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맨(음향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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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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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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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현재
일본어: ウォークマン
영어: Walkman, Walkmen(복수형)
1. 개요
2. 세대 구분 및 발전사
2.1. 카세트 워크맨
2.1.1. 당시 사용층
2.1.2. 카세트 워크맨 기종 목록
2.2. 라디오 워크맨
2.3. MD, CD, 네트워크 워크맨
3. 관련 문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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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모델인 TPS-L2 (1979년)[1][2]

1분 7초만에 역대(1979~2019) 워크맨들을 볼 수 있는 워크맨 40주년 기념 영상.

1979년 7월 1일에 첫 발매, 세계 최초의 소형 카세트테이프 레코더 & 플레이어.[3] 2009년 기준으로 3억 8500만 대가 팔렸다. 애초에 이름부터 재플리시로 영어 문법상 성립할 수 없는 조어법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의 대명사가 되면서 이 재플리시 명칭마저 국제적으로 용인될 수 있었다.
일본의 소니가 만들었다. 워크맨의 아버지라 불리는 "쿠로키 야스오"의 회고록에 따르면 부하 연구원 중 하나가 자사 소형 녹음기를 개조해서 음악을 듣는 걸 보고 개발에 착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 출신 브라질 국적의 발명가인 안드레아스 파벨('''Andreas Pavel''', 1945~)이 1976년 스테레오 벨트라는, 지금의 워크맨과 비슷한 컨셉의 휴대용 플레이어를 만들어 소니, 필립스 등 기술력 있는 회사에게 자신의 특허를 구매하라고 권유했다가 퇴짜맞은 뒤 소니의 워크맨이 발표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다행히도 1977년부터 78년 사이에 일찌감치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일본 등에 특허를 등록해두었던 파벨은 자신의 발명품을 무단으로 베껴 상품화했다고 소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차 승소하기도 했으나 소니의 돈다발 역습과 같이 증거들이 도난당하는 사고로 인하여 패소했다.[4][5] 하지만 누군가[6]가 그를 도우면서 파벨은 패소로 인한 빚까지 갚았고 그 뒤로도 끈질기게 소니에게 소송을 제기하여 결국 2004년 소니가 백기를 들고 워크맨은 파벨이 만든 제품에서 참고했으며 그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공식 발표와 같이 그를 공동 저작권자로 인정하고 수익 어느 정도를 지급하는 것[7]으로 합의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단지 카세트 상표라고 보기엔 좀 모호한 것이, 브랜드 네임이 너무 확고해서 이후에 소니에서 제작한 '''상당수 소형 음향기기'''[8]는 다 워크맨이란 이름을 걸고 팔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카세트 플레이어를 뜻한다.
초창기에는 당연히 메이드 인 재팬이었고[9], 1980년대 후반, 1990년대에 들어서 저가형 기종은 말레이시아[10]이나 중국산[11]으로 전환되었다. 중상급 및 고급 기종이 주로 일본산이었던 시절은 카세트 워크맨 기준으로 1999년까지. 2000년부터는 말레이시아제로 전환되었으며, 2005년경에 다시 중국산으로 전환되었다. 네트워크 워크맨(MP3 플레이어)과 CDP는 2000년초까지, 미니 디스크는 2004년까지 일본산이었으며(저가형 제외), 그 이후에는 말레이시아, 중국에서 생산.
2019년에 출시 40주년을 맞는다.

2. 세대 구분 및 발전사


1세대(카세트테이프 재생) - 1.5세대(카세트 녹음·재생) - 2세대(CDP) - 2.5세대[12](미니 디스크) - 3세대(MP3) - 3.5세대(MP3 + 비디오 재생) - 4세대 (안드로이드 기반 DAP)이다.
워크맨 브랜드로 휴대폰도 판매한 적 있었다. 소니 에릭슨 때는 피처폰과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거쳐 워크맨 특화 기종을 별도로 발매했지만, 엑스페리아 TX에서 기존의 뮤직 앱이 워크맨으로 리네이밍 되면서 굳이 출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듯 2011년의 ' Live with walkman'을 마지막으로 출시가 되지않고 있다.

