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소프트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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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니맥스 미디어 산하의 게임 개발 스튜디오. 미국 텍사스에 메인 스튜디오가 위치하고있다.
대표작으로는 둠 시리즈와 퀘이크 시리즈 등이 있다.
2. 이름
'아이디'가 아니라 '이드'로 발음한다. 정식 영문명은 id Software로 ID나, iD, Id 등의 바리에이션은 모두 틀린 표기. 하지만 초창기 게임에서는 ID로 표기되어 있기도 했던지라 외국에서도 이에 대한 혼란이 많다. 이런 혼란의 시작은 이드 소프트웨어 초창기에 회사명을 in demand 혹은 Ideas from the Deep의 축약어로써 썼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하지만 울펜슈타인 3D 이후 회사명의 기원을 프로이트가 제창한 심리학 용어 이드로 정립하였기 때문에 id로 표기하는 것이 옳으며 공식 홈페이지를 비롯한 매체 상에서도 id로 표기되어 있다.
3. 역사
3.1. 독립개발사
1991년 2월, 소프트디스크사 출신의 개발자인 존 로메로, 존 카맥, 에이드리언 카멕,[3] 톰 홀에 의해 미국 텍사스주에 설립되었다.
1993년 11월, 소프트웨어 크리에이션스 소유주 댄 린튼(Dan Linton)이 당시 이드 소프트웨어 사무실을 방문하면서 찍은 영상. 대표적인 초창기 이드 소프트웨어 멤버 존 로메로와 에이드리언 카멕(Adrian Carmack)을 비롯하여 제이 윌버(Jay Wilbur), 숀 그린(Shawn Green), 데이버 테일러(Dave Taylor)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울펜슈타인 3D와 둠 시리즈(1, 2) 뿐만 아니라 듀크 뉴켐 3D의 음악을 작곡한 음악가 바비 프린스(Bobby Prince)의 모습도 보인다.
회사 초창기에는 소프트디스크사와의 계약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작은 규모의 잡다한 게임들을 제작하는 동시에, 어포지와 손을 잡고 셰어웨어 방식으로 커맨더 킨 시리즈를 발매하여 작은 성공을 거뒀다. 1991년 4월에 발매된 이드 소프트웨어의 첫 FPS 게임 호버탱크 3D를 시작으로 3D 게임 제작에 집중했고 이후 카타콤 3D가 발매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1992년에 발매된 울펜슈타인 3D가 히트작이 되며 FPS 장르의 선두주자로 자리잡는다.
울펜슈타인 3D 이후, 이드 소프트웨어는 어포지의 지원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으로 둠의 개발에 착수한다. 개발 도중 창작 견해 충돌로 기획자인 톰 홀이 퇴사하는 일이 있었다(톰 홀은 이후 어포지로 자리를 옮겨 라이즈 오브 더 트라이어드를 만들었으며, 프레이의 개발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둠의 개발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1993년 12월에 발매되었다.
둠의 셰어웨어는 1995년까지 1500만회 이상 다운로드 되는 대박을 쳤으며, 그 중 100만개 정도가 등록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발매된 후속작, 둠 2는 셰어웨어가 아닌 패키지로써 발매되어 미국을 중심으로 200만 장이 팔려나갔다. 오리지널 둠에 하나의 에피소드를 추가해 패키지로 발매된 얼티밋 둠도 100만 장 정도의 높은 판매고를 올렸으며, 이 시기에 존 로메로가 프로듀싱한 레이븐 소프트웨어의 헤러틱 및 헥센도 성공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둠 2 이후 신작인 퀘이크의 개발은 갈등의 연속이었으며,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게임으로 기획된 퀘이크는 결국 발매를 반 년 앞두고 개발 방향을 180도 선회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더불어 회사의 한 축이었던 존 로메로는 퀘이크가 발매된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근무 태만을 이유로 회사에서 해고당했고, 앞서 해고된 톰 홀과 함께 이온 스톰을 세운다.
