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이버츠

 


[image]
이름
에릭 이버츠(Eric Eberz)
'''생년월일'''
1974년 3월 31일 (50세)
'''국적'''
미국
'''출신학교'''
빌라노바 대학교
'''포지션'''
스몰 포워드, 파워 포워드-센터(KBL)
'''신체사이즈'''
198cm, 99.8kg
'''프로입단'''
1996년 광주 나산 플라망스 특별지명
'''소속팀'''
광주 나산 플라망스 (1997)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 (1999-2000)
'''창원 LG 세이커스 (2000-2001.12)'''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 (2001.12-2003)'''
'''개인 타이틀'''
KBL 3점슛 성공률 1위 1회 (99-00)
1. 개요
2. 선수 시절
2.1. 대학 시절
2.2. KBL 시절
3. 시즌별 성적
4. 은퇴 이후
5. 여담


1. 개요


한국프로농구에서 뛰었던 미국의 前 농구선수. KBL백인 외국인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남긴 선수이다.[1]
가공할 만한 득점력과 빠른 전술 이해도, 잘생긴 외모와 깔끔한 매너, 온화한 성격으로 '코트의 신사', '득점기계'라 불리며 한 때를 풍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운의 용병'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불운한 선수.[2]

2. 선수 시절



2.1. 대학 시절


[image]
대학시절 기록
이버츠 옆에 있는 선수가 케리 키틀즈, 인터뷰중인 노년의 아저씨는 ESPN에서 대학농구 Analyst로 잘 알려진 Dick Vitale씨다.
미국 내에서도 수준이 높은 것으로 꼽히는 Big East 컨퍼런스 소속의 명문 빌라노바 대학교 출신으로, 대학시절부터 정교한 3점슛을 무기로 입학 동기였던 케리 키틀즈[3]와 함께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던 선수이다. 90년대 KBL 초창기에 뛰었던 외국인 선수들 중 NCAA 토너먼트에서의 활약을 따지면 제이슨 윌리포드와 함께 단연 투톱을 달린다.[4]
2학년때인 1993-94 시즌, 이버츠는 평균 39.2%의 고감도 3점슛을 자랑하며 팀의 주전 스몰 포워드로 올라섰고, 3학년때는 경기당 평균 2.8개의 3점슛('''성공률 43.9%''')을 꽂으며 컨퍼런스 3점슛 1위[5]와 득점 10위(평균 15.7득점)를 기록, 전미에서도 손꼽히는 슈터 중 한명으로 자리매김 한다. 키틀즈-이버츠 콤비는 1994-95 시즌 빌라노바를 컨퍼런스 2위까지 올려놓은데다, 컨퍼런스 토너먼트 결승에서 레이 앨런이 이끌던 정규리그 1위 코네티컷 대학교를 꺾고 Big East 컨퍼런스 우승을 안겨주었다. 다만 NCAA 토너먼트에선 하위시드인 올드 도미니언 대학교에 업셋을 당하며 1회전에서 탈락한게 흠.
4학년때도 케리 키틀즈, 앨빈 윌리엄스[6] 등과 함께 팀을 2년연속 Big East 컨퍼런스 정규리그 2위에 올려놓았으나, 토너먼트 4강에서 앨런 아이버슨이 이끄는 조지타운 대학교에 패하며 컨퍼런스 우승 타이틀 수성엔 실패한다. NCAA 토너먼트에서도 2회전에서 또다시 하위시드인 루이빌 대학교에 지면서 또다시 Sweet Sixteen (16강) 진출에 실패, 명성에 비해 다소 아쉬운 성적으로 대학시절을 마무리하게 된다.
시즌 종료후 팀동료 케리 키틀즈와 나란히 1996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지만, 하필 1996년도 드래프트는 앨런 아이버슨(전체 1순위), 마커스 캠비(2순위), 스테판 마버리(4순위), 레이 앨런(5순위), 코비 브라이언트(13위), 스티브 내시(15위), 저메인 오닐(17위) 등 향후 10년간 NBA를 지배하게될 선수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던 이른바 NBA판 "황금세대"(샤리프 압둘라힘, 앤트완 워커, 페자 스토야코비치(98/99시즌에 데뷔)도 있다)였고, 스몰 포워드로서 운동능력과 하드웨어가 지극히 평범했던 이버츠는 결국 드래프트에서 고배를 마셨고,[7] 유럽무대에 진출, 프랑스 리그에서 프로 선수로서의 첫발을 내딛는다.[8]

