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 패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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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소드마스터 + 절륜왕 설
1. 개요
2. 유래
3. 상세
3.1. 의외의 무력?
4. 기타


1. 개요


삼국지의 진정한 무력 최강은 바로 유비이며, 삼국지 상에 벌어지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오직 '''유비에게 두들겨 맞아서''' 혹은 '''유비에게 맞기 싫어서''' 일어난 일이라는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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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 드라마 영상[2]

관우: 이 남자, 얕볼 수 없는 녀석이다.

장비: 이 녀석, 상당한 실력이로군.

(유비, 대치중인 관우와 장비를 '''힘으로 갈라놓은 후''')

유비: 두 분 모두 훌륭하신 무예를 지니고 계십니다, 감복하였습니다.

관우: 아닙니다,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2. 유래


시작은 디시인사이드삼국지 갤러리에서 시작된 우스갯소리를 한 유저가 엠엘비파크에 올린 게 시작으로, 이후 다른 사이트로 많이 퍼져나갔다.

3. 상세


딱 보면 알겠지만 당연히 그냥 우스갯소리다. 진지하게 받아들일 게 못 된다. 처음부터 정사 삼국지가 아니라 '삼국지연의'에 근거한다고 쓰여 있기도 하다. 그러나 중간에 작정하고 낚기 위해서 '''무예도보통지''' 짤방을 대거 투입하여 이른바 "기마쌍검술"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삼국지와 전혀 관계 없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면 중간 부분까지는 낚이는 사람이 꽤나 많다. 다만 손상향이 맛을 알았네 어쩌네 하면서 정력 드립이 나오는 부분부터는 전형적인 개드립.[3]
여하간 전형적인 개드립임에도 불구, 수많은 삼국지 빠들로 하여금 '''반박불가'''라고 외치게 만든 희대의 개그 이론이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유비가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통설을 한 번 반대로 꼰 개그로, 유비에게 일종의 갭 모에를 부여한다.

3.1. 의외의 무력?


