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소세손
[clearfix]
1. 개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적장남[1] 으로, 제22대 왕 정조의 동복형이다. 정조가 태어난 해에 사망했다.
2. 생애
1750년(영조 26년) 음력 8월 27일에 원손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1751년(영조 27년) 5월 13일 왕세손에 책봉되었다. 1752년(영조 28년) 3살에 훙서했다.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열병이 있었던 듯하다. 시호는 의소(懿昭). 훙서했을 때 묘는 의소묘였는데, 고종 대인 1870년(고종 7년) 승격되어 의령원으로 개호했다.
영조는 처음에는 의소세손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자신이 누구보다 아끼고 총애했던 딸 화평옹주[2] 의 삼년상이 끝나는 달에 의소세손이 태어났고, 혜경궁 홍씨가 의소세손을 출산하는 걸 도왔던 영빈 이씨에게 영조가 "죽은 딸은 잊고 손자 태어난 것만 좋아하느냐"고 일갈한 것을 보아서는, 딸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의소세손의 몸에 화평옹주의 몸과 같은 위치에 점이 있는 것을 보고 영조도 의소세손을 매우 총애했지만, 의소세손은 곧 요절하고 만다.
어린 세손이 요절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유모의 잘못된 생활개념 때문이었다.
영조실록에 따르면, 세손궁의 유모를 바꾸고 처벌하자는 홍봉한의 상소 내용에 대해 영조가 답하기를 ‘보모된 자가 외람되게도 술을 마시고 고기반찬을 먹으며 아이를 흔드는 등의 문제가 있으나 유모된지가 오래된 자라 쉽사리 바꾼다면 어린 세손이 놀랄까 염려스럽다’고 비답한다.
한중록에 따르면 어린 세손은 태어날 때부터 신열과 진물이 나는 등의 피부병까지 있어 더욱 더 조심해서 살펴야 하는 아기였다.[3]
고종이 장헌세자를 장종으로 추숭하며 의소세자가 되었고,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장조로 추숭될 때 그도 추존 태자가 되어 의소태자(懿昭太子)가 되었다. 원인 의령원은 현재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에 있다. 조카인 문효세자의 원인 효창원과 나란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