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티마 언더월드
Ultima Underworld: The Stygian Abyss / Ultima Underworld II: Labyrinth of Worlds
울티마 언더월드는 루킹 글래스 스튜디오(당시 블루 스카이 프로덕션)가 1992년 3월에 출시한 울티마 외전 2부작 시리즈이다.
1인칭 시점으로 3D 던전을 탐험하는 롤플레잉 게임으로 '''흔히 최초의 이머시브 심 게임으로 인정받는다.''' 엘더스크롤 시리즈, 데이어스 엑스, 바이오쇼크 시리즈 등 후대 1인칭 롤플레잉 게임에 커다란 영향을 줬다.
1. 게임플레이
울티마 VI: 거짓 예언자 이후를 다룬다. 제목 그대로 지하 세계를 탐험하는 게임으로 한치 앞이 안 보이는 배경이 대부분이라 분위기가 으스스하다.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잔뜩 짊어지고 무거운 갑옷과 무기를 장비하고 힘겹게 다니면서 한발한발 조심스럽게 내딛는 분위기가 일품이다.
몬스터를 포함한 모든 NPC가 세력을 이루며 플레이어에 대한 단계적인 친밀도가 갖춘다. 그래서 보통은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몬스터가 중립적인 상태로 배회하는 등 지하'세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 많은 게임이 대화 가능한 NPC를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는데[1] 그런 매너리즘을 타파한 울티마 시리즈의 시스템을 계승해 우수하게 구현했다.
몬스터의 종류를 불문하고 플레이어에게 우호적이면 아군이고 적대적이면 적인 평등한 시스템이다. 매료 마법으로 대화 가능한 타입의 적대적 크리처의 우호도를 올리면 대화를 할 수 있으며[2] , 우호적인 크리처를 공격하거나 물건을 훔치다 들키면 단체로 덤벼든다. 심지어 메인 퀘스트 진행에 필수적인 NPC도 얼마든지 적으로 돌리고 죽여버릴 수 있다.(그러나 퀘스트 진행은 막힌다.) 오늘날에도 이런 자유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주요 NPC는 공격할 수도 없는 무적이고, 적을 중립이나 우호 관계로 만들 수 없는 게임이 대부분이다.
스토리는 당시 기준으로도 단순하고 직선적인 편이라 당대 RPG 비평가로부터 지적받았고[3] , 핵심 개발자 더그 처치(Doug Church)는 "울티마 언더월드는 롤플레잉 게임이라기보다는 던전 시뮬레이터"라 말하기도 했다.
벽, 상자, 문 등 던전을 이루는 각종 사물도 단순 배경이 아닌 오브젝트로 취급해 커서로 벽이나 바닥을 클릭하면 간략한 설명과 함께 감정결과가 나온다. 무기나 장비 뿐 아니라 빈 병, 음식, 보석 등 자잘한 아이템도 내구도가 적용되며[4] 잠긴 나무 문을 때려부숴 진행할 수도 있다. 다만 중요한 이벤트 아이템이나 침낭 등의 필수 생존 물품은 파괴되지 않는다. 울티마 언더월드 2에서는 파괴 가능한 물품이 더 늘어난다.
일부 마법 이펙트와 화살 및 돌멩이도 오브젝트 취급한다. 예로 매직 미사일을 날리거나 화살을 쏜 후 바로 시간정지 마법을 쓰면, 날아가던 투사체가 공중에서 멈춘 상태도 있고 여기 닿으면 데미지를 입는다.
1993년 출시한 울티마 언더월드 2(Ultima Underworld II: Labyrinth of Worlds)는 전작보다 낫다는 평도 있는 반면, 무리하게 세계를 확장했다는 평도 존재한다. 또한 2편에서 쓰인 브리태니아 성의 레벨 디자인은 허브 월드 디자인의 시초이기도 하다.
