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국

 

[image]
'''이름'''
조병국
(曺秉局 / Cho Byung-Kuk)
'''생년월일'''
1981년 7월 1일 (43세)
'''국적'''
[image] 대한민국
'''출신지'''
울산광역시
'''신체 조건'''
183cm, 78kg
'''포지션'''
센터백
'''학력'''
학성중 - 학성고 - 연세대[1]
'''소속 클럽'''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1~2004)
전남 드래곤즈 (2005)
성남 일화 천마 (2005~2010)
베갈타 센다이 (2011)
주빌로 이와타 (2012~2013)
상하이 선화 (2014)
촌부리 FC (2015)
인천 유나이티드 (2016)
경남 FC (2017~2018)
수원 FC (2018)
사우스코스트 유나이티드 (2019~)
'''국가대표'''
11경기 1골
1. 개요
2. 클럽 경력
2.1. 데뷔 이전
2.2. 국내 시절
2.3. 일본, 중국, 태국 생활
2.7. 사우스코스트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포지션은 센터백이다.

2. 클럽 경력



2.1. 데뷔 이전


울산 출신인 조병국은 울산 학성중, 학성고를 거쳐 연세대에 진학해 활약했다. 청소년 대표팀 경력도 있었다.
여담으로 이 때 높은 점핑과 긴 체공시간으로 인하여 '에어조(Air Cho)'라는 별명을 얻었다.

2.2. 국내 시절


2002년에 조병국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했으며, 중간에 있었던 우승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2004년 막판에 부상을 당했었고, 이후 2005년 조병국 + 고종수김남일을 영입하며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했다. 그러나 부상을 또 당하면서 한 경기도 뛰지 못했고, 팀에서 입지가 좁아져 1년이 지나기도 전에 전남을 떠났다.
재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지만, 성남 일화 천마에 합류한 이후 조병국은 다시 기량을 되찾아 핵심 수비수로 자리잡았다. 그는 2010년 5월 29일 제주전을 마지막으로 군 입대하러 떠나기로 했지만, 어깨쪽의 습관적인 부상으로 인해 면제되어 팀에 복귀했다.

2.3. 일본, 중국, 태국 생활


2010년 시즌을 마친 뒤 조병국은 베갈타 센다이에 자유계약으로 이적했다. 한 시즌간 28경기를 소화한 뒤 주빌로 이와타로 떠났으며, 2014년에는 상하이 선화에 합류하며 중국까지 갔다. 1년 후엔 태국 촌부리 FC에서도 활약했다.

2.4. 인천 유나이티드


2016년 1월 9일, 조병국이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한다는 기사가 떴다. 슬슬 선수 생활의 마무리를 위해 국내 복귀를 택한 듯. 15일 공식 입단이 발표되었다. 인천UTD, 국가대표 출신 수비수 조병국 영입 5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 전에서 2010시즌 이후 다시 K리그 클래식로 복귀하여 요니치와 좋은 호흡을 보여주었다. 이후로도 조'''벽'''국으로 각성하여 나이가 믿기지 않는 활약을 펼치며 시즌 초 흔들리던 인천의 수비를 다시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동안의 활약을 인정받아 김용환과 함께 K리그 클래식 15라운드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팀 수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요니치가 흔들릴 때도 꾸준한 모습을 보였고, 수비라인의 중심축으로 활약하기도 하는 등 자신의 축구 인생의 막바지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 팀을 잔류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젊은 선수들이 많은 인천에서 고참으로 팀을 집결시키는 역할도 하는 등 경기 외적으로도 큰 도움이 됐다. 르엉쑤언쯔엉도 조병국의 도움을 언급한 바 있다.

2.5. 경남 FC


2017년 1월 2일 경남 FC로 이적한다는 기사가 발표되었다.
경남에서 조병국은 배기종, 최재수같은 베테랑들과 팀의 중심을 잘 잡아주면서 2018시즌 경남의 리그 단독 선두를 이끌었다.

2.6. 수원 FC


2018년 6월 11일 여름이작 시장에서 은퇴 대신 수원 FC로 이적하였고, 과거 수원 삼성 시절 동료였던 김대의 감독과 재회하게 되었다.
이적 후 첫 경기였던 대전 시티즌전에서 활약하며 무실점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으며, 이후 2018시즌 반년간 조유민과 함께 팀의 중앙 수비진을 든든히 지키며 활약한 뒤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2.7. 사우스코스트


2019년 호주 6부리그인 일리와라 프리미어리그 소속 사우스코스트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였다.
아들의 영어 교육은 물론 팀의 유소년 선수로 입단했다고 한다.#

3. 국가대표 경력


홍명보의 후계자로 국가대표팀에서 적극 지지를 받은 선수이다. 홍명보의 은퇴 이후 김태영-조병국-최진철 백 스리가 가동됐을 정도. 2003년 콜롬비아전에 국가대표로 데뷔했지만, 2003년 4월 1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친선 경기에서 종료 직전 조병국이 걷어낸 볼이 가만히 서 있던 일본 공격수 나가이에게 맞고 얼떨결에 골로 연결되고, 같은 해 7월 23일 일본 올림픽 대표팀과의 경기에서도 자책골을 넣는 등 한일전에서 임팩트있는 실책들을 저지르며 욕도 많이 먹었고, 그 이후 자신감이 많이 하락했는지 국가대표팀에서 영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011년 10월 7일에 있었던 폴란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막판에 치명적인 패스 실수를 범하며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고,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팀에 뽑히지 않았다. 국가대표팀 기록은 11경기 1골.

4. 플레이 스타일


183cm로 센터백으로서는 비교적 작은 신장임에도 위치 선정과 제공권 능력, 그리고 파워가 뛰어난 강점이다. 세트피스 공격에서도 뛰어나 과거 골 넣는 수비수로도 활약했다. 특히 수원에서 입은 허리 부상으로 인해 신체능력이 하락하기 전에는, 터키와의 A매치에서 키 191cm의 하칸 쉬쿠르를 완벽하게 제압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뛰어난 점프력과 과감성을 자랑했다.
이후 성남에서 2006 월드컵 주전으로 활약한 김영철등과 함께 통곡의 벽을 이루며 성남의 전성기를 이끌기도 했으며, 이후에도 국가대표팀 명단에 종종 올랐지만 조용형, 이정수, 곽태휘, 김진규, 강민수등을 이기지는 못했다.
인천으로 이적한 후의 그의 플레이를 보면 나이가 들면서 쌓인 노련함을 바탕으로 침착한 플레이를 보여주며, 상대 공격수들의 압박에도 쉽게 당황하지 않고 볼을 처리해내는 선수이다. 그리고 때때로 전방으로 전진하여 공격 가담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인천이 쓰리백을 주축 전술로 사용하면서 이윤표와 조병국이 번갈아가며 올라가도 수비의 인원이 충분하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수비력도 2015년도 요니치처럼 뛰어난 편.

[1] 2001년 중퇴