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성전 정화
1. 개요
Cleansing of the Temple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일화. 공관복음서에서는 이 사건을 예수의 죽음의 원인이 된 사건으로 서술하나, 요한복음서에서는 상당히 초반에 나오는 여러 일화 중 하나로 묘사된다.이 뱀 같은 자들아, 독사의 족속들아! 너희가 지옥의 형벌을 어떻게 피하랴?
2. 원문
3. 상세
예수가 12제자와 함께 과월절(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돌아보다가 헤롯의 성전에 들어섰다. 예수는 성전 안에서 방문객을 상대하는 환전상과 상인들이 넘쳐나는 것을 보고 극도로 노하여, 손수 나서서 그들을 채찍으로 벼에서 이삭이 터지듯이 구타하여 내쫓아 성전을 정화했다는 내용이다. 언제나 사랑과 평화를 설파하며 악마가 와도 타일러 보내던 예수가 성경에서 유일하게 폭력을 사용하는 장면이다.
이어서 예수는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헤롯의 성전은 벽돌 하나하나에 금박을 입혀 엄청나게 화려하게 지었기 때문에, 후일 금박을 벗기기 위해 돌 하나하나에 일일이 달라붙은 결과 글자 그대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박살났고, 성전의 유일한 흔적이 바로 통곡의 벽이다.[1]
요한복음을 보면 유대인들이 이 일을 보고 "이런 일을 행하다니, 무슨 기적을 보여줄 것이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당시 유대인의 관념상,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신과 직접 연관된 선지자 뿐이었으므로, 즉 이 말은 "네가 선지자라도 되느냐?"라며 비꼬는 것과 다름없었다.
흔히 공관복음이라고 하는 예수의 생애를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기록한 마태오의 복음서, 마르코의 복음서, 루가의 복음서들과, 이들과는 많은 점에서 구분되는 요한의 복음서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야기이다.
3.1. 해설
예수는 스스로 종교적 경신행위들로부터 자유로웠으며, 또한 제자들의 경신행위에 대해서도 마음을 쓰지 않았다. 예수는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경배대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예수는 종교적 의식(儀式)으로부터 해방되어 있었고, 그의 제자들도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랬다. 예수가 예배의식을 행하였다는 사실은 복음서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성전에 갔을 때도, 그는 말씀을 선포하고 장사꾼들을 내쫓았을 뿐이다. 그가 성전에 간 것은 희생제사를 바치기 위해서도 아니고, 성스런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음송(吟誦)기도를 바치기 위함도 아니었다. 예수는 자신의 소위, 활동무대로서 성전을 이용하였다. 성전은 군중들이 모여드는 장소였다. 예수에게 있어서 성전은 파괴될 수 있는 것이었다(마르13:2). 왜냐하면 성전은 새로운 계약의 성취를 위해 아무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세 콤블린, 나자렛 예수 중에서
일반인들에게 피상적으로 알려진 부분이 많아, 지나치게 과장되었을뿐더러 현대의 가치관을 멋대로 투영하는 해석을 많이 당하는 일화이기도 하다....우리는 우리가 가진 현대적 선입견들로 1세기를 해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흔히 예수가 대제사장 계급에서 일어난 타락에 대해 항의한 것이라는 가설 역시 문제가 많다. 또한 성전의 제사장들이 희생 동물 판매에 대한 독점권을 누리고 있었다는 것과, 그들이 금전 거래 시 한쪽에 치우친 방법을 사용했다는 주장도 자주 제기되곤 하는데, 이는 분명 가능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제사장 계급이 대체로 부패했었다는 고대의 증거는 없다. 또한 예수의 그러한 항의가 이곳 외에 그가 가르친 내용에서 중요하게 드러난 경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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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것은 특별히 부패한 일이 아니라 지중해권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성전 앞마당의 장사판은 성전의 기능을 보조하는데 필수적인 부분이었고, 법적으로 허용된 일이었을 뿐더러 많은 평범한 예루살렘 시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 기대는 경제적으로 필수적인 곳이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성전 앞마당 시장을 뒤엎는 것은 단순히 부패한 상인들을 밀어냈다고 이해하면 안되고 성전의 기능 자체를 정지 시키는, 즉 요한복음서 본문에서도 말하듯 '성전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을 상징한다.
