캐릭터들로만 구성했다고 한다. 그 이후 9.11 테러이라크 전쟁,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세상이 변화해 가는 양상을 보면서 '''인간은 누구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할 수 있고, 이 믿음만 있다면 딱히 미치지 않더라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방향으로 생각이 바뀌었고, 이 변화가 니어 레플리칸트의 제작에 반영되었다고. 그는 그 이후에도 '사람을 죽이는 게임'이라는 화두에 대해 이것 저것 생각했지만 답을 찾지 못한 채로 드래그 온 드라군 3까지 흘러오게 되었다고 자평한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묘사 역시 게임에서 종종 등장한다. 니어 레플리칸트의 주인공 파티 멤버는 인터섹슈얼게이이며, 니어:오토마타에서도 조연 중 레즈비언으로 여겨지는 등장인물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성적 정체성을 작품 내에서 딱히 중요한 요소로 다루지는 않는 편인데[4], 레플리칸트의 설정집 인터뷰에 따르면 자신같은 성적 다수자가 잘 깨닫지 못할 뿐이지, 성적 소수자들도 (그 수가 많고 적음의 문제일 뿐) 분명 이 사회 속에 평범하게 존재하고 있을 것이므로 특별하게 묘사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그 외에도 (워낙 성적으로나 폭력적으로나 내러티브적으로나 자극적인 게임을 많이 만들던 사람이라 어디까지 진심으로 한 발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드래그 온 드라군 3 개발 당시 요코오 타로 왈, 단순히 다른 기획이 전부 탈락되어서 여성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 게임이 된 것이지, 게임 제작이나 내용에 캐릭터의 성별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무슨 영향을 끼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게임 설계에 있어서 신경쓰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자유''''. 다만 여기서의 '자유'는 오픈 월드 게임에서 이야기하는 자유도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요코오 타로는 단순히 게임 속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해서 그 경험이 반드시 자유로움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실제로 오히려 높은 자유도가 불쾌한 의무감이나 피로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함을 목격해 왔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해 요코오 타로가 생각한 한 가지 대안적 관점은, '게임에서의 자유는, 플레이어가 세계관에 존재하는 한계나 경계를 '''명백하게 인식한 상태에서 그것을 뛰어넘음으로써''' 느낄 수 있게 된다', '자유는 마음 속의 '''인식이 넓어지는 순간''' 느끼게 된다'라는 것(#). 다만 예산의 한계 등으로 인해 이런 '자유'를 AAA게임의 방식으로 구현할 수는 없으니 이런 저런 궁리를 하게 되는데, 세계관이나 플롯이 점차 확장되어가는 것이 특징인 그 고유의 회차 플레이 설계 방식이 이런 고민의 결과물 중 한 가지.
개인적으로는 매 번 다른 느낌의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고, 니어 시리즈 제작 당시는 한 가지 플레이 스타일이 계속되기보다는 계속 변해가는 '불안정'한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진 유연성을 매우 좋아하는 듯. 그러나 역시 한 사람의 머리 속에서 나오는 생각이라, 게임마다 어딘가 비슷한 점이 생겨 버리는 점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술회한다.
이렇게 개인으로서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지만, 게임 제작에 있어서 이런 고민을 메시지화하여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스타일의 디렉터는 아니다. 그래서인지 인터뷰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고. 만들어진 완성품에 디렉터의 고민이나 생각이 묻어나오는 것 자체야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런 고민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은 아니며, 자신이 어떤 고민을 했는지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플레이어가 있다면 기쁘겠지만, 결국 자신의 고민은 자신 내면의 문제일 뿐이라며 선을 긋는 편이다.[5] 그의 관점에서 게임은 '유저가 있어야 비로소 결론이 도출되는 미디어'이기에, 최종적으로 플레이어들은 게임 플레이에 대해 각자의 관점에서 해석, 판단, 선택하게 될 것이며,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비디오 게임에 있어서의 또 다른 '자유'라고.

