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카와 4인가족 살인사건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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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川一家4人殺人事件
1992년 3월 5일, 일본 치바현 이치카와시에서 일어난, 일가족 4인이 세키 테루히코(関 光彦)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1]
2. 범죄자 세키 테루히코(関 光彦)에 대해
세키 테루히코의 어머니는 그녀의 아버지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량하고 질이 나쁜 테루히코의 아버지랑 결혼하여 1973년, 세키 테루히코를 낳게 되었다. 테루히코는 걸음마를 뗄 무렵부터 YMCA의 시설에서 수영을 배우고 이후에도 야구와 가라데 등을 수련하여 운동능력 하나는 발군이었다. 그러나 테루히코의 아버지는 후에 본성을 드러내고 매일 어린 테루히코랑 그의 어머니를 폭행했다.[2] 테루히코의 아버지는 가정을 돌보지 않은 채 노름과 술에 빠져 살았고 테루히코는 유년 내내 가정폭력 안에서 자라게 되었다.
테루히코의 부모는 결국 이혼해버렸다. 그런데 이혼 과정도 순탄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노름과 술에 빠져 빚쟁이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조폭에게 쫓기게 되었고 뒤늦게라도 가족들을 책임지긴커녕 야반도주해버린다. 외할아버지는 딸 가족의 빚을 혼자 짊어진 대신 절연해버린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었는지 테루히코는 외할아버지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야반도주 이전만 해도 가정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외할아버지를 존경했으며 여호와의 증인에 심취했었고 아버지가 성경을 찢어버리자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복수하겠다고 결심하였으나 정작 복수가 생판 남인 조폭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었던 외할아버지가 절연해버리자 원한을 품게 된 것이다.
이후 테루히코는 초등학교 때 왕따를 당하면서 세상은 돈이라는 가치관이 자리잡게 되고 사춘기 때 몸이 건장해지면서 왕따가 없어지자 불량배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에 각종 일탈 생활을 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며 자라서는 아버지와 똑같이 가정폭력을 시작하며 어머니와 남동생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때릴 정도로 포악하게 변모하게 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자퇴해버리고 외할아버지 가게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나 폭력적인 성격 때문에 이마저도 6개월 만에 그만두게 되고 골목에서 마주쳐 시비를 걸어오는 불량배들을 일방적으로 구타하여 금품을 강탈[3] 하거나 돈이 부족하자 외할아버지 가게의 돈을 훔쳤다. 이를 목격한 외할아버지는 테루히코를 야단쳤지만 외할아버지의 야단에도 불구하고 테루히코는 '''사과는 커녕 외할아버지에게 폭행을 가하였다. 이로 인해 외할아버지는 다리가 부러지고 눈이 실명되었다.''' 이때부터 테루히코는 눈에 보이는 여자들을 강간하고 강도짓을 시작했다고 한다. 18살 때는 풍속점에서 일하는 21살의 필리핀 여자랑 결혼하게 되었으나 시도 떼도 없이 덤벼드는 테루히코의 성욕을 참지 못해 3개월 만에 도망치고 말았다.
3. 범죄 행각
테루히코는 2월 8일, 필리핀인 호스티스를 납치한 뒤 이틀 동안 감금하고 강간했다. 이 호스티스는 이틀 뒤 자신의 가게로 돌아와 가게 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가게 주인은 빡친 나머지 자신이 알던 야쿠자에게 이 테루히코를 손봐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이걸로 인해 그는 야쿠자에게 쫓기게 되었다. 불안해진 범인은 2월 11일, 도쿄도 나카노구에서 길을 걷는 여성을 덮쳐, 안면을 함몰시키고 차에 실어 자신의 집까지 끌고 가서 강간하는 짓을 저질렀다.
