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송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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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송이 멸망한 후, 금나라의 압력으로 세워진 제나라의 유일한 황제. 제나라는 금에 의해 세워진 괴뢰이기 때문에 정식 황제론 보지 않는다. 자는 언유(彥游).
2. 생애
유예는 1037년 연조(衍祖)[1] 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송철종 3년 진사가 되었다.
송휘종 선화[2] 연간에 국자감(國子監)에 있다가 하북제형(河北提刑)이 되었으며 금나라가 침략하자(정강의 변) 관직을 버리고 달아났으며 고종때 남송의 신하로 복귀했다. 장각의 추천을 받아 제남지부가 되었으나 금이 재차 송을 침략하자 제남을 지키던 유예는 금의 책략에 휘둘려 수세에 몰리자 금에게 항전하던 관승(關勝)을 죽이곤 금에게 굴복했고 금에게 동평지부에 봉해진다.
이후 1130년 금나라에 의해 제제(齊帝, 제나라의 황제)로 책봉되어 황하 이남을 다스리게 되었고 대명(大名)을 수도로 삼아[3] 약 7년간[4] 제나라를 다스리게 된다.
그러나 즉위한 유예는 교만하고 사치스러운데다 북송 황제의 능들을 파헤치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일반 백성들의 무덤들도 건드려 남송의 군민과 제나라 백성들의 원망을 샀다. 또한 유예는 금나라 군대를 이용해 송을 공격하기도 했으며 송에 30만 명의 병사를 투입해 공격했으나 악비와 한세충에게 족족 패배했다.
결국 금조는 제나라를 폐지했으며 동시에 유예도 황제에서 폐위되었다. 유예는 촉왕(蜀王)으로 봉해졌다가 그 일가가 임황(臨潢)으로 옮겨진 뒤엔 조왕(曹王)으로 개봉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1146년 10월 18일 사망한다.
3. 가계도
- 조부: 제 휘조(徽祖) 의문황제(毅文皇帝) 유충(劉忠) - 추존.
- 부: 제 연조(衍祖) 예인황제(睿仁皇帝) 유씨(劉氏) - 추존
- 아들: 유린(劉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