2.1. 카세트 워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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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모델은 WM-A602.
시연 당시 가격은 3.3만'''엔'''으로 상당한 고가의 기기였지만[13] 이후 다양한 경쟁제품의 등장으로 인해 가격이 싸졌다. 워크맨이 세상에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해서 당시 LP에 밀리는 감이 있었던 카세트테이프를 넘사벽의 위치까지 끌어 올렸다. 그 외에도 2극 이어폰, 4극 리모컨, 소형 스테레오 마이크, 껌전지등 소형기기의 여러 표준을 만들어냈다. 또한, '''들고다니면서 집 밖에서 음악을 들을수 있다는''' 사람의 행동양식을 새로 만들면서 음악의 대중화와 대중음악의 폭발적인 수요증가를 끌어내고 대중음악의 양적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초창기에는 AA사이즈 건전지를 사용했다. 그런데 워크맨의 크기를 조금씩 줄이던 도중 AA건전지의 부피때문에 더 이상의 사이즈 축소가 불가능한 상황까지 왔다.[14] 고심한 끝에 소니는 아예 자기들이 건전지를 만들어 쓰게된다. 이것이 소니타입 건전지, 속칭 '껌전지'라는 물건의 탄생이다. 껌전지는 얇으면서도 AA와 동급 그 이상의 성능을 보여줘 많은 기종에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카세트 재생전용이었으나 후에는 라디오, 녹음과 같은 여러 기능이 추가되었으며 기기두께도 얇아졌다.[15] 와우앤플래터 현상을 휴대용으로서 최소화시킨 최고급 프로용 카세트 워크맨[16]까지 나왔다. 1998년에는 두께를 최소화하고 건전지 수명을 최대로 늘린 충공깽스런 기종(WM-EX9)가 나온 적이 있다. 진정 음질을 고려한 마지막 카세트워크맨은 2000년에 출시된 WM-EX2000. 무산소 부속을 쓴거부터... 그 이후에는 음질보다는 어학기능(속도조절 기능)이 추가된 기종이 발매되었다. 마지막 로직 데크형 기종은 2003년에 나온 WM-FX700, WM-GX788과 2004년에 나온 WM-EX651이었다. WM-FX290은 2012년말에 미국에서 아예 판매 중지되었다.
라디오 기능 탑재 기종의 경우 라디오 수신 성능이 생각보다 우수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WM-GX688은 FM성능이 똥망인 것으로 악명 높았으며, WM-FX700/FX890은 FM성능은 쓸만한 수준이었으나 AM 감도가 수준 미달이었다. 사실 소니 라디오의 명성과 다르게, 소니 워크맨은 소니제 수신칩보다는 도시바제 수신칩을 사용하여 수신 성능은 그저 그랬다. (라디오 수신 성능은 경쟁사이던 내쇼날 / 파나소닉 쪽이 더 나았다.)
2010년 10월 22일 소니가 카세트 워크맨의 생산 중지 및 재고 소진 후 판매 중지를 선언하면서 워크맨의 상징인 카세트 워크맨은 출시 3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다만 이는 일본에서만 해당되는 것으로, 중국에서 위탁생산된 제품[17]을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2012년 말까지 발매하기도 하였다. 국내에선 2013년 초반까지는 찍찍이 시리즈로 명맥을 유지했'''었'''다. 2010년 당시 소니코리아 측에서는 어학용으로 카세트 장치의 수요가 나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소니는 2013년 1월부로 카세트 찍찍이(TCM 시리즈)의 생산을 종료했다.''' '''이로써 카세트 워크맨의 계보는 완전히 끊기게 되었다.''' 이는 최근 소니의 잇따른 경영난과 한국을 비롯한 카세트 수요 국가에서의 수요 감소 등이 작용한 듯.
2019년 현재 소니 워크맨은 MP3P, DAP 위주로 발매 중이다.
소니의 후기형 카세트 워크맨 기종들은 타사 제품에 비해 수리에 용이한 설계로 알려져 있다.[18]

