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

 


田楷
(? ~ ?/199)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 공손찬 휘하의 장수. 공손찬 휘하에 남았던 인물 중 그나마 기록이 많은 편이다.

2. 생애


191년 11월 공손찬이 30만 황건적와의 전쟁에서 이긴 후 수하 장수들을 각주의 자사로 임명하는데, 선경은 연주자사, 엄강은 기주자사, 전해는 청주자사로 임명된다. 이 때 유비가 별부사마가 되어 전해의 '''부관'''으로 오게 된다.
192년 계교전투에서 공손찬군이 대패하였으나 공성에 실패하고 돌아가는 최거업의 부대를 격파하여 평원까지 진출하였다.
전해 또한 유비와 함께 제 땅을 정복한다.
후한서에 따르면 제 땅 정복 이후 청주에서 2년간 원소의 공세에 맞서 싸웠다.
194년 2월, 조조가 쳐들와서 위협을 받은 도겸이 공손찬에게 SOS를 치자 이에 전해와 유비가 함께 도겸을 도우러 가게 된다. 후에 조조가 물러나자 전해는 유비를 남기고 다시 제 땅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후 원소가 청주자사로 임명한 원담에 의해 쫓겨나게 된다.
『자치통감』에 따르면 199년 3월에 공손찬이 자결할 때 싸우다가 전사했다고 한다.

3. 미디어 믹스



3.1. 삼국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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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2, 13
선경이나 엄강에 비해 기록이 월등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능력치가 좋지는 않다. 공손찬군에 있는 장수치고 전예조운을 제외하면 별 쓸모가 없다는 것은 언제나 변한 적이 없지만, 어느 한편으로도 아주 못 써먹을 능력치는 아니고 워낙 무장수가 적어 문무 양면으로 자주 쓰이긴 한다. 삼국지 6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1/무력 65/지력 53/정치력 66. 주사와 제사를 가지고 있으며 비사가 없어서 선경, 엄강, 공손월 등에 효율성이 밀린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1/무력 63/지력 57/정치력 59/매력 62에 특기는 징병, 화시, 반목, 혼란 4개뿐. 능력치도 특화된 게 없는데 특기도 뭔가 어정쩡하다.
삼국지 12에서의 일러스트는 말을 탄 채 언월도를 위로 들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68/65/58/61. 특기는 순찰 3 단 하나. 전수특기도 당연히 순찰이고 전법이 창공약화였지만 PK에서 금족으로 변경되었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8, 무력 65, 지력 57, 정치 60, 매력 63으로 전작에 비해 지력과 정치력이 각각 1 하락했다. 개성은 모집, 낭비, 주의는 할거, 정책은 공법개혁 Lv 3, 진형은 봉시, 전법은 돌격, 견제, 친애무장은 선경, 엄강, 혐오무장은 없다.

