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지처

 

'''고사성어'''
'''糟'''
'''糠'''
'''之'''
'''妻'''
술지게미 '''조'''
겨 '''강'''
어조사 '''지'''
아내 '''처'''
1. 소개
2. 유래
3. 그 외


1. 소개


보통 본처(일부다처제하에서의 첫 번째 아내)를 가리킬 때 쓰는 표현이다. 단어 자체는 '(먹을 것이 없어서) 술지게미쌀겨를 먹으며 고생을 함께 한 아내'란 뜻으로 후한 광무제 때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2. 유래


광무제의 누나 호양공주는 일찍이 과부가 되었는데, 광무제는 새 남편을 들여줄 생각으로 "맘에 드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호양공주는 광무제의 신하였던 송홍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송홍은 이미 유부남이었으므로 문제가 생겼다. 황족을 감히 첩으로 들일 수는 없으니 반드시 본처로 삼아야 했다. 그렇게 되면 본래의 처가 쫓겨나거나 첩으로 강등되어야 했으므로, 호양공주 쪽에서 송홍이 마음에 든다고 무작정 혼담을 진행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무제는 송홍을 부른 다음, 병풍 뒤에 호양공주를 숨겨두고 송홍과 술을 나누다 넌지시 마음을 떠보았다. "사람이 출세하면 친구를 바꾸고 부유하게 되면 아내를 바꾼다는데 자네는 어떠한가?" 이 말에 송홍은 "신은 가난할 때 친했던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내보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臣聞 貧賤之交不可忘 '''糟糠之妻'''不下堂)."라고 대답했다.
그의 뜻을 알게 된 광무제는 슬쩍 누나를 돌아보며 "안 되겠네요, 누님."이라고 허탈하게 소근거렸다고 한다.