2월 12일,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인 여고생이[4] 이 범인의 눈에 띄게 되었다. 테루히코는 쇼핑을 마치고 자전거로 집에 돌아가던 여고생을 차로 들이받은 뒤, '치료를 해준다'면서 병원에 데려갔다. 치료를 받고 나온 여고생에게 범인은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자신의 차에 타게 했다. 의심 없이 차를 탄 여고생이었지만...테루히코는 흉기로 위협하여 자신의 집으로 여고생을 끌고 간 뒤 그곳에서 그녀를 2회 강간했다. 가학성 변태성욕자인 범인은 나이프로 소녀의 팔과 얼굴을 베면서 몇번이고 사정했다고 한다. 또한 중간에 잠이 오자 소녀가 도망가는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품에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의 학생수첩에서 소녀의 이름과 집주소를 베껴 적은 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협박하고 돌려보냈다. 이후 발렌타인 데이를 위해 남자친구에게 줄 초콜렛을 사러가기 위해 친구를 만났다가 뺨의 상처를 본 친구의 질문에 거짓말로 둘러대었다고 한다.
같은 날 밤, 테루히코는 호스티스 가게 주인의 요청을 받은 야쿠자의 두목에게 끌려갔다. 야쿠자 두목은 그에게 호스티스를 이틀 동안 감금한 것에 대해 피해보상조로 200만엔을 가져오라 협박했다. 테루히코는 야쿠자들이 두려워서 결국 여기에 동의하고 겨우 풀려나올 수 있었다.
200만엔을 도무지 구할 길이 없게 되자,[5] 테루히코는 전에 자신이 교통사고를 낸 뒤 강간했던 그 여고생을 떠올렸다. 그녀의 집에 돈을 훔치러 들어가기로 결심한 그는 3월 5일 오후 4시 30분경(5시라는 이야기도 있다.), 여고생의 집에 침입했다.[6] 그 시간에는 여고생의 할머니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테루히코는 할머니에게 예금통장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지만, 할머니가 이를 거부하자 전기 코드로 할머니의 목을 졸라 살해한 뒤, 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8만엔을 빼앗았다.
그 뒤로 테루히코는 그 곳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다른 가족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오후 7시경, 여고생과 어머니가 집 안에 들어서자, 테루히코는 식칼을 들이대고 협박하면서 등을 보이고 엎드리게 했다. 소녀는 겁에 질려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 실금하였고, 두 사람이 엎드리자 범인은 '''여고생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를 살해한 다음 그녀에게 소변과 피가 흐른 바닥을 닦게 했다.'''[7]
얼마 뒤, 여고생의 4살 된 여동생[8] 이 돌아왔다. 이 때 여고생은 테루히코의 지시로 TV를 틀어놓고 보고 있었다. 보모를 돌려보낸 뒤 테루히코는 여고생에게 저녁식사를 만들게 하고 셋이서 함께 밥을 먹었다.[9] 저녁을 먹은 후 졸음이 온 여동생은 '할머니와 같이 자겠다'면서 할머니 방에 들어갔다. 여동생은 '''할머니의 죽음을 모른 채''' 할머니의 시체 옆에서 잠이 들었다.[10]
그러는 사이 테루히코는 여고생에게 예금통장의 소재를 물었다. '아버지밖에 모른다'는 말에 범인은 여고생의 아버지가 '''귀가하기를 기다리면서 그 사이에 그녀를 다시 한 번 강간'''했다.
오후 9시경, 회사를 운영 중이던 여고생의 아버지가 귀가했다. 여고생을 강간하던 테루히코는 아버지가 들어오는 기미에 식칼을 들고 숨어 있다가 아버지를 덮쳐 칼로 어깨를 찔러 부상을 입힌 후, 200만 엔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딸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는 예금통장이 있는 곳을 가르쳐줬지만 욕심이 생긴 테루히코는 더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아버지는 '회사 사무실에 다른 통장과 인감도장이 있다'고 말했고, 테루히코는 여고생을 시켜서 사무실에서 그 통장과 인감도장을 가져오게 시켰다.