비록 예수가 스스로 메시아적 사명을 가졌느냐, 아니면 그저 예언자적 사명을 가졌느나, 그도 아니면 사회개혁가적 사명을 지녔느냐는 오랜 논란거리지만, 하여간 성경의 증언들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예수는 유대교적 제의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등 제의가 아닌 기도를 통한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서 신과 연결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요한 복음서에서는 이 성전 정화 사건에서 예수가 '성전을 헐면 내가 사흘만에 다시 세울 것' 이라는 발언을 했다고 서술함으로, 예수의 부활을 암시하는 동시에 예수가 새로운 성전의 역할을 맡는 존재임을 설파하고 있다. 즉, 적어도 요한 본문만으로 보면 예수의 행동은 사회개혁적이거나 예언자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메시아, 즉 신과 인간의 관계를 중계하는 존재로써 모습을 더 강조하는 것인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예수의 성전 정화가 사회개혁가, 예언자적 성격이 없는 사건일수는 없다. 예수는 애초부터 그 생애에서 지속적으로 유대교의 의례가 사회 하층민들을 소외시키고 착취한다는 현실을 주목하고서 지속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비록 성전의 장사판이 불법적인 것이나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라고 해도, 예루살렘 성전 시스템은 그 자체로 수 많은 유대인들을 착취하는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 전국의 유대인은 물론이고 해외에 퍼진 유대인 디아스포라에서도 많은 유대인들은 성전을 향해서 제례를 올리기 위해 모여들었다.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 당시의 로마 제국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당시의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초상이 새겨진 동전이었다. 성직자들은 해당 화폐를 사용하는 것은 율법으로 금지된 우상숭배이니, 정결한 성전 내부에서는 사용하면 안 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2] 그래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후술하듯이 예물을 구입하는 데 쓸 수 있는, 로마 황제의 초상이 없는 대성전 전용 특별 화폐[3] 를 만들어서 성전을 방문하려는 자들을 대상으로 환전을 했다. 환전하는 과정에서 환율을 부당하게 올려 폭리를 취했는데, 학자들의 분석으로는 10배 이상의 폭리는 기본이었다고 한다.
입장료를 내고 성전에 입장한 후에도 착취는 끊이지 않았다. 성직자들이 성전에서 사용할 예물에도 수작을 부렸기 때문이다. 유대교의 의식에서는 희생 제사가 중시되었는데, 율법에 의하면 희생 제물은 흠이 없는 것이어야만 했다. 문제는 그 제물이 흠이 있는지의 여부를 판정하는 자들이 바로 성직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순례자들이 직접 정성스레 제물을 준비해 왔더라도, 어떻게든 오만 가지 트집을 잡아 흠이 있으니 바쳐서는 안 된다며 퇴짜를 놓았다. 제물을 다시 만들 수 없는 순례자는 어쩔 수 없이 성전에서 파는 제물을 말도 안 되는 바가지를 쓰고, 그것도 어마어마한 손해를 보고 환전한 특별 화폐로 사야만 했다. 신자가 공들여 준비한 제물에 비하면 돈에 눈이 먼 상인이 대충 마련한 제물은 당연히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으나, 상인의 돈에 마찬가지로 눈이 먼 제사장은 상인의 제물에는 흠이 없다며 통과시켰다. 목욕료, 입장료, 환전 수수료, 예물 구입 비용... 이 모든 비용을 합치면 신자와 관광객의 지출은 정말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 들리고 제사까지는 지내지 않았을 관광객은 그렇다고 쳐도, 순례자는 이 사기를 눈 뜨고 매년 당해야만 했다.
이 갈취 행위의 주축이 된 환전과 장사는 엄연히 예루살렘 대성전의 일부였던 '여자들과 외국인들의 뜰'[4] 에서 이루어졌다. 허접한 대우나 바가지에 강경하게 항의할 수 있는 남자는 아예 배제시키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데 불리할 여자나 외국인에게서만 돈을 받았다는 말이다. 또한 성전에는 관광객과 순례자뿐만 아니라, 성전에서 일하는 수천 명의 사제들, 성전 제직들, 성전을 지키는 군인, 잡무 노예들이 있었다. 나아가 제물 태우는 연기는 물론이고 겁에 질린 짐승들이 우는 소리, 외부 배출구에 쏟아지는 제사용 동물의 피와 배설물이 성전을 오염시키고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엄숙해야 할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의 거대한 산업 현장이 된 것이다. 이런 어수선한 장사판에서는 제대로 기도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5]
예수가 성전의 이러한 행위를 '부패'로 인식하여 비판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위에서 인용한 출처에서도 의견들이 갈리듯 신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현대 신학계에서 합의로 수렴된 해석들은, 당대 예루살렘 성전의 저러한 행위들은 지중해권 종교들에서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관습이었으며, 예수의 성전 정화 퍼포먼스는 '성전의 기능을 정지 시킴으로써 성전을 파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부분이다.