3. 인생사



3.1. NAMCO에 입사하기까지


어린 시절 잘 공간이 없어서 이불장에서 잘 정도로 무척 어려운 형편에서 자랐으며, 당시 근처 학교의 교장이던 할아버지가 정년퇴직한 후 그의 곁을 떠나기 시작하는 어른들을 보며 인간불신을 처음 가졌다. 게임 자체는 일찍이 관심을 가진 편이나 정작 고등학교 이후엔 흥미를 잃고 CG 영상 제작 및 편집에 빠져살았다.
그 뒤 고베 예술 공과대학(KOBE DESIGN UNIVERSITY) 시각정보 디자인학과를 졸업했으며 해당 학과의 1기 입학생이라고 한다. 당시 같은 과 동기생 가운데 야스이 아키라가 있었는데, 그는 이후 드래그 온 드라군 2 디렉터를 담당하게 된다. 이후 1년 후배인 에이스 컴뱃 3 디렉터 이와사키 타쿠야, MONACA의 오카베 케이이치, 코노 카즈토키와 같은 해에 NAMCO에 입사했다. SEGA 역시 면접을 보았으나, 당시 릿지 레이서 등을 발매한 NAMCO는 가장 첨단의 CG 렌더링 기술을 가진 회사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고, 요코오 타로의 입장에서는 어떤 자신만의 창작을 하고 싶다기 보다는 그저 최첨단의 기술을 만져보고 싶다는 욕심이 앞섰기에 다른 진로를 뿌리치고 입사를 결정했다고. 요코오가 입사한 1년 뒤 전술된 야스이 아키라 역시 NAMCO에 합류했다. 이런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듯, 원래는 CG를 전문적으로 다뤘던 고로 그래픽 아트 디렉터를 역임하다가 디렉터가 된 케이스다.
입사 당시의 요코오 타로는 그야말로 건방지다는 하나의 표현이면 설명이 될 정도의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마침 게임 업계에 3D CG를 도입하며 본격적으로 이행하던 시기였던 관계상, 직속 상사가 미술과 CG 양쪽에 정통한 자신보다 전문 지식이 없다는 점 때문에 망나니 마냥 거들먹거리고 다녔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돌이켜봐도 잘도 선배들한테 얻어맞지 않았구나라고 회상할 정도이며, 젊은 개발자들에게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다니게 된 연유 역시 그런 과거의 자신에 대한 반성에 있다.

3.2. SCE & Cavia 재직 당시


이후 플레이스테이션 2이 발매되자, NAMCO에서는 이것을 이길 수 있는 기반 시스템을 만들 수 없다며 첨단을 주도하는 것을 포기하는 노선을 탔고, 요코오는 이에 회의를 갖고 SCE로 이직했다. 워낙 인망이 없어서였는지 아무도 그의 이직을 말리지 않았다고. 원래부터 오락실에 비치되는 체험형 3D CG 게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남코에 적을 두고 있었는데, 소니로 이직하면서 모든 야망이나 꿈은 접어두고 그냥 평범한 여생을 보낼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SCE에서 프로젝트 하나를 마무리하며 1년 반을 버티다가 구조 조정의 여파로 해고되어 버렸는데, 그것도 회사 내부에서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창구를 통해 퇴사 압력을 가해 자진 퇴사하는 형태로 끝이 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바로 다음날 이와사키 타쿠야가 설립한 회사인 Cavia에서 입사를 권유하고, 그래픽 아트 디렉터로 결국 이직하게 된다. 요코오 왈, 나중에 생각해보니 짤린 다음날 바로 전화를 걸어와 입사제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일인지라, 자신의 해고과정에서 이와사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고.
이 당시 스퀘어 에닉스의 시바 타카마사가 Cavia에 발주한 것이 드래그 온 드라군 시리즈였고, 이후 시바 타카마사의 상사였던 사이토 요스케가 발주한 것이 니어 레플리칸트였다. 그러나 계속된 흥행 부진에 시달리던 Cavia는 니어 레플리칸트를 작정하고 마지막 작품으로 만들었고, 이마저도 잘 안팔려서 결국 회사가 해체되고 만다. 이후 이와사키 타쿠야는 ILCA라는 회사를, 요코오 타로는 BUKKORO라는 회사를 세우게 된다.

