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호

 

1. 개요
2. 활동 내역
3. 그 외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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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도 사진.
'''이름'''
장기호
'''예명'''
키오(Kio)
'''생년월일'''
1962년[1]서울특별시
'''데뷔'''
1986년
'''학력'''
영등포고등학교
서울예술전문대학 (응용미술과 / 중퇴) [2]
버클리 음악대학
'''직업'''
작곡가, 교수
'''소속사'''
심플 엔터테인먼트

1. 개요


1986년에 김현식의 3집 음반 중 <그대와 단둘이서>라는 곡에 참여한 뒤 1988년에 <빛과 소금>이라는 그룹을 결성해 박성식, 한경훈과 같이 음악 활동을 한 사람이다. 예명으로 키오(Kio)를 사용한다.

2. 활동 내역


1986년에 결성된 봄여름가을겨울의 전신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 데뷔해서 김현식, 김종진, 전태관, 장기호, 유재하와 같이 활동한 뒤 2년 정도밖에 안가서 해체된 뒤 김종진과 전태관은 봄여름가을겨울의 2인조 밴드로 재편했고, 유재하는 솔로 활동으로 1집 앨범을 만든 뒤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유재하가 나간 뒤에 들어온 박성식(키보드)과 함께 봄여름가을겨울을 탈퇴하여 밴드 사랑과 평화에 영입되어 4집 앨범을 낸 뒤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인 한경훈과 같이 '''빛과 소금'''으로 활동했으며 ''''샴푸의 요정''''[2], '내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3], '오래된 친구', '그대 떠난 뒤'등의 명곡을 남겼다.
1996년 5집 앨범을 마지막으로 공식 활동을 중단하다가 2011년 5월 오랜만에 공연을 가지면서 활동을 재개했다. 그 뒤 서울예술대학의 교수가 되었으며 2011년에 나는 가수다의 자문위원단장으로 활동했던 바 있었다. 그리고 복면가왕 10차 경연에서 마더 파더 젠틀맨이라는 가명으로 참가해서 오랜만에 노래를 들려주었다. 또한 그는 MBC라디오 캠페인송인 '잠깐만'의 테마곡도 작곡한 바 있다.

3. 그 외


라디오 스타이서 김종진전태관이 증언한 바에 의하면 김현식봄여름가을겨울 멤버로 활동하던 시절 장기호도 그 멤버였는데 어느날 대형 기획사에서 주선한 뮤직비디오를 촬영했었다고 한다. 이 뮤직비디오가 그룹의 인기에도 크게 기여할수 있는 기회였는데 뮤직비디오를 찍던 도중 너무 오래 걸린다며 김현식이 "야! 악기 싸!" 하며 크게 성질을 부리며 자리를 뜨려고 하자 장기호가 거의 다 찍었다며 필사적으로 설득했지만 김현식은 끝내 듣지 않았다. 순해보이고 신사적으로 생긴 외모와는 달리 한 성질로 유명한 사람이었으며 당시 김현식을 설득 해도 안듣자 순간적으로 화를 냈는데 김현식이 장기호의 턱에 주먹을 날려 그대로 쓰러졌다고 한다. 실제로 해당 사건을 언급한 김종진과 전태관은 얼굴에 멍이 떠나는 날이 없었다고 증언했을 정도로 김현식의 폭력행사는 일상적인 수준이었으며, 만약 김현식이 가수가 안됐다면 조직폭력배 행동대장을 했을거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본인 입장에선 뮤직비디오 촬영이 방송에서 뜰 기회였고 이걸 놓치기 싫었는게 김현식이 자꾸 촬영 오래걸린다고 엎어버리려 하자 본인 자신도 성깔로는 어디가도 안밀린다는 생각에 한번 호기를 부려본 감이 있었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어쨌든 이렇게 그를 KO시킨 김현식이 유유히 악기싸고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종진과 전태관은 그자리에서 얼어붙어 있었다고. 그도 그럴 게 둘은 김현식과 음악활동 같이 하면서 매일같이 김현식에게 터지는게 일상이었으니 이것을 훗날 김종진과 전태관이 라디오 스타에서 썰을 풀었다.
나가수 1기에서 심사위원으로 있었을 때 그의 극찬을 받은 가수들은 모두 '하차'하는 징크스가 있었는데, 1라운드 2차 경연에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나와 같다면'을 부른 김연우가 하차의 고배를 마셨으며 조규찬(8라운드), 장혜진(9라운드), 인순이(10라운드)도 모두 해당 라운드에서 하차했다. 반면 비평을 받았던 박완규의 하망연은 1위를 했다.
빛과 소금의 노래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보컬이 매우 좋다. 그런데 나가수에서 심사위원을 하고는 '아 나는 노래를 해서는 안 되겠구나'하고 생각했다고...
재즈 평론가 겸 만화가인 남무성과 아주 친하다.

4. 관련 문서








[1] 정확한 날짜는 불명이다. 같이 1962년생인 김종진과 같은 후암초등학교 출신인데 김종진보다 1년 선배라고 하니 빠른 생일인 1~2월일 가능성이 크다. 일단 62년생인 김종진과 전태관은 당연한 듯 "기호 형"이라고 부르고, 형이란 이유로 이들을 대신해서 총대메고 군기반장으로 소문난 김현식에게 불만을 토로했다고 하니 61년생으로 여겨진 건 확실하다.[2] 현재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전공[2] 사랑과 평화 4집(1988)에 먼저 발표된 뒤 빛과 소금 1집(1990)에 재수록되었다.[3] 이소라가 자신의 3집 앨범에 리메이크한 바 있으며 편곡은 유희열. 그 뒤 타 경연에서 한 참가자가 커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