공관복음서들에서는 예수의 성전 정화 및 예수의 성전에서의 설교로 인해 군중들이 예수에게 관심을 가지자, 이에 위협을 느낀 제사장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한 것처럼 묘사한다. 반면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은, 예수의 공생애 중 첫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묘사하며 제사장들의 반응이 별 달리 특별하게 묘사되지 않으며 예수는 그저 상인들에게 비난과 빈정거림을 들은 것으로 묘사된다.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서의 이런 차이 때문에 성전 정화 사건이 사실 두번 있었다는 식의 해석이나, 성전 정화 사건은 순전한 창작이라는 해석도 존재하나, 학계의 중론은 성전 정화 사건 자체는 실재했으며 공생애 초반이건 후반이건 한번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공관복음서의 관점과 달리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이 제사장들의 관심을 별달리 끌지 못했을 가능성을 염두하고 있다.
3.2. 예수의 전투력에 관하여
이 사건은 "이방인의 뜰"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중략) 만약 제사장의 뜰 안까지 들어가서 이러한 행위를 하고자 했다면 그만한 군중 또는 무장된 군사의 동원이 필요했을 것이고, 이는 분명히 성전소요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이방인의 뜰에서 이렇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성전정화사건에 나타난 예수의 성전에 대한 이해에서 일부 발췌
이 때문인지 가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예수의 이 일화를 예시로 예수 갱스터 설같이 예수의 비범함을 분석하는 농담섞인 떡밥이 올라온다. 여기서 나온 표현 중 하나가 '나사렛의 몽키스패너'. 이런 식으로 매우 건장(?)하고 힘이 장사처럼 묘사가 되어있는 예수의 모습은 외국에서도 그 모습 자체로 하나의 밈이 되었다. 외국에서는 이런 밈을 일명 Buff Jesus(떡대 예수)라고 일컫는다. 밈으로 쓰는 사진 중에는 우리나라의 영천시에 있었던 '기독교 조각공원'에 있는 근육예수상을 찍은 사진이 주로 쓰인다. 아쉽게도 공원과 조각상은 내부 사정으로 인하여 이미 철거된 상태. 예수의 본래 이름이 영어 식으로 '''Jo'''shua son of '''Jo'''seph(요셉의 아들 여호수아)라는 점 때문에 죠죠의 기묘한 모험과 엮이기도 한다. 그 이름하야 Jojosus. 종교적인 색채를 빼고 보면 예수의 모험은 확실히 기묘한 모험인데다 작 중 성인의 유해는 예수의 시신으로 추정되는 묘사가 있어 더욱 말이 된다는 게 개그 포인트.
다만 이러한 이해나 농담은 어디까지나 '''인터넷 밈, 혹은 신학에 대한 무지, 성경에 대한 이해 부족 등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는 본 사건은 성전 한구석에서 일어난 작은 소동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기본적으로 성전 내부에서 소동이 있는데 군대나 근위병이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는 것부터가 이상하지 않은가? 게다가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한쪽 벽만해도 400미터가 넘는 장대한 건물이었다. 축구장보다도 큰 이런 건물을 전체를 뒤집는 것은 수백명은 되는 무장집단이 필요하다. 성경에서 묘사된대로 예수가 이 시점에서 권력자들의 눈에 띈 요주의 인물이었다면 그런 눈에 띄는 소동을 일으켰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죽이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즉, 예수의 성전 정화는 시장 한 구석에서 예수가 혼자서 일으킨 작은 소동에 불과했고 성전 전체에서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4. 기타
신학자들 중에서는 사해문서 발굴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이기도 했던 제임스 H. 찰스워스 교수가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 분야에서도 학계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한편으로 복음주의 계열 신학자들 중에서는 고대문헌개론을 저술한 것으로 더 유명한 크레이그 A. 에반스 교수가 예수의 성전 정화 분야의 권위자로 인용된다.