3.3. 니어:오토마타와 그 이후


그동안 자신이 디렉터로서 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한 번 실현해봤기 때문에 이 이상의 미련은 없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여생을 보내려던 와중, " 사이토 요스케씨가"[6] 이와사키 타쿠야에게 드래곤 퀘스트 11을, 요코오 타로에게 니어 오토마타를 발주한다. 결론적으로 이 기회를 통해 요코오 타로 최초의 흥행 성공작이 나오게 되었고, 다시 한 번 게임 업계 전면에 나서게 된 요코오는 지금을 자신에게 뒤늦게 찾아온 제2의 여생이라 자평하고 있다고. 이런 인생굴곡을 거쳤기 때문인지, 요코오는 언제나 지금 만드는 것이 자신의 개발자 인생 최후의 작품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으며, 잘 풀리지 않으면 다시 그늘로 돌아가 우동 가게나 차리고 조용히 살아가겠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오토마타의 제작이 착수된 후에도 요코오의 방약무인적 태도는 변함이 없어, 툭하면 못해먹겠다고 짐을 싸고 행패를 부린지라 도중 몇 번이나 작품이 엎어질 뻔 했다. 그럴 때마다 사이토 프로듀서가 직접 나서서 그를 붙잡아, 어떨 땐 으름장을, 어떨 땐 온갖 입발린 말로 달래가며 겨우겨우 업무에 되돌려 놓는 나날이 이어지곤 했다는 듯.[7] 그는 이제 와서 니어 시리즈가 빛을 볼 리가 없다고 생각해 늘 하던 대로 막무가내식 디렉팅을 던져댔고, 이렇게 실현 가능성이 상정되지 않은 업무들을 전부 받아내던 플래티넘 게임즈 측의 책임자 타우라 타카히사가 결국 요코오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태까지 벌어졌었다. 요코오도 양심은 있었는지, 이 지경에까지 이르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앞으론 조금 성실하게 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술회.
이렇게 온갖 난관을 거쳐 니어 오토마타가 겨우 세상에 나와 예상외로 대중성과 흥행성을 모두 잡으며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나서도 요코오의 불성실함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아, 참다참다 못한 사이토 프로듀서가 니어 시리즈에서 하차 선언을 하기 직전까지 치닫기도 했다.[8] 니어 레플리칸트/게슈탈트의 버전업판 및 모바일판의 제작이 공표된 시점 기준, 요코오가 니어와 관련없는 외주 업무들을 수주하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통에 사이토 프로듀서가 전전긍긍하며 불만을 토로하는 상태. 다만 요코오가 원래부터 디렉터로서 해야할 '일로서의 일'을 어느정도 하고 나선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어느정도 방관하며 개입을 자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4. 주요 작품


  • 드래그 온 드라군 & 니어 시리즈[9]
    • 드래그 온 드라군
    • 니어 레플리칸트
      • 리메이크: 니어 레플리칸트 ver.1.22474487139...(감수)[A]
    • 드래그 온 드라군 3
    • 니어:오토마타
    • 니어 리[인]카네이션(감수)[A]
  • DEMONS' SCORE - 2012년 스퀘어에닉스에서 iOS용으로 발매한 리듬 액션 게임.
  • SINoALICE - 스퀘어에닉스에서 2017년 6월 6일[10] 출시한 스마트폰용 RPG. 세계관 제작과 감수를 맡았다. 캐릭터가 공개될 때마다 코멘트를 하는데 잘 팔리겠다던가 높으신 분들의 주머니에 돈이 많이 들어가고 자신에게는 한 푼도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잠이 오지 않는다는 등 특유의 말빨이 일품. 니어:오토마타의 성공에 힘입어 게임이 출시되기 전부터 콜라보 개최가 예고됐다.

