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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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항구(1881 - 1945)은 이왕직 차관과 조선귀족 남작을 역임한 대한제국의 관료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본관은 우봉이며 호는 우당이고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에 포함된 친일파 이완용의 차남이다.
2. 생애
1881년 (고종 18) 8월 21일, 한성부에서 이완용의 둘째 아들으로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근대식 교육을 받았고 1899년 4월 14일, 관직에 올라 사직참봉 판임관 팔등에 임명되었지만 다음날 면직되었다.
1905년 6월 15일, 일본 공사관 3등 참서관이 되었고 1906년 1월 23일 정3품으로 승진했다. 1907년 3월 20일 봉상사부제조 주임관 3등 4월 20일에 종2품으로 승진해, 태조고황제수식비를 고칠 때 참여하였다. 같은 해 7월 23일 다시 비서감승이 되었고 9월 16일 겸임 장례원 장예에 임명되었으며, 가의대부로 승진했다.
경술국치 이후에도 1918년 이왕직 의식과장 등을 지냈고, 1932년 이왕직 차관으로 승격되었다가 장관까지 역임했다. 고종실록을 편찬할 때는 일본인 편찬위원장 밑에서 편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아버지 이완용과 함께 수록되었다.
1945년 3월 6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작위는 그의 차남인 이병주가 습작핬다.
3. 여담
- 1912년에 이항구가 술에 취한 채로 사위 홍운표와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지나가던 어린아이의 다리를 부러지게 해 놓고는 배상은커녕 안하무인격으로 무시하는 바람에 이것이 백성들에게 알려지며 큰 공분을 산 일이 있었다.[1] 관련기사
- 젊었을 때부터 놀기 좋아하고 술 잘 먹는 호방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선정되었다.
[수작] A B 1924년 2월 11일, 이왕직 차관으로서의 공로와 이완용의 공로가 고려되어 일본 기원절을 맞아 남작 작위를 받았다.[1] 출처: <임금님의 첫 자동차>, 전영선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