예수의 일생을 다룬 종교 영화나 다큐멘터리 등에서 묘사할 때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복음서에서 나오는 것처럼 채찍을 휘두르고,[6] 상인들의 탁자를 뒤엎고 가축들의 우리를 부수는 액션신(…)이 나온다. 2013년 제작된 드라마 더 바이블에서는 채찍까지 휘두르지는 않고 예수가 참담한 표정을 지으며 점잖게(...) 상을 뒤엎는 정도로 묘사된다. 예수의 처형을 집중적으로 묘사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1973년 영상판에서는 한술 더 떠서 불법 의료 행위및 마약 밀매, 스트립쇼에다 섹스 용품에 중기관총(?!)같은 무기까지 판매하는 막장으로 묘사한다. 당연히 예수(테드 닐리)는 이 꼴을 보고 현장을 뒤엎어 버리는데, 마지막에 나오는 폐허의 장면을 보면 도저히 혼자서 깽판친 수준이 아니다. 해당 영상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에서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파 크라이 5에서도 한 성공회 신부가 사이비 광신도들이 교회를 약탈하고 신도들을 살해하자 늑대가 되어 사이비 종교쟁이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기 위해 무장하는 모습이 나온다.굶주린 사람들이 읍사무소로 모여들어 시위를 벌이고, 마을 읍장 겸 공산당 대표인 빼뽀네는 지주들을 모두 불러모아 저들을 위한 공공 구제사업을 해야 하니 1헥타르 당 1,000리라를 기부해달라고 한다. 성난 군중에 겁에 질린 지주들은 돈을 내겠다는 서명서에 사인하지만, 그 중 베롤라라는 이름있는 지주는 법으로 정해지지 않는 이상 나는 돈을 내지 않겠다고 버티고, 이에 다른 지주들도 베롤라에게 동의하며, 이미 돈을 내기로 한 지주들은 아쉬워한다. 시위대는 이에 분노하지만 빼뽀네는 군중을 진정시키면서 지금 기부받은 돈으로 2달은 견딜 수 있으며 그 동안 이들을 합법적으로 설득하겠다고 한다. 빼뽀네를 베롤라를 안전하게 바래다주면서 설득해보지만 베롤라는 요지부동...
결국 그러던 어느 날, 베롤라의 농장에 공산주의자 셋이 몰래 쳐들어가 30그루의 포도나무[7]
를 망가뜨리고 '첫 번째 경고'라는 표지를 걸어 놓는다. 이에 분노한 돈 까밀로 신부는 예수님에게 이 악당들을 죽여야 마땅하다고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은 어떠한 경우라도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뭣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겠느냐."'''며 나무라며 말린다.그 말에 돈 까밀로는 성을 가라앉히고 마을 미사에서 포도 나무 사건을 언급하며 부드럽게 설교를 하다 빼뽀네의 얼굴을 보고 열이 끓어올라 마지막에는 분노에 찬 설교로 끝을 맺는다. 설교 후 돈 까밀로는 빼뽀네를 설득해서 이런 흉악한 짓을 한 3명의 악당들을 '''야밤에 습격해서 똑같이 되갚아주기로 합의한다!''' 돈 까밀로와 빼뽀네는 함께 첫 번째, 두 번째 범인을 찾아가 각각 30대의 매질을 하고 '첫 번째 경고'라는 말을 돌려준다. 그렇게 2명을 해치웠는데 정작 세 번째 범인이 바로 '''빼뽀네'''였다(...). 빼뽀네는 '''"이 빌어먹을 신부, 내가 그 세 번째 악당놈이오! 어서 때리시오!"'''라면서 웃통을 벗고 소리친다.
이에 놀라고 당황한 돈 까밀로는 때리는 것도 그만두고 교회로 돌아가 자신이 한 일을 모두 말하고, 예수님은 "나는 너에게 죄인을 단죄하라고 한 적이 없다!!"며 야단친다. 돈 까밀로는 "'''하느님께서 성전을 더럽힌 자들을 채찍으로 때려서 쫓아낸 예수님을 용서해 주셨듯이,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빌고, 예수님은 "'''당시 파시스트 행동대원 같았던 나의 행위를 굳이 말하지 말아라.'''"라고 하신 후, "빼뽀네는 자신의 죄에 따른 벌을 받겠다고 했으니, 그를 행하지 않는 것은 더 큰 죄다."라고 말씀하신다. 이후 돈 까밀로는 정비소에서 고개를 처박고 일하는 빼뽀네의 엉덩이에 30대의 매질을 가하고, 마무리 겸 '''"빌어먹을 신부"'''라고 부른 대가로 엉덩이를 걷어찬다. 그렇게 응징을 끝낸 돈 까밀로는 이제 남은 건 하느님의 뜻에 달렸다면서 공산당원과 빼뽀네를 때린 몽둥이를 저 멀리 던져버린다. 그리고 그 날 밤, 돈 까밀로는 자기가 집어던진 몽둥이가 땅에 떨어져 닿으면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펼쳐지면서, 황금빛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리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