2.2. KBL 시절



2.2.1. 광주 나산 플라망스(1997)


'''토사구팽 당한 KBL 1기'''
프랑스에서 짧은 한시즌을 치른 후, 이버츠는 1996년 11월 LA에서 열린 KBL의 첫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 참가, 낯선 아시아 무대의 문을 두드리지만, 일주일간 치러진 당시 트라이아웃에서 KBL 7팀[9] 관계자들은 눈앞에서 붕붕 날아다니며 덩크슛을 가볍게 꽂아대는 탄력좋은 선수들에게만 눈길을 주었고, 198cm의 장신임에도 외곽슛 위주의 플레이를 보여주던 이버츠는 이들에게 철저한 외면을 받게 된다. 결국 드래프트 결과, 이버츠는 대학시절 자신보다 네임밸류가 한참 낮은 선수들, 심지어 NCAA 디비전 2, 3선수들에게도 밀리면서 총 14명의 선발명단에 뽑히지 못하고 만다.
하지만 이후 국방부에서 상무KBL 참가를 불허하는 바람에 졸지에 프로 원년시즌 리그에서 한자리가 비게 되었고, KBL측은 부랴부랴 나산그룹을 설득, 광주 나산 플라망스를 8번째 KBL 참가팀으로 승인한다. 이미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이 끝난 상태라 광주 나산은 할수 없이 드래프트에서 탈락하고 남은 선수들 중에 외인 2명을 선발해야 했고, 이버츠는 몬태나 주립대 출신의 가드 에릭 탤리(183cm)와 함께 특별지명으로 광주 나산에 입단, 한국농구와 인연을 맺는다.
입단 당시만 해도 운동능력이 부족해 보이는 트위너 타입의 백인인데다가 1996년 NBA 드래프트와 KBL 외국인 드래프트에서 연거푸 낙방한 흑역사가 있어서 국내 무대에 제대로 적응할까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켰으나, 데뷔전인 1997년 2월 4일 수원 삼성 썬더스와의 경기에서 무려 '''52점'''을 득점하면서[10] 드래프트 당시 자신을 외면했던 7개 구단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고, 이 후에도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득점력과 완벽에 가까운 골밑 수비로 나산을 하드캐리하면서 평균 32.2득점(득점 2위[11]), 11.1리바운드(3위), 1.14블록(4위), 2.3스틸을 기록, '''원년 꼴찌 0순위'''로 지목되던 광주 나산이 예상을 깨고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일등공신이 된다.[12]
그러나 어른의 사정으로 나산 프런트와 알력을 빚으며 재계약에 실패했고, 1997년 외국인 드래프트에서도 '''10개 구단 감독들의 담합으로 왕따를 당하며'''[13] 이버츠의 첫 KBL 커리어는 영 좋지 않게 끝났다.

2.2.2.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 (1999~2000)


이후 소식이 없던 이버츠는 1998년 트라이아웃을 신청했지만 교통사고로 참석하지 못하는 등, 불운을 겪다가 1999년 KBL 외국인 드래프트에 재응시했고, 나산 농구단을 인수한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에 1라운드 1순위 지명을 받아 다시 한국 땅을 밟게 되었다. 이버츠는 팀에서 여전히 센터로 뛰면서도 2년 전의 울분을 풀듯이 더 날카로워진 공격력을 보여주면서 '''1999-2000시즌 득점왕(평균 27.7득점)'''과 '''3점슛왕(성공률 48.3%)''' 타이틀을 석권했고, 현주엽, 키스 그레이(183cm, G/F)와 3각편대를 이루며 광주 골드뱅크를 시즌내내 돌풍의 팀으로 이끈다. 하지만 시즌 막판들어 이버츠와 그레이가 연달아 부상으로 빠지면서 팀은 거짓말같은 7연패에 빠졌고, 시즌 중반까지 5위권을 유지하던 팀은 9위로 추락,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고 만다. 이로 인해 이번에도 재계약 협상이 결렬되었고, 이버츠는 "실력은 뛰어나지만 팀 성적은 부진한 선수"란 인식이 다소 존재하게 된다.