2.1.1. 당시 사용층


한국의 경우, 카세트 워크맨은 1980, 90년대에 청소년,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으며 파나소닉, 아이와와 같은 일본 업체들과 삼성전자, 금성사(현 LG전자), 대우전자(현 위니아전자)와 같은 국내 업체들에서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 유사상품을 경쟁적으로 발매하였다.
삼성은 '마이마이', LG는 '아하'[19], 대우는 '요요'라는 상표명으로 유명했다. 1990년대, 늦어도 2000년대 초반[20]까지만 해도 중고딩들의 대표적인 선물로 꼽혔다. 2003~4년을 기점으로 MP3 플레이어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자[21] 카세트 워크맨의 수요는 급속히 떨어졌으며, 국내 업체들은 2003년경 일찌감치 생산을 전면 중단하였고 파나소닉도 2000년대 중반 이후로 단 1개의 저가형 기종[22]을 제외하고 싸그리 단종시켰으며, 그 1개 기종마저도 2010년경에 단종된 듯.
1990년 이후 출생자는 카세트 워크맨의 존재를 아예 모르거나 부모나 선배의 입을 통해 토막으로 전해들은 것 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23] 1980년대 후반 출생자만 하더라도 유년, 학창시절에 워크맨을 직접 써보거나 적어도 어린시절에 중고등학생 친척이나 형이 쓰던 워크맨을 직접 본 적은 있었다.[24] 이 때문에 카세트 워크맨은 1980년대생까지의 세대와 1990년 이후에 출생한 세대를 구분하는 상징이기도 하다.[25] 정말 특이한 케이스로 2000년대생이(...) 물려받아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다. 90년대 말 이후 출생 세대들은 마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주인공이 끼고 다니는걸 보고 처음 안 경우도 있는 듯. 정확히는 2010년대생 이후부터는 아예 모를 가능성이 크며, 90년대생과 2000년대 초반생(2000~2001)까지는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동작법을 대강 알지만, 중반생(2004년생이후부터~)는 작동법만 알고 본 기억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90년대생의 경우 선배인 80년대 후반생(87~89년생)이 쓰던 걸 보고 물려받아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2.1.2. 카세트 워크맨 기종 목록


소니제 워크맨은 워크맨/카세트 기종 목록 문서 참조.

2.2. 라디오 워크맨


소니의 일부 휴대용 라디오에 워크맨 브랜드가 붙여져서 발매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SRF 시리즈.
소니/라디오 문서 참조.

2.3. MD, CD, 네트워크 워크맨


1984년 처음으로 휴대용 CDP 발매를 하였는데, '디스크맨'이라고 명명하였다.[26] 이후 개량을 거듭하여 이동시 흔들림에도 정상적인 음악 재생이 가능하도록 하였으며[27] 두께도 얇아졌다. 이후 'CD 워크맨'으로 개칭되었고, 기합급 기종인 E01[28]이 1998년에 발매되었다. 이후 ATRAC 및 MP3 포맷 재생기능까지 추가되었고, CDP 시장이 2000년대 중후반부터 죽어가자 마지막 기종인 D-NE241(2010년 일본 출시)을 끝으로 2014년에 단종.
비디오 CD를 재생할 수 있는 기종과 휴대용 DAT 녹음장치인 'DAT 워크맨'[29], 이른바 '워치맨'이라고 하는 휴대용 아날로그 TV까지 발매한 적 있다.
