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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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상징명칭은 '''승진부대(VICTORIOUS ADVANCE)'''.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을 근거지로 하는 대한민국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소속 군단이다.
1953년 3월 1일 창설되었으며, 2개의 사단과 4개의 여단을 예하에 두고 있다. 2020년 5월 8일부로 군단장은 김현종 중장(육사 44기)이다.
2. 상세
1953년 10월 1일에 창설되었으며 1954년 12월 2일 제1야전군사령부 예하로 편입되었다가, 1973년 7월 1일 창설된 제3야전군사령부가 경기도 지역을 인가받으면서 제1군단, 제6군단과 함께 예하 부대로 배속되었다. 2019년 1월 1일부터는 지상작전사령부 예하 부대이다.
부대마크에 대하여 5군단 인트라넷 홈페이지에는 Victory의 V를 상징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군단급 부대가 모두 로마숫자로 부대 마크를 표시하고 있고 미군과 많은 국가의 5군단이 5th가 아닌 V Corps로 영문을 표기하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부대마크 형태상 제50보병사단의 마크와 약간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테두리 문양이나 크기도 완전히 다르고 빨간색 바탕의 제50보병사단 마크와 색깔이 딴판이라 쉽게 구분 가능하다. 오히려 마크의 색상 배열이나 테두리 등 분위기는 제1군단의 마크와 유사하다. 경례구호는 '통일'이었으나 2009년부터 부대 명칭과 통일하여 '''승진'''으로 변경하였다.
위수지역은 중부전선 지역인 경기도 포천시와 강원도 철원군으로 전면전 발발시에 북한군이 전차 등으로 쓸고 내려올 주요 축선에 위치하기 때문에 최전방에서 매우 중요한 방어임무를 맡고 있다. 직접적으로 대치하는 위쪽의 부대 역시 5군단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때 아래쪽 최고 군단이면서 동시에 위쪽 최고 군단을 막는 부대라면서 자부심을 고취시킨 적도 있다.
김일성은 철의 삼각지대 철원평야를 빼앗기고 3일을 울었다고 한다. 전략적 요충지인 만큼 정전 이후에도 남·북한은 철원지역에 주력부대를 집중 배치했다. 북한은 한국전쟁 당시 서울 점령에 큰 공을 세운 사단을 철원지역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맞서 5군단은 한국전쟁에서 최대 전과를 세운 제6보병사단과 제3보병사단 등을 내세웠다. 3사단은 1950년 10월 1일 최초로 38선을 돌파해 북진했으며, 6사단은 '춘천대첩'으로 당시 유일하게 38선 방어에 성공하고 중공군 3개 사단을 물리친 ’용문산 전투’ 등 혁혁한 공을 세웠고 1950년 10월 26일 최초로 압록강까지 진격한 뒤 철모로 물을 떠 대통령에게 헌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후 창설된 '''최초의 군단급 제대'''였기 때문에 직할 부대들 또한 특수병과별로 우리나라 최초로 창설된 경우가 많다. '''국군 최초의 특공부대 제705특공연대'''를 비롯해 '''육군 최초 창설 포병대대'''도 5군단 예하 사단에 2개 대대나 예속되어있을 정도이다. 여단급 예하 부대로는 '''국군 최초의 전차대대를 예하에 둔 국군 최초의 기갑여단'''인 '''제1기갑여단'''과 '''제5공병여단''', '''제5포병여단''', '''제5군수지원여단''' 등이 있으며 특히 '''제5포병여단'''은 '''대한민국 국군 최강의 화력'''을 가진 포병부대로 명성이 높다.
여담으로 이야기 하면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맹호부대가 제7기동군단으로 편제가 바뀌기 전에 여기 5군단 소속이었기 때문에, 작계지역상으로 수기사는 아직도 5군단의 영향을 받고 있다. 물론 상위 명령 계통상으로는 7군단이 바로 위에 상급 부대지만 작계지역상으로 수기사는 5군단 작계지역 내에 있는 부대로서 지역 내 상황이 발생시 7군단의 상황이 끝났어도 5군단의 상황이 끝나지 않는다면 훈련은 계속 되는 안습한 상황이 벌어진다.
3. 편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승진훈련장'도 제5군단이 통제하고 있다.
3.1. 직할부대
3.2. 예하부대
4. 과거부대
5. 출신인물
메이커 사단을 1개도 아니고 2개씩이나 거느린(8사단이 7군단으로 배속되기 전에는 3개) 대규모 군단인 데다 중부전선 최전방 길목을 사수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다 보니 군사정권 시절부터 대한민국 육군 장성들 사이에서 5군단장 직책이 중요 진급 코스들 중 하나로 인식되었다. 사실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문제이다. 강한 화력과 중요 임무를 맏는 군단이다 보니 군단장으론 능력과 신뢰도 양자를 모두 갖춘 인물을 고르게 되고, 그러한 인물이 이후 출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실제 1963년 당시 4성장군으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정희 前 대통령이 정식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자 서울 인근의 부대들을 제쳐두고서 굳이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제5군단[11] 으로까지 가서 자신의 전역식을 치른 것은 군사정권하에서는 상당히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5군단장 출신의 장성들이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합동참모의장, 육군참모총장/차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의 요직에 진출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런 경향은 민주화 이후 다소 약화된 편이다. 역대 5군단장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5.1. 군단장
5.2. 장교/부사관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 중령 시절 군단 작전처에서 교육과장을 역임했다.