3. 그 외


전근대 시대에는 여자의 이혼이나 재가를 대단한 불명예로 여겼고, 설령 불명예는 참을 수 있다 쳐도 사회진출이 안 되니 독자적으로 돈을 벌 수도 없고, 재산권이 보장되지도 않으니 재산을 굴린다거나 할 수도 없어서 이혼을 당한 여자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런 실정에서 여성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조강지처는 버려선 안 된다'는 개념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힘들 때 함께 고생한 아내를 성공했다고 걷어차서야 쓰겠는가'''라는 의미도 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난할 때 함께 했던 연인이나 배우자를 성공한 뒤엔 내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의미 있는 말이라 할 것이다.
현대에도 아주 없는 얘기는 아닌 것이, 고시 등을 치는 사람이 고시 생활할 때 여러모로 챙겨줬던 연인을 고시 합격한 후 버리고 돈 많고 외모 좋고 스펙 좋고 집안 빵빵한 사람을 새 연인으로 삼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 잘 사귀고 있으면서도 "아 시험만 합격하면 이런 인간 말고 시험에 붙은 나와 어울릴 짝을 만나야지" 하고 생각하는 인간 말종도 왕왕 있다. 물론 이런 짓을 하고 인생이 순탄하길 바라면 그게 이상한 거다. 버림받은 쪽이 이를 주변에 알려서 개망신을 당하고 임용이 취소되거나 인생이 꼬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1970년대에 조강지처를 버린 검사가 있었는데, 버림받은 조강지처가 대통령 내외, 즉 '''박정희육영수'''[1][2]에게 편지로 자신의 사정을 호소하는 바람에 그 검사는 검사복을 벗어야 했다. 최근에도 Y대 CC 출신 부부 중 아내는 붙지 못하고 남편만 사법시험을 붙어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자 아내는 자살(!)해버리고, 분노한 처가 쪽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바람에 이 사실이 알려지자 파면당해서 법조계 '''커리어가 시작도 못 하고 끝나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 유명한 나폴레옹도 정치적 이유로 조세핀을 버리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인인 마리 루이즈와 재혼하는 바람에 욕을 엄청 먹었다.[3]
요즘은 아내의 꿈을 위해 남편이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는 등, 힘든 시절에 애인이나 배우자의 뒷바라지를 하는데 여자 남자 가릴 시대는 지났으니 남편의 경우에 해당하는 단어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실 그래서 조강지부(夫)라는 단어도 종종 쓰긴 한다.
요즘에는 그냥 자신의 아내를 지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아저씨들이 술에 취하면 '''"우리 마누라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만 하네···"''' 하면서 한탄할 때 자주 쓴다.
이런 일이 미담(?)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조강지처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이 시절에도 어려움을 함께 하던 아내나 연인을 배신하는 일이 많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요즘은 "조강지처가 좋더라 썬연료가 좋더라" 광고로도 알려져 있다.
지금도 50대 이상의 남자들은 조강지처가 아니면 믿음이 덜 간다. 재취로 들어온 여자에게는 큰 돈을 선뜻 맡기기 꺼림칙하다는 말에 공감하기도 하는 등, 유교 문화권에서 조강지처는 특히 그 중요성이 강조된다.[4] 할리우드 영화 <웨딩 싱어>에는 여친이 있음에도 온갖 스트립 바와 유흥주점을 드나들면서, 결혼은 그 여자친구와 하려는 성공한 사업가가 등장한다. 지인이 그 사실을 알고 이유를 묻자 심드렁하게 "오랫동안 절 기다려줬는데 이제 와서 버리기는 좀 그렇죠. 게다가 제가 돈 벌기 전부터도 꾸준히 저랑 사귀어줬으니까 아무래도 믿음이 더 가요."라고 대답했다.
사실 세계적으로도 성공 후 조강지처와 이혼하고 재혼, 그것도 젊고 예쁜 여자와 재혼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좋은 시선 받기 힘들다. 힘들 때를 같이 한 조강지처를 배신한 놈을 어찌 믿냐는 것. 거기에 더해 색욕에 미친 인간 쓰레기라는 평도 덤으로 따라붙는다. 젊은 시절 같이 고생한 조강지처를 쫓아내는 것에는 여성보다 같은 남성들의 거부감이 더 크다 한다. 특히 중년 이상 남성들은 유교적 가치관과 이혼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조강지처에 대한 의리를 매우 중요시한다. 실제로 조강지처를 버렸다가 죽마고우들에게까지도 절교당한 사람들이 많다. 상식적으로도 자신의 아내라는, 같은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 중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도 배신해서 내버리는 인간인데 친구라고 배신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특히 색욕 때문에 아내를 버릴 정도로 밝히는 사람이면 친구의 배우자도 성추행을 하거나 바람이 나는 등 여자 문제로 더럽게 꼬일 가능성도 있다. 도의를 떠나 합리적으로 생각해봐도 절대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인 셈.
대신 불륜이나 업소를 찾는 등의 행동은 '남자가 한 번쯤 그럴 수도 있지~'식으로 관대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이에 대해 '이혼만 안 하면 불륜도 성매매도 괜찮다는 건가? 알 수 없는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는 의견도 있는데, 아무래도 구세대적인 남성들은 성관계와 결혼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며 성관계 문제 정도로 깨질 정도로 간단한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특히 성적인 문제를 드러내놓고 화제로 삼는 것은 금기시하면서도 남성의 성적 자유에는 관대한, 이중적인 성적 관념 때문에 관계가 불만스럽다고 이혼을 요구하는 것은 색욕에 눈먼 놈으로 생각하면서 남성의 불륜은 '남자가 지겨우면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옹호하는 것.[5]
무엇보다 조강지처를 버린다는건 세계 대부분 문화권에서 거의 보편적인 남성간에 중요한 가치라 할 수 있는 '''신의'''를 저버리는 막돼먹은 행위이다. 문제의 중심에 있는 대상은 남자가 아닌 부인이라 할지라도 오랜 세월 어려운 시기를 함께 했던 사람을 버린다는건 전통적인 가부장적 명예 관념에서 보면 '''같은 참호를 나눈 전우를 통수치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가부장적 남성사회의 명예, 도덕관념에서 비춰볼때 일시적인 욕구와 직결되는 볼륜에는 관대하지만(...) 장기적인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인 조강지처를 내버리는게 더 죄악시되는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풀어 말하자면 실질적인 혼외사정, 볼륜은 '사소한 일탈'이라 넘어가도 조강지처를 버리는건 매국노나 배신자로서 보게 된다는 것이다.
만화가 박광수도 젊은 새 아내와 재혼하겠다고 전 아내와 이혼했을 때 오랫동안 절친하게 지내왔던 친구들이 '네가 그런 놈인 줄은 몰랐다'며 거의 다 줄줄이 떠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만화가로서의 평판도 바닥에 떨어져 몰락했다. 다른 예로, 젊고 예쁜 내연녀랑 결혼하려고 조강지처를 버린 사업가가 친구들로부터 "조강지처 버리는 놈들치고 잘 되는 놈은 본 적이 없어!"라는 질타와 함께 절교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재혼한 그 내연녀에게는 또 다른 내연남(···)이 있었다. 이에 이 사업가가 질투심에 눈이 멀어 그만 그 내연남을 '''살해'''하고 결국 재산도 다 내연녀에게 빼앗기고 감옥에 가버린 사건이 있었다.
유교 문화권에만 존재하는 사상은 아니다. 가령 중세 몽골 사람이었던 칭기즈 칸은 수십명의 부인이 있었지만 첫 번째 아내이자 소꿉친구[6]이자 조강지처인 보르테와 다른 첩들간에 선을 확실히 그었고, 보르테가 원수인 메르키트족에게 납치되어 몇 달간 능욕당했음에도[7] 그녀를 다시 구출해내고 내치지 않았다.[8] 후계자도 보르테의 소생 외에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고 한다.
자유로운 이혼을 존중한다는 외국에서도 이런 사례들에 대해 마냥 좋게만 보지는 않는다. 단지 결혼은 개인 문제이며 남이 개인 문제에 뭐라할 이유는 없기에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남들이 터치를 안하는 것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잘나가는 배우자가 어려울 때 부터 함께해온 조강지처를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고 새롭게 재혼하는 것이 쉽지 않고 톡톡한 대가를 치루는 것은 오히려 한국이 아니라 외국이다. 위자료를 두둑히 내야하기 때문. 잘나가는 사람이야 본인의 초혼일 때도 미리 결혼전 계약서로 이혼할 경우 위자료와 매달 얼마씩 생활비를 주는 것을 산정할 수는 있겠지만 성공하기 전 결혼한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의 성공을 미리 짐작하고 결혼 전 계약서로 재산 분배를 약속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나중에 본인이 성공한 이후 조강지처랑 틀어져서 이혼하게 되면 재산분할 소송을 가야하고 상당한 출혈을 각오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조강지처를 버리든 말든은 터치 안 하지만 그에 대한 재산적 출혈을 각오해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거. 대표적인 예로 아마존닷컴의 창립자 제프 베조스가 있다. 이혼 합의금으로 350억 달러를 지불했다고. 다른 면에선 여러모로 초당파적인 존경을 누렸던 미국 정치인 존 매케인 또한 이혼당한 전처가 좋게 넘어갔고, 반대편인 민주당의 기본 스탠스가 성적, 사회적 자유주의니 집중적으로 추궁하기도 뭣해서 치명적인 약점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았지만 베트남전 전쟁포로시절 뒷바라지해주던 조강지처를 버리고 재혼했다는 점 때문에 한동안 좀 구설수에 시달려야했다.

