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메인 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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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한 타자. 현역시절 포지션은 우익수였으며 지명타자로도 자주 활동했다. 현역 통산 타율이 .274, 출루율이 .338인 것에서 보이듯이 선구안[1] 과 컨택트 능력이 대단하지는 않은 타자였지만 5할에 육박하는 장타율[2] 과 325개의 홈런이 말해주는 무지막지한 파워로 이를 극복해냈다. 또한 외야수로 활동할 때는 상당한 강견으로도 유명해 2000년 골드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국내한정 별명으로 형저메인 다이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1992년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 의해 17라운드에서 지명받은 이후 3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쳐 1996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다. 데뷔 첫 타석에서부터 홈런을 날리며 파워에 관한 잠재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드러냈지만, 같은 해 스토브리그에서 애틀란타는 외야수 마이클 터커[3] 와 2루수 키스 록하트를 받아오는 대가로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다이를 트레이드한다. 한 해 동안 애틀란타에의 성적은 98경기 출장 12홈런 타율 .281, 출루율 .304.
첫 두 시즌 동안 각각 75, 60경기 출장에 그쳤던 다이는 1999년 158경기에 출장해 타율 .294, 27홈런, 119타점을 기록하며 잠재력을 터뜨린다. 캔자스시티의 팬들도 구세주처럼 등장한 이 새로운 파워히터에게 다이너마이트(Dye-no-mite)라는 애칭을 붙여주며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줬다. 다음해인 2000년은 다이의 커리어 사상 가장 빛나는 시즌이라고 불러도 무방한데, 타율 .321에 33홈런 118타점을 기록하면서 올스타로 선출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는 영예도 누린다. 하지만 이듬해 캔자스시티가 당시 리그에서 떠오르는 유격수였던 콜로라도 로키스의 네이피 페레즈[4] 를 데려오는 과정에서 발생한 삼각 트레이드로 2001 시즌 중반에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로 이적한다.
2001년 7월 오클랜드로 트레이드된 다이는 두 달 남짓한 기간동안 13개의 홈런과 .913이라는 정상급 OPS를 기록하면서 이 해 오클랜드의 와일드카드 획득을 돕는다. 다만 뉴욕 양키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4차전 도중 자신의 파울 타구에 맞아 무릎 골절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만다. 이 부상의 여파는 이후로 오랫동안 다이의 발목을 붙잡는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다이는 단 한번도 130 경기 이상을 출장한 적이 없었으며[5] , 타율도 .250 언저리에서 놀았다. 특히나 2003년은 그 중에서도 단연 폭망의 해로 불과 65경기에 출장해 타율도 .172에 홈런은 꼴랑 네 개... 그래도 2003년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즌은 각각 24, 23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파워툴 하나는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2004 시즌을 끝으로 다이는 FA 자격을 얻었고, 당연히 빌리 빈 단장은 그를 보내(...)준다. 그의 새로운 안식처는 2년간 1050만불에 1년의 연장 옵션을 제안한 시카고 화이트삭스. 그리고 맞이한 2005 시즌, 다이는 여전히 부상으로 골골 거리기는 했지만 145 경기[6] 에 출장해 타율 .274에 31홈런으로 부활한다. .512의 장타율이 압권. 또한 가을야구에서도 맹활약하며 2005년 월드 시리즈에서 타율 .438에 1홈런을 기록하며 시삭스의 88년만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일등공신이 됐다. 특히 4차전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마무리 브래드 릿지를 상대로 기록한 8회초 타점이 압권이었다. 당연히 MVP는 그의 몫. 2006 시즌에는 더욱 더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315의 타율과 44개의 홈런을 기록. .622의 장타율은 흠좀무하기까지.. 생애 두번째 올스타로 선출된 것은 기본이고 실버슬러거 상을 수상했으며 리그 MVP 투표에서도 5위에 오르는 모습[7] 을 보여줬다. 이런 다이의 모습에 최훈은 자신의 카툰에서 그에게 다이하드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당연히 화이트삭스는 그에게 1년 연장 옵션을 발동했다. 그런데 그렇게 이어진 2007 시즌, 전반기를 제대로 말아드셨다(...) 특히나 6월에는 타율 .203의 1홈런. 다행히 후반기에는 타율 .298에 16홈런을 기록하며 예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종성적은 타율 .254, 출루율 .317, 장타율 .486 28홈런 78타점. 그렇지만 후반기 성적을 보고 화이트삭스는 그와 다시 2년 재계약을 맺었고, 다행히 2008년에는 .292의 타율에 34홈런을 기록하며 반등에 성공하나 싶었..는...데... 2009년에 타율 .250으로 다시 망했어요. 파워는 여전해서 홈런을 27개나 때려냈지만 화이트삭스 보드진은 그와 연간 1200만 불짜리 연장 옵션을 실행하는 대신에 95만불을 주고 작별하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다시 FA가 된 다이에게 구애를 보내오는 팀은 없었고 결국 2011년 다이는 현역 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한 타자. 현역시절 포지션은 우익수였으며 지명타자로도 자주 활동했다. 현역 통산 타율이 .274, 출루율이 .338인 것에서 보이듯이 선구안[1] 과 컨택트 능력이 대단하지는 않은 타자였지만 5할에 육박하는 장타율[2] 과 325개의 홈런이 말해주는 무지막지한 파워로 이를 극복해냈다. 또한 외야수로 활동할 때는 상당한 강견으로도 유명해 2000년 골드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국내한정 별명으로 형저메인 다이가 있다.