2.2.3. 창원 LG 세이커스 (2000~2001)


'''공격 농구의 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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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KBL 외인 드래프트에서 김태환 감독이 갓 취임한 창원 LG 세이커스는 전체 4순위로 이버츠를 지명, 덕분에 이버츠는 한국에서의 농구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고, 이버츠는 자신을 불러준 김태환 감독에게 보답하듯이 2000-01시즌 내내 오성식-조성원-조우현으로 이어지는 LG의 백코트진과 조화를 이루면서 슬램덩크풍전을 연상시키는 런앤건 농구의 주역으로 활약한다. 00-01 시즌 이버츠는 평균 27.8점을 올리며 데니스 에드워즈(안양 SBS)에 이어 득점 2위에 오르는데, 이 시즌 팀동료 조성원이 득점 5위(25.7점)에 오를 정도로 팀컬러 자체가 극악의 공격농구라 당시 창원은 물론 전국에서 창원 LG의 인기가 크게 올라가기도 했다. 이버츠-조성원 쌍포의 활약 덕분에 창원 LG는 00-01 시즌 정규리그 2위에 올랐고, 이후 플레이오프에서도 전시즌 우승팀 청주 SK를 격파하며 창원 LG와 자신의 생애 첫 파이널 진출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비록 챔피언결정전에선 수원 삼성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지만, 활약을 인정받은 이버츠는 KBL 진출 처음으로 소속팀과의 재계약에 성공한다.[14]

2.2.4. '''메가톤급 4:4 트레이드'''


2001-02 시즌 들어 드래프트 1위의 신인 송영진이 합류하고, 새 외국인 선수 말릭 에반스(201cm,C)가 합류하면서 골밑을 보강한 창원 LG는 새 시즌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게 된다. 하지만 시즌 초반 반짝활약했던 송영진이 금새 트위너로서의 한계를 드러내며 부진을 거듭했고, 이바람에 골밑경쟁력을 잃은 창원 LG는 1라운드 중반부터 무려 6연패를 당하는등 부진에 빠지고 만다. 이에 김태환 감독은 2001년 12월 12일, 전대미문의 4대4 트레이드를 단행,[15][16] 이바람에 이버츠는 친정팀 격인 여수 코리아텐더로 다시 이적하게 된다.

2.2.5.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 (2001~2003)