유비의 이미지가 흔히 '주위 사람들이 매우 뛰어나며 인덕만 아는 군주'로 알려져있지만 정사 등을 세세히 살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사의 저자 진수가 유비의 무력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없지만, 조조나 유비는 전선에서 직접 병력을 지휘한 경력이 오랜 군주들이니 최소한의 완력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4] 당대의 인간흉기들이자 알아주는 자존심을 가진 관우와 장비가 별볼일이 없는 유비를 깍듯이 모셨을 리 없다. 그 둘이 인정할만큼 싸움실력을 갖췄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연의를 통해 제갈량의 공으로 알려진 하후돈의 대군을 격파한 것도 사실은 유비의 작품이며, 조조와 달리 유비는 입촉 전까지 고달프게 전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닐 일이 많았기 때문에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동생들에 군사 잘 만나 인생 얻어걸린, 인덕밖에 모르는 바보는 아니다.''' 국가의 기틀이 다져지기 전까지 조조의 세력이 체계적인 관료제 국가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면, 유비의 세력은 인의를 강조한 협객 집단에 가까웠다는 점도 참고할만하다.
더군다나 정말로 쌍검을 사용했다면 유비의 무예가 상당한 수준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전란의 시대에는 일신의 무력도 생존에 중요한 요소인데다 이름을 떨치기 위해서 출사를 하려면 누구나 검술이나 기마술같은 무술을 열심히 수련했다. 게다가 당시엔 등자도 없거나 불완전한 시대였는데,[5] 말 타고 쌍검을 휘두른다는 건 진짜 어지간한 솜씨론 죽기 딱 좋다. 심지어 유비는 양손이 무릎까지 닿을 정도로 팔이 길었기[6] 때문에 공격 리치도 더 길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육지탄 고사가 전해지듯이 유비는 전쟁터에 나와 말위에서 용감히 싸웠다. 애초에 40대 가까이 되어도 자기기반 없었다는 놈이 전쟁터에서 가만히 있으면 그걸 누가 따를까. 관우나 장비, 조운이 일종의 돌격대장이었다치면 '''유비는 전쟁터 한복판에서 졸병들을 지휘하는 전두지휘관'''[7]스런 묘사가 많은데[8], 무예없이 이게 가능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어릴 적 부터 호걸들을 친구로 사귀고 같이 사냥을 즐겼으니 기마술과 궁술도 익혔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으며,[9] 수많은 전투에서 패해서 달아났지만 정작 목숨을 잃거나 포로로 잡힌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으로 보아서 단순히 도망을 잘 친다기보다는 평균이상의 무력은 갖추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탑승자를 죽인다는 적로 일화도 다른사람들이 보는 눈이없어서 명마를 폄하했다가 아니라 '''성격 더러운 적로도 제대로 다룰 정도로 유비가 기마술이 뛰어나서'''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유명한 맹장조차 전장에서 붙잡혀 포로가 되거나 난전 속에서 전사하는 일이 다반사인 삼국지에서, 유비의 무용은 결코 얕볼 수 없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실제 역사자료에서 유자평이 유비의 무력을 인정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야사에서도 탁군에서 의용군을 일으키기 전에 관우와 장비가 서로 시비가 붙자 유비가 완력으로 뜯어말렸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무예와 용력이 출중했던 것 같다.
실제 유비의 검술은 고응법이라고 하여 명나라 가정제 시절까지 5대 검법의 하나로 이어진다. 출전은 명나라 대의 장수이자 군사가인 하량신(何良臣)의 저서 《진기(陣紀)》인데 '변장자의 분교법, 왕취의 기락법, 유선주(유비)의 고응법, 마명의 섬전법, 마초의 출수법 등 오가의 검이 일반적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아울러 주유가 유비를 무력화하고 관우와 장비를 자기 수하로 삼아 천하이분을 완성시키는 발판으로 삼겠다는 이야기를 손권에게 건의할 때 '유비는 용맹하고 영웅의 자태를 갖췄다.'고 평한다.
이 때문인지 삼국지 시리즈(12를 기점으로), 삼국군영전 등 적지 않은 게임들이 유비의 무력을 나쁘지 않은 수준(일반 무관급 수준은 된다. 또한 일부 시리즈에선 아이템 보정으로 무력 80대를 찍는 경우도 있다.)으로 책정하거나 전투 관련 특기들을 괜찮게 부여한다.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는 1~4편까지는 오히려 자체 성능이 아우들보다 강했다. 이후 시리즈에서는 아우들이 더 강하게 성능이 책정됐지만 4편까지는 빠른 공속과 전체적으로 좋은 모션의 시너지로 강캐에서 최강캐 라인에 있었다. 다만, 2, 3편의 유니크 무기는 부실한 효과를 보유하고 있어서 그 좋은 성능을 까먹고 있다. 4편은 그래도 괜찮게 나와서 좋은 모션을 잘 발휘하고 있다. 이후 시리즈에서는 아우들 성능이 큰형님보다 높게 나온다.
토탈 워: 삼국에서는 장수 유형이 지휘관으로 나오지만 자체적인 전투력이 클론 장수들보다 좀 더 괜찮게 부여됐다. 상성만 잘 맞으면 장수끼리 싸워도 잘 이기지만 혼자서 진삼국무쌍 찍겠다고 설치지말고 아우들과 연계하자.
84부작 삼국지 이후 실로 오랜만에 중국에서 다시 제작 방영된 삼국지 관련 드라마 삼국에서 유비가 진짜 패왕스런 모습을 자주 보여줌에 따라 많은 촉빠들이 만세를 외치고 있다. 특히 검술이 예사롭지 않은데 당연히 기본적인 완력은 관우나 장비에 못 미치지만[10] 검의 정교함은 웬만한 명장 못지 않다.[11] 이를테면 여포와의 대결에서 관우의 청룡도가 여포를 아작내려는 순간 그걸 밀쳐내고, 장비가 장팔사모로 여포를 꿰 뚫으려는 순간 장비의 사모도 밀쳐냈다. 다만 이건 여포를 설득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4. 기타


더 병맛으로 나가는 자매품으로는 "애당초 유관장 모두가 깡패여서 그러했다"는 유관장 갱스터설과 "사실 유비가 예쁜 엘프였기 때문에 그렇게 뭇 영웅호걸들을 이끌고 다녔다"는 유비 엘프설이 있다.[12][13] 근데 유비 일행은 협객.. 그러니까 그 시절 조직폭력배 비스무리한 거였으니 갱스터설도 어느 정도는 맞을지도 모른다(...).[14] 또한 조조 여자설, 관우 코로나 19 최초 슈퍼 전파자(...)[15]라는 병맛 설도 존재한다.
히토리쾌락 히스토리에에서 유비 갸루 여고생 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개그지만.
비슷한 유형의 개드립으로 예수 갱스터설도 있다.

