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루피아
1. 개요
Rup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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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법적 통화. ISO 4217코드는 IDR, 기호는 Rp로 표기한다. 보조단위는 센(Sen, 1루피아=100센)이지만 현재로선 쓰이지 않는다. [1] 동남아에서는 매우 강력한 통화이지만 싱가포르 달러나 필리핀 페소에 비하자면... 이란 리알, 베트남 동과 함께 화폐 가치가 매우 낮은 통화 중 하나로 2021년 1월 6일, 현재 환율은 '''13,914.00Rp/USD'''다.
한국에선 흔히 발리등으로 신혼여행을 떠날 때나 접할 수 있는 마이너한 통화. 근데 이 마저도 관광지 특성상 미국달러에게 밀리고, 실제 루피아화는 1,000루피아나 5,000루피아 같은 소액권이나 구경하고 그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작정하고 KEB하나은행으로 달려가 환전하면 10만 루피아같은 것도 구경할 수 있기는 하지만 자카르타 등지를 염두하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닥 신경쓰지 않는다. 인도네시아는 EXK 국제현금카드 지원 국가이므로, 해당 카드를 갖고 있다면 현지 ATM 인출 또한 답이 될 수 있다. EXK 인도네시아 사용 후기
전신은 네덜란드령 인도=자바 길더와 일본 길더이지만 둘 다 식민지 시절의 권종이라 흑역사로 치고, 실질적으로는 1945년 발행분이나 1951년 발행분을 첫 시작으로 본다. '''그리고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2. 1기 루피아
2.1. 1기 1차 ~ 4차
1946년 10월 10일에 도입되고 1950년 5월 1일까지 사용되었다.
이때 발행된 지폐는 1, 5, 10센 및 1/2, 1, 5, 10, 100루피아가 기본적으로 인도네시아 공화국(Republik Indonesia)의 이름으로 자카르타 근방에 발행되어 풀렸었고, Djokjakarta(죡자카르타)의 이름으로 1947년 1월 1일 신 시리즈가 자바 중앙부에(5, 10, 25, 100루피아), 이어서 7월 26일에 다시 1/2, 2.1/2, 25, 50, 100, 250루피아가, 또 1년 후 1948년 8월 23일엔 40, 75, 100, 400, 600(미발행)루피아가 만들어져 풀렸다. 상당히 오랫동안 정부를 스스로 운영하는 경험이 없었다보니 그야말로 '''개판'''. 이 시기때 터진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 탓도 있다.
수도권조차 개판인데 지방이라고 사정이 나을까. 아무리 돈을 풀어도 안전성의 허점이 발견되고, 거기다가 네덜란드와 전쟁을 치루는 사이 소모되는 돈을 채우느라 정신없이 재발행하고를 반복하다보니 돈값은 돈값대로 떨어지고, 풀리는 범위도 수도권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자 결국, 지방은 막장행보를 걷는 정부를 무시하고 자기네들끼리 돈을 만들겠다고 나서기까지 했다. 이때 양성된 '''47개 지역화폐'''[2] 세트가 난무하여, 이른바 '''화폐의 전국시대'''수준에 이르렀다. 도감에서는 이를 공식이 아닌 지역폐(Regional Issues)로 분류한다.
2.2. 1기 5차 ~ 6차
보다 못한 인도네시아 정부가 구원을 요청한 곳은 다름아닌 '''네덜란드 재무부'''. 이 시기 인니와 네덜란드는 서로 단교까지 선언하는 등 외교관계가 극악이었다. 그런데도 네덜란드가 이를 받아들여 인도네시아 화폐를 대신 찍어다 쏟아부어준 덕에, '''처음으로 인도네시아 전역에 통일 루피아가 풀릴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발행된 루피아는 이전 식민지 시절 휠던화에서 약간의 디자인과 색상만 바뀐 모습으로 인도네시아 휠던(Gulden)과 인도네시아 루피아(Rupiah)가 병렬표기되어 풀렸다. 종류는 10센, 25센이 47년에 먼저, 5, 10, 25, 50, 100, 500, 1000루피아가 1950년에, 1/2, 1, 2.1/2루피아가 당해 뒤늦게 풀려 세트가 완성. 그래서 이 시리즈를 1950년 시리즈로 부르기도 한다. 엄밀히는 발행명을 따 De Javasche Bank(자바은행) 시리즈. (그리고 1957년에 저액권이, 1959~1965년에 고액권이 가치를 잃었다.)
- 이 시리즈의 뒷면은 모두 글귀뿐이다.