CD를 축소화한 MD를 1992년에 처음 출시하였다. 당시 기술로 CD보다 작은 디스크에 비압축 디지털음을 수록할 수 없기에 ATRAC이라는 자체 개발 코덱을 채용하였다. 이후 개량을 거듭하였고, 최후의 기종으로 MZ-RH1를 2006년경에 출시하였는데, 2011년부로 생산 중지되어 MD 워크맨의 명백이 끊긴 상태. 자세한 내용은 미니 디스크 문서 참조.
하지만 MD 시장이 점점 줄어들자 소니는 MP3P도 제작하게 되는데, MP3P 시장에서는 그리 힘을 못 쓴 것이, 처음 네트워크 워크맨(MP3P)를 제작할당시 아이리버처럼 바로 MP3 파일을 넣는게 아닌 MD용 포맷인 ATRAC으로 변환해서 넣어야 했다(…). 지금이야 바로 MP3 파일을 넣는것이 가능하지만 워크맨의 아이튠즈격 프로그램인 "소닉 스테이지"가 자잘한 버그, 발적화 등 사용에 애로사항이 꽃피는 물건인 관계로 영 힘을 못쓰긴 매한가지이다. 그래도 소니의 기술력이 어디가지는 않았는지 디자인이 향수병을 떠올릴만큼 예뻤고 배터리 성능이 매우 좋았다.
실제로 특유의 가격정책과 함께 소니 MP3P의 주요 부진 이유로 꼽히는 것이 이 소닉 스테이지였는데, 뭐 아주 칭찬할 만한 점이 없지는 않아서, 딱 두 가지 쓸만한 점이라고는 ATRAC 포맷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과, 소니 뮤직의 막강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하는 무려 '''자동 태깅기능'''. 버튼 하나만 누르면 인터넷상의 음반 DB와 대조해 커버아트를 포함한 음반정보를 자동으로 정리해준다.[30] 2008년에 와서야 비로소 해외 수출판에 소닉 스테이지의 연동기능을 삭제, 드래그 앤 드롭으로 전송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일본 내수판에는서는 소닉 스테이지를 고집하고 있고, 꾸준히 버젼업도 되고있다고(...)
다만 소닉 스테이지 연동이 없어지면서 ATRAC[31] 포맷 지원기능도 빠지게 되어, 이를 아쉬워하는 골수 소빠들은 일부러 일본 내수판을 구해쓰기도 한다.
그렇지만 네트워크 워크맨은 아이팟과 비교하면 신기술을 많이 적용하고 있다. 초창기 네트워크 워크맨은 '''메모리 스틱 대응''' 제품이었으며(MS시리즈) 곧이어 등장한 HD시리즈는 워크맨 최초의 '''하드디스크형 MP3P'''이었다.[32] 2006년엔 S시리즈라는 특성화 모델이 나왔는데 아이팟이 이제서야 지원하는 G센서 대응매체, 즉 스포츠 매니징 시스템이 탑재된 제품이다. 또한 2007~2010년경의 주력급 제품은 '이어폰외장 마이크에서 주변소음을 캐치하여 반대파형의 상쇄음을 '음원에 섞어 주변소음을 죽이는 '''노이즈 캔슬러'''라는 쌈빡한 기능이 기본으로 들어가 있었다.[33] 이것 덕분에 소니 MP3P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골수팬들도 있을 정도.[34] 한동안 해외 발매 기종은 노이즈 캔슬링이 죄다 빠진 상태에서 출시했었다.
기함급 기종인 X1000 시리즈(2009)도 있으며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적으로 음악재생에 최적화가 되어있으며 음감용으로는 그만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비교대상이 되는 아이팟 터치에 비해 작은 액정과 근소하게 떨어지는 인터넷 페이지 로딩 속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소니의 비싼 가격 정책 때문에 그다지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자세한 내용은 워크맨/MP3P 문서 참조.

