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1978)

 

[image]
2013년도 사진.
李素姸
1978년 6월 2일 (45세) ~
1. 개요
2. 참가 이전
3. 참가 이후
4. 논란: 먹튀인가 희생양인가?
4.1. 먹튀라고 보는 측
4.2. 국가 프로젝트의 희생자라고 보는 측
5. 근황
6.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의 이학박사. 대한민국[1] 최초, 전 세계적으로는 475번째, 여성으로서는 49번째로 우주에 가본 우주여행 참가자다. 영주권을 취득하고 거주 중인 미국에서는 'Astronaut'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미국 기준을 정확히 적용한다면 우주여행참가자(participant)다.[2][3] 광주과학고등학교[4]KAIST 출신이다.

2. 참가 이전


원래는 우주인 선발 과정에서 2007년 1월 경, 고산이 최종 우주인으로, 이소연은 예비(spare) 우주인으로 선정되었다. 우주인은 만약을 대비해 보통 2배수를 교육시킨다. 그런데 2008년 3월 경, 고산이 반출 금지 서적을 무단 반출하여 규정을 위반했다는 사유로 탈락하고, 예비 우주인인 이소연이 우주로 가게 되었다. 이 서적은 일종의 매뉴얼로, 단순한 서적이 아니고 사실상 러시아의 필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어 세세한 곳까지 커버하는 일종의 FM이라고 한다.
이소연 본인의 말에 따르면 갑작스런 우주인 변경 탓에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고 한다. 우주인이 생활할 개인용품은 우주인이 올라가기 전에 미리 다른 로켓편에 우주정거장으로 올려놓는데, 이소연으로 우주인이 변경된 시점에선 이미 고산의 물품이 올라가있던 상황. 본인이 우주선에 들고 올라갈 수 있는 개인용품이 정말 한정적이어서 꽤나 골치 아팠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 측 우주인과 교관의 배려로 규정보다는 좀 더 많은 개인용품을 올려보내줬다고 한다. 물론 러시아 우주인들도 마찬가지로 눈을 피해서 규정 이상의 개인용품을 우주선 어딘가에 짱박아서 올라간다고 한다.
당시 "광고로 돈을 벌어 아파트 등을 사고 싶다"라는 식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많은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았다. 우주관광사업을 지원했던 SBS자화자찬식 북 치고 장구 치기식 홍보도 더해져 대중의 반감을 더욱 부른 건 덤.
그런데 논란이 된 원본 인터뷰는 최종 후보 30명에 뽑혔을 때 찍은 것이고, "우주인이 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한국미국일본과 달리 국가에 수입 중 일부를 낸다면 광고를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말한 다음 그 돈으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답변이다. 인터뷰 답변 내용은 '학교에 기부하겠다'와 그 논란이 되는 '아파트 등을 사고 싶다' 등이다. 구성을 보면 하고 싶은 것의 비중 중 가장 높은 지분을 가진 것이 바로 저 '아파트 등을 사고 싶다'는 발언. 거기에 추가로 "유명해지면 교만해질까봐. 그러지 않겠다고 또 한 번 마음판에 새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연구를 계속해야 하는데 건방져질까봐, 게을러질까봐 벌써부터 고민이다."라는 내용도 있었다. 해석하기에 따라 여러 가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는 하나, 두고두고 논란이 되었다.
그래서 본인은 조기 탈락할 줄 알았는데, 도리어 이런 부분이 높게 평가되었다고 한다. 우주인은 매우 제한된 공간에서 오랜 시간 일해야 하기 때문에 성격이 활달할수록 좋게 평가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주에서 우울증에라도 빠져서 동료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거나, 아무 버튼이나 확 눌러본다고 생각해보면 그럴 듯 하지만... 다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탓에 곤란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위의 TV 광고 발언도 그 중 하나이며, 이후 선발 과정을 거치면서 "우주인 중 하나는 여성의 몫" 같은 발언을 하는 바람에 사업 자체의 문제 등과 함께 시너지 효과로 논란이 커졌다.