우여곡절 끝에 96년 6월에 발매된 퀘이크는 둠에 비견될만한 커다란 상업적 성공을 거뒀고, 3D와 네트워크 게임의 선구자격 게임으로써 인정받았다. 특히 멀티플레이의 인기가 높았던지가 인터넷 위주로 인기가 퍼져나갔는데, 최대의 게임 사이트 중 하나였던 게임스파이가 퀘이크 관련 커뮤니티로 시작했다(당시 이름은 퀘이크스파이). 가장 큰 규모의 IRC 채널인 퀘이크넷도 이름 그대로 퀘이크 커뮤니티에서 시작.
이듬해인 1997년 말에 발매된 퀘이크 2는 전작의 인기를 이어갔다. 원래 퀘이크의 후속작으로 기획된 게임은 아니었다. 원래 예정했던 이름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상표등록된 상황이어서 이미 인기 있던 퀘이크의 후광도 입을겸 퀘이크 2의 이름으로 발매되었다. 그래서 전작과 달리 외계인이 나오는 게임이 되었다. 비록 전작만큼 팔려나가진 못했지만 역시 비평과 흥행 모두 크게 성공했고, 이드는 이 게임이 꽤 맘에 들었는지, 이 게임의 세계관을 다음 두 개의 게임에서도 활용하게 된다.
98년에는 에픽 게임즈, 모노리스, 밸브 소프트웨어 등이 FPS 게임을 내놓으며 시장 판도가 크게 변했고, 특히 밸브가 내놓은 하프 라이프는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FPS 장르의 방향을 크게 바꿔놓았다. 하지만 이드 소프트웨어가 차기작으로 내놓은 게임은 이들 게임과는 판이하게 다른 멀티플레이 전용 게임 퀘이크 3였다. 흥미롭게도 에픽 게임즈 역시 멀티플레이 전용 게임인 언리얼 토너먼트를 발표하며 대결 구도를 형성했고 두 게임은 이틀의 간격을 두고 1999년 말에 발매되었다.
에픽 게임즈의 FPS 첫 작품인 언리얼의 멀티플레이가 썩 훌륭하지 못했던지라 당초 퀘이크 3의 우세가 점쳐졌으나, 게임이 발매된 후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언리얼 토너먼트는 퀘이크 3보다 약 3배 이상의 판매량으로 압도했고 비평에서도 더 우세했다. 그래도 언리얼 토너먼트(게임스팟 9.5, IGN 9.6)보다는 낮은 점수지만 퀘이크 3(게임스팟 9.2, IGN 9.3)도 높은 점수를 획득하고 향후 10년 가까이 각종 게임 대회에서 롱런하면서 체면치례하는 데는 성공했다.
퀘이크 3 이후 리드 프로그래머인 존 카맥은 둠 3 엔진의 제작에 돌입했고, 나머지 인원들은 퀘이크 3 확장팩인 팀 아레나를 개발하여 2000년 12월에 내놓았다. 하지만 이 확장팩은 망했다.
둠 3의 개발은 퀘이크 이상으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애시당초 차기작은 퀘스트라는 코드네임의 중세 테마와 오픈월드가 가미된 멀티플레이 중심의 게임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회사 내부에서 둠 3를 제작하자는 목소리가 커졌고 차기작을 두고 양쪽으로 파가 갈라지면서 한 명이 보복 해고되기까지 했으며,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에 대한 호평을 확인하고 나서야 둠 3 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다.
둠 3는 2001년에 첫 시연을 하고, E3 2002에 등장하여 최고의 쇼로 선정되는 등 순조롭게 개발되는 듯 했으나, 다음 해부터 시연 버전이 인터넷에 유출되고 사운드를 담당하던 트렌트 레즈너가 떠나는 등 각종 문제가 떠올랐고, 개발도 질질 끌다가 당초 예상을 한참이나 초과한 2004년 8월에 발매된다.