여고생은 아버지의 사무실로 가서 예금통장과 인감도장을 가져왔다. 아버지 회사의 동료들이 왠지 이상한 모습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아버지와 동생이 인질로 잡힌 것이 두려웠던 여고생은 야쿠자 핑계를 대고 돌아왔으나 '''이미 테루히코는 그녀의 아버지를 살해한 뒤였다.''' 그 뒤로도 테루히코는 그 집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다음 날 새벽 6시경 걱정이 된 아버지 회사의 직원이 여고생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몰래 전화를 받던 여고생은 그만 테루히코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큰 소리를 내며 소녀를 위협하자, 테루히코의 큰 소리에 놀라 겁을 먹은, 4살 된 여동생이 울기 시작했다. 테루히코는 '''시끄럽다면서 여동생까지도 칼로 살해'''해버렸다. 그 전까지 공포의 정점에서 꼼짝 못 하던 여고생이 여동생의 죽음에 완전히 이성을 잃고 범인에게 저항하자, 테루히코는 여고생의 왼팔과 등에 칼로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혔다. 다행히 여고생은 경찰에 의해 구출된 후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했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전치 2주면 단순히 긁힌 수준이다. 하지만 가족들이 모두 목숨을 잃어서 더는 갈 곳이 없었고, 마음의 상처는 영원히 남게 되었다.
4. 검거와 처벌
오전 9시쯤, 전화가 갑자기 끊긴 것을 수상히 여긴 고지의 회사 동료들이 경찰에 신고, 출동하여 잠복해 있던 경찰관들이 데루히코가 우미를 살해하는 현장을 보고 난입하여 데루히코를 체포, 14시간여에 걸친 데루히코의 연쇄 살인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때 그는 경찰이 들이닥치려 하자, 여고생에게 '''자신이 흉기로 쓴 칼을 쥐게 하고 피해자인 척 연기'''를 하는 얄팍한 수작을 부였다.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11]
이 놈은 아무런 죄책감이나 죄의식도 없이, 오히려 '''1988년에 일어난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의 범인들도 징역형을 받았는데, 나는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식으로 자신의 행위에 대해 말해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12] 뿐만 아니라 위산과다증이었는데 사람을 두들겨 패고 강간하고 다니면서 내 힘에 자신감이 붙어서 호전되었다는 이해할수 없는 이상한 발언까지 한다.
사실 소년법상으론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사형은 면할 거라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큰 착각이었다. 일본 형법상 성인 연령 기준은 만 18세 이상이기 때문에 테루히코는 사형, 무기징역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고,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의 범인들은 한 명의 여고생을 살해했지만[13] 이 놈은 4명 이상을 살해했고 유아까지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게다가 4명 이상을 살해하고 사형선고를 면한 사례는 설사 우발적인 범행이었다고 쳐도 중증 정신질환, 준 심신상실 수준의 심신 미약 등 감형 사유가 거의 의무적인 수준에나 가능했으므로 처음부터 사형을 면할 가능성은 없었다. 당연히 사형이 확정되었고, 도쿄 구치소에 수감되어 재심 청구도 했으나 기각됐다.
마지막 재심청구가 기각되고 얼마 후인 2017년 12월 19일, 44세의 나이로 마침내 사형이 집행되었다. # [14]
5. 여담
아버지 회사에 들렀을 때 회사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경찰에 연락했다면 가족을 구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여고생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 '''이미 자기 가족이 눈앞에서 죽고 강간까지 당한 상태에서''' 과연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성인도 엄청난 패닉 상태가 되며 더구나 10대 청소년이 이성적으로 행동하기란 굉장히 어렵다.
다만 집까지 태워준다던 범인이 자기 집주소를 알아냈다는 걸 알았을 때, 사실대로 말하고 대책을 세웠다면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안타까운 일. 물론 강간이나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면, 꼭 부모님, 배우자, 친구, 동료, 경찰 등등에게 알려주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맞는 행동이지만, '''그것을 털어놓는 데는 엄청난 각오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자.
이때 피해를 입은 여고생의 근황에 따르면 유럽으로 이민해 유럽인과 가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가족이 눈앞에서 몰살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잘 지내고 있다고. 다행히도 끔찍했던 상처를 잘 극복한 듯하다.