3. 관련 문서


[1]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서 스타로드가 가지고 있던 그 모델.[2] 여담으로는 TPS-L2보다 더 작은 모델이 있다고 한다. 1968 Sony Walkman[3] 소니제 MP3P에 대해서는 워크맨/MP3P 문서 참조.[4] 이원복현대문명진단에 나오는 내용은 1차 패소한 것(1996년 패소)만 나왔다.[5]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딱 증거물만 훔쳐갔다고 한다.[6] 보나마나 경쟁사 업체가 파벨을 지원했다는 게 정설. 소니는 이를 갈았지만 파벨은 계속 침묵을 지키고 어느 업체인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이나 전세계에 많은 경쟁업체들이 있다보니.[7] 정확한 비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의하면 로열티 및 25년에 걸친 정신적 피해보상금으로 대략 8천만 달러에서 1억 달러 이상 금액과 같이 추가 로열티 매해 지급과 소니 주식 일부의 양도로 추정했다.[8] 대부분의 라디오와 IC레코더는 제외[9] 2006년에 폐쇄된 소니 EMCS 직영 사이타마 공장의 생산품.[10] 소니 직영 말레이시아 현지 공장의 생산품. 이 공장은 현재에도 소니 MP3 플레이어를 생산하고 있다. 1990년대에 발매된 워크맨 중 싸구려티나는 플라스틱 재질에, 두껍고 기계식 메커니즘인 기종은 거의 말레이시아제라고 보면 된다.[11] 중국 OEM 생산품.[12] MD가 출시하여 나름 흥행하던 시점이 CDP의 전성기와 맞물렸고, CDP보다 고가의 제품이고 녹음 등의 번거로움으로 CDP보다는 대중적 인기가 다소 주춤한 실정이었다. 결국 MP3P가 발달하면서 CDP와 함께 자연스레 사장...[13] 당시 소니 창립 33주년이었기에 이에 맞춰 가격을 2/3수준 절감하였다.[14] AA건전지 두께는 워크맨 본체 두께와 비슷하다.[15] 그래도 장시간 듣기엔 용량이 부족했고, 방전되면 대책이 없었기에 AA 건전지를 외장으로 붙일수 있는 건전지 확장 팩이 있었다. 내장 껌전지가 떨어지면 확장팩 안에 충전식 니카드 전지든, 알카라인 전지든 망간 전지든 사서 끼우면 되었다. 당시엔 용량이 크고 오래 가는 충전식 리튬이온 전지는 상용화되기 전.[16] WM-D6C, WM-DD9 등의 DD타입 모델이 이에 해당한다.[17] WM-FX290 모델.[18] 후기형 올인원 기종인 WM-GX688 기준, 버튼 조작 부 쪽 케이스 나사 5개만 풀면 열리며 바로 벨트를 장착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와 비슷한 기종들도 마찬가지로 벨트 교체를 위해 PCB 납땜 제거를 할 필요가 없다.[19] 90년대 후반에는 아하프리로 이름을 바꾸고 1997년경 LG전자에서 수 억원의 개발비를 들여 아하프리 제품에 쓰일 모터 제어용 초저전력 IC를 개발한 적이 있다.[20]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카세트 워크맨을 쓰던 중고딩은 꽤 있었다. 휴대용 CDP는 부피문제가 있었으며 테이프와 CD음반의 가격차가 아직도 상당했기 때문에 돈을 아끼기 위해 사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MP3 플레이어는 비쌌지만(20만원 이상) 용량은 턱 없이 작았기(128MB 이하) 때문. 64MB 짜리 MP3 플레이어를 살 돈이면 당시 플래그십 기종이었던 소니 WM-GX688을 사고도 남았다. 여담으로 당시 중고딩들은 1980년대 후반 출생 세대까지다. 다만 강남구 같은 일부 지역은 MP3P, CDP, MD 같은 기기가 일찍 보급되었으므로 거기에는 지역차가 다수 존재한다.[21] 이 즈음부터 MP3 플레이어 가격이 내려가고 용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국 기준으로, 그 시절의 중고등학생들은 워크맨 대신에 MP3 플레이어(특히 아이리버 프리즘 시리즈)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22] RQ-CW05로 추정.[23] 드물게 부모님이나 친척이 쓰던 고장난 워크맨이 집에 굴러다닌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24] 그들이 고3이었을 2006년도만 하더라도 EBS 파이널 모의고사 듣기 내용이 오로지 카세트 테이프로만 제공되었다. 그 이후로는 인터넷 MP3 서비스로 제공. [25] 하지만 꼭 그런것만은 아니다. 90년대 초반 출생자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 잠깐 워크맨을 써봤을 사람도 있기는 할 것이다. 이때에도 테이프/CD는 꾸준히 들었기 때문이다. 이때만해도 MP3나 휴대용 CDP 같은 기기는 많이 비쌌으며 당시 조기 영어교육 일풍으로 윤선생같은 개인 영어교습이 유행이 막 시작될 때였는데 이때 영어 발음이 녹음된 교재로 테이프를 정말 많이 사용했으며, 일부 회사의 경우 워크맨은 아니었지만 커다란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기계를 주기도 했었다.[26] 모델명은 D-50(D-5).[27] 초기에는 ESP, 후기에는 G-Protection이라고 불린다.[28] 소니의 휴대용 CDP 중에 특이하게 CD를 본체 측면에 끼워 넣는 방식을 채택한 모델이다.[29] 2005년경 생산 중단.[30] 소니 뮤직의 음반이 아니더라도 검색은 된다. 정확도가 조금 떨어져서 수작업으로 일일이 찾아 대조해봐야 하는 게 번거로워서 그렇지(...)[31] 소닉 스테이지 프로그램과 구형 소니 MP3P에서만 인식하는 소니의 자체개발 포맷. 압축손실포맷 중 가장 손실률이 적다는 평가를 받는 물건 중 하나로, 실제 ATRAC 64kb가 MP3 128~192kb와 동급의 체감음질을 보여줄 정도. 소니 음향기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데...근데 이거 쓸려면 소닉 스테이지 써야 하잖아? 안될거야 아마(...)[32] 아이팟은 2001년도에 하드디스크형으로 나왔다. 아마도 최초인듯.[33] 이 기능이 처음으로 들어간 기종은 NW-S700F(일명 바퀴)이다.[34] 전용 이어폰과 외장형 NC모듈을 따로 팔기도 하지만 적잖은 가격의 부담(소니 MP3가 동급기보다 몇만원씩 비싼 주요 원인?)+ 외장모듈 때문에 생기는 번잡함 때문에 반응은 영 시원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