3. 2기 루피아
3.1. 2기 정부발행 1차 ~ 2차
과거 1기의 흑역사를 갈아엎고 네덜란드로부터 얻어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발행한 신 시리즈. 여기서부터를 인도네시아 루피아의 진짜 시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1951년 '''긴급발행''', 그러니까 결국 이것도 정상적으로 발행한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에게 경제권을 잠식당할 것을 우려해 일방적으로 중앙은행역할인 자바은행을 국유화시켜 만들어낸 것이 시초. 그래서 발행처 표기도 Republik Indonesia(인도네시아 공화국)이다. 종류는 2가지가 있다.(1, 2.1/2루피아) 덧, 1루피아 이하의 센은 모두 동전(5종, 알루미늄제)으로 발행되었다. 1953년에 동일한 모습의 개정판을 발행했고, 공식적으로 이를 정부발행 2차라 부른다.
3.2. 2기 1차
사상 첫 인도네시아 은행(Bank Indonesia) 정식발행 시리즈. 1953년~54년에 걸쳐 도입되었고, 1958년~60년에 퇴출당했다. 별칭, 문화시리즈(Culture Series). 이 시리즈가 도입됨으로서 기존의 자바은행권은 모두 회수/폐기처리되었다.
3.3. 2기 정부발행 3차 ~ 4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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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아닌 1~2차의 차세대판이다. 1954년, 1956년판.
3.4. 2기 2차
1958년부터 도입된 2번째 정식 시리즈로, 별칭은 동물 시리즈. 그리고 1960년에 1차와 함께 광속퇴출(...)당한 비운의 권종이기도 하다. 특히 10, 25루피아는 '''딱 3일동안 통용되다 회수조치를 당한 바람에''' 극강 레어품이 되어버렸다.
이때부터 돈의 발행을 영국 데라루(De Ra Rue)사에 맡기기 시작했으며 본격적으로 기반이 약한 개도국들 특유의 경제혼란으로 인해 '''인플레가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 58년 초에 12루피아/USD였던 것이 59년 말에는 45루피아/USD까지 치고 올라갔다. 그래도 일찍 알아차린것이 다행.
다만 특이한 것이 이 시리즈 실질적 최고액권인 2500루피아는 퇴출당한 이후인 1962년 9월 1일에 도입되었다는 점이며, 실질적으로 발행하지는 못했지만 5000루피아권도 있었다. 2500루피아권의 경우, 갑작스러운 인플레이션 때문에 안전성 문제로 삭제해버린 발행 계획을 도로 살려낸 거라고'''(...)'''.
3.5. 2기 정부발행 5차 ~ 6차
다름아닌 3~4차의 차세대판이다.
3.6. 2기 3.1, 3.2, 3.2+차
1959년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1960년에 도입된 시리즈로, 기존 2차보다도 보안성을 높인 시리즈이다. 1965년 인플레를 막기 위해 화폐개혁을 거치고, 그로부터 2년간 유예기간을 얻어 1966년 12월 31일을 끝으로 퇴출된 2기 최후의 시리즈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슨 의도인지 준비된 2가지 시리즈를 한꺼번에 풀어버렸다. 선발은 화조(꽃+새) 대칭형 시리즈(1960년), 후발주자로는 수공예 주택 시리즈(1961~3년). 심지어 후자는 개정판(1965년)까지 따로 나왔다. 그 짧은기간에!
3.6.1. 2기 3차 전기
1960년 전반기에 등장하고 1966년 12월 31일에 단종되었다.
3.6.2. 2기 3차 후기
4. 3기 루피아
4.1. 3기 1차
1960년, 1964년, 1965년에 걸쳐 도입된 시리즈로 "수카르노 시리즈", "춤사위 시리즈"의 이명을 갖는 신 루피아이다. 교환비는 1(신):1000(구). 그리고 1루피아와 2.1/2루피아는 정부에서 발행한 마지막 권종이다. 본격적으로 통용된 시기는 1967년.'''(하지만 이듬해인 1968년에 폐지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센" 단위의 지폐가 등장하였...지만, 디노미 효과를 통해 물가가 안정될 것을 기대한 것과는 달리 시장가격이 1/10수준밖에 떨어지지 않은 탓에[9] , 실제로는 시중에 돌아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방치'''되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수백만장이나 남아돌다보니 관광객이나 수집가에게 떨이로 팔아넘길 정도로 심히 안습한 처지가 되었다.
1센 : 삿갓 아저씨 / 뒷면 없음
5센&10센 : 수클라렐라완(Suklarelawan, 공로훈장같은 개념이다.)을 받은 인도네시아인 표준 / 뒷면 없음
25센&50센 : 상동. (단, 쓰고있는 모자와 인물상이 다르다.) / 뒷면 없음
- 앞면은 모두 수카르노 대통령이다.