2. 경력
2.1.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1992년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 의해 17라운드에서 지명받은 이후 3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쳐 1996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다. 데뷔 첫 타석에서부터 홈런을 날리며 파워에 관한 잠재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드러냈지만, 같은 해 스토브리그에서 애틀란타는 외야수 마이클 터커[3] 와 2루수 키스 록하트를 받아오는 대가로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다이를 트레이드한다. 한 해 동안 애틀란타에의 성적은 98경기 출장 12홈런 타율 .281, 출루율 .304.
2.2. 캔자스시티 로열스
첫 두 시즌 동안 각각 75, 60경기 출장에 그쳤던 다이는 1999년 158경기에 출장해 타율 .294, 27홈런, 119타점을 기록하며 잠재력을 터뜨린다. 캔자스시티의 팬들도 구세주처럼 등장한 이 새로운 파워히터에게 다이너마이트(Dye-no-mite)라는 애칭을 붙여주며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줬다. 다음해인 2000년은 다이의 커리어 사상 가장 빛나는 시즌이라고 불러도 무방한데, 타율 .321에 33홈런 118타점을 기록하면서 올스타로 선출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는 영예도 누린다. 하지만 이듬해 캔자스시티가 당시 리그에서 떠오르는 유격수였던 콜로라도 로키스의 네이피 페레즈[4] 를 데려오는 과정에서 발생한 삼각 트레이드로 2001 시즌 중반에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로 이적한다.
2.3.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2001년 7월 오클랜드로 트레이드된 다이는 두 달 남짓한 기간동안 13개의 홈런과 .913이라는 정상급 OPS를 기록하면서 이 해 오클랜드의 와일드카드 획득을 돕는다. 다만 뉴욕 양키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4차전 도중 자신의 파울 타구에 맞아 무릎 골절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만다. 이 부상의 여파는 이후로 오랫동안 다이의 발목을 붙잡는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다이는 단 한번도 130 경기 이상을 출장한 적이 없었으며[5] , 타율도 .250 언저리에서 놀았다. 특히나 2003년은 그 중에서도 단연 폭망의 해로 불과 65경기에 출장해 타율도 .172에 홈런은 꼴랑 네 개... 그래도 2003년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즌은 각각 24, 23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파워툴 하나는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2.4. 시카고 화이트삭스
2004 시즌을 끝으로 다이는 FA 자격을 얻었고, 당연히 빌리 빈 단장은 그를 보내(...)준다. 그의 새로운 안식처는 2년간 1050만불에 1년의 연장 옵션을 제안한 시카고 화이트삭스. 그리고 맞이한 2005 시즌, 다이는 여전히 부상으로 골골 거리기는 했지만 145 경기[6] 에 출장해 타율 .274에 31홈런으로 부활한다. .512의 장타율이 압권. 또한 가을야구에서도 맹활약하며 2005년 월드 시리즈에서 타율 .438에 1홈런을 기록하며 시삭스의 88년만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일등공신이 됐다. 특히 4차전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마무리 브래드 릿지를 상대로 기록한 8회초 타점이 압권이었다. 당연히 MVP는 그의 몫. 2006 시즌에는 더욱 더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315의 타율과 44개의 홈런을 기록. .622의 장타율은 흠좀무하기까지.. 생애 두번째 올스타로 선출된 것은 기본이고 실버슬러거 상을 수상했으며 리그 MVP 투표에서도 5위에 오르는 모습[7] 을 보여줬다. 이런 다이의 모습에 최훈은 자신의 카툰에서 그에게 다이하드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당연히 화이트삭스는 그에게 1년 연장 옵션을 발동했다. 그런데 그렇게 이어진 2007 시즌, 전반기를 제대로 말아드셨다(...) 특히나 6월에는 타율 .203의 1홈런. 다행히 후반기에는 타율 .298에 16홈런을 기록하며 예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종성적은 타율 .254, 출루율 .317, 장타율 .486 28홈런 78타점. 그렇지만 후반기 성적을 보고 화이트삭스는 그와 다시 2년 재계약을 맺었고, 다행히 2008년에는 .292의 타율에 34홈런을 기록하며 반등에 성공하나 싶었..는...데... 2009년에 타율 .250으로 다시 망했어요. 파워는 여전해서 홈런을 27개나 때려냈지만 화이트삭스 보드진은 그와 연간 1200만 불짜리 연장 옵션을 실행하는 대신에 95만불을 주고 작별하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다시 FA가 된 다이에게 구애를 보내오는 팀은 없었고 결국 2011년 다이는 현역 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1] 통산 피삼진이 1308개이고 통산 볼넷이 597개이다. 리그 평균보다도 나빴던 수준...[2] 정확히는 .488[3] 박찬호와 유독 인연이 많았던(정확히는 박찬호 상대로 .240/.429/.600 홈런 3개를 쳐서 강한 모습을 보였던) 좌타 외야수[4] 하지만 이 선수는 선구안의 부재를 극복하지 못하고 12년 통산 267/.297/.375의 그저그런 타격실력의 수비형 유격수로 전락했고, 2007년 스테로이드 양성반응으로 80경기 출장정지를 먹고 커리어를 접었다. 대부분의 반응은 "약을 쳐먹고 뛰었는데도 빠따가 그거 밖에 안됨?"이었을 정도.[5] 이 세 해 동안 부상으로 결장한 경기가 자그마치 123경기이다.[6] 신기한 것은 가끔식 유격수도 맡아봤다는 것.[7] 1위는 저스틴 모노 , 2위는 섹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