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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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교수. 전두환의 3남1녀 중 고명딸이다. 서경대학교 인성교양대학 교양영어담당 부교수이다.
2. 생애
전두환과 이순자의 장녀로 태어났다. 1981년 창덕여자고등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1] 했다. 다만, '전두환 독재 타도'를 외치던 학내 분위기 속에서 평범한 대학 생활이 불가능해, 결국 졸업하지 않고 유학을 떠났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도 비슷한 이유 때문에 방탄 리무진을 타고 등교하고 교실 앞까지 경호원들을 대동했다고. 나중엔 아예 교실을 터서 경호원 전용 대기실을 만들고, 학교 축제 장기자랑에서 교사들이 전효선이 주연을 맡은 연극을 위해 학생들에게 남아서 춤을 연습하게 하는 등, 철저하게 갑의 위치에서 공주대접을 받으며 학창시절을 보냈다.[2] 이런 분위기 속에 대학 1학년 때 대성리로 MT를 갔다가 중간에 사라져 청와대경호실에서 난리가 났던 일화도 있다. 아버지의 독재 타도를 외치는 학생들 사이에서 자리하고 있기 힘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1985년에 당시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막 졸업한 윤상현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그녀의 어머니 이순자가 만든 과외모임에서 만나 대학도 같은 서울대를 갔을 만큼,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결혼식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영빈관에서 거행되었다. 석사장교로 병역문제를 해결한 남편을 데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1994년 남편 윤상현이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98년 서울대 초빙교수로 임용돼 귀국하자 따로 살기 시작했다. 남편이 귀국한 후인 1999년 5월에 미국 뉴욕대학교 로스쿨로 유학을 가서 2001년 법학석사 및 법무박사(Juris Doctor) 학위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 들어선 후 전두환이 집중적인 비자금 수사를 받는 등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인 2005년에 윤상현과 이혼했다. 그 후 윤상현은 2010년에 롯데그룹 신격호의 남동생인 신준호의 사위가 되었다.
2006년부터 서경대학교에서 교양과정부 전임강사로 일하다 2012년 조교수로 승진했다.
2013년 7월 검찰이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환수 작업에 본격 착수하자 서경대학교에 돌연 휴직원을 제출하고 대외 활동을 중단했다. 공교롭게도 휴직하자마자 '편법 임용 의혹'에 휩싸였다.
2014년 8월 31일까지 1차 휴직을 신청하고, 이후 추가로 휴직원을 제출해 2015년 2월 28일까지 휴직처리되었다. 그리고 편법임용 의혹이 잠잠해진 뒤인 2015년 3월 1일자로 복직했다. 서경대 이사회는 2015년 2월 26일 이사 8인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전효선의 복직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3. 논란
전두환이 과외를 전면 금지[3] 하기 직전인 1980년에 이순자가 관리하는 귀족 족집게 과외를 받았다는 설이 있다. 그 귀족과외팀에는 후일 결혼한 윤상현과 오빠 전재국의 부인이 되는, 당시 창덕여자고등학교에서 제일 미모를 자랑했던 정도경이 참여했다고 한다. 과외 교사로는 당시 유명 참고서 저자들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23억 원의 '용돈'을 받은 여자로 유명하다. 1992년 전두환은 연희동 자택에서 자기가 보유한 비자금 가운데 채권 23억 원 어치를 ‘용돈’ 명목으로 전효선에게 건넨 적이 있는데, 4년 뒤인 1996년에 전두환이 부정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 이 사실을 시인한 것. 2006년 외삼촌인 이창석으로부터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 토지를 증여 받았다. 이 땅은 1989년 5공 청문회 때 이순자의 소유 의혹이 제기됐던 바로 그 땅이다.
편법임용 의혹을 받고 있다. 기사참조 2006년 임용 당시 학교 측이 내건 학위 조건(영어학 석사)과 그의 학위(J.D., Juris Doctor)가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 참고로 서경대학교 총장 한철수는 육군사관학교 12기로 전두환의 육사 1년 후배이다.
2015년 9월에는 수업 중 수강생 20여 명을 내쫓아 논란에 휩싸였다. 교양영어 수업에서 학생 20여 명을 결석처리하고 내쫓아버린 것. 예습을 제대로 해오지 않았다는 이유였는데, 아무리 예습을 안 해왔다 하더라도 교수가 수업시간에 학생을 내쫓는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 내막을 알고 보니 다른 교양영어 수업은 원어민 강사가 강의했던 반면, 전효선은 원어민이 아니라서 학생들이 전효선의 교양영어 강의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은 "교수를 교체해 달라"는 학생들의 불만이 높아져 해당 수업에서 빠지게 됐다.관련기사 참조
[1] 당시 예비고사에서 305점을 받았는데, 676명을 뽑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지원자 중에서 45위에 해당되는 점수였다.[2] 이 점은 형제들인 전재국, 전재용, 전재만도 같다.[3] 1980년 이른바 7.30교육개혁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