[1] 신삼국에서 유비가 손부인과 칼싸움을 하는 장면에서 나온 대사. 손부인 시점이며, 합성이 아니라 실제로 나온 대사이다. [2] 영상은 일본 더빙판이다.[3] 다만 또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건 유비가 결혼 초창기에 손부인이 방에 무기들을 모아놓는다거나 시녀에게 칼차고 다니게 한다거나 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묘사도 있기 때문이다. 정사에선 끝까지 부부관계가 순탄치 않았다고 하고, 연의에선 금슬이 좋았다고 묘사는 하지만, 결혼 초창기에 관한 부분을 보면 '''연의나 정사나 공통적으로 초창기에 성격차이를 보였다'''는 묘사 때문이다. 일단 연의에선 잔소리 한번으로 그만뒀다고는 하지만, 연의의 묘사를 벗어나면 부부싸움도 상상해 볼 수 있는지라. 애초에 원본에서도 가설1과 가설2로 나누어 설명한다. [4] 조조는 직접 커다란 개를 때려잡거나 혼자 수십마리 꿩을 사냥했다는 언급이나 거병 초창기 때 단양병(서주 단양군 출신 병사들의 명칭)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직접 수십 명을 베어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지휘관으로서 역량은 유비와 조조에 미치지 못하지만 손권은 사냥 때 직접 맹수들을 상대하며 때려잡는 모습이 있고, 합비 공방전에서도 직접 퇴각하는 아군 후열에 남아 싸우자 설마 손권이 직접 퇴로를 막을 거라고 생각 못한 장료가 나중에 항복한 오나라 장수를 보고 "(용모를 설명한 후)이렇게 생긴 장수가 굉장히 잘 싸우던데 그게 누구요?"라고 묻자 그 항장이 "그게 손권입니다." 대답하자 벙쪘다가 악진과 뒷북 추격을 했으나 놓쳤다고 기록됐다. 유비는 이 정도의 무용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으나 사이가 나쁜 독우를 직접 매질했다는 것을 통해 무예나 완력은 기본적으로 갖췄음을 추정할 수 있다.[5]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중국의 등자 유물이 서진 시대의 것이다. 다만 현재 남아있지는 않다지만 가까운 시대이니 삼국시대에는 원시적인 등자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높다.[6] 팔이 길다는 표현은 궁술 등 무예가 뛰어난 사람들에게 흔히 쓰는 표현이다. 장료도 손권을 가리켜 팔이 길고 활을 잘 쏜다 했고, 학소도 같은 언급이 나온다. 그런데, 유비의 외모가 팔이 길고 귀가 크다는 건 정사에서도 나오는 사실이다.[7] 흔히 생각하는 후방에서 모든 전황을 꿰뚫어보고 지휘하는 역할은 제갈공명의 포지션이었다. 연의에서는 물론이고 정사에서도 제갈공명은 보급망과 진격로를 계획하며 후방에서 기다렸다.[8] 예를들면 황건적의 난이나 동탁 토벌전 등에서 디테일하게 묘사된다.[9] 연의에서 헌제 일행과 사냥할 때 활로 짐승을 맞춘 일이 있다.[10] 이 둘은 중국 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인간흉기로 비교대상이 아니다.[11] 보통 삼국지를 다루는 매체에서는 유비가 등장하기 전까지 관우와 장비가 여포와 호각으로 싸우다가 유비가 가세하자 그제서야 우위를 점하지만, 삼국에서는 이미 관우와 장비 둘만으로 여포를 아작낼 수 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가끔 유튜브 댓글에는 유비가 모든 걸 망쳤다는 글도 보인다. 실제로는 유비가 가세하자 유비가 딱 한번 위험에 처했을 뿐 손쉽게 여포를 발라버렸다.[12] 후자에 경우 토탈 워: 삼국에서 유비 세력의 고유 병종이 익주 궁병이라서 유비는 우드 엘프라는 개그도 나온다.[13] 한편 이 엘프설을 다소 진지하게 접근한 그림도 나왔다. # 또한 삼국지 유튜버 삼칠이는 유비를 엘프로 그린다(...)[14] 그러나 겉으로만 의리 타령을 하지 실제로는 누구보다도 의리없는 족속들이 조폭들인 반면 유비 세력은 의를 진짜로 중시하는 동시에 민간인들을 괴롭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조폭과 똑같이 취급하는 건 억울한 부분. 협객과 조폭은 다르다.[15] 관우가 지키던 형주가 바로 코로나 19 최초 발생지역인 우한이며 관우를 만났거나 관우와 관련된 자들중에서 병으로 죽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