4.2. 3기 2차
1968년에 도입된 "수디르만 시리즈", "산업 시리즈"의 이명을 갖는 두번째 신 루피아.
근현대 인도네시아사에 길이 남을 수카르노 - 수하르토 배틀의 산물이기도 하다. 굳이 신권으로 바꿀 이유도 없었는데도 등장한 이유가 '''수카르노의 얼굴이 보기 싫어서.'''이라는 소문도 있다 카더라. 1976~8년경에 회수 후 폐기되었다. 앞면도안은 모조리 독립전쟁의 영웅인 수디르만을 그려넣고, 뒷면에 훗날 수하르토 자신의 업적이 될 산업도안을 그려넣었다.
4.3. 3기 3차 미발행
1971년에 도입할 예정이었지만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취소된 시리즈. "디포네그로 시리즈"가 될 예정이었던 종류로, 100(당시 환율값 미화 24센트), 500, 1000, 5000, 10000루피아의 5종으로 간소화 시켜 발행될 예정이었다. 여기에 계획된 디자인 중 일부는 그래도 다음 세대에 이어졌다.
4.4. 3기 3차
1976~8년에 걸쳐 도입된 시리즈로, 2차인 수디르만 시리즈의 위폐들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자 이때다 싶어 발행하였다.
- 그리고 100루피아 미만의 권종은 동전이 새로 나오면서 그대로 교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지만, 단위만 "센"에서 "루피아"로 바로 치환된다고 해도 믿을만큼 완벽하게 동일한 구성이다.
4.5. 3기 4차
1979~82년에 걸쳐 도입된 시리즈. 100루피아가 목록에서 잠시 빠졌다.(100루피아짜리 동전이 등장했다.) 이 당시 환율은 625루피아/USD정도로 2012년 현재보다는 그래도 가치가 굉장히 높았다. 1992년 5월 1일부터 효력 상실.
4.6. 3기 5차
1984~1988년에 걸쳐 도입된 시리즈. 그 외 특별한 이유는 없다.
4.7. 3기 6차
1992년에 도입된 시리즈. 정말 바쁘게 교체하고 만들고를 반복한 1968년 이후 처음으로 나라차원에서 대대적인 통화 재정비를 통해 통째로 교체도입된 시리즈이다. 당시 환율은 약 2,000루피아/USD로, 초창기에 비해 근 3배나 떨어진 탓에 새로운 고액권이 이 시기에 등장하게 되었다. 최고액권인 5만 루피아는 기념권(발전계획 25주년[22] )과 통용권이 동시에 배포된 사례.(1993년) 1만단위 루피아는 2000년경, 그 이하는 2006년 말에 효력을 잃었다.
- 500, 1000루피아짜리 동전이 새로 등장하였다.
4.8. 3기 7차
1998년부터 2001년에 걸쳐 도입된 시리즈. 아시아 전역에 퍼진 금융위기가 인도네시아마저 휩쓸자, 이를 대처하지 못한 수하르토가 강제로 퇴임당하고 만들어진 시리즈이다.[28] 그러나 여전히 폭등하는 인플레를 붙잡는 것은 불가능하여 환율이 가파르게 올라 5년 전 대비 무려 5배나 떨어진 9,000 ~ 10,000루피아/USD까지 대폭락, 부랴부랴 1만단위 이상 고액권만 우선적으로 신권이 만들어지고 10만 루피아가 새로 등장하였다. 저액권의 경우도 1천&5천(2000년)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동전으로 대체되면서 폐기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환율(8~9천루피아/USD)이 지금까지 원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이어지고 있다.
4.9. 3기 8차 (구권)
2004년부터 도입한 현행권 시리즈. 저액권(1,000 및 5,000루피아)의 경우는 전판인 7차에서 그대로 이어졌고, 2009년경에 중간단위인 2000루피아가 추가되었다.
이 시리즈까지 해서 완성된 동전들은 총 6종류(1000, 500, 200, 100, 50, 25루피아). 다만 1000루피아만 빼고 어지간한 것 모두 알루미늄제라서 무게가 가벼우니 분실에 유의해야 한다.
4.10. 3기 9차 (현행권)
2016년 12월 부터 발행한 시리즈이다. 물갈이 꽤 되었다.
4.10.1. 기념권
5. 4기의 예고?
