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니(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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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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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저니
JOURNEY
'''
'''멤버'''
'''닐 숀, 그레그 롤리, 로스 발로리, 아인슬리 던버,
스티브 페리, 스티브 스미스, 조나단 케인
'''
'''입성 연도'''
'''2017년'''
'''후보자격 연도'''
'''2001년'''
'''}}}#ffd700 후보선정 연도}}}'''
'''}}}#ffd700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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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인 스티브 페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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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새 보컬인 아넬 피네다와 함께 (기타 매고 있는 사람이 리더인 닐 숀)
'''Journey'''
1. 개요
2. 주요 멤버
3. 초창기 및 전성기
4. 침체기
5. 중흥기
6. 공연 영상
7. 여담


1. 개요


197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록밴드이다. 1978년부터 1987년까지 "Wheel In The Sky", "Any Way You Want It", "Don't Stop Believin'", "Open Arms", "Separate Ways(Worlds Apart)", "Faithfully"를 비롯한 히트 넘버들을 쏟아내며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2. 주요 멤버


  • 닐 숀(Neal Schon)
기타리스트. 본명은 닐 조지프 숀(Neal Joseph Schon), 1954년 2월 27일 미국 오클라호마 출생. 저니의 리더. 그룹 결성이후 단 한번도 빠진적 없다. 성이 Schon인데, 독일계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저니의 노래를 들어보면 단순한 록이 아니라 소울풍이면서 독일 클래식의 선율이 상당히 스며든 것을 느낄 수 있다. 열여섯살때인 1970년에 카를로스 산타나 밑에서 백밴드 기타리스트로 데뷔하였다. 공연 영상을 보면 엉덩이가 꽉 끼는 멜빵바지 같은 걸 입고 기타연주를 한다. 저니의 히트곡 가운데는 닐 숀의 솔로연주 파트가 꽤 많이 포함돼 있다.
  • 그렉 롤리(Gregg Rolie)
닐 숀과 함께 산타나를 떠나 저니를 결성한 키보디스트. 본명은 그렉 알란 롤리(Gregg Alan Rolie), 1947년 6월 17일 워싱턴(Washington) 출생. 스티브 페리가 합류하기 이전인 초창기 시절 리드 보컬도 함께 맡았다.
  • 스티브 페리(Steve Perry)
저니의 전성기 때 보컬리스트. 본명은 스테판 레이 페리(Stephen Ray Perry), 1949년 1월 22일 캘리포니아 출생. 에일리언 프로젝트라는 무명 밴드에서 1977년 발탁되어 4집때부터 활동했다. 발라드 명곡이자 저니의 최대 힛트곡 Open Arms을 비롯 우리나라에서 광고음악으로 많이 쓰여졌던 유명한 록큰롤 넘버 Separate Ways (Worlds Apart)등 저니의 여러 힛트곡들은 닐숀이 빠진 페리&케인 콤비가 작곡했다. 닐 숀보다 나이가 다섯 살이나 더 많다. 생긴 걸 보면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메시와 상당히 닮았다. 얼핏보면 메시와 농구선수 코비 브라이언트를 섞어놓은것 같다. 포르투갈계라고 한다. 1985년에는 마이클 잭슨이 주도한 We Are The World에도 참여했다. 탁하면서도 미성인 보컬에서 느껴지는 고유의 가창력은 단연 일품이다. 그의 목소리가 부재한 저니의 사운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저니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또한 밴드 보컬을 논하는 데 있어 빠지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 조나단 케인(Jonathan Cain)