3.2. 삼국지톡


[image]
공손찬의 부장. 잿빛 도는 스포츠컷에 밝은 푸른색 눈, 한쪽 눈의 흉터가 인상적. 고지식하고 엄격한 천생 군인으로, 공손찬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의리를 지키고 그를 많이 신경쓴다. 공손찬에 의해 청주자사로 임명되었다.
서주 대학살 때, 유비를 휘하로 이끌고 도겸을 도우러 와서 조조의 군세를 격퇴하고, 포위가 풀리자마자 도겸을 경계해 바로 서주를 떠난다. 유비가 도겸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서주에 남겠다고 하자, 그가 공손찬을 떠날 작정을 한 것을 눈치채고, 장수가 주군을 멋대로 바꾼다며 질책하면서도 동시에 처신을 신중히 하라고 당부하며 작별을 고한다. 속으로 세상이 차례차례 공손찬을 버린다며 한탄하면서도, 공손찬이 진상을 알면 절망할까 봐 차마 사실을 얘기할 수 없다며 '유비가 공손찬을 배신할 리 없다'고 거짓 보고를 하고, 자신은 죽어도 주군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주군이 엇나갈 때 간언을 하여 도로 바른 길로 이끄는 충신'은 못 되지만, 대신 '주군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나락에 떨어진다면 그 추락까지도 함께하는' 의리파.
결국 관도대전 시즌에서 역경루가 함락당하고, 공손찬은 자식들을 죽인 뒤 아내에게 동반자살을 강요하다 불길 속에서 죽고, 전해 자신은 단신으로 끝없이 밀려드는 원소의 대군을 상대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그럼에도 전해는 마지막까지 공손찬을 저버리지 않고 원소군에 맞서 홀로 분전한 끝에 비장한 최후를 맞이했다.[1]
의리 있는 성격, 카리스마 넘치는 용모, 근엄한 언행 등 제법 매력적인 캐릭터성을 많이 갖추었다.또한 유비를 탐탁찮게 여긴 건지 그냥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항상 유비를 무뚝뚝하고 차갑게 대했으면서도, 유비가 공손찬을 떠나 서주에 남으려고 하자 "속 검은 도겸이 너를 이용하려 들 테니 신중하게 대처하라"며 도움 되는 현명한 조언을 해 주었고, 그의 전향을 공손찬에게 숨겨 주기까지지 하는 등 유비를 이용해 먹으려는 작자들이 판치는 작중에서 공융과 더불어 유비를 진심으로 생각해 준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2] 이런 면모들이 모두 매력 포인트로 독자들에게 어필이 되어, 삼톡 원탑 인격자 유우를 죽인 공손찬의 오른팔임에도 독자들의 지지도와 인기는 높은 편.
성별 논란이 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첫 등장 시의 일단 가슴이 있는 듯한 체형(?) 때문에 여성설을 미는 사람들이 있고, 그러면서도 작중 묘사에 성별 관련된 묘사는 전혀 없기 때문에 그냥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3.3. 삼국전투기


개죽이로 등장하는데 최훈이 캐릭터 소개에서 설명할 때 존재감 없음의 최고봉이라고 기술한다. 그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이 그의 직함은 청주자사인데 원담이 와서 전해와 공융을 물리치고 그 자리를 차지하니 백성들이 '''당시 주인이 없었으므로''' 그를 열렬히 환영했다는 문구가 나오기 때문. 하지만 이것은 전해의 존재감이 없어서라기보단 공손찬이 사사롭게 세운 청주자사 직함을 주민들이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우이 전투 편에서는 원담에게 간단하게 청주를 뺏기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 밖에는 우이 전투 (1)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역경 전투 편에서는 어느샌가 공손찬에게 가 있는 걸로 묘사된다. 장연에게 밀서를 보내 역경 외곽에 도착하게 되면 불을 피워 신호하라는 걸 전달하라고 공손찬에게 명을 받는다. 그러나 그 밀서는 중간에 원소군에게 가로채여서 역으로 공손찬을 낚는 데 사용되게 된다.
이후 어찌저찌 역경으로 돌아오는 건 성공한 듯 보이나, 역경성이 무너지면서 쏟아져 들어오는 원소군에게 사살된 것으로 묘사된다.

3.4. 화봉요원


서주에서의 전투가 끝나고 공융과 함께 유비를 찾아왔다가 관우가 외출했다고 전하자 물러났으며, 공융과 대화하면서 서주로의 출병은 본래 이익을 함께 나누어 가지려고 한다는 내용과 함께 서주가 전란에 일찍이 휘말려서 다시 싸우게 되면 백성들이 어떻게 될지 염려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1] 정작 공손찬은 이런 사정을 알지도 못한 채, 전해가 연락을 받지 않자(원소군과 싸우느라 여력이 없었다) 자신이 힘을 잃으니 부하들이 떠났다고 착각했다. 원소도 전해 등 공손찬군의 최후를 두고 '인복이 이렇게 많았는데 본인만 몰랐다'며 공손찬의 어리석음을 탓했다.[2] 전해가 유비를 남기고 떠날 때 유비는 물론이고 관우, 장비마저도 전해에게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예의를 갖추며 배웅한다. 그들 또한 전해를 내심 존경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