'''헝그리군단의 4강 신화'''
01-02 시즌 도중 여수 코리아텐더로 합류하게된 이버츠는, 현주엽의 상무 입대 후 스타플레이어가 없던 여수 코리아텐더에서 단숨에 팀의 에이스의 중책을 맡게 되었고, 정락영-전형수-황진원 등 젊은 쓰리가드를 이끌고 맹활약했지만 2게임차로 아쉽게 7위에 그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다. 이버츠는 '''01-02 시즌 평균 28.3득점'''을 올리며 개인 통산 2번째 '''시즌 득점왕'''에 올랐고, 시즌 종료 후 여수 코리아텐더는 없는 살림에도 불구, 에이스 에릭 이버츠와 재계약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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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3 시즌을 앞둔 여수 코리아텐더는 모기업의 부도로 전시즌 팀내 득점 3위(평균 15.6점)였던 슈퍼루키 전형수를 현금 트레이드해 운영비를 마련할 정도로 가난한 팀이었고, 연습장을 확보하지 못해 상대팀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중, 고등학교 체육관을 돌아다녀야 했다. 오죽하면 월급이 제때 안 나온다고 미국으로 돌아가려던 안드레 페리를 겨우 사정해서 달랬을 정도. 더군다나 전 시즌 종료 후 사퇴한 진효준 감독의 후임으로 새 감독을 찾지 못해 이상윤 코치를 급히 감독대행으로 임명해 한 시즌을 치르게 된 터라, 02-03 시즌 가장 유력한 꼴찌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이해한 이버츠는, 평상시에는 사이가 좋지 않던 페리와 사적으로 말 한마디 안 나눴지만 경기에서만큼은 찰떡 콤비를 구사했고, 팀을 위해 헌신하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서 여수 팬들을 비롯한 많은 농구팬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당시 "오~ 필승 코리아~ 여수의 이버츠!!!" 란 이버츠 응원가까지 생겨났을 정도. 그래서 구단에서도 어떻게든 둘의 월급만큼은 꼬박꼬박 챙겨줬다. 에이스 이버츠과 주장 겸 플레잉코치 김용식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헝그리 군단"''' 여수 코리아텐더는 타팀과 비교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두 외국인 선수 이버츠-안드레 페리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정락영-황진원의 젊은 백코트와 변청운-진경석-김기만 등 투지넘치는 포워드라인의 활약이 더해지며 02-03 시즌내내 돌풍을 일으키며 정규리그 4위에 오르는 기적같은 결과를 얻게 된다. 플레이오프에서도 서장훈-주희정이 있는 6강 상대팀 서울 삼성을 활동량에서 압도하며 2연승으로 4강까지 진출, 돌풍을 이어나가지만, 4강전에서 전시즌 우승팀 대구 동양에게 맥없이 3연패를 당하며 탈락하고 만다.[17]
02-03 시즌 종료 후 여수 코리아텐더는 두 외국인선수 이버츠-페리와 모두 재계약을 맺지만,[18] 이후 구단의 존폐 여부가 불분명해져서인지 이버츠는 프로 원년 시즌 때와는 반대로 구단이 남아달라고 호소함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이유로 스스로 여수 코리아텐더와의 재계약을 거부하고 한국을 떠난다.[19] 03-04 시즌 상무에서 복귀한 현주엽이 군 시절부터 이버츠를 애타게 그리워했기에 이들의 엇갈림은 꽤나 아쉬웠다.
2004년손대범 기자가 점프볼에서 이버츠에 관해 자세히 다뤘던 적이 있다. 참조

3. 시즌별 성적


역대 기록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1997
나산
21
257/398
(61.78%)
20/55
(36.36%)
103/129
(79.84%)
677
234
21
48
24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1999-00
골드뱅크
45
501/774
(64.73%)
29/60
(48.33%)
156/204
(76.47%)
1245
480
93
78
47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0-01
LG
45
391/600
(65.17%)
99/197
(50.25%)
171/209
(81.82%)
1250
455
99
79
69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1-02
코리아텐더
54
488/794
(61.46%)
124/288
(43.06%)
180/233
(77.25%)
1528
574
100
75
69
2002-03
53
408/748
(54.55%)
115/290
(39.66%)
161/205
(78.54%)
1322
417
105
69
58
<color=#373a3c> '''KBL 통산'''
(5시즌)
218
2045/3314
(61.71%)
387/890
(43.48%)
771/980
(78.67%)
6022

2160
418
349
267

4. 은퇴 이후


필라델피아와 뉴저지 등지에서 외식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뛸 때부터 운영하던 'Mc Gillicuddys' 이란 Pub인데, 사업이 번창하면서 지역에서 꽤나 성공한 사업가로 유명하다고 한다. 한때 한국인 농구팬이 식당에서 이버츠를 알아보면 후한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증언도 있다.
자신의 가게에서 빌라노바 대학교 농구부 코치와 함께 대학농구 관련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기도 한다. 빌라노바 농구부 공식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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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모교 빌라노바 대학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빌라노바 농구부 공식 트위터2

