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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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목월(朴木月, 1916년 1월 6일 ~ 1978년 3월 24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대학교수이다. 목월은 호이고 본명은 박영종(朴泳鍾)이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북에는 소월이 있었거니 남에는 박목월이가 날 만하다."
2. 생애
1916년에 태어났다. 출생지는 경상남도 고성군, 고향은 경상북도 경주군. 대구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갔다가 귀국하여 대구 계성중학교, 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 등에서 교사를 역임하였다. 이후 1962년부터 한양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육영수의 시 선생 노릇을 한 적도 있었고, 육영수 전기를 지었으며, 대통령 찬가를 작사하여 권력에 아첨하는 어용시인이라는 비판도 듣고 있는 상태. 개인사적으로 박목월은 슬하에 다섯 자녀를 둘 정도로 다복하지만 가난했는데, 어느 날 집 앞 골목길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목월을 보고 장남이 "힘드시죠?"라고 물었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이호철은 그의 이런 행적에 대해 '가난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옹호하긴 했다.[1]
처음에는 동시로 출발했으며 1933년 '''어린이'''지에 동시 통딱딱 통딱딱이 특선되었다. 그러다가 1939년 본격적으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1946년 조지훈, 박두진 등과 청록파(靑鹿派)를 결성하고 '''청록집'''(靑鹿集)이라는 시집을 발간하였다. 청록집에 실린 그의 시로는 임, 윤사월, 청노루, 나그네 등이 있다. 참고로 청록집이라는 시집은 그의 시 청노루에서 따 온 것이다. 이 시집에 실린 그의 시는 한국적인 서정과 극히 간결하고도 리듬감있는 시어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기타 유명한 시로는 하관(下棺), '내 신발은 십구문 반'이라는 구절로 유명한 <가정> 등이 있다. 군가인 <전우>, 포스코 사가, 한국일보 사가, MBC 사가 등의 작사도 했다.
개인적인 성품으로는 언제 어디든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 호인이었다고. 다정다감하고 목소리는 약간 가냘픈 듯 하며, 조용조용한 성품에 원고 청탁을 거절해본 적이 없고, 모든 원고는 꼬박꼬박 본인이 직접 가져다주었다.
1978년 3월 24일 새벽에 산책하고 집으로 가다가 고혈압으로 쓰러져 6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의 아들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박동규다.[2] 박동규 교수의 회고에 의하면 풍족하지 않은 가정형편에도 자녀들을 위해 애쓰는 아버지였다. 가령 만화책을 보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하루 종일 동네를 돌아다니며 만화책을 한자루 쓸어담아왔다거나, 서커스가 마을에 오자 몰래 개구멍으로 아들을 들여보내고 자기는 그 개구멍을 들키지않게 서커스가 끝날때까지 가로막으며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아들이 장성해 대학에 진학할 때 "같이 책을 쓸 수도 있구..."하며 은근히 국문학과 진학을 권했는데, 나중에 교수가 된 아들이 자신의 논문을 보여드리자 며칠 후 빨간 펜으로 문법과 용어 사용을 일일이 교정해 방문 앞에 놓아두었다고 한다. 아버지 이전의 시인으로서의 박목월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다. 유안진 시인은 목월의 추천으로 등단했는데, 나중에 시인을 추천해서 등단시키는 것에 대해 엄격했던 목월의 면모를 회고했다. 11년 만에 추천 받은 사람, 다시는 이 집에 발길 안 한다고 치를 떨며 나간 사람, 박목월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유안진에게도 처음엔 "유군은 국문과 영문과도 아닌데, 시 몇편 좋다고 시인으로 추천했다가 사는 게 힘들어지고 바빠서 시 안 쓰면 추천한 나는 뭐가 되노?" 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3. 주요 시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나그네」
산은
구강산
보랏빛 석산
산도화
두어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산도화 1」
한포기 난을 기르듯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조용하게 살아가고,
가지를 뻗고,
그리고 그 섭섭한 뜻이
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
아아
먼곳에서 그윽히 향기를
머금고 싶다.
-「난」
(중략)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가정」
머언 산(山)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굽이를
청(靑)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청노루」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 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두 귀가 얼룩귀 엄마 닮았네
-「송아지」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이별가」
4. 그 외
- 1952년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 피난지인 대구의 교회에서 박목월을 따르던 두 자매가 있었다. 그런데 그 중 장녀가 깊은 감정으로 다가오자 목월은 거절한 후 서울로 상경하게 되고, 그녀는 결국 단념하고 결혼을 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명문여대를 다니던 동생은 박목월을 포기하지 못해 다시 만난 그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했고, 박목월은 그 여대생과 사랑에 빠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자리도, 가정도, 명예도 모두 내던지고 연인과 함께 종적을 감췄다. 얼마 뒤 시간이 지나고 박목월의 아내 유익순은 그가 제주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남편을 찾아나섰다. 막상 두 사람을 마주하게 되자 아내는 “힘들고 어렵지 않느냐”며 돈 봉투와 추운 겨울을 지내라고 두 사람의 겨울 옷을 내밀고 서울로 사라졌다. 박목월과 그 연인은 이 모습에 감동해 그 사랑을 끝냈고, 목월은 가정으로 돌아왔다. 그의 시인 『이별의 노래』에는 두 사람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한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은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이별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