3. 참가 이후


귀환 후 TV 광고를 주로 찍었으며, 우주인 배출 사업 협찬 업체는 이소연을 모델로 한 캐릭터 홍보를 펼쳤다. 한국 내에서는 '한국인 최초 우주인'으로 평가받으며, 여러 가지 한국의 우주개발 사업 흥보에도 모습을 자주 비췄다. KBS 라디오에서 과학 정보 관련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2008년 정부가 주관한 '건국 60주년' 기념 사업인 건국 60주년 60일 연속강연에서 60번째 강사로 섰다.
우주에서 귀환한 이후 2년간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지냈다. 과장급 대우로, 박사연구원에게 주는 직급이다.
2012년 8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허가를 받아 휴직하고 UC 버클리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2013년 8월에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재미교포 검안사[5](당시 39세)와 결혼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고 알려졌으나 그것은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하면 영주권이 우선적으로 발급되며, 그 이후 시민권 취득이 가능하다는 사실에서 온 낭설이다. 물론 몇 년 지나고 나면 가능하다.
2013년 10월 국정감사에서 MBA 과정이 문제로 지적되었으며, 당시 항공우주연구원 측은 'MBA 과정이 우주인의 능력을 높이기 위한 학업 수행의 일부'라는 궤변을 하며 이소연을 옹호했다. 국정감사에서 강연료 수입도 문제로 제기되었다. 업무 시간 중에 강의를 하면서도 강의료를 모두 개인 수입으로 얻었다는 것. 8,000만원 정도로 추정된다.
2014년 6월 항공우주연구원을 퇴사했다.

4. 논란: 먹튀인가 희생양인가?


'''"나는 우주인 배출사업의 도구...'''

'''후속 계획 없어 허탈했다"'''(2018. 문화일보)

이소연은 논란의 인물이기도 하다. 오해와 곡해로 인한 이미지도 틀림없이 존재하는 반면에, 공식 발언과 행동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데, 인터뷰 발언 내용을 보면 논란의 여지를 본인이 만들고, 또 본인이 억울해하며 반박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어쨌든 국가 프로젝트의 최종 선정돼 수혜를 입은 연구자로, 말과 행동에 신중함이 아쉽다는 인물평이 일반적이다. 특히 소속했던 항우연이나 당시 정부 정책을 비난하는 발언들이 쌓여 '''"먹튀 논란"'''과 더불어 불만만 많은 수혜자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이는 해외 사례나 학계 문화를 봐도 별난 발언들이다.

'''"우주여행 중 새 정부 로고 붙여야 했다"'''

'''"한국은 미국·일본과 달리 광고를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

'''"광고를 많이 찍어 아파트도 사고 학교에 기부도 하겠다"'''


4.1. 먹튀라고 보는 측


이소연은 '''수백억대의 국가 프로젝트를 등에 업고 우주로 나간다는 것의 책임의 크기를 애초에 충분히 자각하지 못하고 지원했음을 인터넷에 공개한 글을 통해 인정'''했으며, 불과 몇 년 뒤에는 결국 ''''관련 커리어를 포기함으로써 우주인으로서 최소한의 긍지조차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물론 이소연은 NASA 우주비행사 자격을 박탈당한 리사 노왁 같이 추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이소연은 계약에 따른 항공우주연구원 의무 근무 기간도 모두 이행했기 때문에, 최소한 법규상으로는 아무런 하자도 없다. 그녀가 받았던 지원은 평범한 사람은 평생을 가도 얻지 못할 행운이며, 선발 과정 역시 여자라서 된 게 아니냐는 의견이 강하게 나올 정도로 미심쩍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스스로 그 논란을 종식시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애초에 항공우주사업은 시작부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점증주의적 정책 결정이 거의 불가능하다. 때문에 일단 긍정적인 이슈를 만들어 국민들의 지지를 뒷받침한 후에 본격적으로 실행에 들어가야 한다. 당시 노무현 정부에서는 항공우주산업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관심을 얻기 위해 한국우주인배출사업이라는 이슈메이킹을 계획한 것이다. 이소연 지지 측에서는 우주인의 '귀중한 경험'을 활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얼굴마담'으로 간주했다고 비난하지만, 우주인 배출 사업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국민들의 지지와 관심을 얻기 위한 것이었던 만큼 이는 사업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애당초 이소연이 우주에서 수행한 임무라는 것도 과학 기술 발전에 의미가 있는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닌, 국민들의 흥미를 일으키기 위한 교육적 실험들이었다. 다시 말해서, 우주인으로서의 '귀중한 경험'이라는 것은 (실제로 '귀중한'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연구원으로서의 경력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일단 국민들의 관심을 얻어서 예산을 확보하고 본격적으로 실행에 들어가야 그 경험을 활용하건 말건 할 수 있는 일이다. 국민들의 관심을 얻기 위한 활동을 시킨 것은 사업 목적과 현실에 정확하게 부합되는 것이며, 그것을 이유로 항우연을 비난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NASA에서도 여러 대중적인 이벤트에 우주비행사들을 내세워서 대중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경우는 있어도, 우주비행사로서의 경험을 살려서 로켓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로 채용하자고 하는 경우는 없다.[6] 그러나 실행 중간에 일어난 사건들과 정치인들의 백지와 다름없는 차후계획, 항우연 자체의 무계획적 운영,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지 못했고, 결국 본격적인 사업은 시작도 못해본 채 한낱 역사의 한줄 해프닝으로 끝나게 되었다.
그외에 우주 여행 이후 국회 조찬 기도회에서 간증을 해서 우주인 규정을 어겼다는 논란도 있었다.[7]
2014년 8월 미국 시애틀 박물관에서 항공우주캠프 체험 프로그램의 안내 역할을 맡는 장면이 알려지면서 더더욱 먹튀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
2015년 6월에는 '''미국'''의 우주 관련 민간 교육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그리고 과거 2012년 인터뷰 발언 역시 그녀가 한국우주산업에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

