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보병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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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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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 제5군단 제6보병사단 예하 '''제7보병여단'''. 상징명칭은 '''초산'''.[3]
1946년 2월 7일, 충북 청주에서 창설되었다. 그 후 1947년 말 조선경비대 제1여단(현: 제1보병사단)에 예속된 뒤 1948년 6월 14일 제6보병사단의 전신인 4여단에 배속된 이래 6.25 전쟁 개전 이후 춘천, 동락리, 초산 등지에서 맹활약하면서도 현재까지도 6사단 예하의 부대 편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6사단의 적자(嫡子) 부대라는 자부심이 있으며, 휴전 이후 2연대와 함께 최전방 산악지형을 경계하고 있다. 게다다 제2땅굴까지 맡게 되버리는 바람에 6사단 내에서도 빡세기로 소문이 나 있다. 막사 시설은 6사단 내에서도 꽤 좋은 편이다.[4] 6.25 전쟁 발발 초기에 국군 최초의 승리를 안겨준 부대이며 그 후에도 수 많은 전투에서 지속적인 승전보를 울린 부대이다.
그리고 국방개혁 2.0 기본계획에 의거, 상비사단과 지역방위사단이 개편돼 이 연대 역시 2020년부로 여단급으로 격상되었다.
2. 편제
2.1. 여단 직할대
2.2. 군수지원대대 (구: 연대 수송대)
2.3. 제1대대 초산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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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산 전투 당시 압록강 초산까지 진격한 1대대가 압록강변의 물을 수통에 담아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자부심이 있다.
2.4. 제2대대 음성무극전승
1946년 2월 7일 충철북도 청원군 사주면 개산리에서 창설된 부대이다. 연대급 부대로는 세번째로 창설된 육군 부대이며 당시의 부대 편제를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부대중 하나이다.
6.25전쟁 발발 직후 38선 방어 임무를 성공한 몇 안되는 부대중 하나이며, 이후 춘천지구에서 2개의 군단 규모의 적을 궤멸 시키는 등 6.25전쟁 발발 당시 초창기에 활약을 하면서 북한의 남침을 늦추는데 큰 공을 세운 부대이다.
음성무극전승대대는 충북 음성군 무극리에서 육군 최초로 승전보를 울린 음성지구전투(동락리 전투)로 유명하다. 동락초등학교에서 부임중이던 교사의 신고를 받고, 집결해 숙영중인 2개 연대규모의 북한군을 기습해 2185명을 사살하고 132명의 포로를 잡았다. 야포, 장갑차, 차량 등 다수의 주요 장비들을 노획하는 성과를 냈다.[5] 이 전투로 아군은 1명의 부상자만 발생했고 국군 최초로 전 장병 일계급 특진의 영예와 함께 제1호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았다.
2.5. 제3대대 개천돌진
한국전 당시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북진할 때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북한 개천시를 점령하여 국군이 압록강 초산까지 진격하는 발판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