개발부터 삐끄덕거렸던 둠 3는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나오긴 했으나, 전작의 명성에는 못 미치는 작품이 되었다. 전작과 상이한 플레이 방식으로 인해 원작의 팬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같은 해에 출시된 하프 라이프 2, 언리얼 토너먼트 2004, 심지어는 신작인 파 크라이나 리딕 연대기 등 강력한 경쟁작들에 비교당하며 까이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350만 장이 팔리며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거뒀지만, 이를 시작으로 외주 개발사에 의해 만들어진 퀘이크 4와 에너미 테러토리: 퀘이크 워즈가 모두 실패하면서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액티비전과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이드 소프트웨어는 둠 3 발매 후 인터뷰에서 '신작은 둠 3처럼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며 2년 후에는 발매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언급했으나 이는 결코 지켜지지 않았다. 다크니스라는 신작을 개발 중이었으나, 개발이 1년 반 정도 진행된 시점에 와서야 '이건 좀 아니다'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결국 프로젝트는 엎어졌고, 새로운 프로젝트인 레이지의 개발을 시작한다. 비슷한 시기에 이드 소프트웨어는 모바일 게이밍에도 진출하여 '둠 RPG' 등을 내놓는다.
2007년에 7월에 레이지가 첫 모습을 드러냈으나, 불과 한 달 후에 게임 컨셉이 유사한 보더랜드가 공개되었다. 더불어 두 게임 모두 2009년 발매를 목표로 하게 되면서 묘한 경쟁구도가 형성된다. 하지만 두 게임의 대결은 결코 이뤄지지 않았다. 레이지는 개발을 질질 끌면서 보더랜드 발매로부터 2년이나 늦은 2011년 10월에야 발매되었다.
2008년 5월, 제2 개발팀 신설과 함께 둠 4 개발이 시작되었음이 발표되었다. 컨셉 작업조차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새로운 개발팀에 좋은 개발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미리 발표했다고 한다. 둠 4의 개발은 2009년쯤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08년 6월에는 레이지가 기존 게임들을 유통했던 액티비전 대신 EA를 통해 출시될 것임이 발표되어 사람들을 의아하게 했다. 연말에는 퀘이크 3의 온라인 버전인 퀘이크 라이브의 베타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3.2. 제니맥스 미디어 산하
2009년 6월 제니맥스 미디어가 인수했다. 이드 소프트웨어의 존 카맥은 유통사(액티비전)가 공평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는 것과 기존의 서드파티 외주 정책으로는 자신들이 원하는 퀄리티의 게임을 선보일 수 없다는 것 등을 이유로 꼽았다. 더불어 존 카맥은 베데스다가 폴아웃 3를 세계적인 규모로 히트시킴으로써 한동안 죽어있던 폴아웃 시리즈의 프랜차이즈를 화려하게 부활시키는 것에 감명받았다고 한다. 또한 존 카맥에 따르면, 당시 이드 소프트웨어 인수의사를 밝힌 퍼블리셔로는 액티비전과 일렉트로닉 아츠가 있었는데, 그들 밑으로 들어간 다른 개발사들이 어떤 운명을 맞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콜 오브 듀티 시리즈처럼 이미 1인칭 슈팅 액션게임 프랜차이즈를 가진 계열사간 경쟁과 갈등이 불보듯 뻔하기에 그들을 택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1인칭 슈팅 액션게임 프랜차이즈를 시장에 성공시킨 적 없는 베데스다 계열사로 들어가는 것은 그런 갈등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베데스다가 제시한 '개발사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조건에도 만족했다고 한다.
제니맥스 미디어의 자본력이 더해진 후 이드 소프트웨어는 공격적인 확장을 거듭했으며, 인수 시점에 80명 정도에 불과했던 개발자가 1년 후에는 두 배인 170명 까지 불어났다. 하지만 그 개발자는 5개의 개발 부서로 분산되어 있으며, 각개 팀의 크기는 여전히 업계 평균에 비해 작은 편이다.
