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신다 아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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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뉴질랜드의 정치인이자, 현직 총리. 뉴질랜드 역사상 세 번째 여성 총리이자 '''최연소 총리'''이기도 하다.
2. 생애
2.1. 총리 당선 이전
해밀턴에서 태어났으며, 모린스빌과 무루파라에서 자랐다. 부모가 이 지역에서 일했는데 이 덕에 여기서 학교까지 다닐 수 있게 되었다. 2001년 와이카토 대학교를 졸업했다.
1990년대 말 노동당 당원이던 언니 덕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9년 총선 당시 뉴플리머스 지역의 현역 국회의원이던 해리 더인호븐 후보 지원 유세에 참여했으며, 더인호븐은 무난하게 연임에 성공한다.
2000년대에는 노동당의 청년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당시 총리이자 동시에 두 번째 뉴질랜드 여성 총리였던[3] 헬렌 클라크를 도왔다. 비록 총리가 되지는 못했지만, 후에 당수가 되는 필 고프와 가까운 자리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에는 한동안 정치 활동을 잠시 멈추고 뉴욕으로 건너가 수프 요리사로 잠깐 일하기도 했다. 얼마 후 런던으로 건너가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의 조언자로 일하려 하기도 했으나, 정작 블레어를 만나진 못했다고 한다.
2008년 노동당 비례대표 20번으로 당선되어 중앙 정치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되었으나, 정작 당시 총선에서 국민당이 집권하면서 노동당은 정권을 내주게 되었다. 다만 당시 재신다 아던의 나이는 28세로, 24세에 국회의원이 된 대런 헉스 다음의 '''최연소 국회의원'''이었다는 의의는 있었다. 2011년과 2014년에도 비례대표로 연임에 성공했다. 2015년 차기 총리 선호도 조사에서 4위에 랭크되기도 하는 등 이때부터 떡잎은 보였다.
2017년 2월 마운트 앨버트[4] 선거구 보궐선거에 도전해 당선되어, 처음으로 지역구 의원으로서 원내에 진입하게 되었다.
2017년 8월 노동당 당권에 도전했는데, 이 시기 당대표 경선은 매우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왜냐하면 총선을 단 7주 앞두고 치러진 전당대회로서, 향후 노동당이 총선을 승리할 경우 총리를 결정할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기 때문. 그리고 이때 아던은 노동당 대표에 선출되는 파란을 일으켰으며, 차기 젊은 지도자로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후 총선에서 노동당은 원내 2당을 기록했고, 뉴질랜드 국민당은 원내 1당 지위를 유지했다. 그래서 형식상으로만 보면 국민당 정권이 연장될 것으로 보였으나, 국민당이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면서 연정 필요성이 대두되었는데, 원내정당 중 노동당, 녹색당을 제외하면 국민당이 과반 이상을 확보할 연정 대상이라곤 중도 표방 극우 성향 정당인 뉴질랜드 제일당밖에 없었고, 이 당이 고심 끝에 노동당을 지지하기로 결정하면서 노동당+제일당+녹색당 연정의 총리로 아던이 선출되었다.[5] 이로서 아던은 제니 시플리, 헬렌 클라크의 뒤를 이은 뉴질랜드 역사상 세 번째 여성 총리이자, '''최연소 총리'''로 기록되었다.
2.2. 총리 시절
2017년 10월 26일 아던을 총리로, 제일당 대표 윈스턴 피터즈를 부총리로 하는 아던 내각이 출범하였다.
사실 아던 내각 자체가 '사민주의&생태주의 진보 좌파+중도 표방 반이민 극우'라는 희대의 짬뽕 내각인지라(...)[6] , 출범 초엔 이를 심히 불안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던 본인도 이민 축소를 공약했는데, 제일당은 이보다 더 강력해 사실상 '''제한'''에 가까웠기 때문. 때문에 많은 유권자들이 "아던은 제일당의 눈치를 보느라 좌파임에도 매우 극보수적인 이민 정책을 펼칠 것"이라며 불안해하기도 했는데, 일단 본인은 "노동당의 이민 정책을 따를 것"이라고 선포해, 제일당의 초강경 이민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 것으로 일단 넘어갔다.
하지만 외국인의 토지/주택 구매를 금지하는 등 좌파치고는 상당히 강경한 이민 정책을 내놓은 것으로 보여 논쟁거리를 던졌다. 다만 이 정책은 뉴질랜드의 부동산 거품을 잡기 위한 경제적 목적이 더 커보이긴 하다. 또 해당 기사 자체가 아던 내각에 대한 맑시즘 색깔론을 퍼붓는 등 안티 성향이 강해보인다는 점은 유의.
마냥 제일당에 양보만 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게, 파트너 비자 기각사례가 늘어나면서 인종차별 논란까지 일자, 아던 총리는 새로이 규정된 이민규정을 백지화하고 과거에 적용하였던 규정대로 돌릴 것을 지시했다. 또 이 와중에 이민 관련 막말 논란이 인 제일당 쉐인 존스 의원의 발언은 정부 개정안과는 거리가 먼 개인적 의견일 뿐이라고 깎아내렸다.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를 연출한 마오리 혼혈 출신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 2018년 "뉴질랜드엔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한다"는 인터뷰를 하며 뉴질랜드에서 실체성 여부와 국격 훼손 등 논란이 일자, 아던 총리는 인터뷰에서 와이티티를 '''동조하는''' 발언을 했다. 다만 "이는 개선될 수 있다. 우리가 매일 상황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2018년 출산을 하면서 산후조리 문제로 잠시 휴식을 취했으며, 피터즈 부총리가 업무를 대행하기도 했다.