5. 여담


KBL 무대에서 친근하고 훌륭한 매너를 가진 선수로 기억되지만 의외로 한국음식은 한국 무대를 떠나는 그날까지 절대로 먹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권해도 강력히 거부했다고(...)기사참조. 2000년대 초중반 외국인 선수 식성 까다로운 삼대장이 바로 마르커스 힉스, 데릭 존슨,[20] 그리고 에릭 이버츠 세명.
[1] 역대 프로농구를 살펴봐도 토니 매디슨, 존 와센버그, 브라이언 부루소, 알렉스 스텀 같은 백인 선수들이 뛰었지만 실력과 인기 면에서 넘사벽이다. 이버츠 외에 크게 성공했다 할만한 케이스는 역대 최고의 외국인 빅맨 논쟁에 종종 언급되는 크리스 랭 정도?. 하지만 2019 ~ 2020 시즌 백인 외국인인 부산 kt바이런 멀린스서울 삼성 썬더스닉 미네라스가 좋은 기량을 보여주고 있어서 또 모른다.[2] 엄청난 득점력에 비해 애매한 신장, 답이 안 나오는 수비가 원인이었다. 오죽하면 '''반쪽 선수'''라는 오명이 생길 정도로. 그래서 시즌 말이 되면 구단 입장에서도 나무랄 데 없는 선수지만 내년 성적을 위해 재계약을 고심해야 했다. 코리아텐더, LG에서 뛸 때는 좀 나아지긴 했지만.[3] 196cm의 슈팅가드로 NBA판 황금드래프트로 불렸던 1996년도 드래프트에서 전체 8위로 뉴저지 네츠에 지명되었고, 루키시절부터 팀의 주축으로 뛰며 제이슨 키드의 백코트 파트너로 오랜기간 활약했다. 특히 2001-02, 2002-03 시즌 2년 연속 NBA 파이널에 진출한 팀에서 꾸준히 주전 슈팅가드로 출전했는데 아쉽게도 2번 모두 준우승에 그쳤고, 이에 네츠는 키틀즈를 트레이드 시키고 빈스 카터를 영입하지만 두번다시 NBA 파이널에 진출하진 못했다.[4] 초창기 KBL을 주름잡았던 조니 맥도웰, 클리프 리드, 버나드 블런트 등은 대학 시절 팀이 워낙 약체라 모두 무명에 가까웠다.[5] 2위는 팀 동료 케리 키틀즈, 3위는 코네티컷의 득점기계 레이 앨런이었다.[6] 1997년 NBA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47위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입단했고, 다음 시즌 토론토 랩터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2000년대 초 토론토 랩터스의 주전 포인트 가드로 빈스 카터와 함께 뛰었으며, 2000-01 시즌엔 팀을 동부 컨퍼런스 4강까지 진출시키기도 했다.[7] 팀 동료 케리 키틀즈는 전체 8순위로 뉴저지 네츠의 유니폼을 입는다.[8] KBL 진출 이후 이버츠가 한 인터뷰들에 의하면, 프랑스 리그 시절의 기억은 별로 안 좋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대학 졸업 후 처음 뛰는 프로리그인데다 해외진출이다 보니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KBL에서 뛰는 첫 시즌부터 인터뷰 마다 온통 한국에 대한 칭찬들 뿐이다;;[9] 당초 KBL 관계자들은 프로 원년시즌을 기아, 현대, 삼성, SBS, 동양, 대우, 나래에 당시 스타군단이었던 상무까지 총 8팀으로 치르고, 2번째시즌부터 진로, LG 2팀을 추가할 예정이었다. 당시 나산그룹이 기업은행 농구단을 인수해 프로에 참가하겠다고 선언했지만 KBL은 농구대잔치시절부터 비인기팀이던 기업은행의 프로 참가를 계속해서 외면했고, 이바람에 KBL 첫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도 (상무는 군팀이라 외국인을 못쓰니까) 프로 7팀 관계자들만 참가하게 되었다.