[1] 굵은 글씨로 강조된 이유는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 조강지처를 버리고 육영수와 재혼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2] 물론 박정희가 육영수와 재혼한 건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이혼한 이후이다.[3] 그래도 나폴레옹은 조제핀과 이혼한 후에도 조제핀의 자식들인 외젠오르탕스를 살뜰이 챙겼다고 한다. 실제로 외젠은 의붓아버지의 러시아 원정에도 참전했으며, 오르탕스는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의 어머니다.[4] 간첩임이 들통났던 정수일 교수도 "당신이 간첩인 걸 아내도 아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북한에 있는 조강지처를 먼저 언급했다.[5] 다만 나이 많은 남성의 경우 여성의 불륜에도 젊은 세대보다는 관대한 경우도 적지 않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배우자가 불륜하다 걸리면 쉽게 이혼하는 젊은 세대와는 달리, 일단 이혼 자체를 도저히 하기 힘든 일로 받아들이는데다 마초이즘이 강하다보니 남자 체면에 자기가 불륜을 당했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말하기 힘들어하기 때문. 물론 자기는 바람 피우면서 부인이 바람 피우는 건 용서하지 못하는 족속들도 많지만···[6] 9살과 10살 때 처음 만나 약혼했으니.[7] 보르테가 이런 일을 당한 이유는 테무친의 아버지인 예수게이가 메르키트족에 시집가는 호엘룬 다시 말해 테무친의 어머니를 납치혼했기에 메르키트족이 보복으로 이런 짓을 한거다. 아무튼 이렇게 2대에 걸쳐 납치혼에 얽혀 고생해서인지 훗날 테무친은 납치혼을 금지한다.[8] 아직도 테무친의 혈통인지 칠게르(보르테를 능욕한 메르키트 족 장수)의 혈통인지 불분명한 주치 역시도 자기 아들로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주치에 대해서는 애매한 태도를 유지해서 결국 말년에 차카타이가 주치의 혈통에 딴지를 거는 등 칭기즈 칸 아들들의 사이가 개판이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