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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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모습
'''이름'''
김종진
'''출생'''
1962년 12월 19일 (61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배우자'''
이승신[1]
'''자녀'''
슬하 1남 1녀[2]
'''데뷔'''
1986년 김현식봄여름가을겨울
'''학력'''
서울후암초등학교(졸업)
반포중학교(졸업)
서울고등학교(졸업)
고려대학교(사학과 / 학사)
'''소속사'''
봄여름가을겨울
'''SNS'''

'''종교'''
개신교
1. 개요
2. 경력
3. 보컬 스타일
4.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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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퓨전 재즈 & 록 음악 밴드 봄여름가을겨울기타리스트, 보컬.
봄여름가을겨울에서 작사, 작곡, 편곡을 도맡고 있다.

2. 경력


1986년 "김수철과 작은거인"의 기타리스트로 데뷔했다가 김현식(보컬), 유재하(키보드), 전태관(드럼), 박성식(키보드)[3], 장기호(베이스)[4]와 함께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을 결성했다.
1987년에는 "조용필위대한 탄생"에서 기타리스트를 맡았다.
1988년에 "봄여름가을겨울"을 결성했으며 정규 1집에 수록된 곡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 후 1989년에는 정규 2집을 발표했으며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거리의 악사' '못 다 한 내 마음을' 등 연주곡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 때까지 대한민국에서 들어보기 힘들었던, 독특한 퓨전 재즈 스타일의 세련된 기타곡들이었기 때문에, 당시 김종진이 작곡한 곡으로 연주를 배우는 남자애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92년에는 정규 3집을 발표했으며 '10년전의 일기를 꺼내어' '아웃사이더'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 후에도 꾸준히 '봄여름가을겨울'의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했으며 'Bravo, My Life!' 등 숱한 히트곡을 작곡했다.
히든 싱어3 이승환 편에 출연했을 때, 이승환과 나이 3살 차이라는 걸 전현무가 언급하는 바람에 졸지에 굴욕을 당한 적이 있었다.
2020년 11월 23일부터 방영된 싱어게인의 하차한 전인권 대신 시니어 심사위원으로 출연하였다.

3. 보컬 스타일


보컬로서는 그리 좋은 실력을 가지지는 못했다. 목소리 자체가 굉장히 허스키하고 저음인데다 목에 힘을 줘서 발성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그래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거칠면서도 깨끗한 목소리가 나왔고 이로 인해 매니아층도 꽤 많이 만들었었다.
하지만 2006년~ 2007년 경부터 2옥타브 솔 이상을 올리지 못하는 등 성대가 많이 노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의 후렴구를 굉장히 힘들게 불렀고, Bravo my life는 과거에는 진성으로 처리하던 부분까지 가성으로 처리하더니 30주년 콘서트에서는 아예 5키 이상 낮춰불렀다.[5]
<어떤 이의 꿈> 은 1옥타브 낮춰불렀고, 아웃사이더의 경우에는 아예 코러스가 고음 부분을 부른다. 2010년 경부터는 라이브에서도 버거운 부분이 많아졌고 코러스가 차지하는 분량도 높아졌다.