초기 밴드의 리더였던 그렉 롤리의 탈퇴이후 'Every Time I Think Of You'로 알려진 영국 출신의 록 그룹 베이비스(The Babys)에서 영입한 키보드,백킹보컬. 본명은 조나단 레오나드 프리가(Jonathan Leonard Friga), 1950년 2월 26일 시카고 출생. 작곡에도 능해서 전성기 때의 작곡을 페리와 함께 맡았다.
  • 로스 발로리(Ross Valory)
저니 결성 때부터 쭉 함께 활동해온 베이시스트. 본명은 로스 라몬트 발로리(Ross Lamont Valory), 1949년 2월 2일 샌 프란시스코 출생. 엄청난 노안이어서 젊을 때와 현재의 모습에 큰 차이가 없다.
  • 에인슬리 던바(Aynsley Dunbar)
저니 결성 때부터 스티브 페리가 합류한 'Infinity' 앨범까지 함께 한 드러머. 본명은 에인슬리 토마스 던바(Aynsley Thomas Dunbar), 1946년 1월 10일 영국 리버풀 출생. 스티브 페리 합류 후 저니의 음악 노선이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방향으로 바뀌는 데 대해 반감을 갖고 밴드를 떠났다.
  • 스티브 스미스(Steve Smith)
에인슬리 던바가 떠난 뒤 합류하여 저니의 전성기를 함께 한 드러머. 본명은 스티븐 브루스 스미스(Steven Bruce Smith), 1954년 8월 21일 미국 매사추세츠 휘트먼(Whitman) 출생. 본래 재즈 장르에서 활동했고, 밴드 해체 후에도 솔로로 재즈 드러머 중 손에 꼽힐만한 드러머로 왕성히 활동한다. 96년 재결성 때 다시 합류하였다가 스티브 페리가 부상으로 밴드를 떠나자 함께 떠난다. 이후 들어왔던 드러머 딘 카스트로노보가 후술할 사건으로 갑작스레 밴드를 떠나게 된 뒤 저니에 재합류. 함께 투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버클리 음악대학 출신.
  • 스티브 오게리(Steve Augeri)
96년 'Trial by Fire' 앨범으로 재결성했으나, 보컬 스티브 페리가 부상으로 투어 활동이 힘들어지게 되어 밴드를 떠난 뒤 새로 합류한 보컬리스트. 1959년 1월 30일 뉴욕 브루클린 출생. 스티브 페리와 유사한 음색인 점이 발탁하게되는 데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아마겟돈'의 삽입곡 'Remember Me'를 부르며 저니의 보컬리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하고, 2001년 11집 'Arrival', 2005년 12집 'Generations' 앨범 활동까지 활동한 뒤 성대결절로 인해 저니를 탈퇴.
  • 딘 카스트로노보(Deen J. Castronovo)
96년 재결성 후, 보컬 스티브 페리가 부상으로 인해 밴드를 떠나게 되자 재결성으로 합류한 저니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드러머. 1964년 8월 17일 캘리포니아(California)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출생. 스티브 스미스 역시 '스티브 페리가 없는 저니는 저니가 아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밴드를 떠난다. 이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해 86년 저니의 해체 후 닐 숀과 조나단 케인이 결성한 밴드 '배드 잉글리쉬'에서 함께 활동했던 인연이 있던 딘 카스트로노보를 영입한다. 빼어난 보컬 실력을 함께 갖춰 라이브 공연 시 'Mother Father', 'Still they ride' 등 일부 곡들은 리드 보컬로서 소화해내기도 한다. 합류한 뒤 쭉 함께 활동을 이어오다 가정폭력 사건으로 밴드를 떠나게 된다.
  • 제프 스콧 소토(Jeff Scott Soto)
스티브 오게리가 떠난 뒤 합류해 짧게 활동했던 3대 보컬. 1965년 11월 4일 뉴욕 브루클린 출생. 저니에서의 짧은 활동과는 별개로, 록 음악사에서 발군의 가창력으로 정평이 난 그의 보컬 은, 샘 쿡과 서술된 밴드의 상징적 프론트맨인 스티브 페리, 프레디 머큐리에게서 영향받은 바, 하드 록파워 메탈 등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한다.
  • 아넬 피네다(Arnel Pineda)
저니의 4대 보컬리스트. 본명은 아넬 캄파네르 피네다(Arnel Campaner Pineda), 1967년 9월 5일 필리핀 마닐라 톤도(Tondo) 출생. 2008년 밴드의 13번째 정규 앨범 'Revelation'부터 합류하여 활동하고 있다. 스티브 페리와 흡사한 목소리와 그에 부합하는 탁월한 가창으로 저니의 4대 보컬로 발탁되었지만, 엄밀히 하자면 그의 가창은 스티브 페리의 짙은 목소리와 구별되는 듯한 또 다른 인상을 남긴다.