이 사건에서 살해된 여고생의 아버지와 여동생은 소녀의 친부가 아닌 재혼한 가족이며 로스의혹사건에서 미우라 카즈요시[15] 의 얼굴을 그대로 노출시킨 사진을 실어 논란이 된 언론기사에서 미우라 카즈요시의 얼굴을 촬영한 카메라맨이었다고.
범인 세키의 외할아버지는 도매업을 하던 것을 계기로 이치카와 시내에서 장어덮밥 체인점을 전개하면서 크게 성공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시내에서는 꽤 알아주는 사람이었는데 결국 이놈이 사건을 저지른 바람에 인지도가 반대로 독이 되어서 사건 발생 후 몇 년 만에 도산해버렸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본인 가족까지 파멸로 밀어 넣어 버린 것.
실질적으로 세키가 포악해진 원흉인 친부는 빚쟁이라 조폭들에게 쫓기게 되었는데 가족들을 버리고 야반도주하였다. 정황상 무사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자업자득이다.
[1] 가족 구성원은 여고생, 그녀의 여동생, 부모님, 할머니이며 재혼가정인데, 여고생을 제외하고 모두 사망했고, 여고생도 눈앞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14시간에 걸쳐 수차례의 강간을 당했다.[2] 데루히코의 증언으로는 마이크 타이슨의 러시처럼 온몸을 인정사정없이 구타하여 몸이 세계지도처럼 되어버려 수영장도 갈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하며 어머니는 매일같이 머리채를 잡힌 채 질질 끌려가 욕조에 머리를 처박혀야 했다고 한다.[3] 이때 4명을 상대로 치고받는 동안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기절시킨 것을 계기로 싸움에 완전히 자신감이 붙어 엄청난 폭군으로 변모하여 닥치는 대로 강간, 폭행치상, 금품 강탈 등을 일으키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4] 1976년 3월 19일생이며, 연극부와 미술부의 부회장을 할만큼 적극적이고 교우관계가 활발한 아이였다고 한다.[5] 당시 200만 엔이면 현재 돈으로 약 2억원에 가까운 엄청난 액수의 돈이다.[6] 그는 이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도 지나가는 여성을 끌고 가서 난폭하게 강간하여 부상을 입히는 사건을 최소 17건 일으켰다고 하며 운전자를 차에서 질질 끌어내리거나 남의 차에 침입해 쇠막대기나 나이프로 수십회 찌르고 금품과 차키, 면허증을 빼앗는 짓을 여러차례 일으켰지만 어떤 처벌조차 받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같은날 오전에도 또 다른 여성을 강간하고난 상태였다.[7] 공포에 질린 여학생은 테루히코가 하라는 대로 다 할 수 밖에 없었다.[8] 1987년 3월 17일생[9] 밥을 먹으면서 테루히코는 여동생에게 여고생이 자신의 친구라고 소개했고, 여동생은 아무 의심 없이 믿었다고 한다.[10] 할머니는 흉기에 찔리지 않고 목이 졸려서 사망했기 때문에 혈흔이 없어서 마치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11] 심지어 테루히코는 "여자 친구의 집에 놀러 왔는데 여자 친구가 가족들을 죽여서 말리던 중이었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경찰은 이 말을 믿지 않고 테루히코를 그 자리에서 체포하고 여고생을 구출했다.[12] 어찌보면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이 훨씬 더 잔혹했던 것은 맞지만 이런 개소리는 그 누구의 입에서도 나오면 안된다. 특히 살인자인 장본인 입에서는 더더욱.[13] 다만 살해당한 피해자에게 행한 입에 담기도 힘든 끔찍하고 잔혹한 행동은 몇십명을 살해했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14] 여담이지만 사형집행 당시 키가 178cm였지만 체중은 120kg이 훨씬 넘는 거구였다고 하며, 그 악명 높은 난징대학살과 731부대 마루타 실험 이후 일본 최악의 또라이 양아치 집단인 관동연합 블랙엠퍼러의 간부인 이시모토 타이치와 같은 곳에 수감되어 있었다. 사실 관동연합이 10대 중반 나이부터 저지른 짓들은 이 사건의 범인과도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극악무도하지만.[15] 축구선수 미우라 카즈요시와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