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자

 





'''대한민국 제11·12대 영부인
이순자
李順子 | Lee Soon-ja
'''
[image]
1981년의 모습
[image]
2017년의 모습.
<colbgcolor=#005ba6> '''출생'''
1939년 3월 24일(85세)
[image] 만주국 신징
'''학력'''
경기여자고등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의학 / 중퇴)
연세대학교 생활환경대학원
석사

'''가족'''
배우자 전두환
장남 전재국
장녀 전효선
차남 전재용
3남 전재만
'''재임기간'''
1980년 9월 1일 ~ 1988년 2월 24일
'''약력'''
제11·12대 대한민국 대통령 영부인
'''본관'''
성주 이씨 25세손
1. 개요
2. 생애
3. 비판 및 논란
3.1. 독재 행각
3.2. 땅투기 의혹
3.3. 한국 만화 산업 탄압
3.4. 똥군기 논란
3.5. 5.18 민주화운동 관련 논란
3.6. 기타
4. 이순자를 연기한 배우들

[clearfix]

1. 개요


전두환아내.

2. 생애


만주국 수도 신징(오늘날 지린 성 창춘)에서 만주군 경리관 이규동과 그의 배우자 이봉년 사이에서 태어났다. 1남 6녀[1] 중 차녀인데, 언니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사망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집안의 장녀가 되었다.
경기여자중학교와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2]하고 1958년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였으나 입학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전두환과 결혼하면서 학교를 그만두었다.[3] 전두환에게는 줄타기 결혼이라서 나중에도 이래저래 말이 많았다. 이때 이순자의 친정아버지 이규동은 장군(육군본부 경리감, 준장)이었는데, 전두환은 전속부관이었다. 실제로 전두환은 대위 시절에 상당한 미남이었던 반면, 이순자는 젊을 적에도 미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4] 어쨌거나 전두환, 이순자 부부는 금실이 매우 좋기로 유명하다.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래 이순자만큼 정치,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한 영부인이 없다는 평가가 있다. 이 때문에 갖은 정치 스캔들을 초래했고 권력자 부인 중 남편의 재임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모 때문에 "주걱턱 여사"라고 불렸으며, 당시 KBS 1TV 9시 뉴스MBC 뉴스데스크에서 전두환 소식을 전한 뒤 바로 "한편 이순자 여사께서는..."이라는 멘트가 붙었기 때문에 '''한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오늘 전두환, 한편 이순자 이런 식으로. 당시 이순자에 대한 여론이 무척 나빴음에도 불구하고 5공 치하의 언론은 이를 제대로 보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 피플 파워로 쫓겨난 필리핀 대통령 마르코스의 영부인 이멜다를 비판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비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5] 마치 송나라 민초들이 원나라가 무서워서 칭기즈 칸을 비판하지 못하고 그 대신 조조를 비판한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무죄를 선고받았는데, 피고인이 '전두환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기소되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가족에 대한 명예훼손은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판례다. 또 당시 방송에서 "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배역은 비천한 역할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6]
슬하에는 3남 1녀를 두었으며, 배우 박상아는 전두환과 이순자의 둘째 며느리다. 즉, 차남 전재용의 아내다. (전재용에게는 3번째 결혼이다.)

3. 비판 및 논란



3.1. 독재 행각


남편인 전두환 못지않게 꽤나 느닷없는 행각을 벌였다. 1979년에 <순자야 문 열어라>[7]라는 영화가 개봉했는데, 하필 그 시기가 12.12 군사반란 무렵이었다. '무엄하게도' 권력자의 마누라 이름을 제목에 넣었던 영화는 제대로 상영도 못하고 간판을 내려야 했고, 동명의 주제곡까지 금지곡이 돼 버리는 바람에 노래를 부른 '김철'이란 신인 가수도 활동의 길이 막혀서 몇 년 후에 '김현준'이란 예명으로 겨우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가수 심수봉은 1979년에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으로 만들었던 <순자의 가을>이란 곡을 이듬해에 자신의 앨범에 실었다가 금지곡이 돼 버렸다. 버리기엔 아까웠던지 심수봉은 이 곡을 나중에 슬쩍 제목만 바꿔서 방미에게 주었고, 이게 방미의 대표곡 중 하나인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이다.
더 웃기는 사례는 코미디언 김명덕. 주걱턱이라는 이유로 방송출연을 금지당했다. 박용식 씨는 전두환과 정말 많이 닮아서 그렇다 쳐도, 김명덕은 닮은 부분 하나 없이 그냥 주걱턱이라고 방송금지를 당했다.