2011년 2월 무렵에는 빠르게 불어나는 개발자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어서 본사를 텍사스주 댈러스시에서 리차드슨으로 이전했다. 새로운 본사는 기어박스 소프트웨어와 10분 거리라는 듯. 원래 텍사스 지역이 (캘리포니아 만큼은 아니지만) 게임 개발사들이 제법 있고 상호 교류도 활발한 곳이다. 비록 지난 몇 년간 앙상블 스튜디오 등이 문을 닫고 3D 렐름은 이름만 남은 회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이드 소프트웨어, 기어박스 소프트웨어, 레트로 스튜디오 등 굵직한 스튜디오가 남아 있다. 인근 회사끼리 관계가 돈독한 편이라, 기어박스의 브라더즈 인 암즈 런칭 파티에 앙상블과 이드의 직원들이 온다거나 기어박스가 퀘이크콘의 주요 스폰서로 참여하는 등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2011년 10월에 마침내 7년 만의 신작인 레이지가 발매되었다. 그러나 게임 내·외적 문제로 많은 홍역을 앓았으며, 특히 PC에서의 심각한 기술적 문제는 그동안 PC 플랫폼에서 쌓았던 신뢰를 다 깎아먹을 정도로 큰 지탄을 받았다. 자세한 정보는 해당 항목 참고. 상업적으로는 200만 장 내외의 평범한 성적을 거뒀다.
2012년 5월에는 울펜슈타인 3D의 발매 20주년을 기념하여 에피소드 1에서부터 3까지를 HTML 5 버전으로 공식 홈페이지에 무료 공개하였고, 존 카맥이 오리지널 DOS 버전을 직접 플레이하며 울펜슈타인 3D의 개발비화를 털어놓는 동영상도 공개되었다. 해당 영상. 유튜브 계정 로그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5월 말에는 둠 3의 리마스터 버전인 BFG 에디션이 발표되었으며, 그해 10월에 발매되었다. 12월에는 레이지의 DLC인 The Scorchers가 발매되었다.
2016년 5월 13일, 마침내 둠 시리즈의 신작이 발매되었다. 관련 스토리가 적잖으므로 상세는 항목 참조.
2020년 9월 21일, 마이크로소프트가 모회사인 제니맥스 미디어를 통채로 인수하면서 이드 소프트웨어도 자연히 마이크로소프트 게임 스튜디오의 일원이 되었다.
4. 개발자
대표작인 둠과 퀘이크가 인터넷 초창기에 크게 유행했기 때문인지 회사 내의 여러가지 비화가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높은 회사 명성에 비해서 오랜 기간동안 개발자의 수가 적었기에 개개인이 유명한 측면도 있다. 퀘이크 2 개발 때는 10명 남짓했고, 둠 3조차 20명 이내였다. 창작상 견해차나 이권다툼으로 인한 해고 사건도 잘 알려져 있는데, 네 명의 창업자 중 존 카맥을 제외한 세 명이 모두 해고를 당했을 정도.
해고된 이들 중 존 로메로는 개발사 이온 스톰 설립 후 전설의 괴작 다이카타나를 내놓으며 비참하게 몰락했으며, 톰 홀은 어포지로 자리를 옮겨 라이즈 오브 더 트라이어드 및 프레이의 개발에 참여했다가 나중에 존 로메로와 함께 이온 스톰에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미술 담당이었던 에이드리언 카맥은 2004년, 둠 3 발매 직후 회사 내 이권다툼의 희생양으로 이드 소프트웨어에서 해고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공동창업주는 아니나, 유명 게임 크리에이터 중 한 명인 아메리칸 맥기도 이드 소프트웨어 출신이며, 이 양반 역시 퀘이크 2를 끝으로 해고된 후 아메리칸 맥기의 앨리스를 만들며 좀 되나 싶었더니 이후 10년 동안 각종 평작 및 졸작들을 만들며 안습의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앨리스 매드니스 리턴즈로 재기의 움직임을 보였으나 이후로 또 감감무소식이다.
