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고 산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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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멕시코 국적의 축구선수 출신 축구감독. 2012년에 CF 파추카 감독을 맡았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최전방 스트라이커였다.'''한 아이에게 꿈이 무어냐고 물으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빛나는 9번이 되어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시저스킥을 할 거예요.”'''
레알 마드리드에서 라리가 단일 시즌 최다골 기록을 세우는 등[1] 최전성기를 보냈고,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와 함께 팀을 이끌었던 전설적인 공격수였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1975년 푸마스 데 라 UNAM에 데뷔한 산체스는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 출전할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뽐냈으며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의 샌디에이고 소커즈팀에 1년 임대되어 30골 가까이 득점하는 등 팀에게 리그 우승과 CONCACAF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안겨주고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첫 시즌에 산체스는 8골을 넣었고, 두 번째 시즌부터는 두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라리가에서 훌륭한 선수 중 한명으로 성장했으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1984/1985 시즌에는 33경기 19골,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코파 델 레이에서는 6골을 넣었는데,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결승전에서 2골을 넣으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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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한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에는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 마르틴 바스케스 - 마누엘 산치스 - 미겔 파르데사 -미첼의 독수리 5형제가 있었는데 산체스는 '''4년 연속 리그 득점왕'''[2] 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고,[3] 레알 마드리드에서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와 함께 1985-86 시즌부터 1989-90 시즌까지 리그 '''5연패'''를 이끌어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이 되었다. 스페인 라리가에서 열두 시즌을 뛰면서 이 기간에 347경기 234골로 라리가 역사상 네 번째로 많은 골을 기록하였고,[4] 또한 라리가의 득점왕인 피치치를 총 '''다섯 번''' 수상했는데 이는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이 수상한 기록이다.[5] 이토록 강력한 전력을 자랑한 레알 마드리드였지만 당시 유러피언컵에서는 우승과 인연이 없었는데 1988-89 시즌에는 AC 밀란에 5:0으로 대패한 적도 있다. 하지만 1985-86 시즌 UEFA컵에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게 1차전에서 5:1 패배로 위기에 빠졌으나 2차전에서 4:0 승리를 이끌어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간신히 위기를 넘겼고 산체스는 4강 2차전 인터 밀란과의 경기에서 페널티 킥으로만 2골을 넣으며 연장혈투 끝에 결승에 진출했고 1. FC 쾰른과의 결승전에서 1차전 5:1 승리, 2차전 0:2 패배로 우승을 차지한다. 그 후 FC 바르셀로나에게 패권을 넘겨줬으며 1992년에 산체스는 클럽 아메리카로 이적했고, 라요 바예카노, FC 린츠, 댈러스 번에 뛰다가 1996년에 클럽 셀라야로 이적해 1998년에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산체스는 1977년에 국가대표에 데뷔해 북중미 챔피언십[6] 에서 4골을 득점하여 득점 2위에 올랐고 이러한 활약으로 멕시코는 5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였고 자국에서 열린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벨기에와의 1차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하였다. 이후 홈 어드벤티지에 힘입어 8강에 진출했으나 서독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산체스는 35세의 나이로 1993년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하여, 조별리그에서는 부진했지만, 토너먼트에서 페루, 에콰도르를 꺾으며 결승 진출에 공헌하는데 에콰도르전에서 득점을 올리기도 하였다. 결승전 상대는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였고 결국 패해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이후 1994년 미국 월드컵에도 출전하여 조국의 16강을 이끈 후 국가대표 커리어를 마감했다.
2.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멕시코에서 주로 감독직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 클럽 우니베르시다드 나시오날 (2000~2005)
- 클럽 네카사 (2006)
-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 (2006~2008)
- UD 알메리아 (2009~2010)
- CF 파추카 (2012)
3. 플레이 스타일
단신이었지만 몸 자체가 굉장히 유연했으며, 거기에 특유의 저돌적인 플레이를 바탕으로 극적인 골을 많이 만들어냈다. 골 냄새를 맡고 박스로 침투하는 스피드와 결정력은 역대 최강급이었고, 왼발 프리킥과 항상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저스 킥 또한 그의 장기였다. 골을 넣은 뒤 제비를 돌고 양손 주먹을 치켜드는 세리머니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
4. 기록
4.1. 대회 기록
-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나시오날 (1975~1981)
- 리가 MX: 1976-77, 1980-81
- CONCACAF 챔피언스 리그: 1980
- 코파 인테라메리카나: 1980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81~1985)
- 코파 델 레이: 1984-85
- 레알 마드리드 CF (1985~1992)
- 라리가: 1985-86, 1986-87, 1987-88, 1989-90, 1989-90
- 코파 델 레이: 1988-89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988, 1989, 1990
- UEFA컵: 1985-86
- 클루브 아메리카 (1992~1993)
- CONCACAF 챔피언스 리그: 1992
- FC 린츠 (1995~1996)
- 오스트리아 2. 리가: 1995-96
-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
- CONCACAF 골드컵: 1977
- 팬아메리칸 게임: 1975
4.2. 개인 수상
- 유러피언 골든부츠: 1989-90
- 라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7] : 1986-87, 1989-90
- 라리가 득점왕: 1984-85, 1985-86, 1986-87, 1987-88, 1989-90
- 리가 MX Balón de Oro: 1978-79
- 리가 MX 득점왕: 1978-79
- CONCACAF 골드컵 득점왕: 1992
- 월드 사커 올해의 팀: 1987
- 레알 마드리드 명예의 전당: 1997
- IFFHS 멕시코 20세기 최고의 선수: 1999
- IFFHS 북중미 20세기 최고의 선수: 1999
- 멕시코 20세기 최고의 운동 선수: 1999
- FIFA 100: 2004
- 골든풋: 2010
- FIFA XI: 1982
- IFFHS 레전드: 2016
- 마르카 레전드: 2018
5. 기타
- 축구 선수로는 굉장히 특이하게도 치의학과를 졸업했다. 어릴 때부터 축구와 공부를 병행했다고 한다. 멕시코 UNAM 대학은 축구 클럽을 운영하고 있는데, 멕시코 1부 리그에 소속되어 있다. 우고 산체스는 여기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학위까지 마쳤다.
- FIFA 20에 신규 아이콘으로 출시됐다.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공격수 5인을 선정했는데, 1980년대 공격수들 중 3위에 이름을 올렸다.
[1] 38골. 이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 루이스 수아레스가 경신했다.[2] 84/85 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소속, 33경기 출전, 19골 → '''득점왕''' | 85/86 시즌: 레알 마드리드 소속, 33경기 출전, 22골 → '''득점왕''' | 86/87 시즌: 레알 마드리드 소속, 41경기 출전, 34골 → '''득점왕''' | 87/88 시즌: 레알 마드리드 소속, 35경기 출전, 29골 → '''득점왕''' | 88/89 시즌: 레알 마드리드 소속, 35경기 출전, 27골 → '''득점 2위''' | 89/90 시즌: 레알 마드리드 소속, 36경기 출전, 38골 → '''득점왕'''[3] 이후 메시가 동률을 이루었다.[4] 2016년 기준 1위는 리오넬 메시, 2위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3위는 텔모 사라.[5] 1위는 7회의 리오넬 메시, 2위는 6회의 텔모 사라.[6] 골드컵의 전신[7] 돈 발론 어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