2. 기술적 혁신
울티마 언더월드 이전에도 던전 마스터(1987)나 주시자의 눈(1991)처럼 1인칭 롤플레잉 게임이 존재했으나 이들은 미리 만들어둔 이미지를 조합해 1인칭 시점의 그래픽을 그리는 형태로, 진짜 3D 게임은 아니었다. 반면 울티마 언더월드는 폴리곤과 텍스쳐 맵핑을 동시에 사용해 몰입감 있는 실시간 3D 환경을 구현했다. 당시 폴리곤과 텍스쳐 맵핑 중 하나만 사용한 게임은 소수 존재했으나 두 개를 동시에 사용한 게임은 없었다. 다만 텍스쳐 맵핑이 워낙 무거운 기술이었던 관계로 울티마 언더월드는 Z축을 무시하고 텍스쳐 좌표를 계산했으며 그에 따라 텍스쳐가 플레이어의 시야 쪽으로 심하게 왜곡되어 보인다. #[5]
울티마 언더월드는 존 카맥이 텍스쳐 맵핑 게임을 만드는 데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 다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이드 소프트웨어의 90년대 성공가도를 다룬 책인 '둠: 컴퓨터 게임의 성공 신화 존 카맥 & 존 로메로'은 1991년, 존 로메로가 울티마 언더월드 디렉터 폴 뉴라스(Paul Neurath)와 대화한[6] 내용을 존 카맥에게 말해줬고, 존 카맥은 '나는 그거보다 더 빠른 걸 만들 수 있다'며 카타콤 3D를 만들었다고 기술한다. 반면 폴 뉴라스는 존 카맥이 1990년 소비자 가전쇼(CES)에서 울티마 언더월드의 테크 데모를 봤다고 말한다. 울티마 언더월드는 카타콤 3D보다 4개월 늦었으나 울펜슈타인 3D보다는 두 달 앞서 발매되었다.
폴리곤으로 구성한 울티마 언더월드의 3D 세계는 경사면과 높낮이가 존재하고 위아래를 자유롭게 볼 수 있으며 층 위의 층이 가능했다. 다만 타일맵 사용으로 맵은 90도 내지 45도 각도로만 구성할 수 있었고[7] NPC까지 3D로 구현하기엔 무리였기에 2D 스프라이트를 사용했다.[8] 제한적인 광원과 간단한 물리 효과도 적용했다.
간혹 울펜슈타인 3D나 둠 이전에 폴리곤을 사용했음을 이유로 들어 이들 게임의 기술적 성취를 평가 절하하는 경우도 있으나, 각자의 게임이 지향하는 바에 맞는 기술을 활용한 것으로 단순히 어떤 기술을 사용했냐를 기준으로 삼아 우열을 따지는 건 부적절하다.[9][10]
3. 영향
이머시브 심의 시초로서 루킹 글래스와 그 제작진이 만든 시스템 쇼크, 데이어스 엑스, 바이오쇼크, 그리고 엘더스크롤 시리즈에 커다란 영향을 줬다.[11]
툼 레이더도 울티마 언더월드처럼 3D 던전을 탐험하는 게임을 3인칭 게임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기획했다.
울티마 언더월드의 정신적 계승작으로 악스 파탈리스가 있다. 제작사 아케인 스튜디오는 워렌 스펙터가 구현하고자 한 이머시브 심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했고 이를 더욱 개선해 이후 디스아너드 시리즈나 프레이(2017) 같은 이머시브 심 게임을 만들었다.
2018년 11월 16일, 아더사이드 엔터테인먼트가 언더월드 어센던트를 발매했다. 울티마 언더월드의 디렉터 폴 뉴라스와 리드 디자이너 팀 스텔마크(Tim Stellmach)가 그대로 참여하고 울티마 언더월드의 아버지 워렌 스펙터도 깊게 관여해 최고의 정통성을 갖추었으며 2015년 2월 킥스타터로 86만 달러를 모금하는 등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출시 이후 메타크리틱 32점 등 처참한 평가를 받고 흥행도 저조했다. 게임 시스템이나 물리 엔진은 좋았으나[12] 버그와 최적화가 심각한 수준이었고, 전진형 스테이지 클리어 구성으로 울티마 언더월드에서와 같은 던전 탐험을 기대한 이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게임 레볼류션 리뷰는 프레이(2017)나 디스아너드 같은 게임과 비교해 작위적이고 관습적인 퍼즐 디자인과 창발적 플레이가 발휘되기 힘든 단순한 디자인과 상호작용을 비판하며 이머시브 심으로서의 매력을 상실했다 혹평했다.