설레발로 혀크레인이라고 까이는 에픽 게임즈의 마크 레인이나 제이 윌버도 이드 출신이고, 마이클 애브래쉬나 그램 디바인 등도 이드에 몸담은 바 있다. 마이클 애브래쉬는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의 프로그래머로 퀘이크 개발에 참여했고,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에 돌아와 엑스박스 사업부에서 일한 후 이쪽 계열에서 꽤나 알아주는 RAD Game Tools에서 소프트웨어 렌더러를 만들었는데, 그게 후일 인텔의 라라비 프로젝트의 기초가 되는 등 업계에서 꽤나 전설적인 프로그래머. 존 카맥이 유일하게 스승 비슷하게 생각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마이클 애브래쉬는 밸브의 게이브 뉴웰을 게임 업계에 몸담게 한 인물이기도 하며, 게이브 뉴웰은 그의 능력을 부러워하여 평생 그를 고용하고 싶어했다고 했다. 그리고 2011년에 마이클 애브래쉬가 밸브에 입사하면서 게이브 뉴웰은 그 꿈을 이뤘다. 그램 디바인은 유명한 고전 어드벤쳐 게임인 7번째 손님의 개발자로 이드 소프트웨어에서는 퀘이크 3의 리드 디자이너로 일했고, 둠 3 개발 도중에 퇴사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애플에 입사하여 한동안 게임부서 우두머리로 일했다.
둠 3 이후 한동안 회사가 크게 위축되어있던 감이 있다. 소수정예 철학의 한계에 개발상의 삽질(다크니스)이 더해지면서 이드 소프트웨어는 둠 3 이후 주요 게임을 한동안 내놓지 못했다. 퀘이크 4, 에너미 테러토리: 퀘이크 워즈 등은 레이븐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파트너 개발사의 주도로 만들어진 작품이며, 내부적으로 내놓은 게임은 모두 모바일 또는 웹 기반의 게임(퀘이크 라이브)이 전부다. 이드 소프트웨어의 근작들이 드러낸 긴 개발기간의 문제는 적은 개발자 수가 그 가장 큰 원인으로 퀘이크 3가 당시 라이벌작이라고 할 수 있었던 언리얼 토너먼트에 비해 1/3 정도의 인원으로 만들어진 것을 대표적인 예로 삼을 수 있다. 예전에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게임 개발이 복잡해지면서 터져나온 것. 레이지 개발도중 결국 한계에 부딪히고 제니맥스 미디어에 회사를 매각 후 근래의 평범한 단일 개발사와 비슷한 인원으로 확장되었다.
존 카맥이 떠난 이후에는 크라이텍에서 크라이엔진을 만들던 개발자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드는 크라이텍 출신 개발자들을 포섭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에 지사를 설립했다.
둠 리부트 개발자 명단을 통해 한국인 직원이 2명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9년 7월 19일, 이드 소프트웨어의 스튜디오 디렉터인 팀 윌리츠가 24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퇴사한다고 밝혔으나, 한 달 뒤인 8월 12일에 월드워 Z(게임)의 개발사인 세이버 인터랙티브의 CCO로 취임하였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이어서 2020년에는 이드에서 1996년부터 2013년까지 대표이사를 지낸 토드 홀렌쉐드가 세이버 인터랙티브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이드 소프트웨어의 공석 자리에 있었던 스튜디오 디렉터는 現 둠 리부트 시리즈의 총괄 프로듀서이자, 게임 디렉터인 마티 스트래튼이 신임 이드 소프트웨어 스튜디오 디렉터로 취임했음을 제니맥스 미디어의 임원진 명단 홈페이지에서 발표했다.
현재 이드 소프트웨어의 초기멤버 중 유일하게 재직중인 인물은 케빈 클라우드로, 울펜슈타인 3D부터 시작해서 2020년 둠 이터널 개발에도 참여하였다.
5. 기타
핵심 프로그래머였던 존 카맥은 한 때 PC 게임업계에서 기술적으로 큰 화두를 몰고 다녔다. 반대로 게임 디자인 면에서는 여러가지로 말이 많은 개발사로 퀘이크 3 등을 예로 들어 최소주의의 미학이라며 지켜세우는 게이머가 있는가 하면, 10여년 째 게임 디자인에 발전이 없다며 비판하는 게이머도 있었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레이지에서는 FPS에 레이싱이나 RPG 요소를 도입하기도 했다. 둠 리부트에서는 '유일한 생존자'의 공식을 깨고 콜 오브 듀티와 같은 동료의 보조를 받는 다수 vs 다수 전투 양상을 갖춘 게임이 될 것으로 보였으나... 개발 중간에 뒤집어 엎었다. 둠(2016) 참조.