現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 준장시절 5군단 참모장을 역임했다.
5.3. 병
6. 기타
6.1. 근무환경
6.2. 승진훈련장
경기도 포천시에 있는 약 600만 평에 달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승진훈련장'을 보유하고 있다. 실질적인 관리는 승진 훈련장에서 가장 가까운 예하부대였던 제8기계화보병사단이 담당하게 했었다.[14] 승진훈련장은 공지 합동훈련이나 통합화력시범훈련 같은 대대 규모의 합동훈련을 실시할 수 있는 국내에서 유일한 곳이다. 육군 부대로는 제8기동사단과 제11기계화보병사단,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등이 승진 훈련장을 자주 사용한다. 이외에도 5군단 예하의 제1기갑여단(승진 훈련장에서 가장 가까운 부대)등 기갑여단도 자주 사용한다.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어 안보관광상품이라는 이름으로 화력시범 및 기동훈련 같은 것을 유료로 관람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전술장비시험군단'''으로 최첨단 무기체계의 시범이나 훈련을 도맡아 하며, 특히 선진 지상전력 C4I 체계인 ATCIS를 대한민국 국군 최초로 전략화한 부대로 이와 관련하여 주한미군과 합동훈련도 자주 하는 등 상당히 과학화된 군단이다. 제7기동군단이 전군 내에서 최신장비를 먼저 지급받는 부대라면 제5군단은 교리연구나 체계를 담당하는 부대이다. 6.25 전쟁 62주년이 되는 2012년 6월에는 국무총리 주관하에 육군 제5군단과 주한미군이 함께 역대 최대 규모의 한미통합화력훈련을 실시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훈련엔 육군 5군단을 비롯해 미군 아파치 부대 등 총 38개 부대와 2천여명의 병력이 동원되었으며, 공중조기경보통제기 피스아이와 국내기술로 개발된 FA-50 경공격기 등의 당시의 최신예 장비들이 첫 선을 보이기도 했다.
6.3. 승진회관
6.4. 군단가
7. 사건사고
8. 여담
사단급 예하부대는 대한민국 육군의 메이커 사단으로 불리는 '''제3보병사단(백골)''', '''제6보병사단(청성)'''이 포진해 있다. 더불어, 메이커 사단인 수도기계화보병사단과 제5보병사단[15] , 제8기동사단[16] 이 과거 제5군단 소속이었다. 그 당시는 군단 하나에 메이커 사단이 5개나 되었다.
2021년 말까지 제6군단이 해체되고 제5보병사단이 다시 5군단으로 예속될 예정이다. 제5기갑여단도 5군단으로 예속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5사단 6사단 3사단 1기갑여단 5기갑여단 5포병여단 5공병여단 5군수지원여단의 3개 메이커 사단과 5개 여단을 예하에 거느리는 막강한 군단이 된다.
5사단과 3사단이 6사단의 전방 섹터를 나누어 방어하고 6사단은 후방 포천 지역으로 완전 이전하여 예비사단의 임무를 맡게될 것이라고 한다.
육군사관학교 출신만 군단장을 맡았다. 이 점은 제1군단과 동일하다.
9. 부대영상
[1] 대한민국 최초의 노드부대[2] 대한민국 최초의 특공부대[3] 대한민국 최초의 정보부대[4] 항공단 야전 군단 직할 배치 계획에 따라, 군단 직할부대로 편성.[5] 2010년 8월 4일 건립 이후 5군단의 통제하에서 관리되고 있다.[6] 대한민국 최초의 전차대대를 포함한 대한민국 최초의 기갑여단이다.[7] 1983년 제7기동군단으로 예속전환.[8] 2016년 제7기동군단으로 예속전환.[9] 2018년 04월 16일 육군동원전력사령부로 예속전환.[10] 2018년 04월 16일 육군동원전력사령부로 예속전환.[11] 정확히는 3사단 항공대가 있었던 철원군 군탄리이다. 지금은 군탄공원[12] 3회 역임[13] 이분은 이례적으로 민주화된 김영삼 정권에서 국방부장관직 전에 육군참모총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합동참모의장까지 군요직은 모두 거치는 등 당시에 대단한 인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14] 그러나 8사단이 16년 12월 1일부로 7군단으로 예속변경 되었고, 26사단과 통합하며 경기도 양주로 이전했다. 승진 훈련장 관리를 담당하던 8사단 예하 138기보대대는 2018년 9월 1일부로 제1기갑여단으로 예속전환 되었다.[15] 1990년대 초반, 육군은 6군단을 현재의 7군단처럼 기계화군단으로 개편하려 하였고, 5사단은 보병사단으로 남기기 위해 5군단으로 예속되었으나 6군단의 개편이 백지화되면서 90년대 후반에 다시 6군단으로 돌아왔다.[16] 8사단은 16년 12월 1일부로 5군단에서 7군단으로 예속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