2020년 11월 안락사 관련 국민투표를 붙일 예정인데, 자신은 안락사 합법화를 찬성한 상태이다.# 9월 16일 총선 치르기로 했다.#
코로나19 사태 때는 2달 만에 종식을 가까운 수준을 보여줄 뿐더러 쿡 제도, 니우에 등 구성국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전 세계에 뉴질랜드 저력을 알릴 뿐더러 총선 앞두고 호재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여론조사에서도 지난 1월 말 조사보다 20%포인트 상승한 59.5%로 나타났다.# 물론 이것은 대만처럼 아예 국경을 잠가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경제는 성장률 예측에서 마이너스 두 자리가 나올 정도로 손실이 매우 커서 장기적으로 경제 회복에 어떻게 나타날지는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그럼에도 방역이 뚫리는 사태가 발생하자 데이비드 클라크 보건부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2017년 받은 후원금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10월 총선 앞두고 지지율이 높아서 단독 여당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 선거에서 '''64석'''[7] 을 얻어내는 초압승을 거두며 1994년 뉴질랜드 선거법이 연동형 비례대표제[8] 로 개정된 이후 '''최초의 단일 정당 단독집권에 성공'''했다. 3년 전에는 제2당의 당수로서 뉴질랜드 제일당-녹색당을 끌어들인 3당 연정을 통해 의회 과반인 61석을 '''2석''' 넘긴 '''63석'''[9] 으로 집권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10] 지금 현존하는 세계의 지도자들중 자국내에서 제일 큰 인기를 구가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11월 2일에 공식 2기 내각 출범 가졌는데, 비록 여당이지만 녹색당에게도 관직 2자리를 줬다.#
3. 성향
아던은 노동당 소속으로서 중도좌파 정치인으로 분류되며, 현재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진보 인사 중 하나이다. 스스로를 사민주의자, 진보주의자, 공화주의자, 페미니스트로 규정했으며, 동성 결혼 법제화와 낙태를 찬성하고 있다.
다만 이민 문제에 대해서는 상기했듯 보수적 면모도 보인다. 하지만 뉴질랜드의 정치 지형에서는 우파 국민당이 이민에 긍정적이고 좌파 노동당이 이민에 회의적인 편이라, 뉴질랜드 관점에서 보자면 이를 두고 "이민은 보수"라고 단정짓기에는 애매한 측면이 있다.
대학 전공(언론 계열)이 말해주 듯, 국민은 물론 언론과 소통에 상당히 능숙하다. 진솔한 공감을 담는 표정과 함께 호소력이 있는 메시지가 대국민 소통에 잘 작동한다. 따라서, 국가의 위기 극복에 뛰어난 수완을 발휘해 왔다. 섬세한 배려를 담으면서도 단호해야 할 때는 거침이 없다. 정치적인 일관성과 균형감도 좋다는 평이다.
특히, 코로나19 때는 이러한 위기를 소셜미디어로 잘 활용하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평가 내리기도 했다.#
4. 여담
- 총리 전에는 일명 재신다매니아(Jacindamania)라는 이름으로 열풍 분 장본인이다.
- 종교는 무종교이다. 가족이 몰몬교 신도였고 본인도 열성적으로 다닌 것으로 보이나, 정치 입성 이후 동성애에 우호적인 스텐스를 취하면서 이후 몰몬교의 가르침과 마찰을 빚어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2017년 스스로 엑스몰몬임을 커밍아웃했다. 본인은 몰몬교를 떠나 더욱 멋있는 삶을 얻게 되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5. 선거 이력
[1] 총리 본인에 대한 경칭[2] 2018년 6월생.[3] 당 대표로서 직접 총선을 이끌어 취임한 케이스로 한정하여 보자면 첫 여성 총리. 전임자였던 국민당 제니 시플리 총리는 전임 총리가 물려준 의회 과반의석을 물려받아 총리가 되었고, 막상 본인이 당 대표로서 지휘한 1999년 총선에서는 헬렌 클라크가 이끌던 노동당에 패했던 탓이다.[4] 오클랜드에 속하며, 노동당 출신 첫 여성 총리인 헬렌 클라크의 지역구이기도 했다.[5] 당시 캐스팅보트를 쥔 제일당 당수 윈스턴 피터스는 생중계를 통해 노동당과의 연정을 한 결정적인 이유로, 지난 몇 년간 국민당으로부터 자신들이 정책적으로 크게 외면을 받은 점을 들었다. 하지만, 그에 앞선 노동당과의 연정 협상 과정 중 당시 아던 당수와 같이 국회에서 나타날 때 마다 비교적 흡족한 표정을 지었었다. 더욱이, 피터스는 녹색당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에(녹색당과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함) 연정 협상이 상당히 불투명한 상황에서 의외의 결과가 연출된 것이다. 따라서, 제신더 아던이 피터스를 설득하고 제일당을 진솔하게 포용하는 전략이 피터스에게 적쟎이 작용했을 것이 분명하다.[6] 많은 나라의 상황과 달리, 뉴질랜드는 보수 성향의 국민당이 친이민 성향이고, 오히려 노동당이 경제적 이유를 들어 이민을 규제하는 편이다. 물론 강경우파마냥 제노포비아 성향이 있는건 아니지만. [7] 의회 과반은 61석.[8] 1표는 지역구 후보에, 또 다른 1표는 폐쇄명부식 정당명부에 투표하는 방식. 지역구에서 낙선한 후보도 비례대표 복수공천을 받았다면 구제받을 수 있으며, 한국 21대 총선과는 다르게 의석-득표율 연동률은 100%이다.[9] 노동당 46석 + 제일당 9석 + 녹색당 8석[10] 이제는 노동당으로만 '''64석'''이 나오며, 노동당에 우호적인 녹색당의 10석은 덤.[11] 뉴질랜드의 방송인으로, 현재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방송하는 Fish of the Day의 진행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