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적

 


陸績
(188년 ~ 219년)
1. 개요
2. 정사
3. 연의
4. 기타 창작물


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 오나라의 관료, 학자. 는 공기(公紀). 육강의 아들, 육굉, 육예, 육울생의 아버지. 육강이 육손의 당조부가 되니 육적은 육손당숙부이다. 오군 오현 사람으로 회귤유친(=육적회귤) 고사의 주인공이다.
126년생인 아버지 육강이 62세라는 늦은 나이에 얻은 늦둥이 아들이다.

2. 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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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적이 6살 때 구강(九江)에서 아버지 육강과 함께 원술을 만났는데, 원술은 육씨 부자에게 귤을 대접했다. 육적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거기서 몰래 귤 두 개를 꺼내 자신의 품 속에 넣었고, 나가면서 인사를 하다가 그만 귤이 떨어져 데구르르 굴렀다. 원술이 육적에게 '''“육랑(육적을 가리킴)은 손님으로 와서 어찌하여 귤을 품에 넣었는가(陸郞作賓客而懷橘乎)”'''라고 물었다. 이에 육적은 ''''“집에 돌아가서 어머님께 드리고 싶었습니다(欲歸遺母)”'''라고 대답하였다. 원술은 어린 육적의 효심에 감동하고 귤도 더 싸줬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것은 나중에 원나라 시절 곽거경(郭居敬)이 중국의 대표적인 효자 24명의 효행을 서술한 《이십사효(二十四孝)》에도 실릴 정도로 효에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훈훈한 일화이지만 이후에 원술은 군량 요청을 거절한 육적의 아버지 육강에게 화가 나서 손책을 시켜 육강을 공격하게 한다. 육강은 육적, 육손 등 육씨 일족을 모두 오현으로 피난시킨다. 육강은 손책에게 성이 함락되고 사망하며 손책은 원술에게 약속받은 여강태수 자리를 유훈이 가져가자 분노하고 이는 손책이 독립하는 계기가 된다.
손책이 오군에 있을 때 장소, 장굉, 진송이 상객으로 있으면서 무력으로 사해를 정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나이가 어려 말석에 있던 육적은 "관이오하고 공자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먼곳에 있는 사람을 복종하게 하는 것은 도덕이오. 그런데 글을 배웠다는 자들이 무력만을 외치고 있으니 이게 어찌된 일이오!"라고 앞자리까지 말이 들리도록 쩌렁쩌렁하게 외쳐 장소 등이 놀랐다고 한다.
용모가 웅장하고 박학다식하면서 열심히 공부만 하여 공부만으로 이름을 떨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우번, 방통 등과 우의를 맺기도 하였다. 손권이 정사를 통솔하게 되자 주조연으로 임명되었지만 그의 직선적인 태도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싫어해 지방으로 쫓겨나 울림태수[1], 편장군이 되었다. 편장군이라는 장군직을 받았지만 다리에 질병이 있고 학문에 뜻이 있어 군사적인 일이 있더라도 방에서 저술을 멈추지 않았다.
역사서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울림태수를 지낸 것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는데, 육적은 매우 청렴한 관리 생활을 해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얼마나 청렴했냐면 태수 임기가 끝나서 짐을 싣고 돌아가려는데, '''가져갈 짐이 너무나도 가벼운 탓에 배가 뜨지 않았다.'''[2] 그래서 주변에 있는 바위를 배에 싣고 나서야 배를 띄워 돌아갈 수 있었고, 고향으로 온 육적은 그 바위를 자기 집 앞에 두었다고 한다.
그는 혼천도를 저술하면서 주역에 주를 달거나 태현을 풀이해 죽을 날을 알아 만서를 썼다고 하며 그 뒤에는

'지금부터 60년 후, 천하에는 수레가 궤를 같이 하고 문자를 똑같이 사용하게 될텐데, 유감스럽게도 보지 못하는구나.'[3]

라고 말하고 그 후 그의 나이 32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오나라의 요절징크스의 일원이 되었다. 남겨진 아들 두 명(육굉, 육예)와 딸 한 명(육울생)은 일족 육모가 기른다.
진수와 방통도 육적에 대한 평을 남겼는데 찬사일색이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과의 설전에서 엑스트라로 등장한다.
육적이 "조조는 상국 조참의 후예인데 돗자리나 짜던 유비가 무슨 수로 대적을 할 수 있겠소?"라고 따졌으나 제갈량은 "그대는 원술 앞에서 귤을 품은 육랑이 아닌가?"라고 아는 척을 하더니 "고조 황제도 동네 정장으로 대업을 시작하셨는데 돗자리 짠 게 뭔 대수인가. 그대의 소견은 어린아이 같으니 높은 선비와 더불어 한자리에서 논할 위인도 못 되오."라면서 시원하게 까였다. 연의에서 등장하는 장면은 이것으로 끝.