4.2. 국가 프로젝트의 희생자라고 보는 측


개인에 대한 비난에 앞서, 수백억 원의 국민 세금을 들여 이러한 이벤트성 우주쇼를 만든 후 아무런 후속 계획을 세우지 않은 당시 정부와 항우연이 근본적인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8] 물론 아래 민주당 최재천 의원의 발언처럼,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이소연 본인의 처신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다시 말해 당시 정부의 국가 우주인 프로젝트를 비판하는 것이 이소연 본인의 처신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 사업으로 '''한국우주인배출사업 프로젝트를 추진한 당시 노무현 정부는 장기적 로드맵을 짜놓았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예산이 모두 삭감되면서, 단기적 홍보 목적으로 방향이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홍보 목적 이외에 중·장기적인 유인우주개발 계획이 전혀 없었고, 이소연이 우주를 갔다 온 후 홍보를 위한 얼굴마담으로 사용되는 것 이외에는 활용 계획이 전혀 없었다'''. 우주인 '먹튀' 논란 주범은 일회성 쇼. 당시에도 많은 전문가들은 일찌감치 이 문제를 지적하며 '''정부의 정책 부재'''를 꼬집었다. 한국우주인배출사업 프로젝트가 시작된 2006년부터 이미 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었다. 특히 프레시안은 '''260억 원짜리 '홍보대사', 값비싼 일회성 '우주 관광'''', 심지어 ''''황우석 사태의 재판''''이라는 원색적인 비판을 가했다. '황우석 사태' 꼭 빼닮은 '우주인 호들갑'-260억짜리 홍보대사가 우주영웅? 하지만 언론의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사업은 ‘'''일회성 쇼'''’로 흘러가고 말았다.
이후 국정감사 때마다 이점이 반복적으로 지적되었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최재천 의원은 정부출연 연구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소연 우주쇼 개인 경험에 260억 들였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최 의원은 "우주인 배출 사업 후속 연구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최 의원은 "한국 최초의 우주인으로서 이소연 박사는 우주과학 분야의 기술 개발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미국 MBA 과정을 밟겠다고 건너간 점은 과학 인재 육성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항우연은 이소연 박사의 MBA행을 우주인 능력 향상을 위한 학업 수행이라고 미화했다" 라고 말했다. #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의 항우연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홍의락 의원도 비슷한 언급을 했다. # 홍 의원은 '''우주인의 귀환 후 미래 계획과 후속 사업에는 관심도 의지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소연 박사는 얼굴마담으로서 혹사에 가깝게 부려먹어 연구할 시간도 없었다고 말했다. 항우연은 이소연 박사를 외부강연 235회, 과학 전시회·행사 90회, 대중매체 접촉 203회 등 총 528회의 대외 활동을 소화시킨 반면, 우주인 관련 연구는 고작 4회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소연 박사는 2년간 선임 연구원의 복무를 수행하는 조건인데, 이소연 박사는 4년간 역할을 수행했다. 실제로 이소연 박사는 연구 활동을 위해 공군의 모 시설을 빌리기도 하는 등 개인적으로는 여러 노력을 통해 30여 건의 우주과학 논문을 발표하고 1건의 특허를 등록하였다. # 국내 우주기초과학계는 이소연 박사가 우주에서 실험한 것들은 모두 결과물로 정리된 상태로써, 한국인 최초 우주인으로서 주어진 미션을 완수했다고 여긴다. # 따라서 마냥 이소연 박사를 비난하는 행위는 올바르다고는 할 수 없다.
# 이 때문에 이소연은 "내가 점점 비어가는 느낌"이라고 인터뷰한 적도 있는데, 이 때가 고작 돌아온 지 6개월이 지난 후였다. # 우주에서의 귀환 이후 이소연 박사가 명백히 연구원으로서 항우연에 남았던 것을 생각하면, 이소연 박사가 우주에서 얻은 귀한 경험을 활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얼굴마담으로만 생각한 것이다. 미국의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실험실에서 전화를 받으면 '비서 말고 연구원과 통화하고 싶다'는 말을 듣는 때가 많았고, 남성 연구원들 가운데 일부는 남자 연구원과 일하거나 얘기하고 싶다고 내게 직접 얘기하기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 사실상 연구원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도 우주인에 대한 후속 계획이 없으니 그 후로 얼마나 항우연에 있었든 강연만을 다녔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먹튀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의미 있는 일도 하지 못하고 10년, 15년 항우연에서 월급만 받는 것은 오히려 세금 낭비라고 할 수 있다.
우주인 후보였던 고산은 의무기간 2년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항우연을 그만두고 하버드로 유학을 떠났으며, 현재는 3D 프린터 업체를 창업하였다. 2013년에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로보월드 2013' 전시장에서 고산은 우주인 후속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 이소연과 고산 두 명이 모두 우주와 연관되지 않은 일에 종사한다는 것은 항우연이 우주인 훈련에 참여했던 두 명 모두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으며, 의미 있는 계획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이 사건 이외에도 우리나라가 이공계 전문 인력에 대해 얼마나 홀대하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되는지 생각해보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결국 10년 만에 이소연 본인이 직접 당시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였다. #
또한 이소연은 지구 귀환 후 교육과학기술부 담당자에게 "우주에서의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묵살당했을 뿐더러, 우주과학에 대해 전혀 모르는 비전문가들과 함께 했었다고 밝혔다. #
자세한 사항은 한국우주인배출사업 문서 참고.