4. 그 외


  •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기타를 소유하고 있다. 하이럼 블럭[6] 이 애지중지하던 오리지널 1962년Fender 스트라토캐스터로서 그 가치가 1억 원을 훨씬 넘는다고 한다. 바로 항목 맨 위 사진 속에 그가 들고 있는 기타다.
  • 이승철 1집의 전체 프로듀싱을 김종진이 도맡았었다고 한다.
  • 아톰이라는 이름의 셔틀랜드 쉽독을 키우는 있는 중이다. 백년손님에서 아내 이승신의 증언에 따르면 주인이 주인인지라 잔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김종진이 잔소리를 시작하면 안좋은 표정을 짓고 반면 김종진이 자리를 뜨면 꼬리를 들며 좋아라 한다고.
  • 어릴적부터 한 쪽 귀가 안 들린다고 한다.
  • 눈물이 많다고 한다. 백년손님에 출연했을때 장모님이 만든줄 알았던 겉절이가 사실 가게에서 사온 겉절이라는걸 알게 됬을때 12년간 사위를 생각하는 마음에 같은 가게의 음식을 준비했다는게 마음이 먹먹해진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 이후 맴버 전태관의 신장암으로 인해 음악 활동을 중지하면서 30주년 헌정앨범을 통해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법’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김종진은 지난달 2018년 11월 19일 봄여름가을겨울의 30주년 헌정 앨범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법’을 발매했다. 특히 후배 뮤지션 윤도현, 장기하, 어반자카파, 오혁 등이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 “제목 그대로 이제는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을 알 것 같아 음악으로 표현한 앨범”이라며 “선후배, 동료 뮤지션들과 함께한 헌정 앨범이다. 폰을 보다가 이 친구라면 해주겠다, 우리 음악과 잘 어울리겠다 싶은 뮤지션들에게 연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종진은 “지난 2018년 4월 전태관 씨의 아내 분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전태관 역시 몸이 안 좋은상황이다. 장례식장에 정말 많은 뮤지션 들이 함께했고, 건강 안 좋은 전태관을 보며 우리가 가진 재능으로 그를 후원해주자고 했다”고 헌정 앨범을 기획한 이유를 밝혔다.
김종진은 “이게 우정을 지키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동년배가 아니더라도 진짜 우정을 느낄 때 같은 동료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해 청취자들을 감동하게 했다.
그 뒤 전태관이 2018년 12월 28일 새벽 향년 5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자 그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추모글을 남겼다.
> 늦은 밤 여러분께 가슴 아픈 소식을 알려드립니다.지난 12월 27일 밤, 드러머 전태관 군이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태관 군은 6년간 신장암 투병을 이어왔습니다만, 오랜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30년간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멤버로 활동하며 수많은 히트곡과 가요계에 새로운 역사를 써온 드러머 전태관 군의 이름 앞에 붙었던 수식어는 '한국 대중음악의 자존심(Pride of K-Pop)'이었으며 여기에 과장은 없었습니다. 독보적인 리듬감, 폭발하는 에너지, 깊이있는 음악의 이해가 공존하는 음악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따뜻한 미소, 젠틀한 매너, 부드러운 인품을 겸비한 전태관 군은 한국음악 역사상 뮤지션과 대중으로부터 동시에 가장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드러머였습니다. 그는 생전에 드러머로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영예를 누렸습니다. 연주곡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로 혜성같이 나타나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어떤이의 꿈', '10년전의 일기를 꺼내어', '아웃사이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등 한국 음악 팬들의 가슴을 울리는 명곡들을 차트에 남겼으며, 대한민국 100대 명반에 3개의 앨범을 등재한 후에도 국내 최초 최다의 라이브 앨범을 발표하는 것 외에 1992년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 상과 2018년 서울가요대상 공로상을 수상했습니다. 2014년 스틱을 놓은 이후에도 방송을 통한 예능인으로서,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자로서 자신의 재능을 나누었던 전태관 군은 이제 천국의 자리에도 위로와 기쁨을 나눠주기위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여기에 없으나 그가 남긴 음악과 기억은 우리에게 오랫도록 위로를 줄것입니다. 남겨진 가족으로는 한명의 딸(전하늘)이 있으며, 2018년 12월 28일 낮부터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할 예정이 니,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시어 유가족의 깊은 슬픔을 위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재혼이며, 전처는 80년대 하이틴 스타였다가 현재는 무속인이 된 박미령이다.[2] 아들은 친아들이며, 딸은 이승신과 이승신의 前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3] 유재하가 탈퇴한 후 새로 영입한 키보디스트.[4] 박성식과 장기호는 이후 봄여름가을겨울을 탈퇴하고 빛과 소금이라는 밴드를 만들게 된다.[5] 다만 이는 애초에 관객들과 합창하기 위해 부른 이벤트성 선곡인만큼 이를 성대 노화의 증거로 보기는 무리가 있다.[6] 기타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