소프트디스크에서 갓 독립한 회사 초창기에[4]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 첫 레벨을 PC로 포팅한 데모 프로그램을 들고 닌텐도측에 제의를 한 적이 있다.[5] 하지만 콘솔 시장에서 충분히 뽕을 뽑았는데 PC에 크게 관심없던 닌텐도는 그 제안을 거부했고, 이드 소프트웨어는 이 기술을 이용해 커맨더 킨을 만든다.
id Tech 엔진 1기 전반과 퀘이크 1 시절까지만 해도 자사 혹은 엔진 라이센스해준 게임에 도스 인스톨러로 'DEICE'라는 인스톨러 프로그램을 썼다. 이 DEICE로 압축해제되는 압축파일의 소스는 LHA 기반이었다. 도스 시절에 둠을 플레이해본 유저들이라면, 둠을 깔 때 이런 화면을 기억할 분들도 있을 것이다.
6. 작품 일람
- 초기작[7]
- 울펜슈타인 시리즈
- 울펜슈타인 3D (1992)
-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 (2001, 기획 및 개발 지원)
- 울펜슈타인: 에너미 테러토리 (2003, 기획)
- 울펜슈타인 (2009, 프로듀서)
-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 (2014, 개발 지원)[8]
- 울펜슈타인 2: 더 뉴 콜로서스 (2017, 개발 지원)
- 둠 시리즈
- 둠 (1993)
- 둠 2: 헬 온 어스 (1994)
- 둠 3 (2004)
- 둠 3: 악마의 부활 (2005, 기획 및 개발 지원)
- 둠 3: BFG 에디션 (2012)
- 둠(2016) (2016)
- 둠 VFR (2017)
- 둠 이터널 (2020)
-
-
- 서드파티 유통작
- 헤러틱 (1994, 기획)
- 헥센: 비욘드 헤러틱 (1995, 기획)
- 모바일 개발작[11]
- 둠 RPG (2005)[10]
- 오크 앤 엘브즈 (2006)
- 오크 앤 엘브즈 2 (2007)
- 울펜슈타인 RPG (2008)
- 둠 2 RPG (2009)
- 둠 리저렉션 (2009)
- 레이지 (2010)
7. 관련 항목
[1] 팀 윌리츠 퇴사 후 신임 스튜디오 디렉터로 취임했다.[2] 최고 기술 책임자.[3] 성은 같지만 존 카맥과 직접적인 혈연관계는 없다.[4] 아직 이드 소프트웨어의 이름을 달기 전, ideas from the Deep을 회사 이름으로 잠시 쓴 적이 있었다.[5] 당시에만 해도 PC에서 부드럽게 스크롤링되는 기술은 획기적인 것이었다고 한다.[6] 1988년에 출시된 첫 작품은 존 로메로의 개인 개발 게임으로서 법인을 갖추고 내놓은 것은 아니다. 고전 게임으로 잘 알려진 1990년작은 애플 2용이었던 첫 작품의 도스 포트다.[7] 커맨더 킨 시리즈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은 모두 소프트디스크에 의해 유통되었다.[8] 2015년 출시한 스탠드얼론 확장팩 울펜슈타인: 디 올드 블러드에는 이드 소프트웨어의 직원 일부가 감사 목록에 이름을 올렸으나 제작사 차원에서는 오르지 않았다.[9] 얼리 엑세스 기준[10] 존 카맥의 와이프가 설립한 파운틴헤드 엔터테인먼트에서 만든 게임이나, 존 카맥이 개발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고 후일 개발사가 이드 소프트웨어에 흡수되었다.[11] 2007년 설립된 모바일 부서. 2011년 무렵 해체된 후 개발 인력은 둠 리부트 개발팀에 흡수되었다. 오리지널 작품이 아닌 기존 게임의 포팅작은 기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