3. 초창기 및 전성기


1973년 기타리스트 닐 숀을 중심으로 산타나의 백밴드 멤버들을 모아서 처음 시작하였다. 1977년 걸출한 보컬리스트 스티브 페리가 가입하면서 밴드의 형태가 안정화되었다. 이듬해 발표한 앨범 Infinity는 빌보드200에서 21위까지 올랐으며 "Lights", "Wheel in the Sky" 등의 싱글이 플래티넘을 기록하였다.
1979년 Evoution 이라는 앨범은 밴드의 빌보드 HOT 100 첫 20위권에 진입한(16위) "Lovin', Touchin', Squeezin'"과 25위를 기록한 "Any Way You Want It"를 수록하고 있었으며 앨범 차트에서 8위까지 오른다.
1981년 발표한 Escape앨범부터 밴드의 최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9x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앨범 차트 넘버원에 오른 이 앨범은 이후에도 팝 록계의 명곡으로 꼽히는 "Who's Cryin' Now", "Don't Stop Believin'", "Open Arms" 세 곡의 싱글을 HOT 200의 10위권 안에 진입시켰고 그 중 '''Open Arms'''는 빌보드 2위에 6주간 머무르고 그 해 말까지 34위에 기록되었다. 또한 대한민국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거의 유일한 곡이기도 하다.
1983년 Frontiers 앨범 역시도 앨범 차트에 2위에 오르고 6백만장이 팔리는 초히트를 기록하였으며, "Separate Ways (Worlds Apart)", "Faithfully", "Send Her My Love", "After the Fall"등이 빌보드 HOT 100에서 상위권에 랭크되었다.
1985년, 스티브 페리는 마이클 잭슨라이오넬 리치, 퀸시 존스가 주도하는 초대형 자선 프로젝트 We Are The World에 참여하기도 한다.

4. 침체기


이후 닐 숀과 스티브 페리의 솔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밴드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밴드 자체의 인기도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87년 밴드를 해체하게 되었다.
1991년 및 1997년 재결성을 시도하였으나, 그다지 주목 받지는 못했다. 그래서 잉베이 맘스틴의 객원 보컬로 유명한 제프 스캇 소토를 고용하는 등 프로젝트 형식으로 밴드를 이어갔다.

5. 중흥기


2007년 12월 닐 숀은 또 하나의 중대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 2007년 12월 필리핀출신의 보컬리스트 아넬 피네다(Arnel Pineda)를 뽑아서 저니의 역사를 이어가기로 결정한 것. 여기에는 보컬 스티브 페리의 퇴행성 골관절 질환으로 인한 라이브 취소 및 탈퇴 등 많은 뒷이야기들이 있다. 이에 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2013년에 나온 Journey의 다큐 영화(Don't Stop Believin': Everyman's Journey)를 보는 걸 추천한다. 아래의 내용은 다큐 영화를 보는 편이 더 자세하고 정확하다. 새 보컬 아넬의 기구한 인생사도 볼 수 있다.

아넬 피네다는 필리핀에 한 백만명 쯤 된다는 커버밴드 The Zoo의 보컬이었다. 필리핀의 음악시장은 영어권이다보니 필리핀어와 영어 음악 시장이 양분되어있고, 피네다의 밴드는 필리핀에서 Journey, Stryper, Aerosmith, Survivor 등 수많은 1970~1990년대의 유명 밴드의 곡들을 커버했는데 물론 자신들의 오리지널 곡들도 있었지만 항상 관객들은 저니의 곡만 듣고 싶어했고, 오리지널 곡에는 관심도 없던지라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아넬은 13살 때 심장병으로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치료비 때문에 남은 가족들(아버지와 형제자매들)은 빚더미에 눌러 앉게 되었다. 결국 아버지는 빚을 갚기 위해 친척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떠났고, 아넬은 아버지의 부담을 덜기 위해 13살의 나이에 집을 나와 노숙자가 되었다. 병 줍기, 몸 팔기 등 안 해본 일이 없다는 듯. 성인이 된 후에도 마약에 빠지기도 했고, 이혼을 두 번 하게 되는 등 힘든 삶을 살고 있었다.
가수가 된 이후 각종 밴드 대회 우승 경력도 있고 여러 밴드를 거치면서 에이전트를 통해 홍콩에서 몇 년간 공연도 했으며 워너브라더스 레코드에서 솔로 앨범(1999년)도 낸 적이 있을 정도로 원래부터 필리핀 내 인지도는 꽤 있는 편이었다. 이중 아넬 피네다의 노래를 좋아하던 팬이 아넬 피네다가 저니의 곡을 커버한 영상을 유투브에 꾸준히 올리며 홍보를 해주고 팬질을 했는데, 사람들이 그 업로드 된 비디오를 보고 '''정말 스티브 페리랑 똑같다.'''라는 반응을 보였던 데 있다. 그리고 이 영상들이 흘러 원곡자 저니에게 까지 들어갔다. 스티브 페리가 공연할 수 없게 되자 새 앨범을 위해 보컬이 필요해진 저니의 리더 닐 숀과 멤버들은 유튜브에 떠도는 Journey의 트리뷰트, 커버 영상 등을 수도 없이 봤다고 한다. 그 영상들을 보고 아넬 피네다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말이 통할 지, '미국 밴드'인 Journey에 외국인을 영입해도 될지 끝까지 고민하다, 결단을 내리고 닐 숀이 이메일을 통해 보컬로 영입 제의를 했다.
근데 처음에 아넬 피네다는 그게 장난 메일인줄 알고 무시했다.
그렇지만 메일이 계속 오고, 저니 쪽에서 집으로 전화까지 하게 되면서 '저니를 만날 수 있다, 저니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오디션을 보러 갔다. 근데 여기서 또 웃지 못할 일화가 생겼으니...

