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감
고려시대의 인물. 둘은 한자까지 같은 동명이인이다. 광산 김씨[1] 김양감은 고려 초 문종~선종 시기의 인물이고, 언양 김씨 김양감은 고려 후기인 원 간섭기의 인물이다.
1. 광산 김씨
金良鑑
(? ~ ?)
1.1. 생애
관직이 평장사에 이른 김정준의 아들이다. 김정준은 딸을 유력 문벌인 인천 이씨 가문에 시집보내는데, 김양감도 일찍이 사돈어른인 이자연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문종 5년(1051) 과거에 급제한다. 급제 후 임관 초의 생애는 알려진 바 없다.
문종 24년(1070) 종3품의 상서우승 좌간의대부로 서북로병마부사에 임명되고, 이듬해 25년(1071)에는 상서좌승 지어사대사에 임명된다. 문종 27년(1073) 태복경으로 중서사인 노단과 함께 북송에 사은사로 간다. 이듬해 송 희녕 7년(1074)에 수도에 이르러 사례품 등을 전하고 돌아온다. 문종 29년(1075) 우산기상시, 31년(1077) 동지중추원사에 임명된다. 32년(1078) 지중추원사 호부상서로 임시직인 관반에 임명돼 송나라 사신을 접대한다. 이후 참지정사 판상서병부사, 권판중추원사, 좌복야를 역임한다.
1083년 문종, 순종이 죽고 선종이 즉위한 뒤 문하시랑평장사로서 중서시랑평장사 이정공, 참지정사 왕석, 유홍과 더불어 정세를 보고한다. 이후 문하시랑평장사 판상서호부사를 거쳐, 선종 4년(1087) 수태위에 이른다.
선종 7년(1090)에 문하시랑으로서 간의대부 손관과 진사시 복시에서 지공거가 된다. 급제자 중 이경필(李景泌, 이경비?)은 과거시험의 문체 양식에 맞지 않게 답안을 작성했음에도 급제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지공거와 동지공거가 현명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듣는다. 아들 김의원의 묘지명에 따르면 최종 관직은 수태보 문하시중 감수국사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1.2. 가족관계
- 고조부: 김길
- 증조부: 김준
- 조부: 김책
- 부: 김정준
- 본인: 김양감
- 누이: 통의국대부인 김씨
- 부: 김정준
- 조부: 김책
- 증조부: 김준
- 본인: 김양감
- 처: 서해군대부인 최씨
2. 언양 김씨
金良鑑
(? ~ ?)
2.1. 생애
본관은 언양. 김취려의 아들인 문하시랑평장사 김전의 아들이다. 김군(金頵), 김중보(金仲保), 김변(金賆)과는 형제. 고려사 후비전에 따르면 위위시의 종3품 벼슬인 위위윤을 지내고 벼슬에서 물러난다. 아들은 출가하고 딸은 진사 최문에게 시집갔다가 과부가 된다. 그러나 후일 딸은 재가해서 충렬왕의 후비가 되고, 아들도 환속해 정2품의 시랑찬성사→중호 관직에 임명된다.
2.2. 가족관계
- 증조부: 김부
- 조부: 김취려
- 부: 김전
- 본인: 김양감
- 부: 김전
- 조부: 김취려
- 본인: 김양감
- 아들: 김문연
- 딸: 숙창원비 김씨
- 사위: 최문
- 사위: 고려 충렬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