5. 외부 링크



[1] 드래그 온 드라군&니어 시리즈의 스토리와 아마자라시의 곡들이 가진 성향은 꽤나 비슷한 편이다.[2] 이야기 만드는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상술된 시나리오 라이터 우로부치 겐도 이런 유형의 엔딩을 곧잘 보여주곤 한다. 제3자의 시각에서 보면 상당히 암울하고 비극적인 상황인데, 정작 작품 속의 캐릭터들은 어떤 이유로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3] 어두운 작품 세계와 달리 밝고 유쾌한 성격으로 자신의 작품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창작가들도 없진 않다. 무려 코즈믹 호러 작가인 러브크래프트 또한 지인들 사이에서 유쾌한 사람이었다.[4] 니어 레플리칸트의 인터섹슈얼 캐릭터 카이네는 다소 예외적인 경우로, 그녀의 인터섹슈얼로서의 정체성은 캐릭터의 배경은 물론 작품의 설정과도 연관되어 있다. 그럼에도 본편 스토리를 진행함에 있어서는 그녀의 인터섹슈얼 설정이 작품에 특별히 중요하게 관여하는 부분은 없다.[5] 니어:오토마타의 엔딩을 연출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그 나름대로는 많은 생각이 있었지만, 디렉터 자신의 생각을 플레이어들에게 강요하는 형태로 다가가는 것이 싫어서 원안을 수정한 결과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전술된 성적 소수자에 대한 관점 문제에서도 요코오는 니어 레플리칸트의 설정집 인터뷰에서 "차별하지 말라는 말을 할 생각은 없다"라고 이야기했지만, 바로 그 해당 인터뷰에서 '소수자 역시 평범하게 존재하고 있을 것이므로 그런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는 언급을 한 것을 통해 미루어보면 소수자를 차별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님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다만 자기 생각을 강요할 뜻이 없다는 의미에서 나온 발언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6] 전격 PS 소울칼리버 6 홍보 방송에서 요코오 타로 본인이 실제로 한 말이다. 물론 웃자고 한 얘기이긴 한데, 드래그 온 드라군니어 레플리칸트의 흥행 성적을 보면, 작품을 두 개씩이나 말아먹은 디렉터에게 일을 맡기는 사이토 프로듀서 쪽이 이상해 보이는 게 당연할 정도.[7] 요코오는 짐 다 싸놓고 그래도 사이토씨한테는 신세를 많이 졌으니 전해둔다면서 난 집에 간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머리 끝까지 화가난 사이토 프로듀서는 '네가 이렇게 돌아가면 내가 내일 아침 비행기로 잡으러 갈 것'이라 으름장을 놓았고, 이 말을 들은 요코오는 반성하는게 아니라 ''''이 사람이 참 날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짐을 풀었다.[8] 사이토는 요코오의 그런 행동들보다 자신이 제대로 그를 통제하지 못한 것에 방점을 찍고 자신에 대한 분노로 하차하려고 했었다.[A] A B 니어 레플리칸트의 2021년 버전업판과 니어 리인카네이션의 경우, 각 제작사에 개발을 총괄하는 메인 디렉터를 두고 요코오 타로가 시리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감수하는 형태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레플리칸트 버전업판과 리인카네이션의 개발 디렉터는 각각 이토 사키(Toylogic), 마츠카와 다이치(Applibot).[9] 시리즈 내에서 드래그 온 드라군 2는 요코오 타로가 감독직을 맡지 않은 유일한 작품이다. 그래서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여 전형적인 JRPG에 더 가깝다. 이 게임에서 요코오 타로는 영상 편집만을 담당했다고 알려져 있다.[10] 출시일이 디렉터 요코오 타로의 생일이다(1970년 6월 6일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