4. 기타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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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인의 삼국지
삼국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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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2, 13
삼국지 14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전형적인 내정용 문관. 그나마도 박한 평가다.
삼국지 5에서는 어째선지, '''추풍 오장원'''까지 생존한다. 수명도 '''7'''. 일러스트도 새치가 있는 문관이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17/무력 6/지력 68/정치력 72. 병법도 배반과 매도밖에 없다. 내정이나 시키자.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12/무력 7/지력 65/정치력 69/매력 39. 명사 특기를 제외하면 쓸 곳이 없다. 전체적으로 특기는 농업, 혼란, 천문, 반박, 명사. 총 5개다. 오나라에서 감택과 함께 천문 특기를 보유하고 있다.
삼국지 11에서도 전형적인 후방 문관의 스탯을 가지고 있는데, 특이하게 특기가 풍수다. 풍수 설명에도 나와 있지만, 이 특기는 전방 주력도시에서 빛을 발한다. 영웅집결에서는 엄백호가 있는 오의 재야장수로 숨어 있다.
삼국지 12 일러스트에서는 회귤유친 고사로 인해 을 들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20/7/72/72. 특기는 상업 7, 설파 1, 언변 5, 수영 3. 중신특성은 상업중시로 전수특기는 상업이며 전법은 화염계. 뭔가 안 어울리는 특기가 있는데 PK로 한다면 상업을 빼고 대신 농업 특기를 추가해준 뒤, 중신특성을 농업중시로 전수특기를 농업으로 변경해주자.
삼국지 14에서는 100만인의 삼국지의 육적 일러를 재활용했으며 능력치는 통솔 15, 무력 7, 지력 65, 정치 72, 매력 43으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5, 지력이 7 하락했다. 개성은 명성, 학자, 주의는 왕도, 정책은 호적정비 Lv 3, 진형은 어린, 충차, 전법은 충차, 구축, 친애무장은 고소, 방통, 우번, 전종, 혐오무장은 없다.
삼국지 영걸전삼국지 공명전에서는 젊은 미남상으로 등장한다.[4] 맥성 전투에서 관우를 잡는 오나라 원군으로 반장과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219년에 죽는 인물이 빨라야 230년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강릉 전투에서 보즐/고옹과 함께 원군으로 등장한다. 장수마다 하나씩 병종이 부여되는 시스템 상 일러스트까지 만든 인물을 버리기 아까웠던 모양이다.
육적을 주인공으로 삼은 드라마 염석전기가 있다. 육적이 울림을 떠날 때 짐이 너무 가벼워 배가 뜨지 않아서 바위를 실었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중국 드라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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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삼국지톡에서는 협천자 시즌 시점 2년 전, 초대받은 원술의 집에서 어머니를 위해 귤 두 개를 훔치려 했다가 발각되었으나, 효심에 감복한 원술에게 햇귤 기프티콘을 선물받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원술은 그 대가로 육씨가문 대표 육강에게 서주 침공에 필요한 군량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육강이 거절하면서 원술이 손책을 시켜 육씨 가문을 토벌하는 계기가 된다.

[1] 이 때 울림에서 낳은 딸이 바로 육울생으로, 이름이 문자 그대로 울림 태생이란 뜻.[2] 태수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청렴했다는 것 때문에 육적은 청렴한 관리의 대명사로 불린다.[3] 진시황이 6국을 멸한 후 문자와 수레바퀴의 폭을 같게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한 말로 중국 통일을 뜻한다. 실제로 진나라에 의한 통일이 280년에 이루어지니 매우 가깝게 예측한 셈이며, 만일 육적이 이 시기까지 살았다면 93세가 되므로 여대, 사섭급으로 장수를 누렸을 것이다.[4] 일러스트는 삼국지 조조전의 조안민 일러스트로 재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