3.2. 땅투기 의혹


친인척들을 이용하여 강남 땅투기 바람을 불러일으킨 원흉이라고 지탄을 많이 받는다. 별명이 '''연희동 빨간바지'''였다고 한다. 1970년대부터 서울 강남의 투기 현장을 ‘빨간 바지’를 입고 누볐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라고. 참고로, 5공은 투기꾼들과 짜고 친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1988 서울 올림픽의 재정을 확보하겠다고, 서민주택 500만 호를 깨고 만든 목동신시가지아파트가 그 예.

3.3. 한국 만화 산업 탄압


"만화란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면서 한국 만화의 발전을 저해한 이력이 있다. 참고로, TBC가 언론통폐합으로 폐국하기 직전에 방영하려고 했던 것이 '''기동전사 건담이었다.'''

3.4. 똥군기 논란


대한민국 해군 장병들에겐 관례를 깨고 함정 시승 시 함장석만 골라 앉아댄 시건방진 집권자라며 가장 미움받는 남편과 함께 가장 미움받기도 했다.[8] 재임 중 해군 장교들의 정복 수장견장을 자기가 볼 줄 모른다며 육군식 철제 정장을 정복에 패용시키는 만행을 저지른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훗날 원래대로 돌아와서 잘 정착되었다.
게다가 하나회 일당들의 부인들 사이에서도 왕노릇을 하며 똥군기를 부려가며 독재를 했다. 이게 어떤 거냐 하면 전두환노태우는 '''사적으로는 친구'''지간임에도 불구하고 이순자는 노태우의 부인인 김옥숙을 마구 하대했다. 하지만 이후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자 김옥숙은 "나는 당신과 다르다. 당신은 체육관 출신 대통령 부인이고 나는 전 국민이 뽑은 직선 대통령 부인이야! 옛날에는 많이 당했지만 지금은 아니야!" 라고 일갈하며 ''' 독재자 마누라, 대통령 마누라'''라고 강력하게 어필하기까지 했다.
이 정도로 이순자는 개인 인격이 썩어 문드러졌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못된 인물이다.

3.5. 5.18 민주화운동 관련 논란


2017년 3월 23일에는 당신은 외롭지 않다라는 제목의 '''불쏘시개'''(…)를 출간하였는데, 목차부터가 남편 전두환('그분'으로 지칭)에 대한 옹호로 가득하다. "전두환의 쿠데타는 사심이 없는 쿠데타였다", "우리 부부도 5.18 '''사태'''[9]의 희생자다", "최규하 전 대통령이 오히려 남편에게 후임 대통령 자리를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등의 발언을 담고 있어서 비난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뉴스 기사 같은 출판사에서 남편 전두환도 전체 2천쪽 분량의 전3권으로 구성된 회고록을 출간하였다.전두환 회고록

2019년 1월 1일에는 1월 7일 예정된 전두환의 재판 출석을 앞두고 '''"내 남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버지이다."''' 라는 망언을 하여 많은 논란을 빚고 있다.관련 기사[10]

3.6. 기타


1980년대에는 KBS 이규원 아나운서가 이순자의 조카라는 소문이 돌았던 모양이다. 이규원 아나운서 본인의 말에 의하면 성이 이씨로 같고, 외모적으로 어딘가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심지어 직장 동료들도 그 소문을 믿고는 "대외적으로는 아니라고 하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혈연관계가 전혀 없다. 심지어 이규원 아나운서 본인은 이순자를 본 적도 없다고.[11]
2007년 탤런트 박상아와 아들 전재용의 미국에서 결혼식 뉴스 때에도 박상아는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해외 파병과 관련한 전쟁 특수도 주변에 있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도 상당한 추녀였다. 특히 '주걱턱'으로 유명해서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자 방송에서 주걱턱이라는 단어가 대머리와 함께 언급이 금지되었다. 이순자가 이렇게 소문난 추녀임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의 아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이규동 장군이었기 때문이었으며 전두환은 오직 출세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4. 이순자를 연기한 배우들


