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시인)
1. 개요
대한민국의 아방가르드 시인. 아호는 이강(怡江).
2. 생애
194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친가와 외가 모두 의사 집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의(公醫)로 활동했던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잦은 이사를 했고 이로 인해 낯선 전학생의 신분에 자주 처해지게 되었으나, 가족 중 어느 하나 온정을 베풀지 않아 어린 시절을 ‘긴장’과 ‘불안’으로 보내야 했다.
성년이 되어서도 개인적 일상 속에서 유독 강한 낯선 것들에 관한 두려움과 공포를 지녀왔는데 이는 유년기와 청소년기가 낯익고 익숙한 일상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되어 버린 기억과, 익숙하지 않은 낯선 것들이 던져주는 알 수 없는 공포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남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불안감은 이후 춘천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당시 시인으로 활약하던 이희철 은사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동창 전상국과 함께 습작시 등을 짓는 등 ‘소외의식’과 ‘서구의식’으로 전환되지만, 그의 평생에 걸친 자기 실존에 대한 불안의식과 내면성 탐구에의 집착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고교를 졸업하고 가업인 의사를 꿈꿨으나 의과대학 입시에 실패한 후 우연한 기회에 접한 한양대학교 특차 모집 공고를 통해 1961년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에 진학했다. 참고로 이때 한양대와 성균관대는 SKY(대학교)급 대학에 떨어졌는데 재수가 여의치 않으면 진학하는 최상위 후기대였다.
1962년 〈현대문학〉에 시 「낮」외 2편이 당시 국문과 교수였던 박목월 시인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왔다. 이를 계기로 1963년 등단하였고, 1964년 3학년 때 국문과로 전과했다. 여담으로 이때 박목월 시인의 한양대 국문과 또 다른 제자 중 한 명이 배우 윤여정이었다.
한양대 국문과 졸업 후 연세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이상 시 연구' 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970년부터 1980년까지 고향 춘천에 있는 춘천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 때 그의 손을 거쳐간 사람이 바로 최승호다. 1980년부터는 모교인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1983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교수로 재직하면서 시 이외 다수의 문학이론서를 출간하였으며 현대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세계를 탐색하는 에세이 등을 문학 잡지에 발표하는 등 다방면에 걸쳐 문재를 과시해왔다.
한국 시단이 서정적 전통을 주류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시 세계를 끝없이 천착했고, 특히나 '이것은 시가 아니다', '위독' 등의 작품을 통해 언어 기호학을 벗어난 고정된 관념의 틀 속에서 자유로운 문학 표현을 강조했다.
2008년 정규 교수직에 퇴임한 후에는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암 투병을 하면서 심신안정을 위해 불가에 반 귀의하디시피 하고 있으며, '나'와 '언어' '대상'까지 버리고 시상(詩想)의 전복을 감행해 "시의 본질은 없고 절대적 가치도 없다"는 그의 아방가르드 표현이 불교 정신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현대불교신문사와 <시와세계>사가 제정한 ‘이상시문학상’의 첫 번째 수상자, 제18회 현대불교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6년에는 만해문예대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수상 소감으로
라는 말을 남겼다."아직도 사는 게 서글픈 떠돌이 시인이자 자폐증에 시달리는 정년 퇴임 교수이자 선객(禪客)일 뿐"이라며 "언제 미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시를 썼지만 이제 시는 시를 모르고 나는 나를 모른다"
2015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계 교재인 국어 영역 EBS N제와 2016년 수능완성에 그의 작품인 '이승훈 씨를 찾아간 이승훈 씨'가 나온 적이 있다. 시 자체가 철학적 요소를 담은 관념적 주지시이고, 작가의 경향 자체도 독특해 해석하는데 쉽지가 않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이러하지만 작품의 짜임새들이 수준 높기 때문에, 그가 쓴 작품이 여러 시험에 출제될 가능성이 많다.
2018년 1월 1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장지는 춘천 공원 묘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