5. 근황


2018년 4월 15일 SBS 스페셜에 거의 10년만에 출연해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내용과 미국에서의 삶을 전했다. #
디스커버리 채널 아시아에서 촬영한 후쿠시마 다이어리에 출연하여 후쿠시마 농산물의 안전성을 홍보하는 출연을 해서 논란을 빚었다. 일본은 원전사고 직후부터 완전한 수습이 끝나지도 않은 지금까지 먹어서 응원하자!로 후쿠시마 농수산물이 안전하다고 선전해왔으며, 한국의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에 대해 WTO에 제소하여 1심에서 승소했지만, 상소심이자 사실상의 최종심인 2심에서 한국에 패소했다. #
위 논란과 관련하여 이소연은 허핑턴포스트지에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나는 과학의 시선으로 후쿠시마의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이소연의 일련의 논란에 대한 정정 기사가 있으니 참고.

6. 관련 문서


[1] 한국계로는 2001년 한국인과 유대인의 혼혈인 미국인 마크 폴란스키가 최초.[2] 이소연의 근황을 소개한 2014.8.21 AP 보도를 보면 '우주 여행을 한 첫 남한 사람'이라고만 기술할 뿐 '우주인(astronaut)'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3] NASA 내부 교육에서는 소유즈 캡슐 부상 사례들 중 "that South Korean tourist lady"라고 언급하는 사례를 확인.[4] 당시 영재학교가 아닌 과학고등학교였다.[5] 안과의사로 보도한 경우가 많았는데 안과의사(Ophthalmologist)가 아니라 검안사(Optometrist)이다. 미국에선 안과 직종이 세 단계이다. Ophthalmologist는 우리 나라의 안과 전문의와 같이 의대를 졸업하고 전공의 과정을 이수하여 눈에 대한 모든 진료와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이고, Optician는 우리 나라 안경사와 같은 역할이다. 그 중간에 Optometrist가 있는데, 예비학부 3년 후 4년제 검안사 학교(optometry school)를 졸업하여, 시력·질병에 대한 검사를 하고, 눈다래끼 정도의 가벼운 눈병에 대한 치료와, 안경·렌즈에 대한 처방을 할 수 있다. [6] 다만 발사체 엔지니어로 진로를 틀 경우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며, 실제로 그렇게 활동하는 우주인들도 꽤 있긴 있다. 이온 엔진 VASMIR를 제작하는 Ad Astra Rocket Company의 CEO가 우주인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NASA의 주도로 로켓 개발 자체를 교육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말로 받아들이자.[7] 과학자가 중세 시대에 천문학을 부정하는 역할을 했던 기독교를 믿는 것 그 자체에 대해 태클을 거는 사람도 있었으나 미국 아폴로 계획에 참가한 역사 속의 위대한 우주인들도 다수가 기독교 신자였으며 제임스 어윈은 아예 말년에 목사까지 되었다. 과학자가 종교 믿으면 안된다는 법도 없거니와 종교적인 믿음은 직업적 전문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개인적인 영역이다. 이소연이 간증한 게 문제시된 것은 당시 우주인 규정에 우주 체험을 종교적 간증에 이용하지 말라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8] 260억원의 큰 비용이라고 하지만, 우주여행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관광만으로도 200억원은 들어간다. 이벤트성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