  • 이상숙 - 제4공화국, 삼김시대
  • 견미리 - 코리아게이트
  • 김영란 - 제5공화국[12]

[1] 여기서 1남이 이순자와 무려 12살 아래고, 매형 전두환보다 무려 20살이나 어린 이창석이다. [2] 당시 공부 좀 한다는 여학생은 경기여중-경기여고를 거쳐 서울대이화여대로 진학하는 것이 당연한 코스였다. 남학생은 경기중-경기고-서울대. 이것이 일명 KS#s-3 마크다.[3] 당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결혼은 학칙상으로 퇴학 사유였다. 이는 구한말 이화학당을 세운 미국인 여성 선교사들이 어린 소녀들을 강제 조혼에서 벗어나도록 하려고, 금혼을 아예 교칙에 넣었기 때문이다. 이 교칙은 2003년에 폐지되었다. 그리고 굳이 이화여대가 아니더라도 이 당시는 시대가 여자는 결혼하면 학교고 직장이고 관두고 집안 살림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이기도 했다.[4] 그런데 동창들 사이에선 까무잡잡한 피부에 얼굴이 예뻤기 때문에 ‘필리핀 공주’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5] 이멜다 마르코스는 사치 등으로 악명이 높다.[6]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애완견의 이름을 순자로 짓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고 한다.[7] 19금 영화다.[8] 지금도 함장실은 높으신 분들이 오면 접견실 개념으로 내준다고는 하지만, 그 방 안에 있는 함장석은 절대 내줄 수 없는 것으로 자리잡았다.[9] 이것만 봐도 얼마나 편향되어 있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학계의 의견은 공통적으로 항쟁이라고 주장하는데, 일부 보수 진영의 주장으로 사태가 중도적인 명칭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나, 실제로는 현재 사용되는 '민주화운동'이 중도적인 명칭이며, 오히려 당시 사태라고 칭한 것은 정부 측이었다. 당장 광주특위 때도 민주정의당은 광주 사태를 고집하며, 격하시켰다. 광주민주화운동 진보편향 명칭설 문서 참조. 참고로, 야당에서는 <광주민주항쟁>, <광주민주화투쟁>을 밀었다.[10] 첫 단임 대통령이니까 민주주의의 아버지란 소리를 하는데, 단임제는 민주주의랑 딱히 연관이 없다. 미국 대통령만 해도 4년 연임제고 독일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10년 넘게 집권 중이고 핀란드우르호 케코넨 전 대통령이 장기집권에 가까울 정도로 통치를 했었다. 아마 8차 개헌 때, 전두환 본인이 종신집권을 못 하도록 여러 장치(유신헌법 독소조항 다수 삭제, 대통령 7년 단임제, 연임제로 개헌해도 당시 대통령에게는 효력없음)를 만들어놓았다는 것과 6.29 선언을 통해 물러난 것을 언급하는 모양인데, 민주주의는 장기집권을 막는 것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민의를 충실히 반영하는 제도와 독재를 막기 위한 견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에서 나온다. 5.17 내란, 5.18 민주화운동, 국회해산권 유지, 국가원로자문회의, 4.13 호헌조치, 6.10 민주 항쟁만 봐도 저런 개소리는 나올 수가 없다.[11] 본인 인터뷰[12] 당초 견미리가 캐스팅되었으나 SBS 금요드라마 <사랑공감> 때문에 고사했는데 공교롭게도 견미리는 이 드라마의 전작인 <아내의 반란> 캐스팅 물망에 올랐지만 <제5공화국> 때문에 거절한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