지금도 이어지는 가파른 인플레로 인해 인도네시아 은행측은 2015년경에 1/1000 수준의 화폐개혁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평균환율인 9,000루피아/USD를 9루피아/USD의 준수한 수준으로 바꾸겠다고. 결국 나와버렸다.[34]
[1] 물론 이건 우리가 실생활에서 일원 주화와 오원 주화를 사용하지 않지만 이자로는 일원 단위로 꾸준히 입금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되겠다.[2] 비유하자면 서울 원화, 인천 원화, 부산 원화, 서북경기권 원화, 동남경기권 원화, 전라북도 원화, 함경남도 원화따위가 양산된 셈. [3] 싱가사리 왕국의 초대 여왕[4] 인니어로는 디포느고로. 네덜란드에게 저항한 왕자님으로 디파나가라 전쟁의 주인공. 하지만 당연히(...) 실패해서 마나도와 마카사르로 유배되어 운명하셨다.[5] 인도네시아의 전통가옥의 대표양식 중 하나로 삼각형 지붕이 뾰족하며 높고, 사다리 타고 올라가야 하는 그것. 고등학교 사회, 세계지리 교과서에 등장하기도 한다.[6]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참새의 일종.[7] 박꽃의 일종. 하지만 이걸 검색하면 인피니트의 호야사진만 뜬다...[8] 베틀작업과 같다.[9] 바꿔말하면, 통화량이나 물가는 100배나 오른 셈이다. 새로 벌어들이는 것 자체는 지장이 없겠으나, '''저금한 돈이 1/100으로 폭락'''했다는 것과 같은 뜻.[10] 난(蘭)의 일종이나, 아직 한국어명이 없다.[11] 3대 독립영웅 중 한 사람이다.[12] 자바섬 중심에 있는 불교사원. 그런데 정작 자바섬은 이슬람교도로 넘쳐나는 인도네시아 이슬람교도들의 중심지이며, 또한 유적 안쪽 장식에는 힌두교에서 유래한 장식도 다수 있는 등, 뭔가 불가사의한 부분이 많아 연구대상이다.[13]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힌두교의 대서사시[14] 무언가 시체가 썩는 냄새가 나는 꽃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라플레시아만큼은 아니지만 굉장히 크며, 현지어인 인도네시아어로는 붕아 방카이라고 한다.[15]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 중 한 사람으로, 장교출신.[16] Tongkonan, 인도네시아 바탁-토라자지역 특유의 지붕이 하늘로 뻗는듯한 모양의 고상주택.[17] 전통악기의 종류. 실로폰, 징, 북, 꽹과리같은것이 줄줄이 달려있다. 일종의 사물놀이세트.[18] 자바섬에 있는 최대규모의 힌두교 사원. [image][19] 본명은 파투안 베사르 옴뿌 풀로 바투. 인도네시아 독립영웅 중 한 사람으로 인정된다.[20] 수카르노가 그녀의 생일을 공휴일로 만들려고 했었지만, 무산되었다. [21] [22] 이라 쓰고 수하르토 재임 25주년 기념이라 읽는다. [23] 가장 최근에는 1883년에 폭발했는데, 그때 소리가 무진장 커서 주변의 어부들의 '''고막이 죄다 터졌을 정도'''(호주에서도 폭발음이 들렸다고 하니 말 다했다.)였다 하며, 화산재가 주변의 땅을 모두 뒤엎어 수십년동안 농사를 짓지 못했고(본토는 100여년이나 방치되었다.), 폭발진동으로 해일이 일어나 주변 36,000명을 휩쓸어버리는 등, 화산의 자연재해 중에서도 손꼽히는 대표가 되는 섬이다.[24] 인도네시아 서쪽 수마트라섬에서도 서북단 인도양에 맞닿아 있는 작은 섬. 인도네시아어로는 Pulau Nias 라 하고 니아스 방언으로는 Tano Niha (타뇨 니하)라고 한다[25] 표주박 바가지에다가 가야금을 말아놓은 현악기를 붙여놓은 것처럼 생겼다.[26] 플로레스 섬에 있는 크레이터호. 다양한 색을 가진 몇 개의 호수가 있다.[27] 수하르토 시대의 인도네시아 부통령이자 자바자카르타의 9번째 술탄. 4명의 부인과 19명의 자식을 두었다. 참고로 정식명은 '''삼페얀 달렘 잉캉 시누운 칸젱 술탄 하멩쿠부워노 세노파티 잉 알로고 은갑두라크만 사이딘 파노토고모 콜리파툴라 잉캉 카핑'''(...)[28] 엄밀하게는 그러면서도 뻔뻔하게 6선에 나서려다가 반대시위로 퇴진당한거지만.[29] 본명은 "토마스 마툴레시"이나, 저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독립전쟁 당시의 비공식 군인.[30] 4기에선 1000 루피아에 나온다.[31] 인도네시아의 유명한 독립운동가이다.[32] 붉은보라와 푸른보라 2가지가 있다.[33] 그의 성씨인 으우라이이는 발리 국제공항의 이름이기도 하다.[34] 3기 9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