[1] 심할 경우 벽에 심어져 있거나 의자에 처박아 놓은 이벤트 트리거처럼 취급했다.[2] 중요한 NPC가 적대적으로 변해도 매료 마법으로 상황을 타개할 수 있고, 그냥 적으로 나오는 도적 A도 매료 마법으로 우호도를 올려 일상 대화와 간단한 거래가 가능한 일반 NPC로 만들 수 있다.[3] 사실 당시 다른 게임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혁신적으로 구현한 게임 세계에 비해 스토리는 대단치 않았다. 동시기의 울티마 7에 비교하면 더욱 그랬다.[4] 아이템을 바닥에 놓고 라이트닝 마법으로 지지면 시커멓게 타다만 쓰레기가 된다. 적을 상대로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면 그 옆에 있는 아이템도 망가진다.[5] affine texture mapping. PS1 게임도 이런 문제가 있어 일부 게임은 아예 텍스쳐를 입히지 않기도 했다.[6] 존 로메로는 울티마 시리즈 개발사 오리진 시스템즈를 통해 업계에 발을 들여 그쪽 개발자와 친분이 있었다.[7] 울펜슈타인 3D는 빠른 3D 환경 구현을 위해 레이 캐스팅(ray casting) 방식을 사용했으며, 맵은 90도 직선으로만 구성할 수 있었다. 레이 캐스팅에서 벗어난 둠에서는 이러한 제약이 없어졌다. 울티마 언더월드의 45도 제한은 속편과 시스템 쇼크에도 존재했다.[8] 1992년작 어둠 속에 나 홀로는 캐릭터 및 사물을 폴리곤으로 만들었지만 배경은 2D 이미지였다.[9] 예로 울펜슈타인 3D는 1인칭 시점의 몰입감을 키우기 위해 3D 화면 영역(해상도)을 울티마 언더월드 대비 2.4배 키웠으며, 빠른 페이스의 액션에 맞춰 더 높은 프레임으로 구동했다. 둠은 3D 영역 해상도가 2.8배 높고 화면에 등장하는 몬스터 숫자도 몇 배 많다. 두 게임은 울티마 언더월드와 달리 텍스쳐 왜곡이나 공격적인 컬링으로 간혹 화면 모서리가 잘리는 문제도 없다.[10] 루킹 글래스 개발진이 만든 1998년작 트레스패서의 경우 범프 맵핑, 실시간 그림자, 물리 엔진, 인버스 키네마틱 같은 기술을 대중화되기 몇 년 앞서 선보였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동시기의 언리얼 시리즈만큼 인상적이지도 않고 게임 구동 속도가 워낙 느려 혹평받았다. 하프 라이프 2가 이에 영향받아 물리 기반 게임플레이를 접목했으니 그 선구적인 기술 접목이 의미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중요한 건 기술 자체가 아니라 결과물인 것이다.[11] 울티마 언더월드 2와 시스템 쇼크의 개발자인 마크 르블랑(Marc LeBlanc)은 2014년 인터뷰에서 만약 시스템 쇼크의 개발사인 루킹 글래스가 더 오랫동안 살아남았다면 울티마 언더월드 3편을 개발했을 것이고, 그 모습은 "루킹 글래스 스타일로 만들어진 엘더 스크롤 같았을 것(I imagine the game would have looked alot like an Elder Scrolls game, but in more of a LookingGlass style)"이라고 답변한 적이 있다.[12] 예를 들어 게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목제 오브젝트와 상당수의 목제 배경은 불에 타고 불이 옮겨 붙어 횃불 하나로 불장난을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