[10] 용병으로서 한 경기 50득점은 그가 최초였고 그 이후에도 제이슨 윌리포드, 데니스 에드워즈 등 몇 명 밖에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이다. 그리고 나중에 한경기 58득점을 세우며 역대 외국인 한경기 최다득점 기록을 갖게된다. 국내 선수로서는 2004년 3월7일 LG전에서 기록한 우지원의 70득점(3점슛 21개)이 최고 기록이지만 문경은 과의 과도한 3점슛 경쟁과 함께 상대팀의 느슨한 수비 등으로 밀어주기란 오명을 받으며 지금도 이 기록을 인정하는 팬들은 아무도 없다. 우지원 본인도 부끄러운 기록이라 말했을 정도.[11] 1위인 칼레이 해리스(원주 나래)와 평균득점이 같았으나, 총득점 단 1점 차이로 2위로 밀렸다.[12] 다만 6강 플레이오프에서 광주 나산이 대구 동양에 1승 4패로 철저하게 밀리면서 활약이 빛바래지기도 했다. 이버츠의 득점은 변함없었지만 높이에선 다소 밀리는 모습을 보였고 동료 용병 에릭 텔리는 이를 제대로 커버해주지 못했다. 국내 센터 박상욱도 용병을 상대하기엔 다소 파워가 부족했던지라 이를 제대로 간파한 대구 동양은 201cm의 로이 해먼즈와 전희철로 하여금 나산의 골밑을 압도적으로 장악해 버린다.[13] KBL에서 한 번이라도 뛰었던 선수는 뽑지 않겠다는 황당한(?) 규정이었다. 실제로 당시 이버츠를 선발하고자 했던 인천 대우의 최종규 감독은 나산 관계자가 나서 제지하자 화를 내기도 했다. 이것 때문에 이버츠는 드래프트가 끝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언론에 나왔고, 나산 프런트의 귀국 때 공항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던 팬들도 있었을 정도.[14] 당시, 조성원과 이버츠의 조합은 지금도 널리 회자된다. 마치 유타 시절의 칼 말론, 존 스탁턴 처럼.[15] 창원 LG get: 마이클 매덕스(199cm,C), 칼 보이드(192cm,PF), 김동환, 김병천 ↔ 여수 코리아텐더 get: 에릭 이버츠 , 말릭 에반스, 황진원, 이홍수.[16] 당시 창원 LG 김태환 감독은 00-01시즌 준우승에 그친 것이 골밑 장악력이 삼성에게 밀린거라 생각했고, 전해 최고의 용병이라 손꼽히던 매덕스를 트레이드로 영입하며 기대를 걸었다. 여수 코리아텐더도 전시즌 매덕스가 부상으로 제대로 활약을 못했음에도 기량 하나만 보고 플옵 탈락에도 매덕스와 재계약 했을 정도. 그러나 이버츠 합류 후 여수 코리아텐더가 `헝그리 정신`을 발휘하며 02-03 시즌 4강 신화를 달성한 반면, 창원 LG는 예상치 못한 매덕스의 부진으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결국 트레이드 승자는 코리아텐더가 된 격.[17] 플옵 4강전에서의 완패는 팀 전력상의 불균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팀의 에이스 이버츠가 대구 동양의 에이스 마르커스 힉스에게 압도당한게 컸다. 힉스가 4강 시리즈 3경기에서 평균 32점을 올린 반면, 이버츠는 힉스의 운동량에 막혀 평균 20득점에도 못미쳤고, 시리즈 후반엔 체력저하까지 보이고 말았다.[18] 안드레 페리는 부상으로 시즌 개막 전 교체된다.[19] 부인 되시는 분의 만류였다고는 하나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거절했을 거란 얘기도 있다.[20] 원주 DB 프로미의 전신인 나래와 TG, 그리고 서울 삼성에서 뛰었던 정통 센터. 맥도날드 & 버거킹조차도 미국식과 다르다고 거부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