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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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의 이오덕. [1]
李五德
1925년 11월 14일 ~ 2003년 8월 25일
아동문학가.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우리말연구소 대표였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교사, 교감, 교장을 지냈고 아동문학가 권정생의 발굴자이기도 하다.
이름의 뜻은 아버지가 아들이 태어난 연도(5)와 장소(덕계리)를 나타내는 글자를 하나씩 따서 오덕(五德)이라고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글을 볼 때 때와 곳이 잘 드러났는지를 중요하게 봤다고 한다.
이오덕을 소개하는 사이트나 매체마다 태어난 곳을 영천시 또는 청송군으로 다르게 적는데 태어난 현서면(옛 지명은 화목)이 영천과 청송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일단 2013년 현재는 행정구역상 청송군에 속한다. 현서면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보면 '내고향 화목'이란 이오덕의 기념비가 있다.
일본말 흔적를 문학에서 쫓아내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잘 쓰자는 운동을 하였다. <우리 문장 쓰기> <우리글 바로쓰기>는 지금도 문학에 뜻이 있는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글을 다듬기 위해 읽는 유명한 책으로 꼽힌다. 말을 꾸며낸 듯한 글짓기라는 말 대신 글쓰기라는 말을 쓰자고 하였다. 그리고 1986년 군사독재 정권의 미움을 받아 교단을 떠난 뒤 한국 전교조를 세우는 운동에 함께 하였다.
우리말 글쓰기에서 착한 우리말을 상당히 고집하였다. 더욱이 일본에서만 쓰는 한자어나 일본 말법을 그대로 옮겨오는 걸 비판했다. 더군다나 '병신말', '정신 나간 짓'이라는 욕설도 이오덕이 쓴 책에 심심치 않게 나온다.
외래어를 '서양말', 한자어를 '중국글자말'이라고 낮춰 부르며, 당시 신문이나 잡지에 한자를 많이 혼용해서 쓴 현실을 비판했다. 가장 심했을 때에는 한자로 나라 이름을 적었을 때 '정신 나간 짓'이라고 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우리글 바로쓰기>에선 비행기를 날틀, 학교를 배움집, 우동을 가락국수로[2][3] 억지로 바꿔 쓰진 않아도 된다 하였다. 더욱이 '''돈부리(丼/덮밥)'''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잊기 쉬운 '자연스럽게 글 쓰기'란 원칙을 되살려주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였다.
이오덕이 번역을 극찬했던 책이 '''공동번역성서'''이다. 복음서편을 따와, 한국말로 쓴 책에서도 찾기 드문 자연스러운 우리 글을 구사했다고 칭찬했다. 바꾸어서 말하면 한국어 출판물 중에서도 번역투 글로 씌인 책이 억수로 많다는 소리이니 한국 번역가들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덧붙여서, 곰돌이 푸 소설판 번역 작업에도 참여하여, 영어를 우리말로 바르게 번역하는데 감수했다. 하지만 영어식 말장난을 우리말로 매끄럽게 나타냈는지는 의견이 약간 분분한 상태이다.
80년대에 들어선 교사들에 대한 탄압 때문에 전두환 정권에 몸서리가 나서 스스로 퇴임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2003년 8월 25일 충북 충주에서 숙환으로 사망했다.
저서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에서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성유리가 쓴 동시를 극찬하며 소개했다.

제목 : 소

소의 눈은 참 크다.

두 눈을 보면 참 착하게 보인다.

소는 참 착한가 보다.

소가 사람이 되면

이 세상은 다 착한 사람이 될 거다.

이 글은 줄글로 썼지만 훌륭한 시가 되었습니다. 이름 앞에 적힌 '2학년'을 지우고 이글을 어른들에게 보여서 "이것은 유명한 시인의 시입니다."고 해도 감동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정말 사람이 소같이만 되면 이 세상은 얼마나 평화스럽고 즐거운 세상이 될까요? 어린이는 철학이고 종교고 무슨 주의고 사상이고 다 모르지만, 어른들이 오랜 세월 애써 겨우 깨닫게 된 진리를 아주 단순하게 직감으로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어린이는 숙제와 시험 공부에 매달려 있는 어린이가 아니고, 자연 속에서 뛰놀면서 살아가는 어린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 미소는 일본어 微笑み에서 왔으므로 '미소와 웃음은 다르지 않냐'고 하는 반응에 대해 병신 같은 소리라고 했다. 보기 이 글에는 미소가 일본말이며, 이와 뜻이 같은 우리말 '웃음'으로 바꿔 쓸 수 있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래서 이오덕은 사는 동안 일본말 '미소'를 '웃음'으로 바꿔쓰자는 주장을 꿋꿋이 밀고 나갔다. 하지만 미소는 웃음의 한 종류일 뿐이며, 조선왕조실록에는 微笑가 69번 나온다. 일본어 잔재설도 참조.[2] 국가가 나서서 순우리말 쓰게 만들어 된다는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을 따르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말이다.[3] 우동을 가락국수로 고치라는건 국립국어원 권장사항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