입국장에 선 피네다에게 미국 입국심사관이 물었다.

"뭐하러 미국에 왔나?"

"저니 보컬 하려고"

"ㅎㅎㅎㅎㅎㅎ"

"ㅎㅎㅎㅎㅎㅎ"

맨 마지막 발언은 지어낸 것이지만 입국심사관이 믿어주질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 입국심사 사무실로 끌려간 피네다는 저니 노래를 사무실에서 불러서 심사관들이 비로소 입국을 허가했다는 일화이다. #
어찌어찌 오디션은 봤지만 목소리가 안 나오는 상태였고, 멤버들은 며칠 간 더 지켜보기로 한다. 멤버들의 조언과 보컬 트레이닝을 통해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자 합격을 하게 된다.
이 모든 일이 2007년 말에 일어난 일이다. 그때 유튜브는 생긴지 3년이 약간 안되는 구글이 인수한 덕에 이름이 좀 알려져 있기만 한 입지가 불안한 동영상 서비스에 불과했다. 이시기 UCC 바람이 불던 시기라 유튜브 외에도 많은 동영상 서비스 사이트간 경쟁도 치열했다. 이런 시기에 지구 반대편에서 피네다와 저니를 연결한 것이 유튜브다. 어떤 의미에서 미국의 대표적 UCC 1세대 스타가 된 셈.
그렇게 저니의 보컬리스트로 정식 발탁돼 활동하면서, 저니라는 밴드는 지금도 블랙 아이드 피스(애플 디 앱이 필리핀 출신이다.)와 함께 필리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외국 뮤지션이다. 필리핀에서 공연하면 피네다 손 잡아보려고 사람들이 난리
2017년 2월 15일. 비록 전성기는 지났지만, 대망의 첫 내한 공연을 성황리에 가졌으며, 전석 매진이었다. 관객들이 아재 중심일 것이란 예상과 달리, 젊은 층의 관객, 가족 관객도 많았고, 많은 노래에서 떼창이 이어졌다. 워낙 히트곡이 많은 밴드로, 1980년대 그들의 전성기를 함께 했거나, 이후 그들의 팬이 된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하고 좋아할 만큼 셋 리스트도 알차게 채워졌으며, 스티브 페리에 대한 아쉬움을 무색케 할만큼 아넬 피네다의 무대 매너가 돋보였고, 멤버들의 연주는 전성기의 실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앵콜에선 살벌한 Jam(즉흥 연주)을 들려주기도.

6. 공연 영상



미국에서 저니를 상징하는 곡 Don't Stop Believin'. TV나 라디오 방송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곡이기도 하며, 글리 등의 TV쇼에서 리메이크되어 조명받기도 하였다.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그들의 최대 히트곡이자 대표곡 Open Arms. 한국에서는 2013년 슈퍼스타K3에서 울랄라세션이 불러서 재조명받았다. 그런데 저니를 잘 모르는 어린 세대 중에서는 울랄라세션의 원곡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울랄라세션 커버.

새 보컬리스트 Arnel Pineda를 맞아들인 후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공연한 Faithfully.

7. 여담



참고로 이 벤드는 게임화(...)된적도 있다. 동명의 어드벤처 게임과는 전혀 상관없으며, 제작은 미드웨이에서 했다고 한다. 저니 게임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 실사 그래픽을 쓴 게임'''이라고 한다. . 다만 게임성은 B급이라는듯. 비슷한 시기 아타리 2600으로 이식되었지만 하드웨어 특성상 그래픽은 2600의 평균적인 수준. 하드코어게이밍의 리뷰기사(英)
앨범 자켓 아트에 SF풍의 딱정벌레가 자주 등장하는데 막상 저니도 이게 뭔지 모른다고 한다. 저니 자켓 아트는 원래 저니 매니저였던 월터 허버트가 의뢰한 디자인인데 저니한테는 상의도 없었다고.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함.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